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의 정석은 무엇일까? | 지큐 코리아 (GQ Korea)

탁구의 정석은 무엇일까?

2018-05-30T13:42:46+00:00 |ENTERTAINMENT|

말하자면 스윙은 모든 것이 하나의 점으로 완벽하게 만나는 순간이다. 모두 스윙하지만 전부 다른 야구, 골프, 탁구, 테니스의 이상을 들여다봤다.

대학 시절 ‘교양 탁구’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세 번의 경기를 평가했고, 모두 이겼는데 성적이 ‘B+’였다. 왜 ‘A+’가 아니냐고 이의를 제기하자 강사가 답했다. “자세가 틀렸어요, 자세가.”

탁구에 올바른 스윙이란 게 있을까? 질문을 받은 서울시청 탁구 팀의 하태철 감독은 대답하는 데 뜸을 들였다. “음…. 교본에 나와 있는 게 정석이라면 정석이에요. 입문자한테 교본에 나오는 대로 가르치는 건 당연한 거예요. 그래야 무게 중심 옮기는 법을 체득하고, 체력 소모를 줄이며 치는 법을 배울 수 있거든요. 그런데 프로 선수를 가르치는 지도자 입장에선 ‘모범적인 자세’를 강요할 순 없어요. 예를 들어 골프는 ‘죽은’ 공이지만, 탁구는 ‘살아 있는’ 공이잖아요. 같은 공이 절대 두 번 날아오지 않아요. 이렇게 변수가 많은 스포츠에서 어떻게 정직한 자세로 그걸 다 받아쳐요?” ‘휘두르는’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 도구를 이용해 공을 쳐내는 스윙의 원리는 불변한다. 허리 오른쪽에서 왼쪽 눈높이까지 라켓을 올리는 기본을 무시하고, 팔만 요란하게 휘두르던 초보라서 ‘B+’라는 괘씸죄가 성립됐을 것이다.

탁구는 야구와 달리 공의 진행 방향 옆에 서지 않고 정면에 선다. 테이블에 떨어진 공이 튀어나갈 자리를 예측해 받아친다. 스윙의 시작이다. 탁구의 스윙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찬스볼’, 즉 높게 뜬 공이 날아올 때 강하게 내려치는 스매시다. 상대방 테이블을 향해 직선을 그리며 떨어져야 하기 때문에 타격점의 높이가 네트보다 높아야 한다. 두 번째는 드라이브다.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공과 라켓을 서로 미끄러지는 것처럼 마찰시킨다. 회전력이 생겨 상대가 받아내기 어렵다. 공과 라켓이 부딪치는 찰나에 라켓이 향하는 방향만 다를 뿐이지 무게 중심을 오른발에서 왼발로 옮기며 몸통과 팔을 함께 돌리는 동작은 같다. 탁구가 언제부터 시작된 스포츠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현대적인 스포츠로 발전하고 난 후엔 두 번의 큰 변화가 있었다. 21점제였던 한 세트가 11점제가 되었고, 셀룰로이드로 만들던 공인구가 2015년부터 플라스틱으로 바뀌었다. 공의 재질이 바뀐 배경은 엉뚱하게도 탁구 테이블 밖에 있었다. 셀룰로이드는 작은 불씨에도 금세 불이 번지는가 하면 온도가 높으면 스스로 불이 붙기도 한다. 화재 위험 때문에 비행기에 셀룰로이드 탁구공을 실을 수 없었다. 큰 대회가 있을 때마다 골치가 아팠다. 2004년 올림픽 당시 탁구공을 비행기가 아닌 배를 통해 운반하느라 아테네에 도착하는 데 2개월이 걸린 일화도 있다.

표면에 미세한 돌기가 나 있는 셀룰로이드와 달리 플라스틱 공의 표면은 매끈하다. 마찰력이 작아 공에 회전력을 싣기가 전보다 어려워졌다. 게다가 2002년에 새로 생긴 규칙으로 서브하는 방식도 이미 달라진 후였다. 몸으로 공을 가려가며 서브를 하던 과거와 달리 손으로 공을 띄우는 순간부터 라켓으로 공을 칠 때까지 전 과정을 상대에게 보여야 한다. 서브로 넘어오는 공이 단순해졌다. 풋워크로 자리를 옮겨 포핸드로 받는 경우가 눈에 띄게 줄었다. 현재 세계적으로 셰이크핸드 라켓을 쓰는 선수가 대부분이라 발 굴림 없이 제자리에서 백핸드로 바로 받아내면 될 일이다.

동작이 줄자 경기 흐름은 더욱 빨라졌다. 하태철 감독이 말했다. “펜홀더 라켓이 보편적이던 시절까지만 해도 ‘한 방 탁구’였어요. 유남규, 김택수 다 그랬죠. 펜홀더 라켓은 손목의 움직임이 셰이크핸드보다 자유로워요. 공에 회전을 넣기 좋아요. 서비스 공부터 회전이 잔뜩 들어갔고, 상대방은 겨우 받아내요. 공이 쉽게 돌아오는 거죠. 그럼 바로 공격적인 스윙으로 점수를 따던 게 그때 스타일이에요. 공이 몇 번 오가지도 않아요.”

당시 탁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스윙을 지금은 보기 어렵다. 힘과 회전력을 강하게 실으려 하체에 많은 힘을 줘서 중심 이동이 극적이었다. 칼 대신 라켓을 들었을 뿐이지, 두 사람이 추는 칼춤처럼 역동적으로 움직였다. 점프했다가 내려찍고, 어퍼컷을 하는 것처럼 쪼그렸다가 일어나며 라켓을 휘두른다. 반면 지금의 탁구는 제자리에 서서 잘 움직이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과감하고 커다란 동작이 나오기도 하지만, 예전처럼 시종일관 커다란 스윙이 난무하던 때와는 다르다. 스윙은 스윙이되, 신중한 스윙으로 점수를 노린다. 셰이크핸드 라켓과 ‘정직한’ 플라스틱 공이 만들어낸 탁구판이다.

탁구는 점점 솔직해졌다. 화려한 스윙 대신 속도에서 재미를 찾아야 한다. 다만 규정이 어떻게 바뀌느냐에 따라, 어떤 경기 스타일이 유행하느냐에 따라 탁구의 스윙은 여전히 바뀔 여지가 있다. 무게 중심의 이동이라는 스윙의 원리만 제외하고. “그래도 어떻게 휘두르든 이기면 되는 거 아닌가요?” 마지막 질문에 하태철 감독이 답했다. “구기 종목 중에서 가장 작고 가벼운 공을 사용하는 게 탁구예요. 몸과 손목의 미세한 차이에도 크게 반응하죠. 공의 회전과 방향을 이해하지 못하면 절대 잘 칠 수 없어요. 프로 선수의 스윙은 그 특성을 몸이 기억해 응용해서 나오는 동작이에요. 그런데 올바른 스윙 자세를 익히지 않고 탁구를 친다고요? 팔만 휘둘러서 한번 쳐보세요. 탁구대, 생각보다 작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