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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피 "힙합은 항상 프레시해야 해요"

2020.07.28GQ

대체 어디서 왔지?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루피를 볼 때마다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스트라이프 니트 집업, 버버리. 로프 디테일 쇼츠, 로프 디테일 부츠, 모두 릭 오웬스. 블랙 비니, 예스아이씨. 레오퍼드 프린트 듀렛, 듀렉데브 at 쿠드그라스. 볼로 타이, 불레또.

타이다이 레더 재킷, 블랙 티셔츠, 데님 팬츠, 모두 더그레이티스트. 비니, 슈프림. 로고 스니커즈, 발렌티노 가라바니. 반다나, 켄타로 오카와라.

로프 장식 패딩 재킷, 팬츠, 모두 크레이그 그린. 프린트 후디, 예스아이씨. 고글 디테일 비니, C.P 컴퍼니.

타이다이 니트, 엑스페리먼트. 그레이 트랙 팬츠, 블랙 트랙 팬츠, 모두 막시제이. 로고 버킷 햇, 체인 네크리스, 모두 오프 화이트. 볼드한 실버 네크리스, 릭 오웬스. 블랙 스니커즈, 크레이그 그린.

팜트리 프린트 셔츠, 블루 셔츠, 햇, 이어 커프, 모두 우영미. 원석 목걸이, 불레또.

AR 기반의 촬영이라 규모가 확실히 다르네요. 저도 좀 신기해요. 블루스크린 촬영은 몇 번 해봤지만 360도로 카메라에 둘러싸인 건 처음이에요.

신박하고 기발한 걸 발견하면 반사적으로 어떤 말이 튀어나와요? “This is Fresh”, “This is New”.

특유의 웃음소리도 빼놓을 수 없던데요. 지큐 유튜브와 한 시간 동안 럭셔리한 경험을 하는 ‘스페셜원’을 보면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아요. 하하. 그런 것 같아요. 친구들이 흉내 내기 전까지 제 웃음소리가 그렇게 특이한 줄 몰랐어요.

나플라한테 듣기로 우주, 미래에 관심이 많다면서요? 맞아요. 공상을 되게 즐겨요. 인생에는 별 도움이 안 되지만 나름 재미있어요.

이를테면요? 인류 문명의 수준이 스테이지 3이라고 하면 우주 어딘가 스테이지 8, 9의 문명이 있을 수 있고, 그들이 스마트폰을 보면 ‘쟤네는 우리 선조들이 썼던 물건을 쓰네’라고 생각할 거예요.

음악적인 상상 같은 것도 하겠죠? 노래 길이가 점점 짧아지는데 나중에는 1초짜리 노래가 나올지도 몰라요. ‘삐릿’하면서 정보가 전달되고 예술적인 만족이 충족되는 식으로요.

흥미롭네요. 미래에 AI가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는 척 노래를 부르는 상상도 해요. 그걸 듣고 공감과 위로를 느끼는 사람도 있고. 올해 발표한 첫 번째 정규 앨범의 ‘NEO SEOUL LOVE’, ‘않아’가 그런 상상을 표현한 곡이에요. 기계음을 입히고 최대한 감정을 절제해 로봇의 노래처럼 들리게끔 했는데 역설적이지만 슬프게 느껴지길 원했어요.

루피의 범우주적 레이더에 포착된 최근 이슈는 뭔가요? 일론 머스크가 흥미로워 그에 대해 엄청 찾아봤어요. “우주 개발을 통해 인류에게 지구를 벗어나 더 나아갈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을 주는 것이 가장 큰 미션이다”라는 말이 인상 깊더라고요. 기업을 운영하고 영리를 취하는 것 이상의 사명감을 가졌다는 점이 멋지다고 생각해요. 음악을 만들고 메킷레인 레코즈를 운영하는 일에 어떤 가치를 투영해야 하는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답을 찾았나요? 아직 와 닿는 건 없지만 이런 목표가 있어요. 최대한 많은 사람이 듣고 좋아할 수 있는 노래를 만들고 싶어요. 수세기를 통틀어 최고의 뮤지션을 선정한다면 알파고처럼 이론적으로 완벽한 곡을 만든 사람보다 마이클 잭슨이 우세할 거예요. 얼마나 많이 좋아하고 아는지가 중요한 셈이죠. LA에서 음악을 하다가 한국에 온 뒤로 좋은 음악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어요.

이전에는 뭐였는데요? 오히려 누구나 다 아는 음악에서 도망치려 했어요. 좀 더 마니아적이고 아는 사람만 아는 게 더 좋다고 여겼어요. 예술의 진짜 꿀잼은 그걸 완성한 예술가나 소수 엘리트만 즐길 수 있다는 말이 있어요. 아는 만큼 온전히 향유할 수 있다는 건데, 예전에는 힙합을 잘 아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길 원했어요. 그들이 더 즐길 수 있는 노래를 만드는 데 집중했죠.

느닷없이 그 생각이 바뀐 건 아닐 테고,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제가 하는 음악은 순수 예술이라 할 수 없어요. 상업, 대중 예술이에요. 5년 전 나플라와 한국에 온 이유도 순수하지 않았어요. 우리 노래가 한국에서 반응이 있다고 하니까 왔어요. 돈을 벌러 온 거죠. 그때만 해도 미국에서 유행하는 사운드가 한국에 알려지기까지 3~4개월이 걸렸어요. 그렇다면 진짜 미국 힙합을, 우리가 좋다고 생각한 음악을 한국에 전달하는 가교 역할을 하면 잘 풀리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요? 아티스트의 아집 때문에 현지화에 실패했어요. 민트 아이스크림을 팔더라도 고춧가루를 약간 넣지 않으면 안 됐어요. 하고 싶은 것만 고집하다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혔죠. 한국에서 어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다시 고민하게 됐어요.

