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스톡홀름에서 5시간 떨어져 있는 시골 마을 엘름홀트에서 지금 가장 인기 있는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를 만났다. 그가 말하는 이케아와의 협업 이유, 그리고 민주적인 디자인.
이번 이케아와의 협업은 ‘레디메이드 아트(일상적인 기성 용품을 다른 측면에서 재구성한 미술 작품의 한 장르)’가 콘셉트인 것처럼 보인다. 599크로나(7만 5천원)라고 써 있는 이케아 영수증 러그에는 실제로 같은 가격표가 붙어 있다. “Sculpture”라고 써 있는 방수 종이 가방, “Blue”라고 써 있는 빨간색 카펫, “Grey”라고 써 있는 검은색 카펫 등 모든 제품들이 아이러니를 담고 있다. 컬렉션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나?
가구, 그래픽 디자인 등에 대해 공부하고 이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이를 단순히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이 둘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제품을 만들고 싶다. 외관상의 매력도 중요하지만 더 심오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일반적인 통념을 깨는 작업이 필요하다. 똑같은 의자, 러그, 침대 등도 다르게 표현하는 거다. 나이키 신발이나 이케아 의자 모두 마찬가지다.
인용 문구를 빼고 제품 자체만 보면 매우 단순하고 기본에 충실한 디자인이다. 이미 존재하는 디자인이라는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작업할 때 많이 하는 얘기인데, 문고리는 고장 났을 때야 비로소 그 중요성을 알게 된다. 보통은 문고리의 모양, 제작 방법 그리고 구입 장소 등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에 이케아와 함께한 컬렉션은 사람들과 디자인 관련 지식을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출발했다. 예를 들면, 내가 만든 의자는 사실 1800년대에 만들어진 거다. 누가 디자인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 목공 작업 중 자연스럽게 형성된 디자인에 누군가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붙이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진화됐을 거다. 우리 집에도 저렇게 생긴 의자가 있었다. 매우 저렴한 곳에서 구매했던 걸로 기억한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내가 만든 것처럼 바닥에 빨간색 문버팀쇠는 없었다. 사람들이 제품을 궁금해하고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어 조사하는 것, 이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다. 새로 발매된 플레이보이 카티 앨범을 들으면서 내가 만든 나이키 신발을 사는 친구들도 이 의자가 1800년대에 제작된 것을 알게 하는 거다. 그게 디자인의 본질이고 가장 중요한 과정이자 마지막 결과물이다. 러그에 “Wet Grass(젖은 잔디)”라고 써 있으면 설령 젖은 잔디가 아니라도 그렇게 생각해보길 바라는 거다. 가방에 “Sculpture(조각)”이라고 써 있으면 이게 조각인지 아닌지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봤으면 하는 거다.
디자인에 인용 부호를 사용하는 것은 이제 당신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무슨 의도인가?
아이러니를 구체적인 방식으로 표현한 거다. 알다시피 그건 내 목소리다. 내 이름을 넣지 않고도 내가 만든 제품을 구별해내는 방법이다. 인용 부호는 사람들로 하여금 의문을 제기하고 재분석하게 만드는 나만의 방식이다. 러그를 러그로만 볼 것인가? 가방도 조각품이 될 수 있나? 등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하는 거다.
나이키, 바이레도, 리모와 등과 협업했다. 이케아와 협업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케아는 최고다. 내가 지금껏 협업해온 브랜드를 보면 알겠지만, 나는 제품 자체만을 보지 않는다. 브랜드가 오랜 시간 축적해온 아이디어를 본다. 이케아는 동일한 콘셉트를 여러 세대에 걸쳐 구축했고, ‘데모크래틱 디자인(Democratic Design)’을 표방한다. 이케아라는 단어만으로도 느껴지는 뭔가가 있다. 내가 협업해온 브랜드는 이케아와 비슷한 성향을 가졌다. 제품들이 흥미롭고, 역사가 길다. 오래된 전통에 현대적인 문화를 접목시켜 흥미로운 것을 찾는 젊은 세대의 취향을 반영하는 게 내 스타일이다. 그게 바로 디자이너로서 내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이케아가 제품을 만드는 방식, 조립하고 배송하는 과정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나도 물론 이케아에 영감을 줬다고 생각한다. 그게 협업을 진행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당신에게 ‘데모크래틱 디자인’은 어떤 의미인가?
