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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주부터 전통주까지 연말에 선물하기 좋은 술 10

2022.12.16전희란

술과 멋이 흐르는 시간.

정춘모 갓일장과 젊은 디자이너 듀오 워드스튜디오가 만든 갓 조명은 공간의 분위기로 아름답게 스민다. 예올.
돌멩이를 닮은 형태인 허상욱 작가의 분청 상감 선문 병에서는 선적인 율동감이 표현되어 있다. 자연에서 왔는데, 그 자체로 자연 같다. 솔루나 리빙. 도예가 권대섭의 백자 주병은 기개와 멋을 품었다. 아름답다 못해 병나발을 불고 싶게 한다. 조현화랑.

SCENE #1
눈 나리는 겨울, 푸른 새벽. “새벽에 나린 눈처럼 깨끗한 느낌을 살려 만들었어요. 청렴한 선 비들이 흰색 도복과 갓을 쓰고 마실 법한 담백하고 깨끗한 술이죠.” 술샘 양조장의 서설은 단색화같이 미니멀한 라벨을 두르고 초연히 서있다. 훌륭한 술에 무슨 수식어가 필요하냐는 듯 호방한 자세로. 한국 토착 효모로 발효 시킨 서설에서는 잘 발효된 술에서 나는 특유의 과실 향, 사과 향이 뜨끈한 온천의 김처럼 폴폴 핀다. 저온 발효, 저온 숙성으로부터 나온 은은한 맛과 향이 눈 쌓인 겨울밤 낮게 깔린 공기와 닮아 있다. 시선은 옆에 선 일오백 화이트로 흐른다. 소곡주 명인이 서천 지역의 천연수, 찹쌀, 누룩, 백미를 가지고 백제시대부터 전해온 전통 방식으로 빚은 술. 찹쌀이 온몸을 바쳐 넉넉히 내어주는 단맛, 진한 감칠 맛의 생주는 겨울날의 입김처럼 푸근하다.

 

윤규상 작가의 천연한지 우산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17호 한지 장인 홍춘수 장인의 천연 한지로 마감했다. 오죽 뿌리로 된 손잡이 부분까지 멋스럽다. 예올.
반투명 소재로 모던하게 재해석한 나주소반은 하지훈 작가가 제99호 소반장 보유자 김춘식 장인과 협업해 완성했다. 조은숙 갤러리. 연호경 작가의 위트가 엿보이는 ‘메이드인코리아’ 주병, 2ceramists. 권은영 작가의 가시 모티프 작업 중 비벤덤을 닮은 주병, 조은숙 갤러리.

SCENE #2
겨울임을 잊은 듯 햇살이 쨍쨍한 어느 한낮. “꽃밭에 누운 한가로운 호랑이처럼 한낮에 즐 기는 새참 막걸리”라는 슬로건을 건 호신술을 비장하게 꺼낸다. 쌀, 누룩, 사과, 유자, 벌꿀, 건로즈메리가 들어간 선선한 술. “차갑게 마실 수록 더 맛있어요. 향긋한 허브 향, 신선한 맛을 음미할 줄 아는 술꾼이라면 안주는 없어도 좋아요.” 호랑이배꼽과 손잡고 호신술을 빚어낸 꽃술의 조언에 귀기울인다. 붉은 색으로 풍경에 포인트를 놓은 핑크 포션 또한 ‘낮술러’를 위한 해사한 선물. “햇살 좋은 정오, 아이스 버킷에 핑크 포션을 푹 꽂아 칠링하며 한 잔씩 즐겨보시길. 산미가 강하고 과즙 풍미 가 풍부한, 매우 발랄하고 반항적인 술이죠. 자칭 ‘힙찔이’,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사람들, 야외 활동을 즐기는 사람, 그리고 당신에게 바칩니다.” 핑크 포션을 잉태한 ‘같이 양조장’은 위트도 핑크빛이다.

