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에서 안 가면 후회하는 스팟 9 | 지큐 코리아 (GQ Korea)

바르셀로나에서 안 가면 후회하는 스팟 9

2022-03-17T14:27:41+00:00 |travel|

어떤 해와 도시의 이름은 그야말로 착 붙는다. 1992년 바르셀로나. 30년 전 이미 축제는 끝이 났지만, 도시에 남겨진 예쁜 풍경들은 이제야 서른 살을 맞았다.

몬주익에서 바라본 바르셀로나의 전경.

“바르셀로나는 남쪽 나라의 북부 도시다.” 스페인 출신 작가 마누엘 바스케스 몬탈반의 말 대로다.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의 매력을 갖추는 동시에 북부의 비전을 지닌 도시다. 그리고 1992년은 바르셀로나에 중요한 해로 기억된다. 황소, 파에야, 세비야 이미지로부터 탈피하고 싶었던 이 도시에는 새로운 이미지와 변화를 위해 ‘디자인’이 필요했다.
“바르셀로나는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이고, 전에는 밤에 즐길 거리나 호텔 등의 관광 시설이 발달하지 않았어요. 다른 지역으로 오가는 교통도 원활하지 않았죠. 지루한 도시였어요. 그런데 1992년 이후로 많은 것이 변했죠. 지금은 관광객으로 끓어넘치죠.” 테니스 선수 세르히오 카살이 말한다.
1986년 10월, 파리나 베오그라드, 브리즈번, 버밍엄, 암스테르담 등의 도시들이 올림픽 개최를 열망한 가운데 바르셀로나는 그 모든 도시 위에 올라섰다.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국제올림픽위원회 제7대 위원장으로, IOC를 파산 위기에서 구하고 올림픽경기대회를 수익 사업으로 전환시킨 공적으로 종신명예위원장으로 추대된 인물이다)가 올림픽 개최 도시를 바르셀로나로 발표할 당시에 카살에게 어디에 있었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회상한다. “비엔나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하고 있었어요. 발표 다음 주에 파리에서 열린 토너먼트에서 존 매켄로를 이겼죠. 제 운동 인생에서 길이 남을 경기였어요. 그래서 올림픽 개최지 발표는 제게 큰 행운의 증거죠. 결코 잊지 못할 순간이에요.”

“파스쿠알 마라갈과 그의 팀은 건축가 오리올 보히가스와 함께 바르셀로나가 지닌 다른 차원의 차별점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어요. 이 도시는 이미 디자인 선구자였어요. 새롭게 솟아오르는 도시의 캐릭터가 눈에 띄었고, 거기에는 색다르고 진취적인 비전이 있었어요. 그들의 문화나 지중해풍 캐릭터, 창의성, 예술적 비전을 결합해 시선을 끄는 방식은 성공적이었어요. 결과적으로 전세계가 주목하게 됐으니까요.” 디자이너 나니마르퀴나는 말한다.
“1980년 후반, 저는 뉴욕에 거주하면서 월스트리트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이제 막 금융업계에 발을 들였을 때죠. 당시에 로잔에 가려고 휴가를 신청했어요. 올림픽 개최지 발표를 위해 로잔에 머무는 아버지 옆에서 휴가를 보내고 싶었거든요. 제게 투표권은 없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곳에 가족과 함께 있고 싶었어요.”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의 아들인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주니어는 이렇게 당시를 회상한다. 그는 현재 국제올림픽위원회의 위원이다.
올림픽은 정치적 이념을 떠나 모든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프로젝트다. 시민 사회는 정치의 혼합체이고, 바르셀로나 시민들은 외부에서 사람들을 유치하기 위해 의욕적으로 행동했다. 젊은 아나키스트나 펑크족이 스타디움 입구에서 목격되는가 하면, 실제로 그 기간 동안은 기존의 틀을 구성하던 어떤 클리셰가 무너지고 있었다. 당시 로살리아와 더불어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불릴 정도로 히트를 한 ‘Amigos Para Siempre(영원한 친구들)’이라는 곡은 현재까지도 해시태그로 인기가 높다. 당시 대중들 사이에 분 유례없는 바람은 아마 동시대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추구하는 바가 아닐까. 급진적인 의견을 내려면 청중의 지지가 뒤따라야 한다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저는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다른 시민들처럼 즐길 수는 없었어요. 저는 호스트 입장이었고, 저의 부모님에게는 많은 책임이 뒤따랐으니까요. 전 세계에서 모인 사람들에게 우리의 도시를 보여주는 것이 제 임무였어요. 저의 두 눈으로 바르셀로나가 새롭게 탄생한 것을 실제로 볼 수 있게 된 건 아주 큰 행운이죠.” 사마란치 주니어가 말했다.
1992년은 시우다드 콘달이 문을 연 해이며, 도시 개발과 수정은 탁월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도시에 사용하는 모든 벽돌에 의미가 있어야 했다. 더 넓게, 더 아름다운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주변의 낙후되어 버려진 동네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지역은 소중하게 남아 있다. “도시의 공간과 오브제, 그리고 거리 곳곳에 디자인이 담겼어요. 물론 모두가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 새롭게 달라졌죠. 그리고 밤 11시부터 시작되는 나이트 라이프도 잊을 수 없죠.” 나니마르퀴나는 회상한다.

