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한 눈으로 세심하게 들여다본 여덟 개의 신제품.
파나소닉 루믹스 DMC-GH2
파나소닉은 자신들이 후발주자라는 걸 인정했고, 전자제품 회사라는 걸 인정했다. 그들이 내놓은 모든 카메라엔 그런 태도가 깃들어 있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전자적 기능을 더 넣으려 했고 부족한 광학 성능은 아예 라이카의 힘을 빌려 해결했다. DSLR로 캐논과 니콘에 이길 수 없을 게 뻔하니 올림푸스와 손을 잡고 마이크로 포서드 진영에 참가해 GF1이란, 적어도 그 분야에서는 최고란 찬사를 듣는 제품을 만들었다. GH2는 GF1과 비슷한 시기에 내놓은 GH1의 후속작이다. GH1은 뛰어난 동영상 기능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동영상부터 주목받는 카메라는 큰 인기를 얻기가 힘들다. 묘하게도 사람들은 동영상 성능이 다른 카메라보다 더 뛰어나다고 하면 ‘음, 그럼 사진은 보통이란 얘기군’이라고 받아들인다. 물론 GH1은 나름대로 잘 팔렸지만 결국 다른 동영상 특화 카메라처럼 업계의 중심에 서진 못했다. 그러나 파나소닉은 그대로 밀어붙였다. 그 결과 전자적인 성능만으론 그 어떤 카메라보다 뛰어난 GH2가 나왔다. 고감도 노이즈를 제외하면 GH2가 다른 카메라보다 부족한 점은 찾기 힘들고 더 나은 점은 상당히 많이 찾을 수 있다. 일단 자동초점 속도는 어지간한 감탄사로는 부족하다. GF1도 자동초점 성능에서 큰 점수를 얻었는데, GH2는 그보다 몇 배는 뛰어나다. 누르는 순간 잡힌다고 생각하면 된다. 렌즈가 돌아가는 소리조차 안 들린다. 화질도 GH1보다 크게 발전했다. 회전식 터치스크린은 이제 자리를 잡아서 습관이 되면 다른 카메라가 불편할 정도다. 그리고 사진 비율 브라케팅(한 번에 여러 비율의 사진이 찍힌다) 같은 파나소닉만의 ‘전자적 기능’도 빼놓지 않고 추가했다. 동영상은 당연히 어떤 종류의 카메라 중에서도 최고다. 모든 기능에서 완결성이 보이는 GH2는 ‘전자제품으로서 광학기기를 넘어선다’는 패기로 가득하다. 이번 달에 소니는 렌즈 교환형 카메라 못지않은 캠코더 VG10을 발표했고, 파나소닉은 캠코더 못지않은 렌즈 교환형 카메라 GH2를 발표했다. 어떤 의미에서, 역사적인 달이다. 가격은 14~42mm 렌즈 포함 1백만원대 중반.
RATING ★★★★☆
FOR 전자제품 회사가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카메라.
AGAINST 아무리 그래 봐야 프로는 캐논 아니면 니콘만 쓰잖아.
3M 스마트펜
정전식 터치스크린은 애초에 사람의 손가락을 믿고 탄생한 기술이다. 터치스크린과 접촉하는 물체 사이에 전류가 흘러야 터치를 인식하기 때문이다. 손가락이야 물론 믿을 만한 신체 부위다. 그러나 어딜 가나 엄지손가락이 특별히 굵은 사람이 있고, 한국처럼 계절이 네 개나(그중 반은 겨울) 존재하는 나라도 있다. 손가락이 굵으면 아무리 섬세한 감수성을 가졌어도 무식한 오타가 나고 유난히 잘난 손가락을 가졌어도 장갑을 끼게 되면 아예 작동 불능 상태가 된다. 아이폰 출시 후 얼마간 간식용 소시지의 판매고가 40퍼센트나 급등했다는 사실은(소시지로는 터치가 가능하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손가락 이외의 터치 기구를 찾고 있었다는 걸 증명한다. 3M의 스마트펜은 소시지를 대체할 만한 스타일러스 펜 중 가장 눈에 띄는 제품이다. 일단 3M이란 이름이 주는 믿음직함과 1만원 중후반대의 만만한 가격 때문이다. 3M의 스마트펜은 펜 형태와 그보다 조금 짧은 길이의 안테나 형태 두 가지 모델로 나왔다. 둘 다 앞쪽에 말랑말랑한 촉이 달려 있다. 내부의 단단한 펜촉과 외부의 실리콘 사이에 공기층이 있어 딱 적당한 정도의 저항감을 만들어낸다. 아주 부드럽고 손가락만큼 유연하다. 그리고 반응속도가 느리거나 중간 중간 인식을 못해 끊기는 일이 없다. 그래서 클릭을 할 때나 그림을 그릴 때 모두 편리하다. 단, 펜촉이 두꺼운 편이기 때문에 그림 그리는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할 때 세밀한 스케치는 하기가 힘들다. 그림에 관해서는 스마트폰보다는 태블릿에 훨씬 더 유용하다. 단점은 딱 하나. 펜 형태의 제품은 일반적인 필기구처럼 클립, 안테나 형태에는 끈이 달려 있다. 전자는 애초에 따로 갖고 다녀야 하고 후자는 스마트폰에다 달아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스마트폰에는 액세서리를 달 만한 고리가 없다. 3M은 나름의 해결책을 내놓았다. 포함된 작은 플라스틱 부품을 끈에다 달면 이어폰 단자에 끼울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렇게 하면 스마트폰과 세트로 들고 다닐 수 있지만 역시 음악을 들을 땐 어쩔 수 없이 분리해야 한다. 이런 액세서리의 제일 큰 문제는 쉽게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3M은 노력이라도 했다는 점에서 애초에 고리 같은 걸 만들어놓지 않은 스마트폰 제작사를 원망해야겠다.
