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질 아블로가 보낸 마지막 초대장 | 지큐 코리아 (GQ Korea)

버질 아블로가 보낸 마지막 초대장

2022-04-04T21:35:02+00:00 |news|

Virgil was Here.

패션 디자이너, 아트 디렉터, 가구 디자이너, 뮤지션, 인권운동가, 낙천주의자 그리고 아버지이자 아들. 버질 아블로가 마흔두 살의 나이로 우리 곁을 떠났다. 버질과의 갑작스런 이별에 수많은 친구와 팬은 슬픔과 혼란에 빠졌다. 2018년 버질 아블로의 첫 루이 비통 컬렉션이 끝난 후 꽉 끌어안고 왈칵 눈물을 쏟은 카니예 웨스트는 버질의 죽음 직후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모두 지워버렸다. 그를 사랑한 사람들의 아픔은 망각처럼 검었고, 각자의 방식으로 버질을 기억했다. 서울 오프화이트 플래그십 스토어에는 평소 꽃을 좋아했던 버질을 위해 플라워로 장식한 추모 공간이 마련되기도 했다.

버질 아블로는 전형적인 패션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았어도, 이 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크리에이터이자 패션 천재로 인정받았다. 그의 작업의 원동력은 언제나 상상과 호기심이었는데 둘 다 경계와 제한이 없었다. 그래서 가끔 고개가 갸우뚱해지거나 난처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사실 그래서 더 특별했다. 거꾸로 가는 시계, 마이클 잭슨 스타일의 비즈 장갑, 코로나 기간에 유용한 퍼즐처럼 매 시즌 컬렉션 초대장과 함께 전달되는 일종의 ‘지금부터 맞춰봐’도 남달랐다. 뭐 하나 허투루 하는 법이 없었고 쉬지 않고 일했으며 대충 자리만 지키는 자들을 증오했다. 그의 이런 성정 때문에 버질 아블로의 흔적은 해로즈 백화점과 샹제리제 거리에만 남지 않았다. 나이키, 이케아, 에비앙, 바카라, 비트라, 루브르 뮤지엄, 심지어 메르세데스 마이바흐까지. 그의 협업 스케일은 패션 디자이너가 할 수 있는 범위를 일찌감치 뛰어넘었다. 이처럼 작업물을 왕성하게 남기는 방식에 늘 좋은 소리만 따를 수는 없다. 재활용이라는 명분으로 만든 셔츠는 ‘바가지’라는 오해를 받았고, 클립으로 만든 액세서리는 “해도 해도 너무한다”라는 핀잔을 들었으며, 디자이너라면 피해갈 수 없는 ‘베끼기’논란 역시 꽤 자주 겪었다. 하지만 버질은 창작에 대한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모두가 다 아는 것에서 시작하지만, 전혀 다른 접근 방식과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던 방법을 택한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허를 콱 찌른다. 대중들은 의도를 알아챈 순간 더 크고 분명하게 반응한다. 그게 버질의 스타일이었다. 또한 버질은 사랑이 많은 웜하트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소외된 것, 약한 것, 관심받지 못하는 것들에 늘 주목했다. 부모님의 고향인 가나의 서퍼와 보더를 지원하는 일, 흑인과 성소수자의 인권문제에 누구보다 앞장서는 일, 인종 차별에 대한 불편함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일. 주저하거나 머뭇거리지 않았다. 2020년 7월 시카고에서 발표한 매니페스토에서는 인류애에 대해 다시 한번 강조했다.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에서 흑인으로서의 자신의 책임에 대해 인지하고, 본인의 생각을 설교가 아닌 런웨이에서 보여줘야 한다는 게 주 내용이었다. BIPOC 및 LGBTQ+를 차별 없이 포용해야 한다고도 했다.

맑은 지혜와 영혼을 지닌 창작가로서의 버질은 세상을 떠나기 전 친구와 동료들에게 마지막 초대장을 보냈다. 이미 지난여름 숏 필름으로 공개된 2022 스프링 서머 컬렉션에 몇 가지 룩을 더해 선보이는 2022 스프링 서머 맨 스핀오프 쇼였다. 원래대로라면 버질은 꿈 같은 숏 필름을 마이애미 런웨이를 통해 현실로 만들고 자세히 설명하고 싶었을 테다. ‘Amen Break’라는 제목의 꽤나 남성적이고 현란했던 지난 영상에 비해 마이애미 마린 스타디움에서 열린 쇼는 버질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그의 모든 날들에 경의를 표하는 마음을 담아, 침착하고 차분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버질은 생전 인터뷰에서 ‘마이애미를 고른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문화 충돌로 인해 신선한 서브컬처가 생기는 보석 같은 곳이어서”라고 했다. 쇼장에는 오랜만에 킴 카다시안과 카니예 웨스트가 나란히 앉았고 그 옆으로는 퍼렐 윌리엄스가 있었지만 친구를 잃은 지 얼마 안 된 그들의 얼굴은 평소와 다른 모습이었다. 스카이라인의 경계가 모호해질 때쯤, 마이애미 곳곳을 누비다 열기구를 탄 소년의 프리뷰 영상이 상영됐다. 곧이어 버질의 내레이션이 이어졌다. “나의 예술성과 창의력은 어른들이 다시 아이들처럼 행동하는 데 있다. 그들이 이 경이로움으로 돌아간다는 것. 그들이 현실이 아닌 상상력을 이용하는 것.”

