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의 또 다른 이름 '뉴포트 (Newport)' | 지큐 코리아 (GQ Korea)

유토피아의 또 다른 이름 ‘뉴포트 (Newport)’

2021-11-16T19:00:58+00:00 |travel|

핸들을 잡고 뉴포트로 향했다. 유토피아를 찾아서.

더 인 앳 뉴포트 랜치의 객실 열쇠.

“호황과 불황의 역사가 뒤섞인 곳이에요.“ 뉴포트 Newport의 호텔인 더 인 앳 뉴포트 랜치 The Inn At Newport Ranch에 상주하는 작가 오티스 브라운이 뉴포트라는 지역에 대해 운을 뗐다. 호텔 사유지 내 2천 에이커에 이르는 하이킹 트레일을 버기카를 타고 둘러보는 중이었다. 150년 전 베어낸 미국 삼나무 그루터기 사이를 지나자 안쪽이 파헤쳐진 나무가 여럿 보였다. 아마 흑곰이 파먹은 흔적일 것이다. 뉴포트의 기반은 임업과 어업, 대마(Cannabis, 마리화나) 재배업이다. 생태 관광이 새로운 사업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그건 지켜봐야 할 것 같다는 게 오티스의 의견이다. 우리는 호텔과 가까운 어느 집 주변도 잠시 구경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쓴 작가 존 그레이가 사는 집이라고 했다.
오늘날에는 포트 브래그 Fort Bragg라고도 알려진 멘도시노 Mendocino 해안가 북쪽에 자리한 뉴포트는 19세기 중반 조그마한 벌목 마을로 역사가 시작됐다. 수십 년 후 벌목꾼들이 마을을 떠나자 목장과 과수원이 빈자리를 채웠고, 그들이 마을을 떠나자 이번에는 속세에서 떨어진 뉴포트의 지리적 특성에 끌린 일군의 반체제 사상가들이 찾아왔다. 그러다 1941년, 캘리포니아 북부와 오래건 남부의 몇 개 카운티에 흩어져 있던 반체제 인사들이 뉴포트에 모여 자치 정부, 일명 ‘제퍼슨 Jefferson’ 수립을 시도했다가 실패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분리 독립의 꿈은 좌절됐으나 그러한 시도의 기운은 곳곳의 유토피아주의자와 대마초 경작자를 비롯해 대안적 삶을 실천하는 수많은 이를 뉴포트로 끌여들었다.
나의 친구 윈디 치엔과 함께 그녀가 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해 뉴포트까지 자동차로 여행하기로 했다. 뉴포트에 그 기운이 여전히 남아 있을까, 유토피아를 좇는 마음이다. 뉴포트의 목적지는 숙소로 잡은 더 인 앳 뉴포트 랜치. 2015년에 문 연 이곳은 맨해튼의 은행가였던 윌 잭슨의 손에서 시작되었다. 1980년대에 뉴포트 지역의 땅 1백 에이커를 매각한다는 <월 스트리트 저널> 기사를 보고 계산기를 두드리던 윌 잭슨은 맨해튼과 정반대편인 이곳의 땅을 사들였다. 당시 햄톤즈의 땅 1에이커 값과 비슷했다고 한다. 몇 년 후 인접 부지까지 추가로 구입한 윌 잭슨은 2015년에 이 호텔의 문을 열었다. 해안가 절벽 위에 자리한 오두막 같은 이 호텔의 모습이 내 눈에는 수십 수백 년 전 벌목꾼과 농부와 유토피아주의자의 집처럼 비쳤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뉴포트로 가기 위해 우리는 128번 고속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나아갔다. 출발한 지 2시간 반 정도 됐을 때 앤더슨 밸리 Anderson Valley를 통과했는데, 이 지역의 오랜 ‘고립’ 정신이 건재하다는 사실은 지역 신문인 <앤더슨 밸리 애드버타이저>의 1면을 장식한 표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미국의 마지막 신문”, “불만의 불길을 부채질한다”. 그렇지만 앤더슨 밸리는 신흥 와인 산지로 떠오르는 추세이기도 하다. 펑키하면서도 투박한 소규모 업체가 늘어나는 모습은 흡사 1970년대 나파 밸리나 1990년대 소노마 카운티를 보는 듯하다. 우리는 필로 Philo라는 자그마한 마을의 와이너리 골든아이 Goldeneye에서 쉬어가기로 했다. 우리 테이블을 담당한 폴라 비먼은 지난 12년 사이에 와인 테이스팅 룸을 두 배로 늘렸다고 말한다. 우리도 인기라는 피노 누아 테이스팅 세트를 주문했다. 그날 밤은 골든아이 바로 옆에 붙은 더 마드론스 The Madrones에서 자고 가기로 했다. 가정집을 지중해풍으로 리모델링한 곳이다.
마을에는 스파 시설이 딸린 마리화나 약제상도 있었다. 보헤미안 케미스트 The Bohemian Chemist는 내가 가본 그 어떤 마리화나 판매점과도 달랐다. 마리화나 판매점이라면 보통 옛날 느낌의 물담뱃대 가게 혹은 아예 애플 스토어처럼 꾸며놓기 마련인데 이곳은 완전히 새로웠다. 주인이 직접 헝가리의 아르데코풍 약국의 가구나 부품을 수입해 꾸몄다고 한다. 여정의 피로를 풀 심산으로 THC 함유 배스 밤을 샀다. 효과가 얼마나 훌륭하던지, 목욕을 마치고 나온 나는 안경을 쓴 채로 안경을 찾아 돌아다녔다.

