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 너무나 다른 세 아티스트, 크러쉬, 병언, 씨피카는 친구도 되기 전에 함께 노래를 했다. 지금 그들에게는 노래도 생겼고 친구도 늘었다.
Crush
여름방학 좀 즐기고 있나요? 빈티지 오디오 장비에 푹 빠져 있어요. 빈티지 오디오 장비로 옛날 음악 듣는 것만큼 좋은 게 없더라고요. 이번 여름방학은 옛날 음악 탐방기예요.
음악가 크러쉬에게는 취미이기도, 수업이기도 하겠네요. 저는 음악가니까, 영감을 받을 수밖에 없는 포인트가 있죠.
에어컨 틀어놓고 음악 듣는 게 요즘 같은 때는 제일 좋겠어요. 네, 발가벗고 에어컨 풀가동 하고 음악 듣는 거죠. 아니면 오디오 장비 알아보거나 엘피 디깅하러 레코드 숍에 가요. 틈틈이 집에서 음악 스케치 작업도 하고요. 강아지 산책은 많이 못해요, 너무 더워서. 풋살도 되게 좋아해서 가끔 하고.
꽤 여유가 있는 것처럼 들리네요? 어제까지 엄청 바빴고, 그래서 오늘 저녁 7시까지 자고 여기 온 거예요. 거의 한 달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잤어요. 내일부터 좀 쉴 수 있죠.
이건 어느 정도 쉬어가는 앨범이다, 이건 매진하는 앨범이다, 라는 구분이 스스로 있어요? 완전 있죠. 이번이 쉬어가는 시기고, ‘잊을만하면’ 싱글 냈을 때가 완전히 몸 던져 불사른 시기예요. 그때 인지도를 확 끌어왔죠. 이번에는 음원 성적에 대해서도 기대를 안 했어요. 수록곡들이 다 라이트하거든요. 편곡과 스타일에 신경 쓴 음악이라기보다 노래 각각의 바이브를 즐길 수 있는 앨범이죠. 한 곡도 빠짐없이 피처링이 있는 것 아시죠? 친구들이랑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걸 해본 앨범이기도 해요.
굉장히 젊어진 것처럼 들렸어요. 아, 진짜요?
친구의 힘일까요. 크러쉬는 자기 음악에 너무 갇혀 있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어요. 제 하드디스크에 곧 나올 곡이 스무 곡 넘게 있거든요? 거의 완성된 노래도 열 곡이 넘어요. 이 노래들을 빨리 들려드리고 싶어요. 저는 절대 스타일에 국한되지 않는 뮤지션이라고 자부하고, 더 젊은 곡도 많고, 제가 아무리 옛날 노래들을 좋아해도 트렌드는 절대 놓치고 가지 않아요. 음악적으로 연구를 많이 하고 있어요. 이번 앨범에서 머리를 이렇게 염색한 것도, 스타일에서도 젊은 뉘앙스를 주고 싶어서예요.
<Wonderlost>는 일종의 앨범 시리즈인가요? 그렇죠. 사실 이게 작년에 나왔어야 하는데, 정신적으로 좀 피폐해서 내지 못했어요. 모든 아티스트는 이상에 목말라 있잖아요. 현실적인 부분과 타협해야 할 때도 있지만 본인이 추구하고 원하는 건 이상이죠. 저한테는 그 이상이 딱 한 단어로 다가왔어요. ‘원더’요. 스티비 원더를 좋아해서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이 ‘원더’라는 단어가 제게 힘을 주더라고요. 저는 제 음악을 하는 과정을 일이 아니라 여행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처음엔 <Wonderlust>였고 이번엔 <Wonderlost>고 마지막은 “여행을 좋아하는”이라는 본래 뜻의 <Wanderlust>가 될 거예요.
