요즘 가장 트렌디한 건축 이슈 | 지큐 코리아 (GQ Korea)

요즘 가장 트렌디한 건축 이슈

2021-10-06T16:37:20+00:00 |living|

바삭한 트렌드의 껍질 속 진정성으로 채운 속살. 분야를 막론하고 정공법을 뒤집어 보여주는 이 시대의 정신. 그리고 오늘날의 집.

“요즘 건축 트렌드는 무엇인가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종종 받는 질문에는 대답을 생각해두는 편이라 ‘집’이라고 조금 머뭇거리며 답한다. ‘조금 머뭇거리기’는 전문가적인 말하기의 아주 적절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바로 말하면 생각하지 않고 말한 것같이 보이고, 한참을 기다리다 말하면 이제 생각해서 말한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정말 쓸데없는 생각이지만)
요즘 가장 트렌디한 건축 이슈는 가장 오래된 건축의 형태, 집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생활의 변화는 좀처럼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집을 변화시키고 있다. 집 안에서도 일하는 공간과 프라이버시를 구분하는 방식으로 방의 배치가 변화하기도 하고, 내부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한 중문 설치, 택배 보관함 설치 등 크고 작은 다양한 변화를 만들고 있다. 특히 디지털 기술과 아날로그 요소를 융합한 디지로그의 가속화는 생활 전반의 전환을 빠르게 이끌고 있다. 집에 관한 다양한 트렌드를 접하면 나만 모르고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과 함께 집을 가꾸고 싶은 욕망과 마주하게 된다. 자, 집을 꾸며보자! 생각과 동시에 SNS를 통해 수많은 트렌드를 자신에게 맞추어보고 자신의 방과 집을 편집한다. 어떤 집은 몸에 잘 맞는 옷처럼 멋지게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부분적으로 좋아 보이는 것을 선택한 결과는 잘 맞지 않는 옷처럼 금세 힘을 잃는다. 어떡하면 트렌디하면서 내게 잘 맞는 집을 만들 수 있을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아주 쉽고 뻔한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뻔한 것, 식상한 것에 매력이 있을까? 잘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아침 드라마의 단골 소재인 출생의 비밀은 채널을 곧바로 돌리게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수십 년 보게 하는 마력도 공존한다. 뻔한 것은 스토리나 음악을 전문적으로 알지 못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해의 문턱’이 낮기 때문에 그 안에 담긴 미묘한 감정이나 디테일을 좀 더 깊게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집도 그렇다. 화분 놓기, 창가에 하늘하늘한 리넨 커튼이나 우드 블라인드 달기, 책상에 스탠드 조명 올리기 등 쉬운 것은 부담이 없다. 개인의 기억이나 추억을 생각해보고 감성을 더하면 그것은 자신의 것으로 변모한다.
노래나 영화 등에 흔히 쓰이는 뻔한 소재, 진부한 표현 등을 뜻하는 ‘클리셰’는 원래 프랑스어로 인쇄를 위한 연판을 지칭하는 단어다. 판에 박힌 듯 생명력 없는 모습은 진부해 보인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본받다’라는 어떤 장점을 공유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의미다. 또한 ‘클리셰’는 기준점이 된다. 문화의 지표가 되기도 하고, 패러디나 반전의 기반이 되기도 한다. 건축에서 이런 반전을 가장 잘 사용한 건축가는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2014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일본 건축가 시게루 반이다. 건축은 짧게는 수십 년에서 길게는 수천 년간 지속되는 것도 있다. 오랜 세월 구조적으로 튼튼하고 비와 바람 등 외부 환경을 견디도록 건축 재료는 돌이나 금속, 나무를 사용한다. 시게루 반은 돌이나 금속과 같은 강한 건축 재료에서 벗어나 가장 약한 종이라는 소재에 주목했다. 역사적 건축물은 종교나 정치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기에 속성상 권력과 가까울 수밖에 없다. 그는 종이로 기둥을 만들어 건물을 짓고, UN 난민 수용 임시 건물을 대기업의 로고가 찍힌 플라스틱 방수 천과 종이 기둥으로 디자인했다. 건축이 지닌 강함, 견고함, 권력이라는 ‘클리셰’에 반전을 시도해 건축의 지평을 크게 넓혔다. 피카소는 ‘클리셰’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규칙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먼저 규칙을 완벽하게 익혀야 한다.” 뻔한 것, 올드한 것에는 세월이 담겨 있다.