다음 날, 필로 마을을 떠나는 길에 간단히 요기하고 출발할 겸 식당 더 비와일더드 피그 The Bewildered Pig에 들렀다. 자넬 위버와 그녀의 파트너인 다니엘 타운센드가 운영하는 이곳은 공방 스타일의 집 한쪽에 차린 레스토랑이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마침 주인 커플의 친구들과 이웃, 식자재 거래처 사람들까지 모인 참이었고, 우리는 그 길로 여섯 코스로 구성된 점심 식사에 초대받았다. 이날 우리가 만난 사람들은 말 그대로 앤더슨 밸리가 좋아서 정착한 이들이었다. 그들이 만약 편의성을 고려했다면 이곳에 살지 않았을 것이다. 식료품을 사려면 차로 45분이나 가야 하니까. 점심 메뉴는 껍질을 벗긴 송이버섯과 유자 샐러드, 베이비 아티초크 수프, 레몬그라스와 순무를 곁들인 삼겹살, 감칠맛 도는 피칸 쇼트브레드였다. 인생 최고의 식사 중 하나를 천천히 즐기며 어째서 다들 그렇게 앤더슨 밸리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우리는 다시 여행길에 올랐다. 삼나무 숲을 지나 해안으로 향했다. 바다가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알리듯 거품을 흩뿌리며 방파제에 부딪치는 파도가 보였다. “멘도시 방향으로 구부정하게 늘어선 저 바위들은 예이츠의 시 같네.” 윈디가 감상을 늘어놓는다. 우리는 잠시 소더비 부동산 회사에 들르기로 했다. 사무실이 있는 곳은 절벽을 낀 작은 마을이었는데, 나무로 지은 집들이 모여 있는 풍경이 캘리포니아보다는 매사추세츠 케이프 코드 Cape Cod에 더 가까운 분위기였다. 시장에 나온 매물도 적을뿐더러 대부분의 매물 가격대가 1백만 달러를 훌쩍 넘었다.
일탈의 꿈을 접고 다시 달려 드디어 목적지 더 인 앳 뉴포트 랜치에 도착했을 때, 나는 잠시 개인 별장에 온 듯한 착각을 누렸다. 해안가의 자그마한 목장 구조로 건축된 이 호텔은 나지막하지만 건물 사방으로 창문이 넉넉하게 나 있어 주변의 빼어난 경관을 그대로 흡수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호텔 동쪽으로 펼쳐진 황금빛 드넓은 언덕에는 소 떼가 보이고 그 너머로는 깊고 빽빽한 숲이 이어졌다. 이후에 호텔을 안내하는 오티스 브라운을 따라 숲을 둘러볼 때 평소 자주 보는 미국 삼나무뿐 아니라 보기 드문 캘리포니아 비자나무와 서양쐐기풀, 수영 Sorrel을 구경했다.
호텔 서쪽으로는 태평양이 펼쳐졌다. 브라운의 설명에 따르면 바다를 이동하며 이곳을 지나는 고래들이 절벽 바로 앞까지 헤엄쳐 오곤 하는데, 호텔과 얼마나 가까운지 그의 아내인 샐리는 “고래의 숨을 맡아본 적 있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아쉽게도 나는 고래의 숨결까지는 느껴보지 못했지만 절벽 아래 바다와 호텔이 무척 가깝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폭풍이 몰아칠 것 같으면 호텔 측은 투숙객과 직원에게 주의 공지를 하고, 그럼에도 모두 한데 모여 위스키를 홀짝이며 절벽 끄트머리에서 부서지는 파도를 지켜보는 게 호텔에서의 낙 중 하나라고 했다.
윈디는 천천히 그리고 넉넉히 이곳의 자연을 느끼고 싶다며 새벽같이 일어났다. 나는 방에서 바라보는 바다도 충분히 좋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나 아름다운지 눈물이 날 지경이라는 윈디의 조언을 따라 호텔 근처의 여러 벤치 중 하나에 앉아보기로 했다. 벤치들은 어떤 특정 바위를 바라보거나 각별히 멋있게 부서지는 파도를 구경하기에 알맞게 적재적소에 배치된 듯했다. 그중 하나에 자리를 잡고 구름이 뒤덮인 하늘 사이로 얼굴을 드러내 컴컴한 바다에 햇살을 흩뿌리는 태양을 보았다. 소금기 머금은 바다 냄새를 맡으며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의 리듬에 귀 기울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 또한 전에 없는 행복감으로 충만한 상태로 향했다.

