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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셉트 카를 보고 쓴 4개의 단편

2019.11.26GQ

2019년 공개된 콘셉트 카에서 시작된 4개의 단편. 주어진 단서는 이름과 디자인뿐이었다.

아멧이 이 행성을 구매한 것은 어린 왕자 때문이다. 어린 왕자가 소행성에서 해가 지는 장면을 마흔세 번이나 봤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의 조그만 별에서는 의자만 몇 발짝 뒤로 물려놓아도 노을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주거가 가능한 그런 작은 행성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아멧은 비교적 크기가 작은 행성을 구매했다. B612라는 이름은 당연히 다른 별의 이름이었고, 과거 지구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도시의 이름을 빌려 즈루나가르라고 이름을 붙였다. 즈루나가르는 아멧의 직장이자 집이다. 이 행성은 95퍼센트가 황무지이고 5퍼센트는 인공 바다다. 아멧의 직업은 관광업체 사장이자 운전수다. 끊임없이 차를 달리면서, 관광객에게 계속 노을을 보여주는 것이 그의 생업이다. 그의 택시는 70년 전에 단종된 ‘아우디 AI: 트레일 콰트로’다. 직업 정신이 투철해 승객의 짐을 싣기 위한 캐리어도 차 위에 설치했다. 차체는 높고, 어디든 갈 수 있을 것처럼 타이어가 크다. 마치 100년 전까지 쓰였던 행성 탐사선처럼. 이 골동품을 사용하는 이유는 단순히 황야를 달려야 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탐사선에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넓고, 거대한 파노라마 선루프 때문이다. 고객들에게 노을을 보여줘야 하니까. 고객, 고객들. 벌써 한 달째 예약이 없다. 다음 달도 예약이 없다. 작지만 혼자 살기에는 커다란 이 행성에 아멧은 자신의 은퇴 자금을 모두 때려 박았다. 그러니까 손님이 있든 없든, 아멧은 즈루나가르를 떠나지 못한다. 95퍼센트가 황무지이고 5퍼센트는 인공 바다인 이 행성을. 자동차에 창이 많이 뚫려 있으면 밖을 구경하기 좋지. 반대로 안을 구경당하기 좋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 즈루나가르에서는 노을만이, 황무지만이, 어둠만이 차 안을 들여다볼 뿐이다. 아무도 태우지 않고 도로도 나 있지 않은 이 샛노란 행성을 마흔세 번이나 일주한 날. 그는 선루프를 닫지 않고, 일정한 속도로 끊임없이 밤을 뒤쫓았다. 심연은 확실히 사람을 들여다본다. 아멧은 이대로 손님이 쭉 없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정복당한 세상에서, 아무도 정복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자신의 외로움뿐인 것 같았다. 아멧은 외로움을 좋아한다. 글 / 김승일(시인)

AUDI AI: TRAIL QUATTRO
아우디는 올해 오프로더의 미래를 제시했다. 전기 모터 4개와 무거운 배터리 팩을 장착하고도 알루미늄과 카본 파이버 등을 혼합한 소재로 차체를 제작해 1750킬로그램밖에 안 된다. 하부에 배치된 배터리가 장애물에 닿지 않도록 최저 지상고를 34센티미터까지 높였으며, 헬리콥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구조로 사각지대를 최소화했다.

