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의 큰손으로 떠오른 밀레니얼 세대 | 지큐 코리아 (GQ Korea)

미술계의 큰손으로 떠오른 밀레니얼 세대

2021-05-21T12:06:15+00:00 |culture|

요즘 젊은이들이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품목은 한정판 나이키 운동화, 넷플릭스 정기 구독권만이 아니다. 밀레니얼 세대가 미술계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Portrait of an Artist (Pool with Two Figures) II (Inspired by David Hockney), 2020, MADSAKI

“제가 미술품 경매 업계에 처음 발을 들인 10여 년 전쯤, 다들 하던 얘기가 있었어요. 미술 시장이 커지려면 미술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자본을 가지고 들어와야 한다고. 아트 컬렉터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사람들이 작품을 사야 한다는 이야기였죠. 그런데 저도 그런 일들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일어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아트 컨설팅 컴퍼니 케이아티스츠 변지애 대표의 말이다. 그는 최근 가장 각광받는 팝 아티스트 매드사키 Madsaki의 한정판 프린트를 구하기 위해 어렵사리 약속을 잡고 찾아간 자리에서 백팩을 둘러메고 나온 앳된 얼굴의 20대 대학생을 만났다. “어쩌다 이걸 사게 되었냐고 물어봤더니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서 재미로 샀다더군요. 그런데 그게 불과 1~2년 만에 열 배 가까이 올라버린 거죠.”

다른 모든 분야가 그러하듯 코로나19는 점진적으로 일어나고 있던 미술 시장의 변화를 누구도 생각지 못한 빠르기로 가속시켰다. 세계 최대 아트 페어인 아트 바젤과 UBS 보험사가 지난 3월 발표한 ‘세계 미술 시장 보고서 The Global Art Market Report’ 2021년판에 따르면, 전 세계적인 팬데믹으로 작년 미술 시장의 거래량은 22퍼센트 감소했지만 온라인 판매는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비율로 따지면 전 세계 미술품의 25퍼센트 이상이 온라인을 통해 거래된 셈. 사상 최초로 온라인 거래가 갤러리에서 작품을 구매하는 비율(18퍼센트)을 넘어섰으며, 이러한 변화는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난 이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온라인을 통해 새로운 세대의 컬렉터들이 미술 작품 구매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개 갤러리는 그 크기나 규모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크고 무거운 대문을 밀고 들어가야 하는 공간이었다. 마치 아무나 들이지 않겠다는 명확하고 강렬한 의지를 물리적으로 구현한 것 같은 육중함. 주요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에서 작품 옆에 가격을 표시하는 일은 거의 없으며, 호기심을 견디지 못하고 가격을 물어본 다음엔 그 질문의 진의를 되묻는 듯한 갤러리 직원의 자못 우아한 시선을 견뎌내야 한다. 하지만 온라인과 모바일엔 무거운 대문도, 아래위로 훑어보는 갤러리 직원의 눈길도 없다. 작품마다 친절한 해설이 붙어 있고, 무엇보다 가격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과거 거래된 가격을 토대로 미래의 투자 가치 예측도 가능하다.

‘히스콕스 온라인 미술 거래 보고서 Hiscox Online Art Trade Report’ 2020년판에 따르면 온라인으로 미술품을 구매한 이유에 대해 응답자의 87퍼센트가 가격과 과거 거래 내역이 공개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 전 세계 아트 페어의 61퍼센트가 취소되었고, 나머지는 온라인으로 행사를 대체하거나 제한된 관람객만 입장할 수 있었다. 주요 갤러리들은 웹사이트에 VR 쇼룸 등 첨단 기술을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온라인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 맞춰 가격 등 미술품 구매와 관련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미술 & 공예 작품 거래 플랫폼인 아트시 artsy.net에선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주요 갤러리가 올려놓은 소속 작가의 작품과 거래 가격을 검색할 수 있다. 작가의 이름만 알면, 그의 작품을 어디서 어떻게 구입하는지 파악하는 건 이제 일도 아니다. 물론 ‘직구’도 가능하다.