우리는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이번에는 호텔에서 북쪽으로 향했다. 훔볼트 카운티 Humboldt County에 다다르자 이미 한참 전에 끝난 대선 때 사용된 트럼프 후보 홍보 광고판이 눈에 띄었다. 그 사이사이에는 대마초 수확 일꾼을 모집하는 광고가 있었다. 묘한 대비가 공존하는 지역이다. 계속해서 차를 몰아 펀데일 Ferndale을 통과했다. 펀데일은 빅토리아풍 건축 양식의 완벽한 표본 같은 집들이 있는 도시로 알려진 곳이다.
빅토리아풍 양식은 유레카 Eureka 시내에 자리 잡은 호텔 더 인 앳 세컨드 앤 시 The Inn At 2nd & C에서도 볼 수 있었다. 나는 짙은 보라색으로 꾸민 방에 묵었는데, 내가 보기엔 사이키델릭했지만 윈디는 <작은 아씨들>에 등장하는 조 마치의 침실이 생각난다고 했다. 훔볼트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미국 삼나무 덕에 이곳은 오래전부터 가내수공업이 발달했다고 한다. 어느 방향으로든 조금만 가면 나무를 깎아 만든 조각을 판매하는 기념품 가게가 나타나고, (차를 타고 통과하며 사진 찍기에 좋은) 큰 구멍이 뚫린 거목을 안내하는 표지판도 몇 개나 보인다. 우리는 유레카를 벗어나 애비뉴 오브 더 자이언츠 Avenue Of The Giants 고속도로를 탔다. 애비뉴 오브 더 자이언츠는 오래된 101번 국도 중 31마일에 이르는 일부 구간에 붙여진 이름으로, 폭이 좁은 데다 도로에 바싹 붙은 나무들의 키가 무척 커서 나무로 만든 터널을 통과하는 것만 같다. 이 길은 거대 삼나무를 보러 가는 여정이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나는 커다란 나무를 보러 가는 일에 심드렁했다. 기원전부터 존재한 나무라는 사실이 분명 대단하기는 하지만, 어릴 때 집 앞마당에 삼나무가 있었던 사람으로서 딱히 새롭지는 않은 탓이다. 그에 비해 윈디는 자연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 윈디가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하나는 수백 년 된 미국 삼나무를 포함해 다섯 그루의 나무에 대한 소설이자 퓰리처상을 수상한 리처드 파워스의 <오버스토리>다. 그러니 세계에서 미국 삼나무가 가장 많이 자란다는 레드우드 국립공원 Redwood National Park으로 향할 수밖에. 나는 유년 시절 앞마당의 삼나무를 올려다보던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자연을 새롭게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남쪽으로 한 시간 남짓 이동해 도착한 오릭 Orick의 주차장에서 우리를 맞이한 것은 손으로 쓴 불길한 느낌의 안내판이었다. “엘크는 야생 동물입니다. 방문에 따르는 위험과 책임은 모두 본인이 감수해야 합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엘크는 못 봤지만 대신 저스틴 레지라는 가이드를 만났다. 마른 체형에 키가 크고 자연주의자인 그는 레드우드 공원을 트레킹하는 동안 우리가 따라 웃게 만드는 크고 특이한 웃음을 섞어 쉬지 않고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그 이야기는 이따금 월계수 잎 냄새를 맡을 때면 멈추었다. “이곳의 산림 생물 양은 애비뉴 오브 더 자이언츠를 따라 조성된 숲의 두 배나 돼요.” 레지가 설명한다. 레드우드 국립공원과 그 주변은 예를 들어 요세미티 같은 관광지와는 다르다. 여행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호텔이나 레스토랑도 없고 그나마 있는 볼거리도 제대로 홍보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곳에 와서야 레드우드 국립공원이 <쥬라기 공원> 촬영 장소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은 일루바타 Ilúvatar를 보는 것 이었다. <반지의 제왕> 작가 J.R.R 톨킨이 창안한 엘프족 언어로 ‘조물주’를 뜻하는 일루바타는 레드우드에서 가장 큰 나무의 별명이다. 높이 3백20피트에 무게는 거의 4백 50톤이나 나가고, 우듬지(임관층, 식물군락의 지붕에 해당하는 부분)는 3만 제곱야드에 달한다. 멀리서 보면 거대한 한 나무 같지만 실은 약 2백20개의 몸통으로 이뤄진 나무 덩어리다. 이렇게 기록적인 숫자만 늘어놓아도 어마어마한 크기가 상상되겠지만, 진정한 감동은 그 앞에서 직접 마주할 때야 느낄 수 있다. 살아 있는 역사 앞에 선 것 같달까. 경외심마저 들 정도다. 이 정도의 볼거리가 어째서 이토록 알려지지 않았는지 혼란스러웠다. 그러자 레지가 작게 말을 건넸다. “일부러 비밀로 하는 거예요.”
언제나 무엇이든 손에 넣을 수 있는 시대에, 이 거인 같은 나무를 보고 싶으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 길이 비밀스레 잠자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고집스런 고요가 좋았다. 그 길을 찾아 움직이지 않으면, 직접 깨우지 않으면 이 경이로운 모습이 먼저 위용을 드러내는 일은 없을 테니까.

