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큐 코리아 6월호 커버의 주인공 '발렌틴 훔브로이히' | 지큐 코리아 (GQ Korea)

지큐 코리아 6월호 커버의 주인공 ‘발렌틴 훔브로이히’

2022-06-13T13:01:55+00:00 |interview, pictorial|

Mother’s Day에 발렌틴 훔브로이히를 만났다. 오늘은 발렌틴의 날이기도 한데.

더블 스트레치 코튼 코트, 나파 레더 블루종과 팬츠, 러버 퍼들 부츠 가격 미정, 모두 보테가 베네타.

이틀 내내 내린 비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그친 이른 아침, 모델 발렌틴 훔브로이히가 호텔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 그는 날아갈 듯한 가벼운 곱슬머리에 어울리지 않는 크고 뚱뚱한 백팩을 메고 있다. 그러나 가방 크기에 의문은 없었다. 에이전시의 상냥하지만 엄격한 담당자에게서 촬영이 끝나자마자 밀라노행 비행기를 타야 하니 시간을 꼭 지켜달라는 신신당부, 재차 확인을 거듭 들었으니까. 본인에게 한 번 더 체크하기 위해 비행기 출발 시간을 물었을 때, 발렌틴은 “Um… Good question” 하고는 말끝을 흐렸다.(그는 이후로도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에는 이렇게만 답했다. 나름대로의 젠틀한 위기 모면법인 듯했다) 그는 정확한 시간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이틀 뒤 예정된 밀라노에서의 캠페인 촬영은 여전히 확정되지 않은 것들이 ‘거의 결정되다시피 한, 그러나 변수는 있는 확률’인 80과 90 사이를 떠돌고 있었다. 2018년부터 발렌틴은 이런 생활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뉴욕, 런던, 밀란, 파리행 비행기 티켓과 기차표는 출발 세 시간 전에 문자 메시지로 날아왔다. 그는 늘 다른 도시로 떠날 채비를 마친 상태로 메시지를 기다렸다. 공항과 기차역에서 발렌틴이란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든 드라이버를 볼 때면 비로소 새 일이 시작된 것을 실감했다. 이젠 자크뮈스와 에트로, 베르사체 등 유니크하고 작은 쇼, 성대하고 화려한 쇼 모두 섭렵한 주인공이자 톱클래스 캠페인 모델이 되었지만, 이런 방랑 생활은 익숙해져도 좋아지진 않는 일이다.

불규칙하고 불확실하며 불안정한 시간 속에서 발렌틴이 찾은 해결책은 집과 가족이었다. 발렌틴은 아주 짧은 여유라도 생길 때면 무조건 함부르크 집에 간다. 이젠 한참 작아진 침대에서 엄마가 쓰는 섬유유연제 냄새를 맡으며 자고, 가족들이 다 좋아하는 접시에 담긴 익숙한 음식을 먹으며, 한 살 터울의 동생과 유치하게 지내는 것. 그러고 나면 다시 다른 도시로 떠날 마음의 준비가 됐다. 프랑스 배우였던 이모는 발렌틴에게 일찍이 모델 일을 권했다. 그렇게 아이스크림 가게 아르바이트를 하던 고등학생은 졸업 후, 이모가 말한 ‘쿨하고 멋진 일’을 시작했다. 한꺼번에 인종과 연령과 성별이 다른, (그중 누구 하나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는 게 처음엔 당혹스러웠지만,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성격 덕에 낯설지만 매력적인 사람들과 만나는 일을 점점 즐기게 되었다. 이젠 타지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방법도 터득했다. 도착지가 정해지면 집에 있는 익숙한 물건을 배낭에 미리 하나씩 넣어두는데, 요즘엔 색소폰을 갖고 다닌다. 피아노를 치는 엄마, 기타를 튕기는 동생과 함께하는 패밀리 합주가 최고지만, 숙소에서의 독주도 꽤 괜찮다고 생각한다. 자주 듣는 힙합이나 테크노 뮤직을 틀고 거기에 색소폰 라이브를 얹는 독창적인 방법.

촬영지까지 차로 한 시간 반을 달리는 동안 해는 나왔다 들어갔다를 얄밉게 반복했고, 발렌틴은 창밖의 날씨는 모른 채 머리를 고장 난 와이퍼처럼 분방하게 움직이며 잠에 빠졌다. 한적한 코네티컷 시골의 목장에 도착했을 때 푸실리 같던 곱슬머리는 링귀니처럼 납작하게 눌려 있었지만, 놀랍게도 그의 손가락 빗질 몇 번에 다시 원상 복구되었다. 예쁜 곱슬머리는 엄마의 유전자다. 어렸을 땐 곱슬머리가 싫어서 엄마를 원망했다고, 발렌틴은 연신 웨이브를 되살리며 낮게 웃었다. 촬영이 시작되자 발렌틴은 뛰노는 말처럼 겅중대며 에너지를 뿜다가 돌연 경계심 많은 새처럼 작고 우아하게 움직였다. 핸드볼과 트랙 앤 필드(달리기, 던지기, 뛰기 등 트랙 위에서 하는 모든 운동)는 그에게 크고 작은 근육을 선물했고, 다리의 흉터는 그처럼 아름답고 건강한 몸의 대가로 표식처럼 남았다. 버릇이자 습관, 동시에 취미인 운동은 마음도 더 굳고 단단하게 만들었다. 스트레스와 분노, 온갖 걱정을 모두 운동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아이들을 위한 스포츠 테라피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촬영이 끝날 때까지 결국 그는 비행기 시간을 전달받지 못했다. 코끼리 같은 백팩을 메고 숙소로 다시 돌아가면서도,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삶은 어떻게 될지 몰라서 더 흥미로운 거잖아요. 괜찮아요. 캠페인 촬영보다는 오늘이 마더스 데이인 게 더 신경 쓰여요. 모처럼 엄마를 보러 갈 수 있다면 그게 더 좋겠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