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쉐린 3스타 셰프 안성재 "저는 그저 제 일을 할 뿐이에요" | 지큐 코리아 (GQ Korea)

미쉐린 3스타 셰프 안성재 "저는 그저 제 일을 할 뿐이에요"

2022-12-28T17:19:11+00:00 |ENTERTAINMENT, interview|

힘, 은은함, 단순함. 안성재 요리의 근본이자 3스타가 된 지금도 결코 놓치지 않는 가치.

GQ 궁금해요. 3스타를 받으면 세상이 바뀐 기분인지.
SJ 크게 달라진 건 없어요. 사실은 같으려고 노력중이에요. “하던대로 하자”고 팀원들에게 이야기해요. 자칫하면 중심을 잃을 수 있으니까. 식당에서 더 시간을 많이 보내고 집중하려고 하죠.

GQ 3스타에 올랐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의 상황 기억나요?
SJ 완전 몰래 카메라 상황 같았어요. 순간적으로 눈물도 났고요. 미쉐린이 저를 울보로 만들었죠. 수상 모습을 보면서 “저도 함께 울었다”는 피드백을 많이 들었어요. 업계에 있지 않은 사람도 울컥했다고, 감동받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GQ 솔직히 예상도 했나요?
SJ 요리 시작할 때부터 상상은 많이 했지만 예상은 하지 못했어요. 제가 차마 닿을 수 없는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제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죠. 자기 일을 잘하면 오는 거라고 생각했을 뿐, 상 자체가 목적인 적은 없었어요. 오히려 존경하는 셰프님들이 “모수가 아니면 누가 3스타 받겠어”라고 칭찬해주실 때마다 이미 3스타를 받은 느낌이었죠.

GQ 최고의 자리에 올랐을 때의 맞닥뜨리는 고독이나 불안도 궁금해요.
SJ 최고의 자리에 오른 건 모든 직원이 땀 흘려서 맺은 열매예요. 저희 김진범 소믈리에도 ‘올해의 소믈리에’ 상을 받았어요. 저 혼자 한 게 아니죠. 하지만 고독과 중압감은 제가 해결할 몫이에요. 제가 잘났다기보다는 해외에서 볼 때 저, 모수가 어떻게 비춰지는지 알고 있어요. “한국 얼마나 잘 하나 보자”할 때 모수에 올 거라는 걸 알죠. 그 고독함, 부담감, 한국을 대표해야 한다는 압박은 제가 잘 감당해야 해요. How? 하던 대로, 제 기준을 가지고 한다면 실패하지는 않을 거예요.

GQ 어떤 셰프가 멋지다고 생각해요?
SJ 제가 그러려고 하는데, 주변에서 ‘츤데레’라는 말을 많이 들어요. 멋있으려고 노력하면 멋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온지음에 가면 “검이불루 화이불치(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라고 적혀 있어요. 저는 모수가 바로 그렇다고 생각해요.

GQ 모수의 음식에서도 과연 ‘검이불루 화이불치’가 느껴지죠.
SJ 무엇이 멋있는 요리인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요리 자체의 완성도가 뛰어나면 거기에 무언가를 더 장식하지 않아도 돼요. 그런데 그 위에 자꾸 무언가를 덧대려고 하는 음식이 많죠. 음식 그 자체의 완성도를 높이면,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힘이고, 은은함이고, 단순함이에요.

GQ 힘, 은은함, 단순함.
SJ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모수를 오픈할 때 그 세 단어를 떠올렸어요. 까닭은 모르겠어요. 지금도 그 세 단어를 가지고 많은 생각을 하며 메뉴를 만들어요. 메뉴가 잘 풀리지 않을 땐 노트의 맨 첫 장으로 돌아가죠. 어쩌면 그 세 단어 안에 모든 답이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GQ 동양 철학, 동양의 예술과도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나를 더 하고 싶을 때 과감하게 붓을 놓는 자세.
SJ 당시 샌프란시스코는 파인다이닝의 포화 상태였고, 셰프들이 한식을 기피할 때였어요. 나는 무언가 달라야 한다, 나의 오리지널 리티와 ‘Authenticity’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표현 방법 중 제일 멋진 게 뭘지 고민했죠. 맛은 물론이고요.

GQ 작년에 모수만의 MSG를 연구하고 있다고 했던 말이 기억나요.
SJ 완성되었어요.(미소) 파인다이닝에서는 흔히 시즌마다 메뉴가 바뀌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눈으로 보이는 변화는 별로 없어요. 여름이니까 푸릇푸릇하고 겨울이니까 가짜 눈을 만들어 뿌리는 대신, 그 안에 있는 맛의 레이어를 바꿔요. 보이는 것에서만 행복을 느끼는 분들에게 모수는 맞지 않는 식당이에요. MSG는 장난스러운 표현인데, 한마디로 모수만의 연두를 만드는거죠. 각 재료의 감칠맛을 추출해서 소스를 만드는 거예요. 코스 음식 중 도토리국수도 시즌마다 맛이 달라요. 도토리를 메밀로 바꾸는 식이 아니라, 도토리의 함량이나 조리 방식으로 변화를 시도해요. 자주 오는 분들은 그 미묘한 변화를 눈치채죠.

