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식탁을 차리기 전 필요한 팁 16가지

2017.03.06손기은

“할 줄 아는 요리는 라면밖에 없어요”라며 남자가 멋쩍게 웃으면, 그저 태만해 보이는 시대. 주방에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으면서 여전히 ‘집밥’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잘 차려진 식탁 앞에 앉을 때 누군가의 노동을 헤아려본 적 있나? 식사를 챙기는 일은 직접 내 몸을 씻는 일처럼 스스로 알아서 할 일과다. 움직이자. 요리하자. 이제 막 혼자 집에서 밥을 챙겨먹기 시작한 사람들이 알아둬야 할, 스무 살에게도, 예순 살에게도 필요한 팁 열여섯 가지를 정리했다.

꽃병은 이딸라 × 이세이 미야케 컬렉션.

1 식료품 배달 서비스를 활용한다. 싱글남이 주기적으로 장을 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명확한 건, 냉장고에 식재료가 미리 채워져 있어야 요리 욕망이 생긴다는 점이다. 요리하기 전 장부터 봐야 하면 그 과정이 너무 지난하다. 그러니 어떤 요리에나 두루 쓰일 수 있는 재료를 식료품 배달 스타트업을 이용해 채워두는 습관을 들인다. ‘마켓컬리’, ‘헬로네이처’, ‘배민프레시’ 등 마음에 드는 곳을 골라 본다.

2 토마토를 챙긴다. 그럼 어떤 재료를 사둬야 하느냐고? 대파, 양파, 마늘, 달걀과 같은 기본을 먼저 사둔다. 대파와 달걀만 있어도 볶음밥을 할 수 있고, 양파와 달걀만 있어도 오믈렛을 할 수 있다. 방울토마토도 잊지 않는다. 반으로 잘라 올리브 오일에 뭉그러지게 익힌 뒤 면을 넣으면 최고로 간단한 파스타가 완성된다. 올리브 오일, 토마토, 마늘을 함께 익혀 빵 위에 올리면 와인 안주다. 베이컨과 토마토를 함께 볶으면 아침밥으로도 그만이다. 이런 식으로 상비해두는 식재료를 조금씩 늘려 나간다. 냉동 새우도 요긴하다. 해물라면, 볶음밥, 샐러드, 카수엘라….

3 볶는 연습을 한다. 처음부터 국이나 찌개에 도전하는 건 무리다. 조리 기술은 볶는 것부터, 도구는 프라이팬 하나부터 시작한다. 얇게 편으로 썬 마늘이나 길게 채 썬 양파를 태우지 않고 금빛으로 볶는 일도 연습 없이는 어렵다. 파프리카, 아스파라거스, 양배추 등 여러 채소를 알맞게 볶는 것만 잘해도 식사 걱정은 덜 수 있다. 냉동식품도 전자레인지에 돌리지 말고 프라이팬에 볶으면서 불 쓰는 연습을 해본다. 요즘 건더기가 실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천일식품 냉동볶음밥으로 연습해본다.

4 쌀밥을 직접 짓는다. 쌀을 씻고 밥을 안치는 일은 주방 입성을 주저하게 만드는 난이도 높은 허들이다. 하지만 이 일만 넘으면 집밥과 훨씬 친해질 수 있다. 갓 지은 밥은 맛도 좋고, 느껴지는 뿌듯함도 노력 대비 아주 크다. 요즘 쌀 품종도 다양해졌고, 냉장고에 편하게 보관할 수 있게 생수병 모양으로 포장돼 나오니 쌀벌레 걱정은 역사 속에 묻어둬도 된다.

5 아침을 먹는 습관을 들인다. 하루 업무를 끝내고 체력이 방전되면 배달 음식에 쉽게 사로잡히고 만다. 회식도, 약속도 많아 집에서 저녁 챙기는 일은 갈수록 줄어든다. 오히려 아침을 챙기는 습관을 들인다. 주방 초보자에겐 아침밥 정도의 조리 난이도가 적당하고 바쁜 아침 시간, 쫓기듯 요리를 하면 확실히 실력이 는다.

6 밑반찬을 포기한다. 밑반찬은 베테랑 ‘집밥족’에게도 힘든 메뉴다. 과감히 포기한다. 단백질로 구성한 메인 메뉴 하나와 채소로 이루어진 사이드 메뉴 하나 정도만 챙겨도 진수성찬이다.

7 후추 그라인더를 구비한다. 소금과 후추를 손이 가장 잘 닿는 곳에 놓아둔다. 집에서 요리할 때 가장 실수하기 쉬운 부분이 간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 한식에서 뭔가 빠진 느낌이 난다 싶으면 간이 모자란 것이다. 간을 너무 심심하게 하면 안 그래도 화려하지 않은 요리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주재료의 맛이 제대로 살아나지 않는다. 양식을 자주 만든다면 후추 그라인더는 푸조의 것으로 꼭 하나 사두길 추천한다. 우리가 아는 그 자동차 브랜드가 실은 후추 그라인더로 시작한 회사라는 사실을 안다면 여기에 돈 쓰는 것이 아깝지 않을 테다. 채소를 볶을 때, 아니 거의 모든 요리에 적당한 소금과 신선한 후추만 잘 뿌려도 맛은 살아난다.

8 그레이터를 산다. 괜찮은 도구를 하나 구비한다면 첫 번째는 아마도 그레이터다. 치즈를 곱게 갈 때나 레몬 껍질을 문질러 제스트를 만들 때 꼭 필요한데, 의외로 다른 도구로 대체하기가 힘들다. 아마도 혼자 사는 싱글남이 가장 자주 해 먹는 메뉴 중 하나인 파스타에 이 그레이터는 용의 눈이자 어쩌면 용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파스타를 만들어 가장 마지막에 파르메산 치즈나 그뤼에르를 그레이터로 갈아서 넣어보면 마술을 부린 듯 맛이 풍성해지니까 말이다.