나에게 데모크래틱 디자인은 ‘새로운 요구 조건’이다. 어떤 물건을 만들 수 있다고 그냥 만드는 건 아니다. 어떤 물건으로 돈을 벌 수 있어서 만드는 것도 아니다. 지구상에 있는 물건들에 여러 다른 기준의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케아의 데모크래틱 디자인이란 새로운 제품을 어떻게 세상에 내놓을까에 대한 접근 방식이다. 이념적, 환경적 그리고 생태적 측면에서 말이다. 그 방식을 배울 수 있어 좋았다.
이케아 협업 컬렉션의 타깃을 밀레니얼 세대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에서 무엇을 배웠나?
‘캐릭터화하는 것’에 대해 배웠다. 모든 물건에는 다 캐릭터가 있다. 밋밋하지 않고, 다른 물건과 똑같지 않다.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카펫과 러그를 중점적으로 디자인한 이유는 무엇인가?
내게 이케아 프로젝트는 ‘집’이었다. 내 커리어는 주로 패션 쪽이어서 집에 있는 가구로 따지면 옷장에만 집중돼있었다. 러그와 카펫은 메세지를 전달하기에 좋아서 선택했다.
이케아에서 구매해본 제품이 있나?
물론이다. 이케아는 내 대학 시절의 일부였다. 밀레니얼 세대에게도 이케아는 ‘실용성’과 같은 의미일 거다. 예를 들어, 아파트로 이사를 하면 샤워 커튼도 구매해야 하고, 커피 테이블도 새로 사야 한다. 동시에 다른 쪽 뇌는 ‘이번 주말에는 오프화이트의 스웨트셔츠를 구매해야 한다’는 신호를 보낸다. 이케아는 패션 아이템을 구매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미 있는 가구를 새로운 가구로 대체하는 식 말이다.
이케아 제품이 당신의 다른 제품들만큼 가격이 오른다면 어떨 것 같나?
그래도 이케아 가격일 거다. 그게 바로 이케아의 미덕이다. 고급 패션 브랜드의 경우, 그에 상응하는 가격이 있다. 이케아는 ‘민주적인 가격’으로 제품을 내놓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은 회사다. 이케아와 협업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낮은 가격을 맞추느라 어려움은 없었나?
전혀 없었다. 그게 바로 이케아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이케아의 제품을 보면 저렴한 가격에 맞춰 제작됐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가격에 맞춰 제품을 만드는 기업도 있다.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듯한 품질의 플라스틱 의자들도 많다. 이케아는 가격과 상관없이 품질을 보장한다. 그게 그들이 말하는 ‘데모크래틱 디자인’의 한 단면이다. 이케아는 짧은 기간 사용하고 버리는 제품이 아니라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든다.
건축을 전공한 패션 디자이너다. 이번엔 가구를 만들었다. 디자인에 경계를 두지 않나?
학교 다닐 때는 학과 과정이 느리다는 생각이 들어 목공실에서 가구를 만들기도 했다. 그 편이 훨씬 좋았다. 나는 디자이너고, 물건을 만든다. 어떤 물건을 만드느냐에 따라 직함이 달라진다. 옷을 만들면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디제잉을 맡으면 디제이가 된다. 이와 같은 사고방식에 익숙한 편이다. 사람들의 생활에 스며든 일상적인 물건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멘토 중 한 명인 마이클 락은 미술, 건축, 패션의 경계를 넘나들며 작업했다. 렘 쿨하스와 미우치아 프라다와도 작업을 많이 했다. 그런 방식이 나에게도 영향을 줬다.
오프화이트, 루이비통, 디제잉, 그리고 수많은 협업 프로젝트 등 이 많은 일을 다 어떻게 하나?
내 일이기 때문이다. 시간은 항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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