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자동차는 자기 언어를 갖는다. 폭스바겐 신형 폴로가 하는 말을 자세히 들어봤더니, 서울의 계절이 그토록 산뜻해졌다.
아침에 길을 나섰더니 어제 그 자리에 폭스바겐 폴로가 가만히 서 있었다. 당연한 얘기, 하지만 때로는 뿌듯하고 기특하기까지 한 풍경. 어제는 흰색 폴로를 타고 온 서울을 종횡으로 누볐다. 북악스카이웨이를 올라갈 때 빗방울이 날리기 시작했고, 다시 한남대교를 건널 때 빗발은 좀 약해져 있었다. 라디오를 켜놓고, 타이어를 타고 운전석으로 넘어오는 기분 좋은 진동을 느꼈다. 폴로를 운전하면 할수록 잊게 되는 건 이 차의 장르와 크기다. 물론 절감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비교적 작은 크기의 차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으니까. 왼쪽을 보면 조수석에, 생각보다 조금 더 가까이 있는 것 같은 누군가의 어깨와 볼…. 하지만 여전히 풍만한 공간감, 그럴 때 차분해지는 마음.
폴로는 폭스바겐이 만드는 콤팩트 해치백이다. 지금 한국에서 살 수 있는 가장 작은 폭스바겐이자 전무후무한 베스트셀러 골프보다 조금 작은, 폭스바겐의 엔트리 모델이기도 하다. 하지만 신형 폴로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딱딱한 단어만 늘어놓으면 안 된다. 집 앞에 폴로를 세워놓고 엔진을 껐을 때가 새벽 몇 시쯤이었지? 폴로는 그때부터 이미 이튿날 아침을 기대하게 만드는 차이기도 했다. 둘이서 빈틈없이 꽉 찬 시간을 보낸 것 같아서, 같은 심정으로 매일 아침을 시작할 수 있다면 과연 좋은 하루가 될 것 같은 믿음 때문에.
이번 폴로는 5세대 페이스 리프트 모델이다. 외관 디자인이 한층 당당해졌다. 그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하지만 제대로 속을 주목해야 옳다. 그것만 바뀐 게 아니다. 다양한 옵션이 꽉 차있다. 일단 핸들을 쥐는 순간 아래쪽이 은근하고 예리하게 깎였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완전히 둥근 형식이 아니라 아랫부분이 약간 평평하다. 주로 고성능 모델에 적용하는 D컷 핸들이다. 곡선에서 직선으로 꺾이는 그 부분에 손바닥이 닿을 때, 폴로는 조금 더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다. 운전에 필요한 거의 모든 기능은 핸들 위에 있는 버튼으로 제어할 수 있다. 한국에 처음 소개된 폴로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웠던 변화다. 폴로는 이런 식으로 장르의 한계를 성실하게 뛰어넘는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볼까? 이번 폴로에 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을 적용했다. 속도를 설정해놓으면 두 발을 떼고 유유히 이동할 수 있다. 정체가 시작되거나 정면에서 장애물이 감 지되면 알아서 속도를 줄이고 운전자가 설정해 놓은 간격을 유지한다. 고속도로에선 이 기능이 큰 위안이 된다. 여기에 다중충돌 방지 브레이 크 시스템도 기본으로 적용했다. 7세대 골프가 출시됐을 때 경험한 바, 1차 충돌 이후에 벌어질 수 있는 2차 사고를 거의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에어백 센서가 1차 충돌을 감지하면 차량 의 속도를 시속 10킬로미터까지 알아서 줄인다. 갑작스러운 순간, 당황한 운전자가 차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을 때 폴로가 모두를 보호할 수 있다는 뜻이다.
차체 자세 제어장치와 언덕 밀림 방지 장 치도 기본이다. 피로 경보 장치는 과연 믿을 만 하다. 폴로는 운전자의 운전 패턴을 실시간으 로 분석한다. 그 결과치를 바탕으로, 운전자가 피로하다는 결론에 이르면 경보를 울린다. 약 5 초간, 다시금 주의를 환기할 수 있게 하는 소리 다. 화면에는 ‘주의’ 아이콘을 띄워준다. 그래도 운전자가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15분 후에 경고 를 다시 띄운다. 폴로가 쌓아놓은 운전자의 데 이터를 바탕으로 주행습관에서 벗어나는 신호 를 감지하는 식이다. 실시간 모니터링 결과 별 다른 징후를 발견하지 않아도 주행 후 약 4시간 이 지나면 휴식을 유도한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다. 정확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산출한 결과 다. 자칫 무료할 수도 있는 순간, 그 소리를 들었 다면 무조건 쉬어가는 게 좋다. 안전은 가장 평 화로운 시기에 지켜야 하는 거라고 폴로가 웅변 하는 방식이니까.
엔진 배기량은 이전 폴로보다 적다. 전에는 1.6리터였다. 이번엔 1.4리터다. 하지만 전고는 5 밀리미터 높고, 앞바퀴와 뒷바퀴 사이의 거리 는 14밀리미터 길다. 당당해진 이미지와 더 고 급스러운 승차감이 그저 기분 탓은 아니라는 근거다. 앞바퀴와 뒷바퀴 사이가 넓어지면 흔히 말하는 ‘승차감’이 편안해진다. 단 1.5센티미터 라 해도 실내에서 느끼는 감각은 아주 다른 차 원일 수 있다. 1.4리터 디젤 직분사 엔진이 내는 최대출력은 90마력, 최대토크는 23.5kg.m이다. 1.6리터 디젤 엔진이 내던 힘과 정확히 같다. 엔 진 사이즈는 줄었지만 힘은 같고, 무게는 거의 25킬로그램 가벼워졌다. 따라서 같은 힘으로 느낄 수 있는 역동성에도 차이가 생겼다. 이번 폴로가 더 날쌔다. 이게 90마력이라고? 한남대 교를 건널 땐 빗방울이 수평으로 앞유리를 때 렸다. 가슴이 시원해졌다.
진짜 중요한 건 크기가 아니라 균형이다. 헤드램프 끝에서 뻗어나오는 선은 강직하게 리 어램프의 끝에 가서 닿는다. 휠 아치 두 개가 정 직하게 둥글고, 그 사이를 다시 곧은 직선이 잇 는다. 폭스바겐의 디자인은 이렇게 담백하고 효 율적이다. 장르와 크기를 가리지도 않는다. 그 런 방식을 폴로에 적용하면 이렇게 당당한 결 과물이 나오는 법이다. 디자인의 통일성이 폴로 에 성격을 부여했고, 그렇게 형성된 성격은 꼼 꼼히 적용된 옵션과 성능에 솔직하게 가서 닿 는다. 가격은 90만원 정도 올랐다. 이전 모델은 2천5백30만원, 신형 폴로는 2천6백20만원이다. 전혀 야속하지 않다. 충분히 설득력 있다.
폭스바겐 폴로는 내 몸처럼 움직일 수 있는 콤팩트 해치백이다. 서두르지 않고 원하는 만 큼의 실력을 알차게 보여줬다. 서울을 가로질렀 던 새벽, 다시 하루를 약속하는 아침에도. 이런 차라면 마냥 친근한 마음으로 오랫동안 믿고 탈 수 있다. 오늘 봤는데 내일 또 그리운 친구, 같이 여행하고 싶은 동료처럼.
- 에디터
- 정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