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부산 영도의 음식

2017.03.28GQ

육지도 아닌, 섬도 아닌 그곳에서 뜻밖에도 참 맛있는 밥을 먹었다.

부산광역시 영도구 동삼동

어, 여기 뭐지?’ 했다. 4년 전 부산 영도를 처음 취재하러 갔을 때다. 시내를 지나는데 ‘제주도 민회관’에 이어 ‘제주은행’이 보였다. 영도구 문화해설사 황동웅 씨는 “영도에는 타지에서 온 분이 많다”고 했다. “특히 제주 분이 많아요. 한때 영도 인구의 30퍼센트가 제주 출신이었죠.” 영도는 낙후된 지역이다. 주변 부산 출신들에게 영도에 대해 물으면 “잘 모른다”, “가보지 않았다”, “거길 왜 가느냐”고 답하는 경우가 꽤 많다. 서울로 치면 낙원상가나 파고다공원 일대 낙후된 옛 도심 같달까. 영도도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작은 섬마을이던 영도는 일제강점기 때 발전했다. 강화조약으로 부산이 개항되면서 국내 최초의 현대식 조선소 ‘다나카조선소’가 생겼고, 이후 많은 조선소와 철공소가 들어섰다. 항공편이 등장하기 전 주력 교통수단이던 여객선도 영도에 정박했다. 제주도, 전남 여수 등 현재 영도 주민 상당수가 영도와 배로 연결되는 지역 출신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이북 실향민들이 영도로 몰려들었다. 영도는 부산이지만 부산이 아닌 독특한 성격을 띠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와 문화는 영도 음식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바다를 향해 급하게 떨어지는 언덕에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그리스의 산토리니를 연상케 하는 멋진 풍광을 즐기며 드라이브를 할 수 있는 절영해랑길을 따라 달리다 보면 콘크리트로 거칠게 만든 방파제 비슷한 곳에 포장마차처럼 생긴 구조물들이 있다. ‘중리 해녀촌’이다. 나이 지긋한 해녀들이 제주 말로 수다를 떨며 앉아 있었다. “돌멍게를 안주로 달라”고 하자 한 해녀가 주섬주섬 잠수복을 입더니 바다에 들어가 멍게를 들고 나온다. 제주에서도 쉽게 하지 못하는 경험이었다. 대교동 ‘영도소문난돼지국밥’은 기록상으론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돼지국밥집이다. 올해로 79년 4대째다. 돼지뼈로만 뽑은 국물이 자연스런 뽀얀 빛깔에 잡내 없이 깨끗하다. 이 국물에 밥을 토렴해 말고 그 위에 따로 삶은 돼지고기를 얹어준다. 부산 최고 最古 돼지국밥집이 왜 영도에 있을까. 제주도의 영향은 아닐까.

돼지국밥의 기원은 확실치 않다. 옛날부터 경상도에서 즐겨 먹던 음식은 아니다. 마산이 고향인 장인은 “어려서 돼지국밥을 먹기는커녕 본 적도 없다”고 했다. 혹자는 돼지국밥은 돼지고기를 즐겨 먹는 이북 출신이 시작했다고 하고, 혹자는 돼지를 많이 먹는 제주도에서 유래했다고 본다. 영도에 와서 보니 제주 기원설이 꽤 근거가 있다. 팔십을 바라보는 영도소문난돼지국밥집 주인은 “옛날에는 제주도에서 돼지가 배에 실려 왔고, 우리는 그걸로 국밥을 끓였는데 정말 맛이 좋았다”고 회고했다.

빙장회에선 전남 여수와 일본의 영향이 함께 느껴진다. 남항시장통에는 ‘빙장회’란 간판을 단 식당이 7~8곳 있다. 사각형 유리함에 큼직한 사각형 얼음 덩어리를 깔고 그 위에 생선을 올려놨다. 빙장회는 발음이 좀 ‘거시기’하나 ‘얼음에 저장시킨 생선회’란 뜻이다. 부산을 포함 한국 대부분 지역은 활어회 문화다. 살아 있는 생선을 주문하면 바로 잡아서 떠주는 회를 좋아한다. 반면 일본에서는 선어회를 선호한다. 선어회란 생선을 잡아서 일정 기간 숙성시켜 먹는 회를 말한다. 활어회는 한국인이 즐기는 쫄깃한 식감이 살아 있지만 감칠맛은 떨어진다. 선어회는 좋게 말해서 부드럽고 나쁘게 말해서 흐물흐물하다. 하지만 숙성 과정을 거치면 감칠맛이 확 늘어난다. 여수 사람들은 선회회 문화를 알고 있었던 듯하다. 여수에도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이 대거 거주했는데, 이때 숙성회 문화를 배웠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활어회를 선호하기에 죽은 생선은 값이 확 떨어진다. 그걸 여수 출신 영도 사람들이 사다가 숙성시켜서 저렴하게 팔면서 시작된 게 빙장회로 추정된다. 남항시장 내 한 빙장회 집에서 맛본, 숙성된 덕자(큰 병어)회는 기가 막혔다. 병어의 영어 이름이 버터피시butterfish인데, 입 안에서 정말 버터가 녹듯 부드럽고 고소했다 맛은 맛대로 있으면서 가격도 싸니,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 물론 선어회를 즐기는 이들에 한해서 그렇다. 스지전골은 일본과 한국 식문화의 결합이다. 스지는 소 힘줄을 뜻하는 일본말. 일본 어묵탕에 빠지지 않는 재료다. 영도 산비탈을 한참 올라가면 나오는 청학동 ‘왔다식당’은 소 힘줄을 넣고 끓인 스지전골과 스지김치찌개, 스지된장찌개 등을 판다. 소 힘줄만 더했을 뿐인데 국물이 훨씬 시원하면서 구수한 감칠맛이 난다.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소 힘줄 씹는 맛도 좋다. 소 힘줄 자체의 맛을 즐긴다면 전골을 추천한다.

첫 취재에서 영도에 반했다. 이후 부산을 가면 빼먹지 않고 영도에 들른다. 갈 때마다 이 전에 맛보지 못한 새로운 음식을 거의 항상 발견한다. 서울에서도 볼 수 있는 유명 식당과 음식으로 가득한 해운대는 별 매력이 없다. 부산의 옛 모습을 간직한, 부산과는 또 다른 독특함을 지닌 땅, 아니 섬, 영도다.

선거철마다 등장하는 공허한 메아리가 아니다. 고향과 여행지, 이제 막 다다른 곳과 언젠가 떠나온 곳, 잘 아는 동네와 두 번 다시 찾지 않은 고장. 우리는 거기서 겪은 시간으로부터 생각과 감정과 말들을 부려놓는다. 제주를, 송파를, 안동을, 충남을, 남원과 철원과 분당을… 여행자이자 관찰자이자 고향사람이자 외지인으로서 각각 들여다본다.

    에디터
    글 / 김성윤(< 조선일보 > 음식 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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