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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출시된 여섯 개의 신제품 리뷰

2009.12.03GQ

최근 출시된 여섯 개의 신제품에 관한 싱싱한 리뷰.

RATING ★★★☆☆ FOR 음의 질과 듣는 재미만 따지면 별점을 하나 더 추가할 수도 있다. AGAINST 좋은 제품은 보고만 있어도 입가에 미소가 생겨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면.

그라도 GR8

투박한 데다 첨단 기술과도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단 하나의 헤드폰을 고르라면 누구라도 자연스레 후보에 올리는 브랜드. 그런 데서 내놓은 인 이어 이어폰이라니 기대를 할 수밖에 없다. 30만원이 훌쩍 넘는 가격도‘그럼 나쁠 리가 없겠지’라는 마음을 거든다. 기대가 커서 그랬을까, 케이스에서 꺼냈을 때 밝은 표정을 짓기가 힘들었다. 일단 기존의 묵직한 디자인과는 거리가 멀다. 깔끔하긴 한데 고급스러워 보이진 않는다. 유광 코팅과 브랜드 로고의 폰트나 크기가 아무래도 어색하다. 이어폰 디자인은 처음이니까 그렇다고 생각하고… 소리로 넘어가면 꽤 흥미롭다. 날카롭다는 느낌이 없는데도 모든 음이 분리되어 있다. 저울 없이 손에 익은 대로 재료를 넣어서 만든 요리가 생각난다. 그것도 경력이 50년 이상인 요리사가 한 요리. 악기 구성이 다양할수록 감칠맛 나는 풍성함이 잘 드러난다. 홈페이지에는 대표인 존 그라도의 글이 있다.“GR8은 아들인 조나단과 매튜의
의견에서 출발했다. 가족은 영감의 진정한 원천이다.” GR8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이다. 가격은 39만원, 이어폰샵에서 판매.

RATING ★★★☆☆ FOR 예쁘고 쓸만하다. 거기다 국내에는 현재 4백대만 들어온 ‘한정판’이다. AGAINST 해외에는 검은색과 흰색도 있다는데….

캐논 X 마크1

계산기치고 이름이 남다른 건 이유가 있다. 캐논이 계산기를 만들기 시작한 지 45주년을 기념하는 모델이기 때문이다. 45는 좀 애매한 숫자 같긴 하지만, 여기저기 신경 쓴 흔적이 보인다. 뒷면은 마치 아이팟처럼 알루미늄 재질로 덮여 있고 기념 로고도 새겨져 있다. 전체적인 디자인도 세련된 느낌을 준다. 아래쪽 면 전체를 버튼으로 채운 건 보기도 좋고 누르기도 편하다. 태양열 전지로만 작동해 고장 나지 않는 한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광고에 보이는‘팬타그래프’라는 단어는 좀 눈에 걸린다. 팬타그래프는 키를 누를 때마다 X자로 엮인 두 개의 축이 아래쪽으로 압력을 가하는 방식의 키보드다. 노트북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X 마크1의 키를 뽑았을 때 X자 축은 볼 수 없었다. 보이는 건 고무 재질의 돌기였다. 그건 이계산기의 키패드가 멤브레인 방식이란 걸 뜻한다. 대부분의 저가형 키보드에서 사용하는 방식이다. 뭐하러 그랬을까? 그것도 기념 모델에서. 가격은 4만원대.

RATING ★★★★☆ FOR ‘HD급’으로 대화하고 싶다면. 혹은 작고 가벼운 노트북을 갖고 있다면. AGAINST 모공까지 보이는 화상 채팅이라니!

마이크로소프트 라이프캠 시네마

웹캠이 필수품으로 자리 잡지 못한 이유는 영상 채팅은 아쉬울 때나 하는 것이기 때문 아닐까? 유학생이나 기러기아빠 커뮤니티에선 인기 제품 중 하나일지 모르겠지만, 일상생활에선 확실히 그렇다. 상황이 어떻든 발전은 해야 하는 게 전자제품의 숙명이다. 라이프캠 시네마는‘HD급’웹캠이다. 그러니까 720P의 해상도로 영상을 주고받을 수 있다. 발 빠른 대응이라기보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을 했다는 기분이다. 화질은‘웹캠 화질은 구리다’는 편견을 순식간에 잊게 만든다. 초점은 자동으로 맞춰서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마이크도 내장되어 있어‘올인원’의 자격을 갖췄다. 그러나 영상 채팅을 할 사람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거기다 컴퓨터 사양도 평균 이상이어야 한다. 12만원대라면 다른 용도로 써도 좋을 것 같다. 가벼운 노트북만 있다면 싼 가격에 쓸 만한 캠코더가 하나 생기는 거니까.