앨범마다 음악은 사뭇 다르지만 앨범 제목에서는 이게 시리즈라는 걸 표방하고 있어서 도대체 이걸 뭐라고 생각하면 좋을까 하다가 크러쉬의 ’자아실현 프로젝트’가 아닌가 했죠. 맞아요! 제 디스코그라피 중 가장 좋아하는 게 2년 전에 나온 <Wonderlust> 예요. 지금 LP로 제작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잘 어울리겠네요. 철저하게 아날로그하고 어쿠스틱하잖아요. 그런데 다음 앨범은 더 어쿠스틱하고 아날로그할 거예요. 되게 재지한 것도 있고, 80-90년대 솔을 오마주한 트랙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면 세상으로부터 외면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어요? 그런 생각을 안 하는 뮤지션은 없을 거예요. 항상 저울질해요. 좀 더 많은 사람의 취향에 맞추고 싶은 앨범이 있고, 내가 정말 원하는 방식대로 풀어가고 싶은 앨범도 있고. <Wonderlost>는 후자죠. 다음 앨범은 정말 모든 분들이 좋아하실 것 같다는 확실한 자신감이 있어요.
사람들이 크러쉬는 이런 뮤지션이구나, 하면서 익숙해질 무렵에 스스로 변곡점을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맞아요. 이번에도 제가 어번 알앤비를 했으면 아마 제 자신에게 실망했을 것 같아요. 음악적인 부분에서는 항상 목이 말라요.
‘Ryo’는 처음부터 씨피카와 병언을 염두에 두고 만든 노래인가요? 네. 원래는 씨피카 누나랑 뭔가를 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밀릭한테 비트를 받았는데 그때 병언 형까지 만난 거죠.
직접 작업해보니 어떻던가요? 예상대로던가요? 제가 처음 겪어보는 인간형이었어요. 너무 순수하고 착한데 음악할 땐 정말 미친 사람 같은 게 매력적으로 다가왔고요. 두 사람과 작업하면서 제가 많이 반성했어요. 씨피카 누나는 진취적으로 자기만의 것을 갈고 닦은 게 느껴지고 병언 형은 동일선상에서 얘기할 수 있지만 엄청나게 프레시한 면이 있고요.
이번 계기를 통해 친구가 됐나요? 씨피카 누나는 SXSW에서 처음 만났어요. 리허설 보고 너무 멋있어서 같이 작업하고 싶었죠. 이 노래로 물꼬를 튼 건데 정말 되게 친구 같아요. 병언 형은 낯가림이 심하지만 파티 가서 같이 노니까 괜찮았어요. 음악이 있으니까 말이 필요 없더라고요. 음악을 좋아하는 게 너무 잘 느껴져서 친구 같고요.
이 두 사람과의 작업도 일종의 변곡점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보다는 자연스럽게 이뤄진 것 같아요. 곡을 작업할 시기에 두 사람을 만났고 얘기하다 보니 잘 맞은 게 컸죠.
사람들에게 크러쉬는 가수에 가까운데 실제 접근 방식은 좀 더 프로듀서에 가까워 보여요. 아무래도 제가 노래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드리니까요. 작/편곡하는 부분은 인지하지 못하는 분도 많을 것 같아요. 하지만 상관없어요. 예전엔 셀프 프로듀스라는 걸 어떻게든 어필하고 싶었는데, 이제 인위적으로 뭘 알아달라고 하는 걸 원치 않고, 나중엔 사람들이 다 알게 될 거라고 믿어요.
Byung Eon
병언이 한국에 온 건 오로지 군대 때문이었나요?
네. 군대를 가야 여권을 연장할 수 있어서요.
군대 가려고 온 김에 한국의 음악신도 좀 볼까 하다가 바밍 타이거 크루를 만난 거예요? 우연이었어요. 밀릭이 저한테 DM을 보내서 만났는데 거기서 하이그라운드 A&R로 일하던 이분(바밍 타이거 크루의 디렉터 산얀)을 만났죠. 그 후 연락이 와서 몇 번 더 만났고 같이 음악을 하게 됐어요.
여기 와서 겪어보니 뭐가 제일 다르던가요? 주변이 다 한국 사람인 거요.
미국과 캐나다가 그리운 순간은 없고요? 처음부터 전혀 없었어요. 군대 문제 때문에 돌아온 거지만 한국에 되게 오고 싶었거든요.
