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IT 기업들의 자동차 시장 진출과 미래는?

2021.03.18GQ

애플, 구글만이 아니다. 유수의 IT 기업들이 자동차 시장 진출을 노리는 분위기다. 절묘한 타이밍일까? 확실한 명분은 있지만 충분한 승산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얼마 전 애플이 현대자동차와 협의 중이라는 소식이 들렸다. 소위 ‘애플카’라고 불리는 미래 자율주행 자동차가 수면 아래에서 조용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정확한 실체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 그런데도 주식 시장은 춤췄고, 다양한 추측과 해설 보도가 연일 쏟아졌다. 한쪽에선 협상이 결렬됐다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논의가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누구의 말이 맞든지 간에 현시점에선 결과를 예상할 수 없다. 하지만 자동차 시장의 현 상황을 이해하고 본다면 애플과 현대자동차의 협업은 결코 긍정적으로만 발전하기는 어렵다. 흐름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포인트는 두 가지다. 첫째, 애플 같은 IT 기반 회사가 자동차 시장에 굳이 진입하려는 이유. 둘째, 애플이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나 미국 자동차 회사가 아니라 현대자동차와 협력을 택한 배경이다. 둘은 전혀 다른 내용이지만, 본질에 근접할수록 공통점이 존재한다. IT 회사와 자동차 회사의 경계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래 자동차는 어떤 관점에서 디자인될까? 완벽한 자율주행이 가능해지면서 자동차가 공유경제에 속하는 시대가 온다면 말이다. 나는 지난 몇 년간 같은 질문을 전 세계 여러 자동차 기술자에게 던졌다. 아우디 디자인 총괄 마크 리히테는 이렇게 답했다. “자율주행이 가능한 미래 자동차는 이동성을 위한 존재가 아닙니다. 사용자의 목적에 부합하게 될 겁니다. 장거리 이동이 목적이라면 실내에 푹신한 소파나 침대가 달릴 수도 있지요. 퇴근길에 스트레스를 풀고 싶을 때는 노래방으로 꾸민 자동차를 부르면 됩니다. 시내 주행용 자동차와 주말에 레저 용도로 쓰는 자동차는 전혀 다른 구성으로 만들어지겠죠.”

그의 말을 풀이해보면 기술은 일정 수준 이상에 도달하면 방향성이 달라진다. 우리가 혁신이라 부르는 단계에서는 계단을 오르듯이 기술이 가진 목적 자체가 변한다. 1백30여 년 전, 칼 프리드리히 벤츠가 내연기관으로 달리는 자동차를 만들었을 때가 그랬다. 2007년, 스티브 잡스가 MP3 플레이어와 전화기, 인터넷이 가능한 소형 디바이스를 합쳐 스마트폰을 만들었을 때도 그랬다. 증기 기관차가 개인형 이동 장비로, 전화기가 초소형 만능 컴퓨터로 진화하는 순간이었다. 이런 거대한 변화가 지금도 사방에서 일어나고 있다. 초연결, 초지능, 초융합 같은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이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 자동차를 발전시킨다.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길목에서 IT 업체가 자동차 시장에 눈을 돌린다. 자율주행 자동차에 인공지능이 탑재되고, 인공지능이 초연결 인터넷 네트워크로 구동된다. 즉, 두 영역의 경계가 무너질 뿐만 아니라 빠르게 융합되고 있다.

자동차 산업의 경제 규모는 연간 2천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생필품 산업 중에서는 가장 비싼 재화이면서 단일 산업으로 비교할 대상이 없을 정도다. 당연히 많은 기업이 자동차 시장에 뛰어들고 싶어 한다. 하지만 높은 진입 장벽을 해결해야 한다. 인류가 1백30년 동안 발전시켜온 내연기관 기술과 부품 제조 공정을 단번에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평균적으로 자동차에는 3만 개 이상의 부품이 사용된다. 그중 가장 정교한 기술이 필요한 것은 엔진이다. 엔진은 자동차 기술의 정점이자, 전통적인 자동차 회사만이 가질 수 있는 무기다. 그런데 지금 자동차 시장의 분위기는 그 무기의 사용을 줄이는 데 초점을 둔다. 전기차라는 차세대 에너지 동력 기술과 친환경 정책이 기존 자동차 회사의 핵심 가치를 서서히 붕괴시킨다. 일정한 규모의 경제를 이룬 IT 회사들이 자동차 시장을 조금씩 넘볼 기회가 생기는 셈이다. 전기차가 본격화된 2010년 이후부터 구글이나 애플, 엔비디아, 아마존 같은 IT나 유통 기업들이 자동차 시장에 꾸준히 거론되는 이유다.