중고 트럭에서 처음 만난 드라이버는 꽤 젊었다. 그리고 혼자였다. 그는 조용한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또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아닌 듯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드라이버는 영토 외곽 지역을 오가며 알 수 없는 물건을 실어 날랐다. 나중에 알았지만 드라이버가 태어난 지역은 한때 독립 국가였다. 옆 나라와 오랫동안 대치하다가 지금은 흡수된 상태다. 하지만 그의 고향에선 개발경제로의 회귀가 본격화되었고, 지하경제도 활성화됐다. 드라이버도 분위기를 틈타 나름의 경제 활동을 했다. 그는 “사라진 체제의 잔재는 영속적인 가치를 갖는다”라고 말했다. 체제 찬양을 위한 조형물, 하다못해 포스터 선전물까지. 그는 구체제의 흔적을 전국의 거래처에 풀어놓았다. 한번은 어디서 찾았는지 ‘m3.0’이라는 차량용 OS를 가져와 내가 있는 플랫폼에 시험 삼아 설치했다. 그러나 도무지 코드가 맞지 않아 금세 에러가 발생했다. 하마터면 내가 먼저 지워질 뻔했다. 호환되지 않는 OS를 만나면 속수무책이다. AI도 결국 프로그래밍화된 세계 속에서만 기능이 온전히 발휘되는 존재다. 요즘 드라이버는 조금 달라졌다. 가정이라는 체계와 기준에 맞춰 살고 있다. 아이가 태어난 후론 아예 외곽 쪽으론 가지 않는다. 적재 물량과 운행 거리가 바뀌자 자연스레 머신도 바뀌었다. 아니, 아이와 가족을 위한 구매라고 보는 게 더 적합할 듯하다. 드라이버는 최근 ‘45’라는 유틸리티 세단으로 교체했고, 나 역시 새로운 머신으로 옮겨졌다. 스캔한 데이터에 따르면 이전 트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볍다. 미끈한 유선형 보디는 다소 차가운 인상이다. 레이몽 로위가 유선형에 지친 나머지 ‘각’을 활용하기 시작했다면 나올 법한 모양이랄까? 특히 20세기에 유행했던 엔진 소리를 재현한 사운드 모드는 드라이버가 꽤나 마음에 들어 하는 듯하다. 그런데 오늘 국경 인근의 호숫가로 경로가 설정됐다. 가족이 생긴 후론 한 번도 향한 적 없는 곳이다. 그는 아내에게 다음 날 정오에 발송될 예약 메시지를 남겼다. “이 문자를 받으면 아이와 함께 바로 Y-71 구역으로 가시오.” 오래 머물 예정인가? 평소 싣지 않던 빈 박스 몇 개가 눈에 띄었다. 뭐지? 글 / 김기문(디자인 스튜디오 mykc 대표)

HYUNDAI EV CONCEPT 45
현대 자동차의 역사적인 모델 포니를 되살린 모델. 앞으로 현대가 사용할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을 통해 제작했다. 고정된 헤드램프나 테일램프 없이 ‘키네틱 큐브 램프’라고 부르는 조명 장치가 ‘픽셀’처럼 불을 밝힌다. 아웃사이드 미러가 사라진 대신 주행을 시작하면 차체에 감춰져 있던 카메라가 나와 후방 상황을 비춘다.

방금 R 호텔의 재즈 클럽 공연을 마친 J는 ‘비전 메르세데스 심플렉스’에 악기를 실었다. 그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차를 타는 이유는 재즈와 이만큼 호응하는 차도 없다고 생각해서다. 밤 열한 시의 차가운 밤 공기를 찔러대듯 그는 오디오의 볼륨을 높였다. 찰스 밍거스의 ‘Pithecanthropus Erectus’가 흘러나왔다. 외부의 소음이 차단되지 않는 구조 덕분에 음악은 감상이 아닌 환경에 가깝다. 절대 연주하지 않는 음악이지만, J는 항상 차에서 이 앨범을 틀어두곤 한다. J에겐 일종의 의식과도 같다. 가끔은 시끄러운 거리의 소음에 묻혀 들리지도 않는다. 결코 적지 않은 지지자를 거느린 J지만, 연주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은 외롭기만 하다. 공연 말미에 박수를 보내는 열댓 명 중 그의 음악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공감해주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은 회의감으로 바뀐 지 오래다. 뜨거운 찬사와 차가운 무관심 사이를 오랜 시간 반복 횡단해온 그는 이미 사람들의 인사와 공연장의 공기에 무감각해졌다. 공연이 끝나고 그에게 거의 유일한 위로를 건네는 이 앨범은 도시의 밤을 흑백으로 칠해버린다. 이젠 죽어버린 모던 재즈를 위한 장송곡이라고나 할까? 밤거리의 비정형적인 소음을 닮은 이 집단 즉흥 연주는 악보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과 의식의 표현 양식이지만, 이제는 사어에 가까운 유물이 되어버렸다. 교차로의 신호가 바뀌고 다시 한번 차가운 바람이 귀를 스친다. 왜 재즈가 죽었는가? 감정과 표현의 주체가 더 이상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가 재즈를 죽였는가? 피상적이고 천박한, 허울뿐인 음악들과 그것을 좇는 사람들이다. 백만 가지 이유가 떠오르는 순간 다시 멈춰버린 생각의 굴레에서 빠져나오듯 액셀을 밟는다. 듣기 싫은 유행가가 울려 퍼지고 길거리에 붙어 있는 싸구려 음악 영화의 포스터를 보면서 J는 다시 한번 늙은 한숨을 쉰다. 흑백 풍경 사이로 빨간 불이 보이고 다시 한번 차는 멈췄다. 뒤차가 유난히 빵빵거리고 저 멀리 교통경찰의 휘슬 소리가 거리를 가로지른다. 아무렇게나 두드려대는 피아노에서 나는 불협화음과 잔뜩 늘어뜨린 현을 신경질적으로 긁는 듯한 파열음, 나뒹구는 쓰레기봉투와 쓰러진 병들이 나뒹구는 소리. 저 멀리 술집에서 들려오는 유행가에 비하면 차라리 듣기 싫지 않은 앙상블이다. 그것이 거리의 소음이 아니라 앨범의 두 번째 트랙 ‘A Foggy Day’가 흘러나오는 순간이라는 걸 깨달은 것은 다음 적신호를 보고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을 때였다. 글 / DJ 소울스케이프

