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 로빈슨의 블랙 코미디 | 지큐 코리아 (GQ Korea)

닉 로빈슨의 블랙 코미디

2019-06-04T14:20:53+00:00 |interview|

코엔 형제와 로드 트립, 하루키를 좋아하는 닉 로빈슨은 블랙 코미디를 보며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웃는 법을 배웠다. 그는 거기에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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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소개에 ‘배우, 여행자, 구두쇠’라고 되어 있던데, 왜 구두쇠인가요? 제가 지난 2년간 쓴 트윗의 양을 보면 왜 구두쇠인지 알 수 있어요. 하하하. 제겐 SNS에 대한 양가적 감정이 있어요. 특히 트위터엔 좀 거리를 두는 편이에요.

요즘 세대답지 않게 SNS를 잘 하지 않는 이유가 있나요? SNS에 대해서는 좋기도, 싫기도 해요. 아마 나 같은 사람이 많겠죠. SNS는 놀랍고, 아름답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변화의 힘이지만, 어떨 때는 분열과 증오로 가득해요. 그래서 전 SNS에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편이에요.

독립영화 <더 킹 오브 서머>로 영화 데뷔 후, 대형 블록버스터 영화 <쥬라기 월드>에서 주연을 맡아 얼굴을 알렸어요. 그런데 그 후로는 블록버스터에 치중하기보단 <러브, 사이먼>처럼 선댄스 영화제가 좋아할 법한 독립영화 위주의 행보를 보였죠.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출연작을 선택할 때, 제작 규모나 예산은 제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요. 단지 그 작품이 어떤 이야기인지, 시의성이 있는지 등, 제가 전달할 이야기의 내용이 유일한 기준이죠. 제 관심을 끄는 작품이 있다면, 그게 독립영화든 무엇이든 하려고 시도해보곤 해요.

언제부터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음, 생각해보니 머릿속에 전구가 켜지듯 ‘난 배우가 돼야겠다’고 불현듯 깨달음을 얻은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시애틀의 극장에서 연기를 시작했는데, 그냥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어요. 연기를 하겠다고 의식적으로 결정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할까요. 제 안에 있는 창의성을 표출하는 한 방법으로서의 연기를 즐겼을 뿐이죠.

그래도 연기에 특별한 즐거움이 있었기에 계속 해나간 거겠죠? 연기를 하면 어른 대접을 받았고, 가상의 세계가 진짜인 척하면서 등장인물 속으로 탈출할 수 있었으니까요. 비유적으로가 아니라, 실제로 그건 일종의 탈출이었죠. 모든 게 자연스러웠고,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요. 나이가 들면서 기회가 계속 찾아왔고 저도 계속 이 길을 걸었어요. 어떻게 여기까지 왔다고 딱 잘라 말할 순 없지만, 이렇게 됐다는 게 새삼 기쁘게 느껴지네요.

어렸을 땐 어떤 아이였나요? 돌이켜보면, 어릴 때 저는 확실히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였어요. 야생에서의 생존을 다룬 영 어덜트 소설인 게리 폴슨의 <손도끼> 시리즈 같은 소설도 많이 읽었고요. 그게 자연과 탐험에 대한 저의 애정에 영향을 끼친 것 같아요. 어떤 상황이건, 혹은 어떤 방식이건 전 다른 세계로의 탈출을 좋아해요. 그래서 배우가 됐겠죠.

당신에겐 두 명의 친동생과 두 명의 이복동생이 있다고 들었어요. 꽤나 복닥복닥한 환경에서 자랐을 것 같은데요. 맞아요. 꽤 붐비고 재미있는 가정 환경이었죠. 늘 약간의 흥분이 섞여 있었고, 항상 자연스럽게 일이 흘러가곤 했어요. 그런 환경에서 자라면 독립심도 커져요. 서로 다른 생각과 욕망을 지닌 사람 여럿과 함께 살다 보면, 자기 일은 온전히 스스로 해결하는 법을 배워야 하거든요.

삶에서 가장 방황한 적은 언제인가요? 문자 그대로 말하자면, 몇 해 전 여름에 몇 개국을 돌면서 배낭여행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야말로 가장 방황한 시기였죠. 하하하. 오늘 밤은 어디서 잘지, 가다 보면 어떤 나라에 도착할지 미리 결정할 수 없다는 게 재미있었어요. 모든 게 즉흥적이었으니까.

그럼 의미로서의 방황을 얘기하자면요? 음, 정신적으로 가장 방황했던 때는 10대 때, 그러니까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이었죠. 정말 배우가 되고 싶은지 그때까지도 확신이 부족했어요. 여러 가지 다양한 것을 시도하고, 연기와 상관없는 내 안의 다양한 면을 탐색해보고 싶었죠. 그 시절의 고민을 지금까지도 어떤 면으론 계속하고, 또 한편으로는 극복하면서 나아가는 중인 것 같아요.

