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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들이 그려낸 우리 서울 지도 5

2022.01.31전희란

오래되어 새롭다. 낡아서 반짝인다. 좀처럼 종잡을 수 없는 이 도시, 서울. “흔쾌히 어쩔 수 없이 지내고 있는 곳” 윤충근에게 서울은 숙명이다. “매일 새로운 공간이 열리고, 다채로운 해석이 피어나는 곳” 엉뚱상상에게 서울은 영감의 덩어리다. “익숙하지만, 불현듯 이방인이 되는 곳” 김영선은 생경함과 안도를 번갈아 느낀다. “정 붙이려고 노력 중인 도시” 김현진은 서울에서 정착과 탈출을 반반씩 꿈꾼다. 그리고 유현선은 아직도 이 도시에 바라는 점이 많다. 디자이너 5인이 도시의 과거와 지금을 엮는 사적 지도를 그렸다.

사진 제공 국토지리정보원.

Yoon Choong Geun @cgyoon
윤충근이 그린 마포구 서교동. “2022년 1월 현재, ‘홍대’라 불리는 마포구 서교동 일대에는 문 닫은 가게가 즐비해요. 텅 빈 건물 안을 들여다보며, 허망한 감정 속에서 어렴풋한 가능성을 그려보기도 해요. 서울에 오래된 기억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고 새삼 느끼는 순간? 공간이나 길 이름의 유래를 살펴볼 때죠. 이 동네에 바라는 점이라면, 반짝임만은 사라지지 않기를. ‘번쩍임’과는 달라요.” 윤충근의 지도에 마포가 한자 그대로 적힌 까닭은 바로 그것일 것. “시시각각 바뀌는 사람과 사물을 보면서, 한 번쯤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죠.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하게 돼요. 과연 서울이 가진 권력과 욕망은 작아질 수 있을까?” 도시의어제와 오늘을 기록하는 건 디자이너에게 ‘사적인 동시에 공적인’ 작업이라 말하는 그의 지도 속에서, 모두의 기억과 아주 사소한 기억까지 함께 뒤범벅된다. 윤충근의 대표작으로는 <아무>, 『이것저것』 등이 있으며, 최근 팀 ‘새로운 질서 그 후…’로 활동하며 전시 <프로젝트 해시태그 2021>에 참여했다.

You Hyun Sun @sunyou.online 
워크룸과 파일드의 그래픽 디자이너인 유현선은 1988년과 2022년을 잇는 송파구 방이동 지도를 완성했다. “올림픽공원에는 88 서울올림픽 성화가 있어요.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세계 평화의 문 아래 자리하고 있는데, ‘한 번도 꺼진 적 없는 불’이라는 어릴 적 들은 설명이 여전히 기억 속에 선명해요. 이따금 올림픽공원에 갈 때면,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타고 있는 불꽃을 감상하는 일은 빼놓을 수 없는 산책 코스가 되었죠. 서울에 올림픽공원이 존재한다는 건, 게다가 집 근처에 있다는 건 제게 큰 행운이에요. 결코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공간이죠.” “기록은 시작과 가까운 단어가 아닐까”라는 그의 말처럼, 도시는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시작할 것이며, 이 지도는 지금의 서울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유현선의 대표 작품으로는 <타이포잔치 2021: 거북이와 두루미> 도록, Filed+SAA <2022 CALENDAR>,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 타이포그래피 저널 『글짜씨』 등이 있다.

사진 제공 강남구청, 압구정 향우회.

Studio Pot @pretty.odd.type
건물들은 매일 자신의 키를 불리고, 생성과 소멸이 신기루처럼 일어나는 곳. 스튜디오 팟은 강남구 신사동의 사적 지도를 그렸다. “강남구는 동마다 다양한 표정을 지닌 동네예요. 그중에서도 신사동에서 보낸 몇 개월이 기억에 남아요. 가로수길 근처 사무실로 출근하는 길에 전봇대에 앉아 있던 까마귀를 마주하는 날이면, 어쩐지 하루 업무가 잘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죠. 작업이 막힐 때면 한강 공원에서 한참 멍 때리기도 했고요. 찰나에 많은 변화가 스쳐 가는 이 동네에서, 잊고 싶지 않은 곳들을 추출해 지도로 구성해봤어요. 다른 사람들은 잘 알아보지 못할 테지만, 작업자이자 지도를 펼칠 저에게 만큼은 기억을 박제하듯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지도가 되겠죠.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풍경? 없어요. 그 변화마저 신사동의 아이덴티티일 테니까.” 스튜디오 팟의 대표작으로는 2021 타이포잔치, <글자굿, Occult Type>, 현대백화점 50주년 기념 타이틀 레터링, AG 최정호 민부리 Std. Medium & Bold 등이 있다.

홍순태, <촌로상경(미도파백화점)>, 54×76.5×2, Blackalum, 사진 제공 한미사진미술관.

ddungsang @ddungsang.official
엉뚱상상의 중구 명동 지도. “지도의 사전 정의를 찾아보니, ‘지구 표면 상태를 일정한 비율로 줄여, 이를 약속된 기호로 평면에 나타낸 그림’이라고 나오더군요. 저희는 문자 디자인을 기반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문자라는 약속된 기호로 우리만의 지도를 작업해보기로 했죠. 시대를 이야기하는 문장에 글자꼴 디자인을 결합하면 시대의 지역적 정보를 지금 세대에게 충분히 전달할 수 있을 거라 믿었어요. 명동에서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것? 시대를 담은 지역의 문자 디자인-간판 글자부터 가게에 주인장이 매직으로 적은 글씨들까지-이에요.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는 문자는 중요한 유산처럼 느껴지니까요.” 현실에서 느껴지는 온도, 덩어리감, 텍스처로부터 찾아오는 영감을 중요하게 여기는 엉뚱상상에게 서울은 다양한 영감이 열리는 도시. 그 영감과 영감 (Old Man)이 담긴 지도는 누군가에게 또 영감의 지표가 될 것이다. 엉뚱상상의 대표작으로는 곰표 폰트, 곰표 메시지 챌린지 웹사이트 작업이 있다.

사진은 모두 임인식 작품, 사진 제공 청암 아카이브.

Kim Young Sun @kimyoungsun.kr
김영선은 용산구 한강로동의 과거를 새롭게 재생시켰다. “태어나서 가장 오래 살았던 곳이라 애착이 큰 동네예요. 옛 건물 특유의 낮은 돌벽, 인도를 가로지르는 철길을 만나는 우연한 매력이 이곳의 특징이죠. 한강로동의 옛 사진과 풍경을 동시대의 방식으로 덧그려 표시해 동네의 어제를 되돌아보고 싶었어요. 이 곳에 살면서 연상되는 컬러와 상징적인 것들-철도, 전자상가, 한강 등-을 수집해 그 자체로 프레임을 만들고, 이 사진의 배경이 되었을 것 같은 장소를 유추해 위치로 표시했죠.” 어제를 알면 늘 같은 오늘도 새롭게 보인다. 매일 지나다니던 길목에 놓인 건물이 알고 보니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건축인 걸 알았을 때의 짜릿한 재미, 방치된 창문과 담쟁이덩굴을 보며 지난 과거를 마음껏 상상하던 즐거움, 과거와 현재가 공존 하는 풍경만은 사라지지 않길 바라는 디자이너의 예쁜 바람이 다정한 지도에 소상히 담겨 있다. 김영선은 타이포잔치 2021: <거북이와 두루미> 전시의 ‘지혜의 메시지’ 등을 작업했다.

    피처 에디터
    전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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