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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끝을 잡고

2021.08.29신기호

여름은 파란 새벽에 달아났다.

Audi S7 ― 토요일 밤의 열기가 식은 건 순간이었다. 무겁고 끈끈하던 공기는 며칠 사이 가볍고 선선하게 변했다. 조금 전까지 여름을 달리던 S7은 이제 그 계절 너머에 있다. 텅 빈 주차장에서 마주한 새 계절은 아직 침묵 중. 눈에 보이는 건 새 계절이 밤 사이 뱉어낸 파란색 날숨뿐이다. 시동을 끄고, 몰라보게 달라진 새벽 풍경을 감상한다. 차 안은 불 꺼진 거실처럼 안락하고 고요해서 꼭 단단한 청음실에 들어와 있는 것같이 잠잠하다. (스릴러 속 주인공이 들고 있는 손전등처럼) 이따금씩 주차장을 이리저리 휘젓는 방해꾼만 없으면 이 푸른빛 새벽은 그야말로 완벽한 갤러리가 됐을 텐데. 달도, 해도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려 창문을 전부 내린다. 두 팔 벌려 새 계절을 환영이라도 하듯이.

Volvo V90 ― 일정한 간격을 두고 떠 있는 가로등이 별자리처럼 길을 안내했다. 안내는 고가도로 아래에서 끝났다. 주소만 입력하면 척척 최적의 경로를 내놓는 똑똑한 내비게이션이 있지만, 가끔은 이런 생면부지의 길잡이를 따라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길이 끊긴 고가도로 아래, 거기에는 남은 여름이 있었다. 조금 전 고가도로를 시원하게 달릴 때만 해도 어영부영, 어떻게 보냈는지 모를 여름이 떠난 것 같아 아쉬웠는데, 다행히 여기 여름이 조금 남아 있다. 아직 음력으로는 7월이 지나지 않았다며 평소에 무심하던 음력의 시간으로 여름의 끝을 위안 삼는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혼란스러울 때는 지금 서 있는 길을 한번 따라가볼 일이다. 오늘처럼 뜻밖의 누군가를 만나게 될지도 모를 테니까.

Cadillac CT5 ― 해가 뜨는 시간은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해가 지는 시간은 분명 짧아지고 있다. 며칠 사이 이 시간 즈음 운전석 너머로 보이던 해가 이젠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여름밤 골목길을 가득 채우는 빗소리를 듣는 호사를 올여름에는 누리지 못했다. 어쩌면 팔팔한 여름에 휘둘리느라 여름을 놓쳤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때보다 여름이 자기 역할에 충실했던 올해, 너무 더운 탓에 여름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볼 여력이 없었다. 그리고 그사이 여름은 휙 달아났다. 동네 골목에서 쉽게 보이던 여름 화단은 모습을 감췄다. 벌 잡이에 동네 아이들이 못살게 굴던 호박꽃과 무궁화도 보이지 않는다. 언제 달라졌는지도 몰랐던 파랗게 식은 골목길을 천천히 돌아 나온다. 그 어느 때보다 여름이 그리운 저녁이다.

Kia EV6 ― EV6의 잠잠한 배터리는 새벽 거리를 깨우지 않는다. 혈관처럼 붉고 가는 테일 램프만 지나간 흔적을 남긴다. 그렇게 달리다 새 계절을 만났다. 그러다 어느 사이에는 차 안으로 차게 느껴지는 바람이 들어왔다. 계절이 변하면 사람도 변하니까. 여름엔 그토록 싫던 더위가 계절이 바뀌니 이제 아쉽다. 슬그머니 창문을 올리면서 꺼져 있는 에어컨 버튼을 낯설게 바라본다. 가로등과 가로등의 간격만큼 여름과 가을 사이에도 간격이 있다. 때가 되면 절로 찾아드는 계절은 이유도, 이해도 할 수 없는 조물주의 영역이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떠나는 여름을 아쉬워하기보다 설렘과 기대를 품고 새 계절을 맘껏 누리면 될 일이다. 푸르게 차오르는 여명을 기다리며 어제와는 사뭇 다른 계절의 기운을 만끽해본다.

    콘텐츠 에디터
    신기호
    포토그래퍼
    김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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