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국을 떠나 외국에 사는 이유 6 | 지큐 코리아 (GQ Korea)

내가 한국을 떠나 외국에 사는 이유 6

2022-03-30T18:47:47+00:00 |living|

세계 곳곳 여섯 명의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려 보낸 안부.

NEW YORK 유해리 @haeleeyou
이 곳에서 뉴욕 생활 12년 차. 대학 학부 생활을 위해 왔다가 정착한 뉴욕은 매일이 여행이 되는 도시다.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출구 없는 매력에 아직도 떠나지 못한다.
4월을 기다리며 센트럴파크 건너편, 미술관과 으리으리한 맨션들이 줄 지어 있는 어퍼이스트를 담았다. 웨스트빌리지는 자그맣고 아기자기한 가게가 많아서 제일 자주 찾는 동네고, 어퍼웨스트 사이드는 로컬이 많아 한산해서 편안하게 다니기 좋은 동네다. 코로나19로 인해 평범한 일상이 제일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요즘, 날씨 좋은 날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것을 먹고, 걷고, 구경하고, 특별하진 않지만 특별한 하루를 보내고 싶다. 4월 뉴욕의 어느 풍경을 담아 보낼까 고민하다 이번 그림을 통해 나도 여행하는 기분을 내고 싶었다. 뉴욕 주민이지만 여행자의 마음으로 내게도 매번 새로운 동네를 그려본다.
당신에게 멀리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이 그림이 작은 창문이 되길 바라며.

 

PARIS 솔지 @leesoljiart
이곳에서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직업인 데다 이곳에서 만난 연인이 7년째 파리에 머무는 이유 중 하나다. 파리는 여행자가 아닌 체류인, 외국인으로 지내면서 부딪히는 현실적인 문제가 셀 수 없이 많지만, 그럼에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햇빛 좋은 날 센 강변을 걸으며 3유로짜리 캐러멜 크레이프를 사 먹고, 하루 일과가 끝나면 동네 소극장에서 심야 영화를 보는 일상적인 행복에 발이 묶여버려서. 그 소소한 행복이 이곳에 계속 머무르게 한다.
4월을 기다리며 가족과 친구들이 파리에 오면 꼭 데려가는 장소가 있다. 파리에서 가장 좋아하는 산책로, 백조들의 섬이란 의미의 시뉴섬 Île aux Cygnes과 비르아켐 다리 Bir Hakeim다. 영화 <인셉션>에서도 등장한 비르아켐 다리에서는 탁 트인 센강과 하늘과 에펠탑이 보인다. 섬에는 이름처럼 실제로 백조들이 사는데. 특히 봄에는 아기 백조도 볼 수 있다. 귀여운 것만큼 큰 행복이 있나.
당신에게 겨우내 대도시의 번잡함에 지쳐 따뜻한 봄의 산책을 기다리는 당신에게, 파리의 작고 소중한 일상을 담아.

 

ROTTERDAM 소냐리 @sonalee_rgb
이곳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산 지 6년 반이 됐다. 처음에는 친구를 따라 모험삼아 왔다가 이곳의 다문화적이고 자유분방한 모습에 빠져들었다. 좋은 인연들이 생기며 오래 머무는 중이다.
4월을 기다리며 4~5월에 튤립이 필 때쯤의 네덜란드 들판 모습이 떠올랐다. 전형적이지만, 그 풍경이 실제로 네덜란드이니까. 봄이 오고 네덜란드의 짓궂은 날씨가 조금이나마 잠잠해지면 차를 타고 가다 종종 즉흥적으로 내려 경치를 즐기고는 하는데, 그때 느껴지는 공기와 노을의 느낌을 그림에 담았다.
당신에게 계절이 바뀔 때 느껴지는 그리움과 기대감에 젖은 이들에게.