당시의 꿈같은 시절을 다시 경험하고 싶다면, 다음 코스를 눈여겨본다. 먼저 엘 모르디스코 El Mordisco나 라 플라우타 La Flauta에서 식사를 하고, 필마 Pilma나 장 피에르 부아 Jean Pierre Bua, 캠퍼 Camper로 향해 쇼핑을 즐긴다. 리디아 델가도 Lydia Delgado와 조셉 아브릴 Josep Abril, 안토니 미로 Antoni Miró의 쇼룸도 방문해보자. 그러나 사마란치 주니어의 루트는 조금 다르다. 산 펠립 네리 광장 Sant Felip Neri에서 시작해 업앤다운 Up&Down 나이트클럽이나 매혹적인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몬 주익 Montjuic과 포트 올림픽 Port Olímpic 바에서 마무리. “젊은 사람들은 오토 주츠 Otto Zutz에 가겠지만요.” 사마린치 주니어는 웃는다.
카살은 바르셀로나의 나이트 라이프에 대해 이렇게 조언한다. “진정한 전통을 유지하는 사이드카 Sidecar나 에스튜디오 54 파랄 Estudio 54 Paral.lel, 셀레스테 Zeleste, 라스마타스 Razzmatazz 같은 바도 좋고, 조금 떨어진 곳의 미라블라우 Mirablau와 피파 클럽 Pipa Club도 좋죠.” 나니마르퀴나가 덧붙여 말한다. “라 빌라 올림피카 포블레노우 La Vila Olímpica del Poblenou’ 주변 산책 코스도 훌륭해요. 평범한 주거 지역을 운동선수 숙소로 개조하면서 완전히 상업적인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죠. 또 하나 추천할게요. 1929년 지은 몬주익의 올림픽 스타디움.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위해 완벽하게 복원했어요. 그리고 노먼 포스터가 건축한 콜세롤라 타워 Torre Collserola도 도시의 가장 높은 건축물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죠.”
바르셀로나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해변, 공항, 건물, 호텔에 이르기까지 1990년대에는 놀라운 변화로 가득했죠. 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데 있어요. 바로 우리 모두의 자존감이 높아졌다는 점이에요. 올림픽 이후 바르셀로나는 세계적으로 굉장한 인상을 남겼고, 우리 모두가 스스로 훌륭한 존재라고 생각해요. 전에는 스페인의 자존심이라 하면 마드리드, 혹은 바다호스 Badajoz 사람들에게나 속한 거였죠. 그러나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바르셀로나의 가능성은 여전히 끝을 모른다는 걸요.”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주니어는 눈을 반짝이며 또렷하게 말했다.

팔로 알토 정원에서 자신이 디자인한 의자에 앉아 있는 하비에르 마리스칼의 모습. 그는 1989년 디자인과 사진, 건축계의 여러 크리에이티브 회사와 함께 당시에는 버려진 공장 부지인 이곳에 정착했다.