SLEEP, EAT, DRINK

더 인 앳 뉴포트 랜치 THE INN AT NEWPORT RANCH
태평양이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 요새 같다. 부지 면적이 2천 에이커에 달해 다양한 자연 경관을 즐길 수 있다. 지역 특산이나 호텔 부지에서 직접 재배한 식재료를 사용하는 레스토랑의 음식들도 매력적이다. 더블 룸 3백35파운드부터. theinnatnewportranch.com

더 마드론스 THE MADRONES
필로라는 조그마한 마을에 숨겨진 이탈리아풍 도피처 같은 레스토랑. 담쟁이가 우거진 외벽과 테라코타 기와 덕에 토스카나의 어느 빌라로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대마초를 치유 프로그램으로 활용하기 위한 허브 조제실과 스파가 딸렸는데 대마초의 경우 지역 농장에서 수확한 것을 사용한다. 더블 룸 1백 75파운드부터. themadrones.com

더 인 앳 세컨드 앤 시 THE INN AT 2ND & C
가족이 경영하는 게스트하우스로 유레카 시내 올드타운 구역에 위치해 훔볼트만이 한눈에 들어온다. 1880년대 건물로, 23개 객실이 그 시대와 어울리는 빈티지 가구로 꾸며져 있다. 더블 룸 75파운드부터. historiceaglehouse.com

더 비와일더드 피그 THE BEWILDERED PIG
필로의 작은 레스토랑인 이곳 요리에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의외성이 있다. 계절 식재료를 살린 메뉴를 제공하는데, 생크림과 마늘종 피클 또는 부드럽게 조리한 셀러리 뿌리와 아몬드 벨루테를 곁들인 훈제 은대구가 나올 때도 있다. 방문 계획이 있다면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식사하기 좋은 뒤편 데크의 테이블을 예약하도록 하자. 2인 기준 약 95파운드. bewilderedpig.com

골든아이 GOLDENEYE
북적이는 나파 밸리에서 꽤 떨어져 이제 막 커지는 중인 앤더슨 밸리의 와이너리 골든아이는 오로지 피노 누아만 생산한다. 피노 누아는 맛은 훌륭하지만 재배가 까다롭기로 악명 높은 포도 품종인데, 그래서인지 골든아이 와인의 부드러운 맛이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갓 출시한 골든아이 와인뿐 아니라 자매 와이너리인 마이그레이션의 제품까지 맛보고 싶다면 테이스팅 예약을 추천한다. goldeneyewine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