전기차에서 가장 중요한 배터리는 LG화학, 삼성SDI, AESC 같은 전문 기업이 만든다. 그 배터리를 공급받으면 누구든 자동차를 만드는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 미국의 전기차 회사 테슬라도 같은 접근법을 썼다. 혁신이라 불리는 차이점이라면, 남들보다 15년이나 빨랐다는 것이다. 테슬라는 전통적인 자동차 회사가 대부분의 부품을 위탁 생산 후 공급받는다는 점을 이용했다. 그래서 자동차의 디자인과 전기 제어 소프트웨어 능력만 갖추면 제품이 뚝딱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착각)했다. 실제로 초창기 시절 테슬라는 전기차의 핵심인 배터리와 모터 기술도 보유하지 않았다. 일정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야만 다른 부품 업체와 협력할 수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그러다 보니 차를 만들수록 적자였다. 납품 받은 부품으로 자동차를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피부로 깨달았다. 그래서 뒤늦게 거대한 공장을 지어 자체적인 기술과 생산 라인을 구축했다. 그렇게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 공법을 익혔다. 여기서부터 펼쳐질 이야기는 안 봐도 뻔하다. 결과물의 수준이 떨어질 수밖에. 단순 부품으로 채운 실내는 텅 빈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신생 공장에서 만든 조립의 완성도는 부족했다. 그래도 테슬라는 우여곡절 끝에 살아남았다. 2006년부터 14년간 적자 행진을 이어온 후 얼마 전에 첫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테슬라의 미래는 아직 장담할 수 없다. 자율주행이나 전기차 관련 신기술을 개발하는 동시에 제품을 개선해야 하는 입장이어서 상대적으로 수익이 적을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이 현재 자동차 시장에서 가장 돋보이는 존재로 테슬라를 꼽는다. 테슬라는 신생 자동차 회사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동시에 시장의 높은 진입 장벽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 들여다보면 전통적인 자동차 회사의 입지는 달라진 것이 없다. 메르세데스-벤츠나 BMW, 포르쉐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는 물론이고 폭스바겐, 현대자동차, 토요타 같은 대중차 회사들도 이미 오래전부터 전기차 관련 솔루션을 준비해오고 있다. 실제로 그 결과물이 몇 년 전부터 시장에 속속 등장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당장 전기차 판매와 생산 부분에서 상위를 차지하는 브랜드 대부분은 전통적인 자동차 업체다. 이들은 지금도 자율주행과 전기차 기술 개발에 막대한 자금과 에너지를 투자한다. 동시에 내연기관 자동차를 비롯해 다른 수익 기반을 갖춘 상황이어서 상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

이런 모든 상황을 고려할 때 애플을 비롯한 글로벌 IT 회사가 자동차 시장에서 승부할 수 있는 영역은 상당히 좁고, 이미 정해져 있다. 당장 완성형 자동차를 만들기보다는 미래에 자동차의 핵심 가치로 꼽힐 자율주행 기술 부분을 선점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러기 위해선 아이러니하게도 미래 자동차 시장을 계획하는 기존 자동차 회사와 전략적 협업이 필요하다. 하지만 반대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자동차 회사는 IT 회사와 전략적 제휴로 얻을 것이 많지 않다. 애플이 그 많은 자동차 회사와 협상하지 못한 채 현대자동차의 문을 두드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반대로 새로운 전기차 브랜드를 출시하고 미래 자동차 시장을 선점한 능력이 있는 현대자동차 입장에선 애플과 협력할 이유가 없다.

전통적인 자동차 회사의 방어, 시장에 새롭게 진입하고자 하는 IT 회사의 공격. 어떤 쪽이 앞으로 자동차 시장에서 더 많은 점유율을 가져갈 수 있을지 지금으로써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자동차 시장의 판도는 언젠간 바뀐다. 그때가 되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생태계가 펼쳐질 것이다.

    에디터
    글 / 김태영(자동차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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