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진희는 촬영 중에 “예쁘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 말은 모니터 속 자신의 모습보단 오래된 집과 흐드러진 꽃, 그리고 주변을 향했다.
차를 바꾸고 무시당한 적 있어요? 한 번도 없어요. 그래서 잘 바꾼 것 같아요. 다들 보이는 걸로만 평가하는 걸까요? 저는 연예인끼리 모이는 사교 모임도 절대 안 나가요.
굳이 피하는 쪽인가요? 누군가가 뒤돌아서 제 얘기 하는 게 싫어요. 결국 좋은 얘기는 안 나오는 것 같아요. 원래 친한 친구들 이외에는 잘 안 만나요.
친한 친구와는 어떤 술 마셔요? 한때는 사케를 좋아했는데, 요즘은 화요나 샴페인? 전통 소주에 라임 타서 먹어요. 그거 진짜 맛있지 않아요? 다음 날도 괜찮고. 샴페인은 벨라다 모스카토를 좋아해요.
필름 끊겨본 적 있어요? 있죠! 드라마 끝났잖아요. 3년 만에 초등학교와 중학교 친구들이랑 진탕 마셨어요.
보통 스트레스는 어떤 식으로 풀어요? 그냥 집에서 멍하니 혼자 앉아 있으면 풀리는 것 같아요. 아니면 러닝머신을 미친 듯이 뛰면서 땀을 쫙 빼요. 그러고 샤워하면 뭔지 모를 희열이 생겨요.
운동 좋아해요? 아뇨. 안 좋아하게 생기지 않았어요?
음, 운동하는 몸 같지는 않아요. 그렇게 앙상할 정도로 마르려면 도대체 얼마나 먹지 않는 거예요? <하이킥 3> 때는 제대로 쪘어요. 그때 돼지였어요. 제 인생 최고의 몸무게로 살았죠. 밤을 너무 많이 세우니까, 야식을 많이 먹었죠.
오늘도 아침 7시에 잤다면서요. 이제 안 먹어요. 그때 이후로 작품하면서 배고픔을 조절하는 법을 터득했어요. 작품을 하다 보면 몰입해서 배고픈 것도 까먹을 때가 있어요. 과자 좀 먹으면 배부르고.
과자로 배고픔을 잊는다는 말은 이해가 잘…. 사실, 밥 먹을 시간이 딱히 없어요. 그나저나 요즘 하도 잠을 못 자서 큰일이에요.
언제부터 못 자는 거예요? 좀 됐어요. 술을 마셔도, 잠이 안 와서 힘들어요. 저 원래 커피 잘 안 마시는데, 오늘 잠을 못 자서 마시는 거예요.
그렇게 잠을 못 잤는데, 피부는 참 좋네요. 에이, 아니에요. 근데 피부든 뭐든 유난 떨면 마이너스인 것 같아요. 인생 자체가 그래요. 사람 대하는 것도 유난을 떨면서 하면 꼭 후회하는 것 같아요. 그냥 물 흘러가듯이 남들처럼 살면 되는 거 아닌가요? 피부에 몇백만 원씩 들여서 관리하는 것보다, 그 돈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차 마시면서 수다 떨고, 여행 다니고 뭐든 재미있는 거 보는 게 오히려 건강하게 살고 피부도 좋아지는 방법인 것 같아요.
요즘도 하루에 한 편씩 영화를 보나요? 아뇨. 계속 작품하느라 영화를 거의 못 봤어요.
책은요? 책은 계속 봐요. 요즘은 소설을 읽어요. 근데 진짜 재미없어요. 하지만 전 일단 책을 읽기 시작하면 무조건 끝까지 보는 성격이에요. 지루하고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도 꾸역꾸역 다 읽어요.
최근에 본 책 중에서 다시 읽고 싶은 책은 뭐예요? <프리다 칼로와 나혜석, 그리고 까미유 끌로델>이란 책이요. 세 명의 여류 화가들에 대한 자전적인 이야기를 모아 놓은 책이에요.
셋 중 누가 제일 마음에 남았어요? 까미유 끌로델이요.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드라마든 영화든, 여자 배우보단 남자 배우가 많고, 모든 것이 남자 위주잖아요? 언제나 여자는 서브인 것 같아요. 지금까지 작품을 하면서도 좀 느꼈달까. 그 책에도 같은 맥락이 있었어요. 약간 페미니즘적인 얘기가 될 수도 있는데… 다른 책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어요. 이건 좀 위험한 발언일 수도 있지만 용기 내서 말해볼게요. 남자들은 TV에 나오는 다른 남자를 보면서 ‘저 남자 살 빠졌다, 멋있어졌다’ 이러지 않는대요. 하지만 여자들은 ‘예뻐졌네?’ 이러면서 주로 외적인 것으로 서로를 평가한다는 거예요.