병언의 이름을 알린 유튜브 영상들을 보면 외국에서 오래 살았음에도 굉장히 한국적인 게 있죠. 꼬여 있는 자의식이랄까, 스트레스에서 나온 열정이랄까. 되게 적극적으로 그걸 추구했어요. 바밍 타이거 분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가 한국에 대해 배우고 적응하고 싶어서예요. 음악에서도 한국적인 걸 전달했으면 좋겠고. 미국과 캐나다에서 시간을 보낼 때도 늘 한국적인 감성이 있었어요. 그때는 그게 한국적인 건지 몰랐고, 하여간 다른 사람들이랑 많이 달랐죠. 난 왜 이렇게 눈치를 보지? 했는데 여기 오니까 다 그런 거예요. 제가 늘 가지고 있던 걸 여기 와서 어느 정도 ‘컨펌’ 받는 느낌?
바밍 타이거의 노래 가사에도 등장하는 스티븐 연이 비슷한 얘기를 했어요. 한국에서는 내가 나로 있을 수 있었고, 여기에서 영화를 찍는 게 치유가 됐다고요. 네, 비슷해요. 한국에서 지낸 지 20개월 됐는데 많이 좋아졌어요. 예컨대 한국 오기 전에는 부모님이랑 말이 잘 안 통했는데, 이제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어요. 특히 맨날 일만 하는 한국 아버지의 상황은 진짜 한국에만 있어서요.
병언에게 필요했던 건 친구였을까요? 동료는 아니었을까요? 둘 다 비슷하게 필요했던 것 같아요. 한국말로 얘기할 수 있는 제 또래 군대 가는 사람들?
아쉽지 않겠어요? 친구, 동료가 잔뜩 생겼는데 군대를 가야 하잖아요. 미룰 생각은 없고요? 방법은 있겠죠. 근데 지금이 밸런스가 맞는 것 같아요.
유튜브에 영상을 올릴 땐 아니었는데, 한국에서 활동하면서 래퍼로 굳어진 측면이 있어요. 통계로는 모르지만 어떤 분들은 제 노래를 더 좋아하더라고요. 근데 저는 진짜 상관없어요. 지금까지 제가 녹음한 것들은 어떤 사람들과의 만남을 기록한 거랄까?
역할이나 장르보단 인연과 순간이 있다는 거죠? 네, 바밍 타이거의 한 명인 제 관점에서는 그래요.
퍼포밍하는 사람이라는 자의식은 있나요? 무대에 있으면 조금 다른 사람이 되잖아요. 어머니도 그런 말을 해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데, 무대가 눈치를 덜 볼 수 있는 ‘라이선스’를 주는 것 같아요.
하지만 유튜브 영상 속의 병언은 압도적인 퍼포머라기보다 좋은 편곡가라는 장점이 있어요. ‘It G Ma’ 같은 노래를 그 방법과 태도로 보여주는 선택이요. 바밍 타이거의 첫 믹스테이프에서 병언의 역할은 랩과 가사 외에 다른 건 없었나요? 가사에 개인적인 것들이 나오긴 하겠지만 그 앨범에서는 우리가 같이 추구한 게 담겨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약간 연습생 같았고요.
이런 상황이 왔는데 욕심 안 났어요? 욕심 부릴 입장이 전혀 아니었죠. 바밍 타이거분들은 서울에서 음악을 오래 해왔고, 일상이 있고 상황이 있으니까. 그리고 저는 제 또래 한국분들을 만난 게 되게 중요했고, 한국에 대해 배우는 경험을 갖는 게 더 중요했어요. 음악적 욕심보다는 쓸 때 재미있고 누가 들으면 기억에 남는, 저한테 흥이 있으면서 효율이 있는 걸 추구했죠.
연습생 같았다는 말이 뭔지 알겠네요. 그러면 극단적으로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나요? 병언은 아직 데뷔하지 않았다? 맞아요, 제 느낌이 그래요. 그게 데뷔구나. 그러니까 사실 랩을 이렇게 하고 옷도 이렇게 입는 건, 데뷔라는 걸 계속 미뤄서 이런 상태거든요. 의도한 건 아니지만.
하지만 병언은 한국의 특정 신에서는 지금 엄청 유명하죠. 이런 반응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겠죠? 처음엔 되게 신기했어요. 기분도 좋고 자존감도 올라갔지만 점점 더 책임져야 하는 쪽으로 가는 것 같고. 근데 뭐 그런 거죠. 좋아요. 그냥 좋아요.