VISION MERCEDES SIMPLEX
메르세데스-벤츠의 2인승 콘셉트 카. 1901년 등장한 ‘메르세데스 35PS’의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엔진 대신 전기 모터를 심었다. 35PS는 최초의 현대적인 자동차로 평가받는다. 이전까진 마차에 단순히 엔진을 올린 형태였지만, 35PS 이후로 엔진룸과 승차 공간이 명확하게 구분되기 시작했다. 실제 양산 계획은 없다.

“갈아엎고, 다시 하자.” 꼭 마지막에 그런다. 방향이 잘못된 것 같으면 처음부터 말을 하지. 완성까지 1퍼센트 남겨놓은 상황에서 매번 이러는 처사에 이젠 질려버렸다. 난 작업 중이던 아이맥을 툭 꺼버리면서 말했다. “현민아, 개봉일이 다다음 주야. 난 더 못해” 그러곤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 그를 뒤로한 채 스튜디오를 나섰다. 공기도 차고, 마음도 차다. 운전은 4일 만이다. 4일 동안 집에 가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나비처럼 반짝이는 헤드램프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요한 요한슨의 ‘Flight From The City’를 틀고, 박자에 맞춰 심호흡을 했다. 마음이 소란할 때마다 듣는 곡이다. 섬세함의 극치. 19_19의 군더더기 없는 구조가 아니었다면 풍절음 때문에 차에선 절대 들을 수 없는 곡이다. 혼자 누릴 수 있는 유일하고도 중요한 특권이다. 광폭 타이어는 부드럽게 도로에 접지했고, 차체는 안정적으로 깔리며 달렸다. 또한 앞으로 나아갈 때, 공기의 저항을 자연스레 뒤로 흘리는 그 묘한 느낌을 나는 무척이나 사랑한다. 하는 일도 그렇게 될 것만 같아서 말이다. 나는 김민혁이다. 김현민과는 미국 버클리 음대에서 만났다. 우린 수많은 한국 유학생 사이에서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친해졌고, 영화 음악가라는 꿈이 같았기에 더 가까워졌다. 다만 스타일은 달랐다. 나는 단순한 악기 구성으로 공간감을 살려 감정선을 묵직하게 파고들길 좋아했고, 현민은 화려한 스트링 편곡을 통해 감정선을 밖으로 드러내길 좋아했다. 학생 때 “나는 요한 요한슨이 될 테니까 너는 한스 짐머가 되라”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 차이는 일뿐만 아니라 일상 취향에서도 드러났다. 각자 소유한 차를 비교하면 헛웃음이 날 정도다. <분노의 질주> 속 빈 디젤과 폴 워커처럼 말이다. 어쨌든 우린 7년 전에 영화음악 듀오 ‘플로우엠’을 결성했고, 이제 제법 이름이 알려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 진행 중인 작업은 규모가 꽤 있는 한국형 SF 영화다. 이 작품은 나와 현민의 인생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 분명하다. 아, 길을 돌려 스튜디오로 다시 돌아가야겠다. 갈아엎어보자. 신시사이저보다는 현악기를 더 쓰되, 공간은 비워두자고 해야겠다. 글 / 김홍범 (KBS 라디오 PD)

CITROËN 19_19 CONCEPT
시트로엥이 브랜드 출범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전기차. 앞으로 100년간 시트로엥의 디자인이 향할 방향을 설명하는 모델이다. 자가 학습이 가능한 인공지능이 실려 완전 자율 주행이 현실화될 미래를 염두에 두고 설계했다. 20분 만에 완전히 충전할 수 있는 100kWh 배터리로 최대 800킬로미터까지 달리고, 최고출력은 456마력이다.

    에디터
    이재현
    사진
    Courtesy of Audi, Hyundai, Mercedes-Benz, Citroë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