GQ 마치 계절의 변화처럼 느껴지네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나누는 건 인간의 계산법일 뿐 사실 그 안에 무수한 레이어가 있는 거잖아요.
SJ 음식에도 내면이 있어요. 내면에 섬세한 변화가 일어나는 거죠.
GQ 음식에 내면이 있다는 말, 굉장히 인상적이네요.
SJ 음식에는 얼굴도 있어요. 가이세키 하는 분들한테 많이 들은 말인데, 손님이 바라보는 정확한 시점이 음식의 얼굴이에요. 그것을 의도에 맞게, 치밀하게 계산해서 플레이팅을 하는 거죠.

GQ 그렇게 정면으로 접시에 담기는 게 중요한 까닭은요?
SJ 파인다이닝이니까요. 생선 하나를 자르는 데도 셰프의 직감이 필요해요. 어느 부위를 손님에게 드렸을 때 가장 멋있고 맛있어 보이는지 감각으로 알아야 해요. 그것이 셰프의 나르시시즘이고 고집이죠. “저 셰프 왜 저래. 어차피 비슷한데”라고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아주 작은 부분도 콘셉트 안에서 규율을 가지고 집요하게 하면 비로소 그 감동이 전해진다고 생각해요.

GQ 한때는 포르쉐 정비사가 꿈이었잖아요. 자유롭고 충동적인 성향은 여전한가요?
SJ 굉장히 자유롭고, 궁금한 거 못 참아요. 한 번 해 보자 주의죠. 결정은 아주 빠르지만 선택을 한 번 하면 끝을 봐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움직여요.

GQ 요즘은 어떤 것에 흥분돼요?
SJ 가끔 깜짝깜짝 놀라요. 내가 3스타 셰프구나! 저는 정말로 셰프의 일이 좋아요. 이 일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일이라서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만약 내일 식당에 유명한 셰프가 온다고 하면, 그 셰프를 어떻게 만족시킬지 상상하며 가슴이 뛰어요. 손님에게 무엇을 내었을 때 어떻게 반응을 할지, 어떤 생각을 할지, 의도한 것을 감지하고 대화로 이어져나갈 수 있을지 같은 것들이 너무 궁금해요. 플랜대로 되지 않은 것을 다시 수정하는 과정도 즐겨요.

GQ 가슴이 뛰지 않으면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나요?
SJ 안해요. 못해요. 물론 매사 그렇지는 않죠. 그래도 정말 가슴이 뛸 때는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무아지경이 돼요. 현실을 까맣게 잊을 정도로.

GQ 정말 예술가처럼 느껴져요.
SJ 요리에 몰두하다 마지막에 ‘내가 한 건가?’ 싶을 때도 있어요. 거기엔 정말 많은 생각과 보이지 않는 실패들이 축적되어 있죠. 손님이 마주하는 건 무수한 시간적 투자, 노력들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이에요. 그래서 누군가의 부정적인 평가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아요. 마이 웨이. 중요한 부분이에요. 이 사람의 생각을 듣고 수정, 저 사람의 생각을듣고 또 조정하다 보면 제가 말하는 이노베이티브와 크래프트맨십, 방향성과 맛은 존재할 수 없어요. 그러면 모두가 좋아할 만한 김치찌개 팔아야죠. 그렇다고 무조건 고집만 내세우는 건 아니고요. 모든 것을 배려하면서 제가 원하는 방향을 찾아가는 거죠.

GQ 그 밸런스는 어떻게 맞춰요? 감각, 혹은 치밀한 계획?
SJ 느낌, 감각이에요. 한국말이 어눌했던 시절에도 상대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는 빠르게 캐치했어요. 그것을 다 아우르고 있어야만 하죠. 독고다이인 것 같지만 어떤 면에서는 더 많은 공감이 필요한 부분이에요. 나의 고집을 부리기까지는 무수한 고민이 뒤따라야 하니까요.

GQ 별의 개수로 평가받지만 요리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 아닐까 해요. 진정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뭐라고 생각해요?
SJ 마음가짐이 많은 걸 좌우한다고 이야기해요. 착한 마음과는 달라요. 손님 위주로 생각하면 모든 게 심플해져요. 인간은 보통 자기에겐 관대하지만, 제3자의 눈으로 바라보면 관대할 수 없거든요. 정성. 클리셰하지만 결국 그 안에 모든 게 담겨있죠. 언젠가 영국손님이 오셨을 때 생선을 튀겨드린 적이 있어요. 그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This is like fish and chips what I have when I was young.” 일본 손님이 오셨을 때는 고마도후 요리를 드렸는데 그걸 드시고는 눈물을 보이셨어요. 한번은 한국계 중국 손님이 조그만 약과를 드시고 “어릴 때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약과가 생각난다”며 우셨어요. 제가 어렸을 때 저희 할머니 별명은 ‘약과 할머니’였어요. 매일 약과를 만들어 파느라 늘 집안은 기름과 생강 냄새로 진동했죠. 어릴 때는 그게 너무 싫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너무 보고싶은 할머니를 생각하면서 약과를 만들어요. 할머니가 약과에 담았던 것도, 저희가 지금 담는 것도 정성이에요. 우리 모두의 경험은 다르고, 경험한 맛도 달라요. 그럼에도 음식에서 자신의 경험과 삶을 떠올릴 수 있는 어떤 노스텔지어가 꺼내어지는 거죠. 여기엔 어떤 말도 필요 없어요. 음식으로 모든 게 전달되니까요. 1천 명 중 한 명이든, 1만 명 중 한 명이든, 혹은 아무도 울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저는 그저 정성을 담아 제 할일을 할 뿐이죠. 그런데 <지큐>에서 이렇게 진지한 얘기만 해도 되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