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A.P.C.를 만들어온 장 투이투. 2016년 여름의 데님을 해석하려면 꼭 알아야 할 제작자.
파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좋은 청바지를 사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물으면, 반쯤은 A.P.C.라고 대답한다. 그만큼 A.P.C. 데님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신뢰는 절대적이다. 물론 이 브랜드에 대한 애정이 프랑스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 도쿄에 첫 번째 매장을 열었을 때 밤새 줄을 선 일본인들의 얘기는 이미 너무나도 유명하니까. 장 투이투가 A.P.C.를 설립한 것은 1987년. 내년이면 벌써 30년이 된다. 그사이 수많은 브랜드와 디자이너가 등장하고 사라졌지만, 그는 뿌리 깊은 나무처럼 독야청청 자신의 신념과 원칙을 고수하며 브랜드를 지켜왔다. 그때 만든 청바지는 지금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좋은 원단으로 정성껏 만든, 기본에 충실한 제품이 가장 아름답고 귀하다는 걸 그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장 투이투와 A.P.C.는 30년 전에도 이미 완성형이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이 당신을 완고하다고 말한다. 몇몇 인터뷰에서 유행이나 다른 브랜드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얘기하거나, 옳다고 믿는 걸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면 크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특히 브랜드 운영과 관련해선 절대 타협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나더러 완고하다 하지만, 내가 볼 땐 다른 사람들이 너무 무른 거다. 원칙을 세웠으면 그걸 지키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한번 신념을 굽히면 다음 번엔 더 많은 것과 타협하게 된다. 당장은 이득인 것처럼 보여도 길게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유행은 전혀 신경 쓰지 않나? 유행은 마케팅일 뿐이니까. 진짜는 잘 변하지 않는 법이다.
A.P.C. 청바지가 왜 유명해졌다고 생각하나? 좋은 데님을 쓰기 때문이다. 원단의 품질만큼은 최고라고 자부한다. 또 염색이나 재단도 잘하고 가격까지 합리적이다. 그러니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있나.
일본산 데님을 고집하는 이유는 뭔가? 현재, 제대로 된 데님을 방직하는 곳은 일본밖에 없다. 적어도 내 기준에선 그렇다. 일본 셀비지 데님은 A.P.C.를 시작할 때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던 소재다. 어렸을 때 제일 좋아한 청바지가 일본산 생지 데님으로 만든 거였는데, 그때도 다른 바지들과 확실히 다르다는 걸 알았다. 데님 진을 만들기로 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그 바지를 직접 들고 일본 데님 장인에게 찾아가 똑같은 원단을 구한 것이다.
처음 만든 데님 진은 뭐였나? 뉴 스탠더드 진과 거의 비슷한 바지였다. 디자인은 살짝 다르지만 원단은 지금 사용하는 것과 같은 데님으로 만들었다.
몇 년 전부터는 스트레치 데님과 스키니 진도 선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워싱 데님은 만들지 않는다. ‘Vintage Your Denim’이라는 모토와 맞지 않기 때문인가? 그렇다기보단 굳이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못 느껴서다. 그런 청바지는 이미 너무 많으니까. 환경적 차원에서도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실제로 데님 워싱은 수질 오염의 주된 원인 중 하나다.
즐겨 입는 데님 모델은 뭔가? 뉴 스탠더드. 프티 뉴 스탠더드도 종종 입는다.
A.P.C.를 만들기 전에는 어떤 브랜드의 청바지를 입었나? 리바이스.
‘파리지앵다운 옷’이라는 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지리적으로 보면 맞는 말이지만, ‘파리지앵답다’는 것이 명확한 콘셉트는 아니다. 파리에는 아주 다양한 사람이 산다. 실제 파리지앵이 들으면 좀 웃기는 얘기라고 생각할 거다.
파리에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아름다움을 가까이하며 산다는 것. 그리고 끔찍한 악취를 견디며 산다는 것. 파리의 빛과 어둠이다.
당신의 파리 집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서재에 있는 컴퓨터가 인상적이었다. 아직도 그런 구식 컴퓨터를 쓰나? 일상적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데 가족의 추억이 많이 들어 있어 보관하고 있다. 아직 작동은 한다.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어디인가? 부엌, 그리고 거실의 소파. 소파에서 책 읽는 걸 좋아한다.
책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당신은 독서광으로도 유명하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인가? 한 명만 꼽으라면 당연히 마르셀 프루스트다. 요즘 작가 중에서는 미셸 우엘벡 Michel Houellebecq을 좋아한다. 그의 소설은 굉장히 섬세하고 흥미롭다.
옷을 가장 잘 입는 남자, 하면 누가 생각나나? 사뮈엘 베케트.
< 고도를 기다리며 >를 쓴 그 작가 맞나? 의외의 인물이라 좀 놀랐다. 맞다.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사람도 많지만, 그의 사진을 한번 보면 쉽게 눈을 뗄 수 없을 거다. 너무 멋져서.
제일 좋아하는 패션 디자이너는 누구인가? 1977년 이전의 이브 생 로랑.
요즘 유행 중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게 있다면? 덥수룩한 수염과 요란한 헤어스타일. 큼지막한 로고를 박은 끔찍한 명품 가방. 그리고 바이오 와인.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는 어디인가? 시칠리아와 튀니지 사이에 있는 판탈렐리아 섬. 유명한 관광지도 아니고 아름다운 백사장도 없지만, 그곳의 바람과 화산섬 특유의 분위기를 좋아한다.
그곳에 자주 가나? 올여름에도 휴가를 갈 생각이다. 그 김에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풀리아 지방도 살짝 들를 거다.
- 에디터
- 윤웅희
- 일러스트레이터
- 조성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