겉이 어느 정도 완성되었다면 두 번째는 속을 채울 차례, 진정성이다. 어려운 것 같지만 철학적인 의미를 살펴보면 단순하다. 진정성은 기성의 정체성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을 이해하려는 시도이고, 자기와 세상의 관계를 탐구하는 것이다. 집은 나와 가족이 사는 공간, 그리고 자신과 세상을 연결하는 구심점이기에 나를 알아가는 과정으로 집을 만들어간다면 집은 완성형이 아니라 진행형이어야 한다. 나와 가족이 끊임없이 변하듯 이 변화를 집과 함께하는 것이다. 건축가나 인테리어 디자이너도 아닌데 집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망설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집 바꾸기는 의외로 간단하다. 한 예로 식탁을 거실 한 가운데 놓으면 식사를 하거나 대화를 하는 것이 집의 중심이 된다. 한 벽만 비워서 자신이 좋아하는 글이나 사진을 스크랩해서 붙이면 자신이 좋아하거나 관심 있는 내용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가족과의 대화 소재도 될 수 있다. 집은 나와 가족의 확장이어야 한다. 진정성은 나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편안한 것만이 내가 아니듯, 편안함이 집의 모든 것이 될 순 없다. 재미있는 것, 고요한 것, 활발한 것, 일상적인 것 등 집은 나와 가족의 다양함을 담는 그릇이다. 트렌드의 힘은 다양한 모색을 만들고, 다양한 모색은 다양한 방향을 만든다. 방향 중 진정성과 본질에 연결된 몇 가지는 문화의 구심점이 된다. 우리는 그것을 클래식이라 부른다. 겉만 있을 것 같은 트렌드의 이면이 진정성의 시작점이 될 수도 있고, 트렌드와 진정성이 함께 있을 때 세상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도 있다.
현대 건축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근대 건축가를 단 한 명만 선정하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미스 반데어로에를 선택할 것이다. 지금 짓고 있는 전 세계 거의 모든 오피스 빌딩의 평면과 입면은 그의 생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심지어 큰 변화도 없다. 그는 건물을 지지하는 기둥과 건물 중앙의 계단, 엘리베이터, 화장실이 모여 있는 코어 공간을 제외한 나머지 건물 내부는 텅 빈 공간으로 두었다. 텅 빈 공간은 공간 배치에 자유를 부여한다. 건물의 입면 또한 커튼을 두르듯이 붙이는 방식으로 벽이 하중을 지탱하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 현재 아파트의 상당 부분은 미스가 1927년 바이센호프 주택전시회에서 선보인 바이센호프 아파트의 형식을 빌렸다. 1970년대 구반포아파트와 비교해도 형식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고, 오히려 디자인적으로는 훨씬 뛰어나다. 미스가 활동하던 20세기 초는 기하학적인 건축이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신학을 바탕으로 철학을 집대성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에 심취했던 그는 원리, 질서, 형태의 본질을 건축에 구현하려 했다. 철과 유리로 만들어내는 단순하고 명쾌한 구조와 형태, 자유로운 평면과 입면은 건축의 본질과 ‘진실함’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이제 클래식이 된 미스의 건물은 그 당시 트렌드와 진정성의 결과다.

얼마 전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해남 대흥사의 100년 된 유선여관을 일 년 간 리노베이션해서 오픈했다. 가장 고민했던 건 요즘 경험하는 트렌디한 한옥 스테이와 무엇을 함께하고 또 무엇이 다를 수 있을까였다. 고민의 결과는 뜻밖에 ‘다를 것이 없다’였다. 전통이 단순한 과거의 복제나 흉내 내기면 그것은 생명력을 잃어버린 박제물과 같다. 지금과 함께 있는 것이지 지나고 단절된 어떤 것이 아니다. 그러곤 생각해보았다. 진정성은? 여기에 묵은 수많은 사람의 기억, 그리고 주변의 공기와 나무, 계곡, 밤하늘의 별을 떠올렸다. 집은 배경이 되고, 시간의 기억과 주변의 자연이 중심이 되는 공간. 이것이 트렌드와 진정성의 결합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트렌드가 유혹적인 바삭한 껍질이라면 진정성은 촉촉하게 입안에 오래 머무는 속살. 문득 겉바속촉 치킨이 먹고 싶어졌다. 글 / 김대균(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