 

NANCY 묘지 @myo_ji
이곳에서 2013년 9월부터 프랑스 낭시에 살고 있다. 이곳에 도착한 당시 심적으로 많이 지쳐 있었는데. 작고 조용한 곳이라 마음을 쉬이 추스릴 수 있었다. 자연스레 도시와 정이 들었다.
4월을 기다리며 낭시에 스타니슬라스 Place Stanislas라는 이름의 광장이 있다. 과거 폴란드 국왕이 조성한 곳이자 작은 도시의 유일한 관광지로 근처에 큰 공원과 카페가 모여 있다. 날씨가 좋은 날 광장을 종종 산책하는데 요즘 따라 여름에 열리던 불빛 쇼와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같이 광장에서 즐겼던 시간이 새삼 그립다. 봄이 만개하면 일찍 일어나 광장 카페 테라스에서 식사를 하며 햇볕도 쬐고 사람 구경도 잔뜩 하며 생기 넘치는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
당신에게 걷기 좋아하는 분들, 카페 특히 볕이 잘 들어오는 테라스 자리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아침 식사로 가볍게 크루아상에 커피와 오렌지 주스를 한잔하고 바로 옆에 있는 페피니에 공원 Parc de la Pépinière에서 이른 봄꽃을 구경해보시기를.

 

BERLIN 구세인 @koosse
이곳에서 배낭여행 중 3일간 짧게 머문 베를린은 애써 무언가 하려 하지 않아도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자유롭고 편안해 내게 맞는 도시라고 직감했다. 이후 3년째 베를린에 살고 있다. 내가 나로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점, 사회적 압력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 이곳에 계속 머무르게 한다.
4월을 기다리며 마트 구경하기와 가드닝은 가장 큰 관심사이자 취미. 4월에도 나는 마트에 가서 과일과 채소, 새로 나온 꽃을 살펴보고, 신제품 스낵을 사 먹고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 한국에 비해 스낵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은 독일에서 매년 꾸준히 사 먹는 과자 폼베어 Pombär(봄마다 스프링 에디션이 나온다), 생김새나 생육 방식이 흥미로워 빠져 있는 구근(튤립, 프리틸라리아, 무스카리 등 여러 구근을 길렀다), 철마다 다른 멜론(독일에 살며 8가지가 넘는 멜론을 먹어봤다), 콜라비(요즘 콜라비의 흐물거리는 잎에 꽂혔다. 벽에 걸어두고 말려도 아주 예쁘다).
당신에게 여행지에서 마켓에 꼭 들러 현지 일상의 활기를 즐기는 사람에게.

 

LONDON & SEOUL 고준호 @bekologic
이곳에서 삶은 참 하루 앞을 알 수 없다. 매일을 샌드위치 한 조각으로 버티던 시간 끝에 드디어 런던의 스튜디오에 출근한 첫날 팬데믹이 찾아왔다. 1년여의 회사 생활 후 다시 서울로 돌아왔지만, 기대와 걱정을 안고 헤쳐나간 장소인 런던은 내게 첫 자취방 같은 도시이기에 언젠가 다시 돌아갈 것이다. 비로소 나를 완성한 곳이니 애정이 깊을 수밖에.
4월을 기다리며 비 오는 저녁 킹스턴 템스 강변 모습을 담았다. 4월 즈음이면 영국은 겨울의 긴 어둠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서머타임이 시작된다. 그러니까, 템스 강변에서 햇볕을 맞기 위한 사람들이 밤낮 없이 몰려 맥주를 마시며 밀린 이야기를 나누는 때. 어둑하니 비 오는 날이면 북적이던 사람들은 집으로 가고 강 위의 백조마저 숨는데, 고요가 찾아온 그때서야 무리에서 벗어난 친구와 오랜만에 이야기하듯 애틋한 감정이 든다. 4월의 그런 날 그곳으로 돌아간다면 줄곧 일상이었던 것처럼 걷고 싶다. 아마도 어색하진 않을 것이다.
당신에게 잠깐 멀리 서 있고 싶은 사람들에게 걱정 없는 이탈이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