미술 시장이 주요 거래 공간을 온라인으로 옮김에 따라 일어난 변화 중 하나는 앞서 소개한 매드사키의 예처럼 주요 작가가 제작한 한정판 프린트 가격의 수직 상승이다. 온라인으로 미술 작품을 구매하는 젊은 컬렉터의 80퍼센트 이상이 관심 있는 작가의 신작이나 새로운 작가에 대한 정보를 얻는 주된 통로로 인스타그램을 꼽았다.(히스콕스 온라인 미술 거래 보고서.) 미술 잡지에서 인터뷰나 작가론, 전시 리뷰를 찾아보던 예전과 달리 지금 세대 컬렉터는 인스타그램에서 작가의 작업실과 아트 인플루언서의 집 사진, 명품 브랜드의 컬래버레이션 제품 이미지 등을 통해 작가와 작품을 접한다. 좋아하는 작가를 팔로우하고, DM이나 댓글을 통해 직접 소통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유명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 작업을 활발하게 진행하는 작가들에게 컬렉터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최근 몇 년간 가장 빠른 속도로 가치가 오르고 있는 작가 중 한 명인 다니엘 아샴 Daniel Arsham은 디올과 포르쉐, 리모와 등 굵직한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을 거쳐 올해 NBA 구단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비주얼 전략 총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었다. 코로나19 이후의 아티스트는 아트 디렉터이자 브랜드 앰배서더, 프로덕트 디자이너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겸한다.

아티스트와 브랜드의 컬래버레이션 제품은 돈만 있으면 살 수 있지만, 여전히 주요 작가들의 기대작은 전속 갤러리 또는 딜러와 오랜 친분이 있는 극소수 컬렉터들에게 제작이 완료되기도 전에 팔린다. 작품과 제품 사이, 그 미묘한 경계에 예전엔 ‘판화’라 부르던 한정판 프린트가 자리한다. “모두에게 정보가 열려서 전에 비해 다양한 사람이 미술 작품을 구입하고 싶어 하지만 주목받는 작가의 수는 여전히 소수예요. 그러다 보니 속도가 중요해졌죠. 한정판 프린트를 사기 전에 직접 작품을 보고 싶다는 고객들에게 요즘엔 이렇게 말해요. ‘그럴 시간에 1백만원 올라요. 지금 사는 게 제일 싼 거예요.’” 변지애 대표는 개인적인 의견임을 전제하고 카우스 KAWS와 다니엘 아샴, 무라카미 타카시 Takashi Murakami 등 지금 가장 주목받는 작가들의 특징은 직접 보든 화면을 통해 보든 큰 차이가 없는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역시 미술 시장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온라인으로는 비교적 저렴한 신진 작가의 소품만 거래해온 관행도 코로나19와 함께 무너졌다. 유서 깊은 경매사 소더비가 작년 6월 사상 최초로 온라인을 통해 진행한 경매에서 영국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1981년 작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로부터 영감을 받은 세폭 재단화’는 무려 8천4백60만 달러(한화 약 1천14억원)에 낙찰되었다. 소더비와 세계 경매 시장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크리스티는 올 3월 디지털 파일 형태로 제작한 미술 작품을 암호화폐로 거래하는 NFT(Non-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한 토큰) 방식을 통해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 Beeple의 ‘에브리데이즈:첫 5000일’을 6천9백30만 달러(한화 약 7백85억원)에 거래를 성사시켰다. 이 경매를 통해 디지털 아트 애호가 외에 아무도 모르던 비플은 데이비드 호크니와 제프 쿤즈에 이어 생존 작가 중 세 번째로 비싼 가격에 작품을 판매한 작가가 되었다.

젊은 세대는 대개 ‘작품’이 우선이던, 또는 우선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던 이전 세대 컬렉터와 달리 투자와 수익을 통해 미술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한정판 스니커즈로 시작해 디자이너 가구와 자동차, 시계 등 럭셔리 구매와 리세일을 통해 수집의 즐거움을 알게 된 후 아트 컬렉션을 시작하는 젊은 컬렉터도 많다. 변지애 대표에게 매드사키의 한정판 프린트를 판매한 대학생은 그 돈을 주식에 투자할 거라고 말했다. 그렇게 더 많이 벌어서 뭘 하려는 걸까. “더 좋은 작품을 사겠다던데요?” 그렇다면 대체 좋은 작품이 뭐냐고 되묻지는 않았다. 새로운 세대의 컬렉터들은 취향과 안목, 그리고 투자를 애써 구분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