본능일까요? 여자들은 본능적으로 누가 더 자신보다 예쁜지를 파악하는 걸까요? 진짜 어쩔 수 없을까요? 조지 클루니의 눈가 주름에선 모두가 농후한 세월을 발견하지만, 많은 여자들은 여배우의 주름을 보면 자신의 눈을 확인하고 필러를 맞아요. 여자의 주름도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밀양>처럼 여배우가 ‘원톱’인 영화에선 여배우의 여러 면모를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전도연 선배님은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집으로 가는 길>도 그렇고. 제일 무서운 게 재능인 것 같아요. 천부적인 재능.
자신의 재능은 어느 정도인 것 같아요? 조금 있는 편인 것 같아요. 제가 가지지 못한 재능을 지닌 배우를 보면 정말 부러워요.
가장 뺏고 싶은 재능은 누가 지녔나요? 공효진 언니요. 뭘 해도 사랑스러워요. 그건 연기가 아니고, 사람 자체가 사랑스럽기 때문이에요.
배우에게 제일 중요한 건 역시 재능일까요? 재능은 있는데 운이 없으면 훨씬 괴로운 것 같아요. 그런 상황에서 재능은… 짐이 되죠. 사실 열망만으로는 안 되는 게 있어요. 사람은 자신이 지닌 재능만큼 짐을 안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운도 결국 재능이고요.
지난 5년 동안 운은 어땠나요? 빵! 하고 터지는 큰 운은 없었지만 계속 운이 있었어요. 운이 없었으면 이렇게 인터뷰도 할 수 없겠죠?
연애 운은 어때요? 이상형과 사귀었나요? 연애해야 하는데. 근데… 매력 없는 사람이 있나요? 없는 것 같아요. 딱 봤을 때 진짜 못생겼어도 한 번 보고 두 번 보면 모든 사람은 각자의 매력이 있지 않나요? 이상형은 믿을 수 있는 남자예요. 존경할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 고민을 물어보면 해결하진 못해도 현명한 대답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뭘 자주 물어봐요? 주변 사람 얘기요. 어떤 사람이 어디까지가 내 사람인지, 이런 것들이 한창 혼란스러울 때가 있었어요. 그런 상황에 놓였을 때 주변 사람과 틀어지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었죠. 보통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해요.
그래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남자의 외모가 있겠죠? 키는 저보다 컸으면 좋겠어요. 좀 더 크면 더 좋겠죠? 대체로 마른 체형이 좋아요. 호리호리한 남자.
반대로 당신의 외모에 대해선 어때요? 어떤 여배우는 자신이 너무 어려 보여서 걱정된다고 말하기도 해요. 아뇨. 전 그런 생각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요. 왜 그런 걸 걱정해야 돼요?
동안이어서 맡게 되는 배역이 한정적일까 봐 고민하는 것 같았어요. 제가 섹시한 스타일은 아니지만 고민 끝에 외형적인 걸 고친다고 해서 갑자기 섹시해질 것 같지 않아요. 오히려 반감이 생길 것 같아요.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매력을 쌓으면 되지 않을까요? 도발적인 매력이 콸콸 흐르는 배우가 못하는 배역이 있으니까요. 각자 자신만의 매력으로 승부해야죠.
어떤 점이 자신 있어요? 솔직함. 그리고 이 수더분한 외모요. 결국엔 이 얼굴 덕분에 득을 볼 것 같아요. 전 엄청 평범하게 생겼잖아요? 어떻게 보면 못생긴 것 같기도 하고요. 덕분에 어떤 캐릭터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요? 전 제 외모에 불만이 전혀 없어요. 그래도 제가 우리 세 딸 중에서 제일 괜찮은 편이에요.
동생들도 인정하는 거죠? 그럼요. 하하. 동생들이 참 예쁜데 같이 안 다니려고 해요. 사람들이 하도 안 닮았다고 하니까 스트레스 받는 것 같아요. 막내 동생은 너무 어리니까 더 잘해줘요.
성인이 되자마자 데뷔하고, 스물두 살 이후론 작품을 꾸준히 했어요. 하지만 드라마에 비해 영화는 대표작을 꼽기 마땅치 않아요. 영화에선 기회가 꼭 다시 올 것 같아요. 다음 작품은 영화를 하고 싶어요.
누구와 하고 싶어요? 전 이제훈 씨요. 팬이에요!
아, 제가 궁금한 건 감독이었어요. 감독님은 너무 많죠. 근데 뭐 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어떤 배우는 특정 감독과 일하고 싶어서 매 인터뷰마다 말했어요. 결국 작품을 함께 했죠. 그럼 저도 계속 말할래요. 전 <은교>의 정지우 감독님.
- 에디터
- 양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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