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과 귀어가 모여 완도엔 어느새 젊은 어부들이 여기저기 불끈거린다. 양식하는 방식도, 이룩하고 싶은 목표도 어제와 다르다.
오지수 어부의 손과 전복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온 게 스물일곱, 전복을 키워보자 마음먹은 게 스물아홉 때다. 그리고 7년이 지난 지금은 완도에서도 손꼽히는 전복 가공유통업체로 몸집을 키웠다. “처음 양식 시작할 땐 지인들에게 팔았는데, ‘이거, 명품 전복이네’라는 말을 좀 들었어요. 그래서 회사 이름도 ‘명품 전복’으로 정했고요.” 그러면서 건네는 빳빳한 명함은 번쩍이는 금색이다. 완도가 젊은 피로 채워지면서 그동안 양식장에서 못 보던 기계들도 많아졌다. 전복이 먹고 자라는 미역과 다시마 종묘가 매달린 줄을 감는 기계도 철물점에서 모터를 가져와 용접해가며 만들었다. “그래서 동네마다 기계가 좀 달라요.” 전복은 ‘새끼’라 부르는 종묘를 사다 다 자랄 때까지 몇 개월이고 들여다보며 자식처럼 키우는 생물이라 양식하는 사람의 스타일대로 자란다. 한 해에 1천 톤씩 전복을 매입하다 보니 그게 한눈에 훤히 보인다. 70톤 규모의 자신의 양식장에서 매번 더 잘 키우는 법을 실험하는 이유다. “2012년 볼라벤 태풍 왔을 땐 전복이고 가두리고 다 산으로 올라가 있었어요. 투자한 돈도 죄다 날리고요. 그런데 한번 해본 거라 그런지, 2~ 3년 걸려서 했던 걸 1년도 안 돼서 다시 만들었어요. 그게 되던데요.”
강연호 어부의 손과 매생이
영락없이 학생처럼 보이는 앳된 얼굴인데, 올해 스물네 살에 대나무 지주 1천 대를 책임지는 매생이 양식업자다. “원래 공부도 좀 못 했고, 부모님이 이곳에서 낙지주낙을 하고 있기도 하고, 저는 밤에만 일하는 낙지주낙이 좀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래서 매생이로 바닷일을 해보자 했죠.” 띄엄띄엄 말하는 건 며칠간 잠을 제대로 못 자서다. 11월부터 1월 말까지는 하루에 한두 시간 정도밖에 못 잔다. 그 쪽잠마저도 바다 위에 띄운 배에서 청할 때가 많다. 밤새 청둥오리들이 몰려와 매생이를 먹는 걸 소리로 쫓아낸다. 완도매생이협동조합에 함께 가입되어 있는 ‘삼촌들’, ‘형님들’에게 이것저것 물어가며 하느라 그의 하루는 좀 더 고될 테다. “직원은 따로 없고 발 수리하는 것부터 바다에 내리는 것까지 제가 다 해요. 그래도 제일 바쁜 수확 시즌에는 ‘알바’도 써요. 여기 완도 고등학생들이 친구들 모아서 ‘알바’하러 와요.” 두 눈에 잠이 그득 들어찬 채로 말을 잇는다. “발을 내리는 시기를 보는 게 중요해요. 제가 부지런을 떨어서 다른 어르신들보다 발을 먼저 내리고 매생이를 더 잘 키웠다 싶을 땐 기분이 좋아요. 겨울엔 이렇게 바짝 일하고 여름에 좀 놀아야죠. 아직 뭐, 계획은 없어요.”
박용경 어부의 손과 김
“광주에서 마라톤 지도자로 일했어요. 도시에선 월급쟁이로 쪼들리다 보니, 한 만큼 벌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20대의 마지막 해, 본격적으로 부모님의 김 양식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5년이 흐르니 어느새 비슷한 또래의 양식업자도 꽤 많아졌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내려오는 건, 할 만하니까 그런 거예요. 지금은 거의 기계화가 됐어요. 저희 말로 ‘김발이 사고 났다’고 하는데, 고정해놓은 대가 조류에 빠져버릴 때 젊은 사람들한테 편하게 도와달라 할 수도 있고요.” 삼두리는 3~4년 새 젊은 어부가 열 명을 넘어섰다. 옆 동네 당인리는 더 많다. 힘은 충분하다. 이젠 아버지가 엄두를 못 냈던, 더 쉽게 더 많이 양식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이 남았다. “밭에는 영양제를 뿌릴 수가 있잖아요. 그런데 물에 떠 있는 김에는 그게 잘 안 돼요. 양식 오래 하신 어르신한테 물어보면 하지 말라고만 하시고. 전 좀 다르게 하고 싶은 거죠. 요즘은 맨날 차에 영양제 싣고 다니면서 고민해요.” 사진을 찍기 위해 하루 전날 채취한 물김을 단단한 주먹으로 움켜쥐었다. “김 엄청 좋아합니다. 저희는 물김만 산하고 정작 가공한 김은 사 먹어야 하니까, 질릴 일이 없어요.”
이완 어부의 손과 광어
“광어 양식은 사실 밥 주는 게 가장 일입니다. 수온이 올라가면 하루에 두 번씩 주고, 요즘은 하루 주고 삼 일 쉬고요. 한 번 밥 줄 때 5~6시간씩 걸려요. 울금도 섞어주고, 유자도 넣어보고…. 광어는 밥 주는 사람의 발걸음을 알아요. 꼼꼼하게 뿌렸을 때와 대충 뿌렸을 때 자라는 게 티가 나게 달라요.” 내려온 지 10년째, 완일수산을 이끄는 베테랑의 말이 미끄러지듯 쏟아졌다. 스물여덟, 서울에서 내려와 처음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완도에 아는 사람이라곤 부모님밖에 없었다. 이왕 양식장을 물려받을 거면 완도에 빨리 적응해야겠다 싶었단다. “서울 친구들은 ‘맨날 회 떠 먹고 좋겠다’ 그러는데, 사실 이게 살아 있는 생명체라 조금만 잘못 돌봐도 병에 걸리고 그래요.” 양식장에선 바닷물을 끌어 쓰기 때문에 이 지역의 해수 온도가 영향을 많이 미친다. 겨울에 수온이 4도까지 내려가는 완도 광어가 제주도 광어와 맛이 다른 이유도 이 때문이다. “살의 밀도가 달라요. 횟집 형님들이 완도 광어는 칼에 들러붙는 느낌도 없고 쫀득쫀득하다고 그래요.” 펄떡이는 광어 꼬리를 있는 힘껏 잡아채며 말했다.
- 에디터
- 손기은
- 포토그래퍼
- 이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