 

허명욱 작가의 아톰 오브제는 술상의 주인공처럼 우뚝 서있다. 조은숙 갤러리. 원소주가 놓인 복복 소반 접시와 챔피온 잔은 연호경 작가의 위트가 돋보이는 오브제, 2ceramists.
원판을 층층이 쌓은 조장현 작가의 쉐이드 시리즈는 전통 청자의 다양한 유색을 그윽하게 드러낸다.

SCENE #3
12월의 오후 3시, 낮술인지 밤술인지 모호한 시간대. “코오롱 스포츠를 입은 70대 할아버지, 노스페이스를 입은 50대 아버지, 파타고 니아를 입은 20대 자녀까지 3대 가족이 모이는 날, 각자 ‘인싸템’으로 소문난 원소주를 한 병씩 끼고 모입니다. 배경은 할아버지 집이어도 좋고, 가족 송년회, 혹은 산자락 아래 계곡이 흐르는 백숙집도 좋아요. ‘이게 그렇게 핫하다며?’ 세대가 공감하는 현장에서 3대가 함께 소주잔을 부딪치는 거죠. BGM은 반드시 박재범의 ‘Eyes’ 혹은 ‘좋아’로.” 원소주 BM의 말. 원소주 클래식은 강원도 토토미 쌀과 누룩, 누룩에서 채취한 효모의 맛을 힘껏 끌어낸 술이다. 미지근할 땐 누룩 향이 춤추고, 차갑게 마시면 입 안이 축제다. 그런가 하면 같이 양조장의 연희유자는 온당한 단맛과 신 맛을 지닌 탁주다. 전통주 호산춘을 기반으로 했는데, 미국 IPA 맥주 스타일을 표현했다니 그 발칙함이 얼마나 기특한지. 주룩주룩 양조장의 ‘떠마시는’ 술 하평구름은 디저트인 척 이 풍경에 쓰윽 놓이기 적절한 술이다.

 

당장이라도 날개를 펼 것 같은 형상의 ‘Green Creature’는 조희진 작가의 작품, 이스트스모크. 섬세하고도 강인함을 지닌 권은영 작가의 가시 모티프 볼, 조은숙 갤러리.
작고 귀여운 다관은 청자로 만든 조장현 작가의 작품, 산수화.

SCENE #4
겨울의 늦은 오후. 추운 계절 속 깊은 온기를 담은 찰나의 시간. “원테이블에서 식사하는 사람들 사이에 놓인 쑥크레를 상상합니다. 쌀쌀해진 계절의 오후 5시, 서너 명이 따뜻한 불빛 앞에서 온기를 쬐어요. 미나리전이나 전골 같은 다정한 음식이 올라온다면 좋겠어요. 복장은 편한 라운지 웨어에 BGM은 마일즈 데이 비스의 미디엄 템포 재즈로.” 푸릇푸릇한 쑥 향과 따뜻한 쌀 맛이 조화로운 탁주 쑥크레는 이양주 기법으로 100일 발효 및 숙성 기간을 거쳐 만든다. 따뜻한 블랭킷을 두르고, 게리 시나몬의 LP로 BGM을 옮기고는 송도향의 오마이갓 탁주와 스파클링 약주를 꺼낸다. 주 니퍼 베리로부터 온 뜻밖의 이국적 풍미, 우아한 박하와 후추 향의 한 방이 있는 탁주에는 따뜻한 스튜와 로스트 치킨이 잘 어울린다. 그런가 하면 백목련 꽃잎, 특유의 봄꽃 향기가 풍기는 오마이갓 스파클링은 아페리티프, 혹 은 디저트 샴페인으로 근사하다.

 

커다란 달처럼 둥실 떠오른 권대섭 작가의 백자 달항아리는 말없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백토에 장작 가마 소성했다. 조현화랑.
손바닥만 한 달 항아리 오브제는 연호경 작가의 작품, 2ceramists.