취미처럼 생각하던 것이 일로 넘어가면 생기는 문제들이 있죠. 딱히 신경 쓰지 않나 봐요? 나름 눈치 보는 부분은 생겼어요. 유튜브 채널에 뭐 올릴 지도 고민하고. 근데 저는 그냥 본능적으로 맞는 걸 하고 싶어 해요. 본능적으로 더 긍정적이고, 누가 봤을 때 더 재밌는 것.
본능적으로라는 말을 썼는데, 모든 결과물에 본능적이지 않으면 할 수 없을 것 같은 구석이 있죠. 결국 뭐랄까, 이상한 단어들인데 마법, 기적, 갑자기 사막에서 홍수가 나는 그런 것은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렇게 새롭게 나오는 걸 좋아해요.
아직 영장이 나오진 않았죠? 8월 말까지는 안 나올 거예요.
그 정도만 알고 지금 막연하게 기다리는 거예요? 공연 잡힌 거 하고 그렇게 지내야죠.
군대 말고 다른 얘기로 끝내죠. 요즘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언제예요? 어제 엠티 갔다 왔어요, 가평으로.
정말 뻔한 곳에 갔네요. 하하. 너무 새로웠어요. 물놀이하고, 미끄럼틀 타고, 고기 구워 먹고, 술 마시고, 노래방 가고. 아, 마피아 게임도 했죠. 엠티가 뭐의 약자인지 아세요? 멤버십 트레이닝이에요.
cifika
미국에서 한국에 온 지 3년쯤 됐죠? 친구는 많이 생겼어요? 네, 지금은. 근데 많이 안 만나고 있어요.
작업 때문에요? 네, 작업이 중요하니까요.
한 인터뷰에서 그랬죠. 아티스트들이 새로운 걸 하고 싶을 때 찾는 피처링 아티스트가 자신인 것 같다고. 이번에도 그런 경우였나요? 네, 원래 크러쉬의 스타일은 확실히 아니었으니까. 전 좋았어요.
근데 새롭다는 게 말처럼 쉽진 않잖아요. 말로는 다들 새로운 게 좋다고 하는데, 막상 새로운 게 닥치면 거부감이 들어서 밀어내죠. 시간이 오래 걸린 적은 있어요. 말 그대로 원래 하던 게 아니니까. 방황하는 기간인 거죠. 근데 아티스트에게는 되게 소중한 시간이라고 봐요. 매일 똑같은 거 하다가 방황하고, 다시 생각하고. 솔직히 오래 걸려도 아티스트가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게 기뻐요.
본인 생각이죠? 네, 하하. 물어본 적은 없어요. 당장은 괴로워도 나중에 생각하면 엄청 의미 있을걸요? 내가 이거 하나 때문에 이렇게 고민했지 하면서. 사실 새로운 느낌은 딱 한 번이잖아요.
씨피카는 작업할 때 모든 상황을 완전히 ‘마이 페이스’로 통제할 것 같아요. 그러지 않으면 시작하지 않을 것 같은. 네, 그런 점에서 많이 이기적인데, 당연히 이기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 건데, 내가 죽어도 남을 수 있는데. 순간적으로, 우정으로 결정하는 건 저한테 너무하는 거예요.
그런 씨피카도 편곡자인 무드슐라는 믿고 의지하는 듯해요. 맞아요. 이렇게 디테일하게 도와주기 쉽지 않아요. 고맙다는 말로는 보답이 안 될 것 같아서 편곡자로 이름도 올리고, 얼마를 벌던 수익도 반반씩 나누자고 했어요. 얼마 안 되지만.
첫 앨범에 이어 <Prism>을 준비하면서 가장 다르게 가려고 한 부분은 뭘까요? <Intelligensia> 때는 음악적 지식이나 테크닉이 없었어요. 아이디어와 스케치만 창의적이었지, 그걸 구현할 능력이 안 됐죠. 그래서 무드슐라가 엄청 노력해서 제가 하려는 걸 대신 구현해주니까 자연스럽게 무드슐라 색깔의 앨범이 됐어요. 하지만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고, 너무 고마웠지만 사실 기분이 안 좋았요. 그래서 무드슐라도 원한 건데, 이번엔 제가 만든 원형에 사운드적인 면만 도와줘서 좀 더 제 색깔이 나왔어요. 내년에 나올 앨범은 다 제가 프로듀싱해요.
