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귀지 못했던 이유 | 지큐 코리아 (GQ Korea)

우리가 사귀지 못했던 이유

2019-04-19T15:48:11+09:00 |relationship|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던 충격적 진실과 마주할 시간이다. 그때는 에둘러 좋게 말했지만 사실 소개팅 후 더 만나길 거절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No’라고 외칠 수 밖에 없었던 작고 사소한 이유들.

 

너, 재미없어
세상에서 제일 이해가 안 가는 사람이 자기 얘기에 자기가 웃는 유형. 웃음이란 것은 상대방이 내 개그 코드를 공감하며 자연스레 ‘터져나오는 것’ 아니던가? 첫 만남 때부터 유독 웃음이 많았던 그 사람은 모든 문장을 웃음으로 마무리 했다. “식사하셨어요? 아, 근데 밥 먹었냐고 물어볼 걸 그랬나요? 하하하” 대답 대신 내 머릿 속은 ‘이 사람 대체 왜 웃는거지?’ 라는 의문으로 가득찼다. 밝고 쾌활한 사람 같아서 두 세 번을 더 만나봤지만 혼자 말하고 혼자 웃는 화법은 끝내 적응할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 “안 웃긴데 너 혼자 웃지마!”라는 문자 대신 침묵을 선택했다.
이재진(사진가)

너, 너무 니 얘기만해
처음엔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싫고 좋고 기준이 명확했고 솔직한 사람 같았다. 그런데 몇 번 만나보니까 모든 이야기가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났다. 상대방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전혀 없는 건가? 간혹 내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이런 식이다. “아, 디자인 쪽 전공하셨다고 했죠? 저도 디자인에 관심 많았는데 어느 날 생각해보니까…” 이건 뭐 박찬호도 울고 갈 투머치 토커다. 대화가 세 마디 이상 이어지지 않아 만남의 종결을 요청했다.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건승을 빌게요”라고 했지만 사실은 “세상 자기애 넘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가 좀 더 솔직한 문장이다.
이연호(회사원)

너, 사실 옷 못 입어
이제와서 말이지만, 패션을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그 사람은 그렇게까지 옷을 잘 입는 것 같진 않았다. 패션 매거진에서 소개하는 어떤 경향은 알고 있는 거 같긴 한데, 본인과 썩 잘 어울리는지에 대해선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일본 어디서 직구해왔다는 엄청나게 헐렁한 스웻셔츠, 저렇게 밑 위가 길게 늘어져있는데 걸음을 잘 내디딜 순 있을까 싶은 배기 팬츠, 그리고 통 굽의 부츠까지. 목에 스카프만 하면 2000년대 초반에 빅뱅한테서 보던 그 패션이다. 나쁜 사람 같지는 않은데 만날 때 마다 ‘지금 이 아이템을 어디서 어떻게 힘들게 구해왔는지’를 자랑하는 걸 들어주는 게 힘들어서 그만 그의 일상에서 사라지기로 했다.
오주현(카페 운영)

너, 쩝쩝거려
누구나 다 ‘가풍’이란 것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를테면 우리 집은 다른 건 다 봐줘도 밥상머리에서 쩝쩝대면서 허겁지겁 먹는 것을 ‘극혐’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탓에 나는 그 흔한 ‘먹방’ 영상도 애써 보지 않았다. 많은 양을 빠르게, 볼이 미어지게 쩝쩝 먹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였다. 유튜브의 먹방 지뢰를 요리조리 피해왔던 내가 소개팅 자리에서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먹방을 보게 될 줄이야.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는 ‘먹성 좋은’ ‘맛있게 잘 먹는’ 남자로 통했을 거다. 하지만 나에겐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쩝쩝이’였다. 그거 빼고는 훤칠하고 성격 좋은 괜찮은 남자였기에 몇 번을 더 만났다. 하지만 그와 헤어지고 집에 돌아와서도 쩝쩝대는 환청에 시달린 끝에 “너무 좋은 분이지만, 저보다 더 좋은 인연 만나세요”라는 문자를 보내고야 말았다.
김지은(영상 편집자)

너, 배가 너무 나왔어
나도 안다. 외모를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하는게 예의도 없고 유치해 보인다는 걸. 하지만 ‘자기 관리 잘하는 사람’이 이상형으로 굳어진지 꽤 오래라서, 이 편협한 기준을 포기하긴 싫었다. 서글서글하고 이해심 많았던 그 사람은 빈 말이 아니라 정말 좋은 사람임이 분명했다. ‘그래, 나는 또 얼마나 완벽한 인간일까’ 싶어서 몇 차례 데이트를 이어 나갔다. 하지만 나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다. 그 좋은 사람이 내 얘기를 경청할 때 배 위에 손을 올려 놓는 모습이 조개 까먹는 보노보노 같아서 연인 관계로 발전할 수 없겠다고 판단했다. “정말 잘해주셨는데 너무 죄송해요. 꼭 좋은 사람 만나세요.” 어떻게 보면 내 진심이긴 했다.
김예진(마케터)

너, 완전 낭만이 없어
음악에 대한 모든 취향은 존중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음원차트 TOP 100을 즐겨듣든, 굳이 우회해서 스포티파이로 힙한 음악을 즐겨듣든, 그야말로 개인의 취향이니까. 하지만 음악을 대하는 태도는 ‘개취’일 순 없다. 취향 보다 존중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이렇게 어렵게 말하고 있는 건, 소개팅으로 만나게 된 그 사람과 홍대 데이트를 하던 날, 버스킹을 하는 젊은이들을 보며 “잘 안 될 거 같은데, 다른 일 찾아보는게 낫지 않을까요?”라고 웃으면서 말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전에 저 버스킹을 해봤던 뮤지션 지망생이었기에 그런 차가운 말 한 마디에서 거리감을 확 느꼈다. 아니 좀 망하면 어떤가. 저렇게 젊은데. “우리는 잘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했지만 사실 “너는 낭만이 없어”라고 말하고 싶었다.
유재승(회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