RATING ★★★☆☆ FOR 가격대 성능비가 신념이라면.AGAINST 뭐든 화려한 게 좋다면.

코원 아이오디오9

아이오디오 9은 2년 만에 나온 아이오디오 시리즈의 신제품이다. 겉모습만으로도 뭘 버리고 뭘 취했는지 명확하다. 대각선으로 조절하는 터치패드는 발전했고, 화면은 2인치로 커졌지만, 재생시간은 많이 줄었다. 음질, 정확하게 말하면 음장 효과는 여전히 좋다. 코원의 자랑인 음장 기술 BBE+는 물론 서른 가지가 넘는 프리셋 이퀄라이저가 저장되어 있어 한 번씩 들어보는 것만으로도 꽤 즐겁다. 동영상 성능은 무난하고 외장 스피커가 있어 이어폰이 없어도 간편하게 볼 수 있다. 대각선으로 조작하는 터치패드는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인데 취향에 따라 좋을 수도 불편할 수도 있겠다. 한마디로 압축하면‘괜찮네’가 되겠지만, 과거 아이오디오 5 시절 뿜어내던 믿음직함은 확실히 덜하다. 확실히 요즘 MP3 플레이어는 한 가지만 잘해서는 살아남기 힘들다. 그래도 4GB에 12만9천원이라면 선방한‘리뉴얼’이다.

RATING ★★★★☆FOR 이번에 나온 그 게임 좀 제대로 해보려고 회사 그만뒀어.AGAINST 애도 아니고….

델 에일리언웨어 오로라 ALX

제대로 게임을 하려면 역시 데스크톱이다. 물론 <한게임 윷놀이>같은 게임이 아니라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2>같은 3D 게임을 말하는 것이다. 델은 2006년에 인수한 에일리언웨어 브랜드로 완제품 컴퓨터 중에서 최고 사양의 제품들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오로라 ALX 역시 입이 벌어지는 사양이다. 인텔 코어 i7 프로세서부터 최소 6GB의 램과 듀얼로 구성한 그래픽카드에 블루레이 디스크 드라이브까지, 각 부분마다 가능한 선에서 최고급 부품들이 들어가 있다. 어지간히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라면 현존하는 모든 게임을 스트레스 없이 즐길 수 있다. 가격이 4백원 모자란 4백만원부터면 당연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완제품 데스크톱으로 할 수 있는 제일 재미있는 놀이인‘같은 부품으로 조립하면 얼마가 나올까’를 해봤다. 케이스와 운영체제를 빼면 대충 2백만원대 중반 정도다. 역시 상당한 가격이다. 케이스는 좀 특별한데, 이름에 어울리는 외모와 조명에다 내부 온도가 올라가면 자동으로 상단 통풍구가 열린다. 아예 케이스를 열어 내부를 봤다. 타워형 CPU 쿨러와 꼼꼼하게 정리한 선들, 고가의 램 브랜드‘코세어’의 로고가 눈에 들어왔다. 화려한 사양이 부끄럽지 않았다.

RATING ★★★★☆FOR 카메라 성능은 휴대전화 중에서 최고다. AGAINST 카메라를 빼도 별점은 똑같다.

애니콜SCH-W880

애니콜은 잊을 만하면 전위적인 휴대전화를 내놓는다. 제일 최근에 기억나는 건 프로젝터가 달린 모델이었다. 딱 한 번 지하철에서 그걸 손에 쥐고 있는 사람을 봤는데. ‘아, 저 사람 뭔가 보통은 아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효과는 있었다. 이번에 나온 SCH-W880은 그래도 전통이 있는 전위다. 애칭은‘아몰레드 12M’, 12M은 1200만 화소를 뜻한다. 눈치 챘겠지만‘카메라 기능이 있는 휴대전화라기보다 휴대전화 기능이 있는 카메라’에 가까운 제품이다. 애니콜은 전에도 이런 콘셉트의 휴대전화를 내놓았다. 이번 제품은 그 콘셉트가 완성 단계 직전에 다다랐음을 알려준 다. 촬상소자가 여전히 CMOS라는 점만 빼면 두께가 상당히 얇아진 데다 뒷면은 카메라, 앞면은 휴대전화로 이질감 없이 나뉜다. 필립 K. 딕 식으로 표현하자면‘아몰레드 12M은 아수라 백작의 꿈을 꾸는가’라고 할 수 있겠다. 모드 다이얼과 광학 3배줌의 돌출형 렌즈는 딱 카메라 같다. 출고가는 1백10만원대.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휴대전화를 사서 시간을 확인하는 데만 쓴다면 그건 시계일까 휴대전화일까?

    에디터
    문성원
    포토그래퍼
    김종현
    아트 디자이너
    아트 에디터 / 김영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