9 사진용 그릇을 준비한다. SNS를 하지 않는 남자라 하더라도, 사진을 찍었을 때 꽤 그럴싸하게 나오는 그릇 하나쯤은 구비해두는 것이 좋다. 오로지 나를 위한 한 끼를 만들 때, 내 뱃속으로 사라지고 마는 메뉴가 아닌, 어떻게든 사진을 찍어 기록을 남긴다는 사실이 요리의 아주 큰 동력이 되니까 말이다. 아무 무늬도 없는 말끔한 흰색 그릇 혹은 원색 계열의 원형 그릇을 준비한다. 너도 나도 사는 큐티폴 커트러리는 제발 피하고, 가장 기본이 되는 디자인으로 고른다.

10 남은 음식을 잘 보관할 용기를 마련한다. 꾸준히 집에서 밥을 차려 먹으려면 냉장고를 잘 정리할 밀폐용기, 보관용기가 넉넉한 것이 중요하다. 장 본 물품으로 요리한 뒤 남는 것을 얼마나 잘 보관하느냐에 따라 지속적으로 요리를 이어갈 수 있을지가 결정된다. 허브류, 채소류는 살짝 물을 적신 키친 타월과 함께 뚜껑이 있는 용기에 넣어두고, 차곡차곡 쌓을 수 있는 작은 크기의 밀폐용를 많이 구비한다. 지퍼 백이나 비닐봉지는 정리도 안 될뿐더러 거기서 다시 음식을 꺼내 조리할 마음이 영 생기지 않는다.

11 칼 가는 법을 익혀둔다. 비싸고 좋은 칼을 쓰는 것도 좋지만, 칼을 항상 날카롭게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날카로운 칼이 초보자의 요리 욕망을 확 끌어올린다. 슬쩍 힘을 줬을 뿐인데 양파가 쩍 갈라지면, 스스로의 요리 실력을 과신하기 시작한다. 집밥을 꾸준히 해 먹으려면 이런 착각이 필요하다. 칼 가는 숯돌을 사거나 ‘샤프닝 스틸’을 사용해본다.

그릇은 모두 이딸라.

12 냉장고의 가장 아래칸을 술 칸으로 만든다. 술 한잔을 곁들이기 시작하면 혼자 먹는 집밥도 한층 고상해진다. 냉장고 가장 아래칸을 당당히 술 칸으로 만들자. 맥주는 어쩌면 가장 중요한 식재료 중 하나일지도…. 싱글남이라면 찌개와 탕류를 주야장천 만들어 먹기 힘드니, 입맛에 맞는 맥주를 챙겨두면 웬만한 집밥과 다 잘 어울린다.

13 화이트 와인을 꼭 챙겨둔다.
맥주 외에 술을 더 구비한다면 화이트 와인이다. 1만~2만원대 화이트 와인, 그중에서도 입맛에 맞는 레이블을 찾아 두어 병씩 쟁여둔다. 에디터는 요즘 사진 속 루이자도 마콩빌라주 블랑을 몇 병째 비우고 있다. 화이트 와인은 레드 와인보다 가성비가 좋고 볶음밥, 파스타, 군만두 같은 간편 조리 음식과도 더 서슴없이 잘 어울린다. 특히 빵, 치즈 류와는 단연코 화이트 와인이 답이다. 꼭 혼자서 화이트 와인 한 병을 모조리 비울 필요는 없다. 남으면 밀폐형 용기에 넣어두었다가 홍합을 찔 때나 파스타를 만들 때 활용한다.

14 좋아하는 위스키를 한 병 사둔다. 맥주, 화이트 와인,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추가하자면 위스키다. 요즘 집에 두고 마시기 좋은 합리적인 가격대의 위스키도 많아졌고, 맛과 향이 오색찬란 다양해져 입맛에 맞는 하나를 고르기가 더 수월해졌다. 그래도 고민된다면 프리미엄 버번 위스키 쪽으로 먼저 눈을 돌려본다. 스카치 위스키에 비해 더 진득하게 올라오는 바닐라 향이 특징인 버번 위스키는 디저트처럼 식후에 한잔 마시기 딱이다. 바싹 태운 스테이크와 궁합도 끝내준다. 사진 속 불렛 버번이나 메이커스 마크 정도면 충분하다.

15 술잔에 투자한다.
어떤 술이든 좋은 잔에 마셔야 술맛이 산다. 맥주를 그 브랜드 전용 잔에 맞춰 마시자는 뜻이 아니다. 보통 마트 행사에서 배포하는 맥주 전용 잔은 그 자체로 잔 품질이 훌륭하다고 말할 순 없다. ‘수집’의 의미는 있을지언정 ‘맛’을 증폭시키지는 못한다. 반면 와인 잔 전문 브랜드의 맥주잔은 투자할 가치가 있다. 맥주잔, 와인 잔, 위스키 잔 하나씩만 사두어도 충분하다.

16 함께 술 마시고 싶은 사람을 자주 초대한다. 스스로 식사를 챙길 수 있게 되면 주변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해본다. 술값도 훨씬 적게 들고 분위기도 더 아늑하다. 집에선 즐거운 밤을 더 길게 즐길 수 있다. 내 삶의 질도 조금씩 높아진다.

    에디터
    손기은
    포토그래퍼
    이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