마리스칼과의 대화
CNT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역사상 최고의 올림픽인가요?
J.M 모든 나라가 자국의 올림픽이 최고라고 말하죠. 스페인은 독재와 내전이라는 과거를 극복하고 민주주의가 도래한 지 이미 10년이 흐른 뒤인 1992년이 되어서야 제대로 된 정당이 탄생했어요. 올림픽이 스페인을 현대화했다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죠.
CNT 그러나 올림픽을 통해 큰 수익을 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죠.
J.M 1992년까지는 올림픽을 통해 많은 돈을 벌었어요. 그 전에는 광고나 홍보가 따로 없었죠.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시니어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이봐, 코카콜라나 이베리아, 다논 같은 브랜드와 100만 달러 협약을 맺었으니, 그걸로 올림픽을 홍보해보는 건 어때?”라고요. 그리고 그들은 그런 방식으로 광고해 올림픽을 세계화했어요. 기술 발전으로 TV 버튼만 눌러도 전 세계 사람들이 올림픽을 접할 수 있게 되었죠. 이때 처음으로 텍스트와 로고를 추가하거나 화면을 둘로 나누는 기능이 생겼어요.
CNT 하지만 당신은 올림픽에 크게 신경을 쓰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아요.
J.M 물론 전쟁보다는 올림픽을 개최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하지만, 그 이상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요. ‘최고의, 가장 빠른’ 같은 콘셉트는 흥미롭지 않죠. 결론적으로 최고가 되기 위해 매일 수영을 하고, 러시아 선수를 2초 차이로 이기려고 몸을 만들기 위해 매일 삶은 달걀을 먹는 게 전부거든요.
CNT 올림픽은 혁신이라는 전제도 갖춰야 하죠.
J.M 맞아요. 절벽에서 뛰어내릴 수 있는 모험심이 필요해요. 개막 1년 전부터 라푸라 델스 바우스 극단의 메디테라네오에 참여한 배우는 대중에게 모험심을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에 대해 고민했고, 실제로 혁신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었어요. 상상만 해도 멋지네요.
CNT 그런 과정 속에서 당신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었죠?
J.M 콘테스트로 마스코트를 선정할 때였어요. 사실 페레나 비슷한 영향력을 지닌 누군가가 선정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더 영향력을 발휘하고 존경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리스크를 안고 ‘코비 Cobi’가 선정된 이유는 그간의 고정관념을 부수고 싶어 하는 마라갈이 의장을 맡은 20명의 심사위원 덕분이에요. 코비는 뛰어난 운동선수도 아니고 무언가를 대단히 잘하지도 않죠. 대신 아주 귀엽고, 애정이 넘치며, 여행을 좋아해요. 좋은 곳에서 토마토, 맥주, 올리브를 곁들여 빵을 먹어요. 대다수의 우리처럼요.
CNT 처음에는 찬성률이 낮아서 불가능해 보였어요.
J.M 맞아요.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스페인 국민의 지지율이 81퍼센트였어요. 최고의 호응이었죠. 부모 세대에게는 이러한 모든 것이 혁신적이었어요. 새 시대가 도약한 거죠.

바르셀로나 올림픽 경기장.

【SPOTS】올림픽 개최로 새롭게 탄생한 건축물, 그리고 갈 만한 곳.
바르셀로나 수영 클럽 Club Natació Barcelona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녔으며, 스포츠뿐 아니라 지역 사회의 상징적인 장소다. ‘바닷물 수영장 포함 클럽’의 4대 수영장 중 하나다.
호텔 아츠 Hotel Arts 파도를 바라보며 잠들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 호텔 높이는 마프레 타워와 동일한 154미터. 이 호텔에 머문 레니 크라비츠와 프린스, 믹 재거, 마돈나는 그 가치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라 감바 La Gamba 현재는 사라진 레스토랑 감브리너스를 기념한 마리스칼의 작품으로, 순수한 바르셀로나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포트 올림픽 Port Olímpic 건축가 보히가스와 마르토렐 Martorell, 막카이Mackay, 푸이도메네치 Puigdomènech가 설계했다. 흥미로운 미식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올림픽 경기장 Estadi Olímpic 1929년에 처음 지었지만, 올림픽 경기를 위해 완벽하게 개조했다. 모든 음악가의 목표이자, 메카노 Mecano의 컴백 공연과 더 위켄드의 공연이 열린 곳이기도 하다.
팔라우 산 조르디 Palau Sant Jordi 바르셀로나의 상징 중 하나로 몬주익 Montjuic에 위치하고 있으며, 최고의 음악 콘서트와 가족을 위한 공연 및 스포츠 행사를 개최한다. 볼 만한 공연이나 행사가 항상 진행 중이다.
콜세롤라 타워 Torre de Collserola 건축가 노먼 포스터의 작품으로, 산책이나 피크닉을 즐기기에 가장 이상적인 장소다. 티비다보 Tibidabo 공원 근처에 위치했으며, 높이는 해발고도 445.5미터에 이른다.
호텔 카날 올림픽 Canal Olímpic 카스텔데펠스 Castelldefels 지역에 있으며, 최첨단 기술을 구비한 공간. 현재는 케이블 스키, 웨이크보드 스쿨, 웨이크 스케이트 시설을 구비했고, 로컬 랍스터를 즐길 수 있다.
마프레 타워 Mapfre Tower 건축가 이니고 오르티스 Íñigo Ortiz와 엔리케 데레온 Enrique de León의 작품으로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책임지고 있다. 호텔 아츠와 함께 스페인에서 가장 높은 건물 중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