어떤 영화 좋아해요? 블랙 코미디요. 블랙 코미디를 보면 비극적 상황에서 웃을 수 있는데, 이 능력을 가지면 살면서 꽤 유용하죠. 그래서,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전 블랙 코미디가 희망적인 장르라고 생각해요. 블랙 코미디가 삶을 보는 관점이 좋죠. 코엔 형제는 그런 관점을 보여주는 대가예요. <블러드 심플>, <파고>, <위대한 레보스키>…. <파고>는 블랙 코미디가 무엇인지, 혹은 어떤 게 좋은 블랙 코미디인지를 보여주는 최고의 사례죠. 다른 감독들을 꼽자면 데이비드 핀처를 매우 좋아하고, 짐 자무쉬도 좋아해요. 마틴 스콜세지, 브라이언 드 팔마 등 거장 감독들을 아주 존경하고 경애해요. 그리고 이젠 코엔 형제도 이들의 반열에 들었다고 생각해요!

한국 영화는 어때요? 어쩐지 좋아할 것 같단 생각이 드는데. 맞아요. 한국 영화에도 관심이 많아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는 정말 말도 안 되게 좋은 작품이었죠. <올드보이>의 촬영감독이었던 정정훈 감독도 존경해요. 봉준호 감독의 <옥자>도 좋았고요.

작가 하루키를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무라카미 하루키는 위대한 작가죠. 그에겐 남들과는 다른 굉장히 흥미로운 특질들이 있고, 그건 완벽하게 자기만의 것이에요. 고유한 스타일이 있죠. 전 그의 책 중에서 <스푸트니크의 연인>을 가장 좋아해요.

인스타그램에 자주 업데이트를 하진 않지만, 몇 안 되는 사진들 속에서 로드바이크를 타고 캘리포니아 유카 밸리의 사막을 달리는 포스팅들을 봤어요. 로드 트립 좋아해요? 네. 로드 트립을 정말 좋아해요. 이것저것 더 신경 써야 하는 비행기 여행과 달리 절차가 없고, 즉각적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죠. 로드 트립은 말 그대로 내킬 때 바로 출발하는 게 가능해요. 하늘이 아닌 지면 높이에서 미국을 보는 것도, 목적지가 아닌 이런저런 장소에서 멈춰 흥미로운 것들을 탐색할 수 있는 것도 좋아요.

주로 어딜 다녔어요? 미 서부 해안을 많이 달렸어요. 북쪽으로는 오리건주까지 가봤고, 워싱턴주, 애리조나주, 유타주, 콜로라도주까지 가봤네요. 하지만 아직 미국 횡단은 못 해봐서 언젠가 해보고 싶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로드 트립을 두 개 꼽자면, 먼저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솔턴호의 ‘구원의 산’이라는 곳이 특히 좋았어요. 신에게 바치는 총천연색 기념물처럼 생겼는데, 어떤 예술가가 만든 설치미술 작품이죠. 흥미로웠어요. 작년 여름 콜로라도주 베일에서 시작해 유타주로 들어가 모뉴먼트 밸리를 지나 모아브까지 달렸던 때도 기억에 남네요. 그때도 중간 중간 많이 멈춰 서곤 했죠. 그런 기억들이 목적지에 도착한 성취감 못지않게 즐거운 추억이 됐어요.

지금 가보고 싶은 곳은 어딘가요? 한국에 가고 싶어요. 전 새로운 곳을 탐험하는 걸 좋아하는데, 한국엔 한 번도 가본 적 없거든요.

가보지 못한 낯선 곳이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시간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사람에겐 낙관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전에 “밀레니얼 세대가 정치적으로 무관심하다고들 하지만, 그들에겐 오히려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한 인터뷰를 봤어요. 당신이 속한 밀레니얼 세대가 가진 가장 큰 힘은 뭘까요? 첫째, 그들의 수. 둘째, 기술적 지식과 감각. 밀레니얼 세대는 부모나 조부모 세대보다 더 진보적이며 미래 지향적으로 사고하죠.

롤 모델이 있나요? 전 우리 세대에게 꼭 롤 모델이 있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여러 측면에 각각 다른 점으로 배울 사람들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요.

닉 로빈슨은 뭘 믿나요? 전 그리 종교적인 사람은 아녜요. 하하. 하지만 제가 신념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고 싶은 사회 문제는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투표권 행사와 유권자 확대고, 다른 하나는 총기규제법이에요. SNS를 잘 하진 않지만, 그 두 가지에 대해서는 자주 포스팅을 하곤 하죠. 그리고 또 하나, 실수를 통해 배우는 것들의 가치를 믿어요.

예전 한 인터뷰에서 “자신을 잘 알수록, 다른 사람들에게 빠져들기가 더 쉽다”고 했어요. 인상적이더군요. 스스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다른 사람에게서 자기 자신이 겪거나 지니고 있는 것들을 알아보는 눈도 발달하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이 겪는 감정적 문제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거죠. 전 그런 감식안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신 아닌 누군가를 연기하는 배우로서 남을 이해한다는 것, 자신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이건 사실 연기뿐만이 아니라, 어디에서나 적용되는 것 같아요. 물론 “난 이제 나 자신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은 절대 오지 않을 거예요.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조금씩 더 알아가는 과정에 있을 뿐인 거죠. 사람은 계속 바뀌는 존재니까요. 자기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선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해요.

차기작은 뭔가요? <섀도우 인 더 클라우드>라는 영화에 출연할 예정이에요. 로잔느 리앙 감독의 제 2차 세계 대전 배경 SF 드라마인데, 흥미로운 소재라 아주 기대하고 있어요.

다독가이자 영화 애호가로서, 좋아하는 대사 하나를 꼽는다면요? 흠, <위대한 레보스키>의 이 대사가 떠오르네요. “그 카펫이 인테리어의 완성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