SCENE #5
비로소 조명이 물러난 겨울 저녁, 시린 창밖은 먼나라의 일이라는 듯 따뜻한 실내. “파자마 차림으로 에드 시런의 ‘Castle on the hill’을 재생해요. 캔들 하나 켜두고 양온소 온의 과하주, 자작 막걸리를 꺼내옵니다. 자작 막걸리에는 얇게 저민 부챗살 육전을, 더덕 향이 나는 과하주에는 불고기 양념에 구워낸 찹스테이크와 김치볶음밥이 좋겠어요. ‘얼죽아’를 고집하는 세대는 온더록으로, 뜨끈한 술이 당기는 아버지에겐 중탕한 과하주를 권해요.” 양온소 대표의 다정한 조언을 이어받아 날씨 양조장. “상주 포도와 다크 체리로 맛을 낸 막걸리 ‘해질녘’은 노을이 보이는 바닷가 앞, 딸기와 바나나로 만든 ‘겨울나기’는 모닥불 피어놓은 곳에 어울릴 것 같아요. 날씨양조의 모든 술은 기분좋은 산미가 바탕에 깔려 식전주, 애피타이저로 흥을 돋우기 좋아요. 이왕이면 흥겨운 비트의 음악을 곁에 두세요.” 지평주조의 석탄주도 이 저녁의 바이브와 어울린다. “대파가 잔뜩 들어간 제육볶음, 음악보다는 왁자지껄한 코미디와 함께 이 술을 여세요.” 지평주조 마케터의 조언에 따라 ‘차마 삼키기 애석한 술’이라는 본래 의미를 음미하며 석탄주를 천천히 입안에 굴린다.

 

김준용 작가의 유리 블로잉 작업 ‘Sunset on the Cloud’, ‘Green Flower’은 모두 1200도가 넘는 뜨거운 열기 앞에서 유리를 부풀리고 가위로 잘라내며 모양을 낸 뒤, 오랜 시간에 걸쳐 조각하듯 유리를 갈아내며 완성했다. 화병으로 쓰이지만 사실은 꽃보다 더 아름답다. 솔루나 리빙.
조희진 작가의 ‘Leaf Bowl’과 ‘Leaf Candle Holder’는 바닷속에서 방금 건져올린 듯한 신비함이 있다. 이스트 스모크.

SCENE #6
마침내, 겨울밤의 파티 신. “말끔한 룩을 하고 어떤 이는 샷으로, 어떤 이는 칵테일을 만들어 마십니다. 힙한 음악이 빠져선 안 되겠죠. 미르라이트 25는 그런 장면에 놓일 만한 술이에 요. 어떤 형식에도 얽매이지 않은 캐주얼한 증류주. 즐기는 방법도 마시는 사람의 수만큼 다 양해요.” 술샘은 감압 증류 방식으로 빚은 깔끔한 소주를 턱 내놓았다. 그런가하면 한산소곡주의 일오백 블랙은 블랙 드레스를 입은 파티 퀸같다. 일오백 블랙, 라임, 페퍼민트, 토닉 워터로 ‘서천 소곡토닉’을 만들면 이 밤의 주인공. 지평주조의 부의주는 키슈나 말린 과일칩에 최신 버전의 캐럴을 틀어놓고 거나하게 마신다. 그리고 마침내 ‘황새’가 등장하는 순간, ‘올나잇’ 예약. 이술을 빚은 이는 황새를 갓 태어난 아이처럼 품에 안고 말한다. “모두가 나답게 있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무드,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사람들과 손수 만든 음식과 함께 즐겨보세요. 살이 통통하게 오른 방어회 한 접시를 배달시켜도 좋지요. 니트로, 데워서, 온더록으로, 탄산수와 믹싱해도 좋죠. 각자가 자기답게. 그것이 풍류 아닐까요?”

피처 에디터
전희란
포토그래퍼
김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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