쇼의 제목은 ‘Amen Break’. 아멘 브레이크는 레이브Rave 문화 역사상 가장 많이 샘플링된 음악 중 하나로, 버질은 레이브에서 영감받은 옷을 자작나무들 사이로 쏟아냈다. 사이키델릭 네온 컬러가 에어 브러싱된 가죽 재킷과 퍼 코트, 1990년대 광란의 메탈헤즈Metalheadz 전단지와 헤드폰을 쓴 해골 기호를 패치워크한 재킷과 팬츠가 줄을 이어 등장했다. 여기에 글로시한 백(강아지 캐리어와 목줄이 포함), 레코드 레이블과 협업해 만든 은색 PVC 메탈헤즈 백(LP 케이스, CD 케이스, DJ용 USB 케이스 등이 포함), 아주 화려한 컬러 선글라스 등의 버질 스타일 액세서리도 이번 컬렉션의 주제를 더 확연히 증명했다. 또한 극단적인 것을 묶는 조합을 시도했는데, 수트와 트랙 수트, 남과 여, 오전과 오후, 포멀과 스트릿을 뒤섞어 정반대의 성향을 중성화시켰다. 스커트와 킬트, 점프 셔츠와 드레스 같은 파격적인 아이템은 젠더, 문화, 서브 컬처에 대한 버질 아블로식의 코드화라 부르기에 충분했고. 하나 더 눈 여겨 볼 것은 뉴욕 베이스의 비주얼 아티스트 짐 조Jim Joe와의 협업. 블랙 체커와 퍼즐 패턴이 있는 화이트 수트, 비딩 블랙 수트, 체커 패턴이 있는 니트 수트, 잉크를 사용한 독특한 체커 패턴이 있는 흰색 가방은 없던 물욕도 부추길 만큼 아주 힙했다.(체커는 이번 시즌 다미에 모티프와 버질 아블로 문화의 태피스트리가 결합된 주요 모티프이기도 하다). 쇼가 진행되는 내내 버질 팬들의 시선은 여느 때처럼 슈즈에 멈췄다. 특히 힙합 문화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 위해 농구화의 클래식 코드와 루이 비통의 휘장을 이용해 만든 맞춤형 에어포스1은 가장 큰 관심을 받았다. 이 외에 네온 콘트라스트 솔로 된 가죽 첼시 부츠와 옥스퍼드 슈즈, 독수리 모티프로 장식된 가죽 카우보이 부츠, 스니커즈와 결합한 패딩 부츠도 눈에 띄었다. 코팅된 캔버스 소재의 액티브 백, 에어 브러싱된 3D 악어 가방, 모노그램과 휘장을 얹은 트렁크 로일 가방, 유기농 면으로 만든 빛바랜 워싱 캔버스 백도 시선을 뺏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카우보이 버클 벨트, 플라워 모노그램 하키 장갑, 에어 브러싱 샤프카와 귀 워머, 깃발로 짠 베레모, 통통한 니트 모자, 으깨진 펠트 모자로 런웨이는 더 풍성해졌다. 버질은 자재에 대한 리사이클링Recycling과 재활용품에 대한 업사이클링Upcyclingdp에 관심이 많았다. 지속 가능한 바이오 기반의 재활용 원료를 사용하는 데도 몰두했다. 그 결과 이번 시즌엔 자카드 재활용 폴리에스터 실로 만든 풍경이 프린트된 가방과 지속 가능한 재료를 사용한 멀티 컬러 타틱Tatic 트레이너, 유기농 면으로 만든 가방 등을 만들었다.

패션의 혁신과 혁명을 주도하고 타인의 비평과 비난을 수용하며, 삶의 평등과 평화를 추구했던 버질 아블로의 마지막 초대는 그렇게 아름답게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마이애미의 밤하늘엔 “Virgil was Here”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그는 언제나 어디에든 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순수한 재능, 모두 서로 사랑하기를 바라고 걱정하는 착한 마음, 그리고 그가 남긴 수많은 아름다운 창작물. 버질의 그 모두를 기억하는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