RATING ★★★☆☆
FOR 태블릿 사용자. 거대 엄지 소유자. 장갑 착용자.
AGAINST 이미 손가락만으로도 금자탑을 쌓고 있다면.
모토로라 Defy
‘터프한 남자는 멍청해’라는 편견은 항상 유효할까? 확실히 ‘터프’와 ‘스마트’는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다. 하지만 많은 여자의 이상형이 그렇듯이, 명석하기만 해서는 안 되고, 육체적인 건강까지 갖춰야 비로소 매력적이다. 디파이는 스마트폰에 방진과 방습 기능을 더하면서 이상형에 가까워졌다. 대부분의 스마트폰은 떨어뜨리거나 물에 빠뜨리면 큰일이 났다. 비싸다는 이유로, 아무리 예민한 성격이어도 상전 모시듯이 이해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스마트’한 녀석들이 보통 많아진 것이 아니다보니, 이해심은 거의 증발했다. 아이폰을 사용하며 침수 라벨이 변할까 봐 조마조마하다가 신경증이 생길 지경이었다면, 디파이는 꽤 반가울 것이다. 물에 빠뜨리더라도 그것이 끓고 있는 찌개만 아니라면 별 무리 없이 작동한다. 생활 방수 치고는 꽤 좋은 성능이다. 여름에는 수영장에서, 겨울에는 스키장에서 제 역할을 할 것이다. 방진 방습만큼이나, 가볍고 작다는 점도 마음을 빼앗는다. 스마트폰은 크고 무겁다며 구매를 미뤄왔던 여자들에게 환영 받을 것이다. 3.7인치의 화면이 그대로 제품 크기이고, 무게는 112그램밖에 되지 않는다. 작은 그녀의 손에도 무리가 없다. 배터리 용량은 가벼움과 반비례한다. 1540밀리암페어아우어라니, 제품의 무게를 생각했을 때 미처 예상치 못했을 수준이다. 문제는 ‘터프’에 비해 ‘스마트’가 좀 약하다는 점이다. 느린 부팅 속도와 반응 속도 때문이다. 상대적인 고려가 있겠지만, 세상에 스마트폰이 디파이 하나뿐이라고 하더라도 빠르게 느껴질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느리다’를 ‘멍청하다’로 바꿔 말해서는 곤란하다. CPU 대비 성능은 충분히 뛰어나니까. 반응이 느린 남자를 싫어한다면 어쩔 수 없다. 우직하면서 적당히 똑똑한 남자를 원한다면, 디파이가 제격이다.
RATING ★★★☆☆
FOR 아침 일곱 시 – 헬스장, 저녁 일곱 시 – 영어학원.
AGAINST ‘그녀를 만나는 곳 100미터 전’ – 이상우
레노버 씽크패드 에지
문제는 이름이다. 여기저기서 무차별적으로 ‘에지’란 단어를 써 붙이던 시기가 벌써 먼 옛날처럼 느껴지니까. 근본 없는 유행어의 최후란 그렇다. 예를 들어 2010년에 잘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보보스’라고 소개한다면 어떤 반응이 돌아올까? 뭐, 유행 때문에 지은 이름이 아니라고 항변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씽크패드 에지는 올해 초에 처음 등장했고 그때는 이미 에지 열풍의 끝물이었으니 내부 회의록을 공개하지 않는 이상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기는 힘들겠다. 그러나 레노버가 잘한 건 단어의 사전적 의미도 충실하게 반영했다는 점이다. 에지는 본체 가장자리에 은색 테를 두르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그저 이 디자인 때문에 에지란 이름을 붙였어요’라고 말해도 변명이 된다. 단지 ‘에지’ 두른 은색 테가 알루미늄 같은 금속재질이 아니라 투박한 플라스틱이라 ‘에지’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그게 또 유행어와 상관없다는 결정적 증거가 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름으로 놀려대는 걸 이쯤하고 나면 가격대 성능비가 뛰어난 노트북이 보인다. 11.6인치 화면에 80만원대 후반의 제품이라 흔히 넷북으로 분류 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인텔 코어 i3나 i5 CPU를 쓰는 저가 노트북이 많은 상황에서 이런 구분은 무의미하다. 리뷰한 에지에는 코어i3 CPU가 들어가 있다. 그것만으로도 아톰 CPU를 쓰던 흔해빠진 넷북과는 성능 차가 난다. 날아다닐 정도로 빠르진 않지만 답답하지 않고 안정적인 속도를 보여준다. 씽크패드 특유의 관리 프로그램 ‘씽크밴티지도’ 가격이 저렴한 노트북이라 더 믿음직하다. 외관에서도 세심하게 신경 쓴 부분들이 보인다. 펑션 키가 반대로 작동해 펑션 키를 누르지 않고도 F1~F10 키를 눌러 볼륨이나 모니터 밝기 등을 조절할 수 있다. 좌/ 우 시프트 키의 크기도 똑같아서 오타가 적고 방향키 양옆에 페이지 다운과 페이지 업 버튼을 배치해 커서나 스크롤 조작도 편리하다. 180도 젖혀지는 상판과 뛰어난 발열억제력을 확인했을 땐 입꼬리가 올라간다. 씽크패드의 상징인 빨간색 트랙포인트를 사용할 때는 콧소리까지 난다.
RATING ★★★★☆
FOR 내적/ 외적 가격대 성능비를 모두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AGAINST 기종명이 뭔지 물어볼 때마다 대답하는 목소리가 작아질 것 같다면.
- 에디터
- 문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