메킷레인 레코즈 소속인 블루의 ‘DOWNTOWN BABY’가 음원 차트에서 역주행해 1위에 올라 화제가 됐어요. 그걸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크게 두 가지예요. 일단 진심으로 기뻤어요. 한국 음악 시장을 뒤흔든 루피, 나플라, 블루가 한 동네에서 자란 친구들이라는 사실이 대단하게 느껴졌어요. 이효리 님의 언급으로 다시 차트인을 할 수 있었지만,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는 노래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고 블루에게 얘기해줬어요.

다른 하나는 뭐죠? 자극이 됐어요. 아티스트로서 마음이 조급해지더라고요. 블루가 이룬 성취는 저와 나플라를 넘어섰어요. 메시와 한 팀에서 뛰는 수아레즈가 월드컵에 출전해 메시도 못 이룬 우승을 차지한 것과 다름없어요. 제 남은 인생에서 차트 1위를 휩쓰는 건 불가능할지도 몰라요. 좋은 노래를 만드는 것 외에도 여러 가지 상황과 운이 잘 맞물려야 하거든요.

자신의 상황을 정확히 볼 줄 아는 사람 같아요. 사색이 취미죠. 생각을 진짜 많이 해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도 하고. 그래서 다큐멘터리를 좋아해요. 다른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고,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제게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할 수 있거든요.

듣다 보니 이맘때가 루피에게 전환점일 수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힙합은 항상 프레시해야 해요. 근데 그것보다 잘하는 것을 좀 더 잘하고 싶어요. 신인상은 딱 한 번 받을 수 있잖아요. 힙합 신에서 제 존재가 더 이상 프레시하지 않음을 느껴요. 미국에선 열다섯, 열여섯 살 친구들의 노래가 인기를 얻기도 하는데 어린 친구들은 정말 달라요. 그들과 누가 더 새로운지 경쟁하기보단 오롯이 내 음악을 완성해야 하는 시점인 것 같아요.

경험치가 루피의 무기란 얘기가 될까요? 맞아요. 단순 계산일 수 있지만 그들보다 더 많은 경험을 쌓았고 숙련된 것도 있어요. 그걸 제대로 활용하지 않으면 지난 시간들이 무의미할 거예요.

어차피 자신의 실력을 증명할 단계는 지나기도 했죠. 첫 정규 앨범은 제게 연주 앨범이란 측면이 있어요. 저만의 목소리라는 악기와 주법으로 다양한 음악과 트렌디한 감성을 해석해서 완성했거든요. 피아니스트가 쇼팽이나 베토벤의 곡을 자신만의 해석으로 연주하는 것처럼 말이죠. 다음 앨범은 다를 거예요. 저만의 색깔과 이야기를 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며칠 전 공개된 ‘ONCE UPON A TIME IN LA’의 뮤직비디오에서 LA 시절의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그때를 떠올리면 어때요? 그립기는 하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어, 이런 마음은 전혀 안 들어요. 스스로 선택해서 한국으로 돌아왔고 많은 것을 이뤘어요. 분명 그만한 가치가 있어요. 그리고 제 시선은 과거보다 미래를 향해 있어요.

그 미래는 낭만적인가요? 꼭 그렇진 않아요. 멋있는 척하려고 하는 얘기가 아니라 인생은 비극에 가깝다고 여겨요. 인생에는 엔딩이 존재하고 이를 거스를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슬픈 일이에요. 다행이라면 그 비극적인 상황을 잠시나마 잊게 만드는 행복들이 중간중간 놓여 있다는 거예요. 주중 같은 비극과 주말 같은 행복. 이게 인생이죠.

음, 이해가 가요. 행복의 순간이 찾아올 때는 언제죠? 진짜 좋은 노래를 만들었을 때 제일 행복해요. 근데 그 여운이 점점 짧아지는 것 같아요. 전에는 마음에 드는 노래를 완성하면 계속해서 만족스럽고 다른 사람들에게 빨리 들려주고 싶어 했어요. 지금은 그런 기분이 들다가도 다음 날이면 싹 사라져요. 매너리즘에 빠진 건가 싶어요.

고민이 많겠네요. 그래서 유럽에 가보자는 계획을 세웠어요.

왜 유럽인데요? 프랑스 출신 DJ의 음악을 들었는데 굉장히 세련됐어요. 패션 브랜드가 생각날 정도였죠. 어떻게 그런 느낌이 나올 수 있는지 생각해보니까 결론은 프랑스에서만 느낄 수 있는 바이브라는 것이었어요. 저는 계속 옮겨 다니며 작업하는 걸 추구해요. 각각의 환경이 주는 영감을 흡수해서 그걸 표현하려고 하거든요. 더 늦기 전에 유럽에 가서 6개월이든, 1년이든 지내려고 해요. 유럽을 삼켜서 저만의 것으로 표현하고 싶어요. 어떤 음악이 나올지 궁금하고, 기대가 커요.

멋지게 들리네요. 우주에 갈 수 있다면 뭘 터득하고 흡수하고 싶어요? 아이러니하게도 우주에는 가고 싶지 않아요. 두렵고 무섭거든요. 우주에 끌리는 건 미지의 영역이기 때문이에요.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는데 뭔지 잘 모르잖아요. 그래서 최대한 마음대로 상상하기에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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