<Prism>을 내고 미국 투어를 했죠. 어땠어요? 살아온 건 미국인데 음악 활동의 시작은 여기잖아요. 저는 한국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은 위치죠. 지금은 좀 더 한국에 가까워진 것 같지만. 원래 성향 자체가 하나에 소속되는 걸 싫어해요. 그래서 회사도 한국이랑 해외 반반 비율로 스케줄을 잡아요.
그 말은 이런 뜻도 되나요? 미국 투어를 해보니 생각보다 한국 사람 다 됐다? 그건 아니에요. 하하. 가서 너무 편했어요. 내가 매일 먹던 음식, 내가 매일 쓰던 언어, 내가 매일 가던 곳이 있으니까. 길거리 표지판만 봐도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마음은 편했는데 무대에선 좀 힘들었죠. 미국에선 아무도 저를 모르니까 긴장되고 무섭더라고요.
음악은 서구적인 퓨처리즘 취향이지만, 보컬 스타일은 대학가요제 시절의 여자 가수 같달까. 그게 음악에서 충돌해서 재밌어요. 그 창법을 만든 이유가 있어요. 저는 과한 바이브레이션으로 부르는 게 싫었어요. 외려 음악에 방해되는 것 같아서 음악과 밸런스를 맞추고 싶었어요. 아무리 기쁘거나 슬퍼도 잔잔하게 부르는 걸 염두에 두고 계속 연습했어요.
이 창법을 의도하고 만들었다는 게 또 재밌네요. 저 연구 진짜 많이 해요. 처음엔 창법에 대해 그렇게 진지한 생각이 없었는데, 부르면 부를수록 문제점이 확 보이더라고요. 단어, 억양, 발음마다 다른 세기와 성량으로 많이 연습했어요.
대개 자신의 목소리를 재료로 수많은 레이어를 쌓죠. 그게 모노드라마처럼 들리기도 해요. 제 목소리가 악기라고 생각해요. 비트 위에 얹는 목소리가 아니라 비트와 같이 묶이는 악기. 악기처럼 멜로디를 쓰고 악기처럼 더해요. 그래서 그런가 봐요.
가사의 내용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가요? 그것이 음악적으로 기능한다면? 가사는 모호하면 모호할수록 좋다고 생각해요. 듣는 사람들이 생각을 집어넣을 수 있도록 더 넓게 말하려고 해요. 근데 요즘엔 너무 미니멀해져서 걱정이에요. 저는 무대에서 노래를 많이 불러야 하거든요. 그러려면 노랫말도 많고 가사도 많아야 하는데 자꾸 간소화되니까.
그럼 이렇게 물어볼까요? 음악이 자기 이야기를 전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해요? 네. 대중음악과 대조되는 면이 저한테 있어요. 저는 자기표현 위주지만, 대중음악은 사람들이 원하거나 되고 싶은 모습을 보여주잖아요. 원하는 얘기와 원하는 메시지요. 하지만 저를 표현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공감을 못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뭇 음악가처럼 이 노래 속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내가 만든 화자다, 이런 것도 아닌 거죠? 다른 저를 만들어서 그 사람 얘기를 한 적은 있어요. 미래의 저예요, 가상의 인물이 아니고. 미래의 제게 행운을 빌고 싶고, 행운을 좀 당겨 쓰고 싶었어요.
‘Good Luck Her’ 말이죠? 네, 그 ‘Her’가 저예요.
직장 생활하던 때가 아쉬운 순간은 없나요? 평범한 생활이 주는 기쁨도 있잖아요. 없어요. 저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어서, 그때 생각하면 화가 나요. 어떻게 인간이 그렇게 생각을 안 하고 살았지? 음악 하기 전까지는 진짜 아무 생각 없이 살았어요. 학교 가라면 가고 회사 다니라면 다니고. 인생에서 처음으로 하고 싶은 게 생겨서 죽을 각오로 시작했어요. 부모님이 너무 무모하다고 엄청 반대하셨거든요. 근데 그냥 왔어요. 지금은 생각하고 사는 것 같아서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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