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히 반갑습니다, 상당히 고맙습니다, 조프로치 조세호입니다.
GQ ‘조프로치’에게 묻겠습니다. 왜 하필 어프로치죠?
SH 어프로치가 제일 재밌어요.
GQ 왜요?
SH 세컨드 샷이 바로 그린으로 올라가는 것보다 그린 주변에 가서 어프로치로 붙이는 게 그렇게 재미있더라고요. 그냥, 모르겠어요. 힘 조절할 때의 그 느낌이 너무 좋아요.
GQ 재밌으면 더 잘하게 돼요?
SH 어프로치는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잖아요. 걸어온 길이 힘들었어도, 마지막 순간에 오는 희열이 있어요. 어프로치로 ‘오케이’까지의 거리가 나올 때 뭔가 이루어낸 것 같고. 제 인생도 비슷해요. 누군가의 티 샷이 정해진 대로 나갔다면, 제 공은 짧았거나 물에 빠졌죠. 꾸역꾸역, 꾸준히 하다 보니 그린 주변까지 온 거예요.
GQ 이 진지한 눈빛 <골벤져스>에서 자주 보았어요.
SH 골프에 진심이라.
GQ 예능에서 이렇게 진지하다고? 싶을 정도로요.
SH 처음 <골벤져스> 섭외가 들어왔을 때 피디님께 제가 그랬어요. 이 프로그램이 만약 웃기는 게 목적이라면 저는 하기 힘들 것 같다고요.
GQ 3회에서는 심지어 눈물까지 보였죠.
SH <골벤져스>에서는 한 타 한 타가 너무 중요했어요. 팀을 이루어 상대 팀과 경쟁하는 구조였으니 한 타를 잘못 치면 팀 성적에 바로 영향을 미쳤거든요. 제가 팀에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니 부담도 되고 너무 미안하더라고요. 그럼에도 팀원들은 저를 위로해주고, 그 안에서 힘을 받고, 저도 팀원을 위로해주면서 감정이 북받쳤나 봐요.
GQ 진지함에서 진심이 보여서 덩달아 찡했잖아요.
SH 그 전까지는 주로 명랑 골프를 했어요. 명랑 골프라도 나와의 싸움을 하긴 하죠. 그 싸움이란 게 스코어를 위해서가 아니라 제 자신이 앞으로 전진하는 느낌을 받고 싶어서일 뿐이지만. 전진하고 있다고 느껴지면 너무 기분이 좋거든요.
GQ 영어에 ‘Catching the bug’라는 말이 있더라고요. 골프 할 때 뇌와 몸이 하나가 된 것 같은, 어떤 계시의 순간 같은 거라고 해요.
SH 작년에 남창희와 라운딩 나가서 ‘라베’ 찍은 날이 떠올라요. 8월 4일에 베스트 스코어인 ‘84타’를 기록했죠. 그날은 티 샷부터 심상치 않았어요. 어? 이상한데? 진짜 느낌이 오더라고요. 그다음엔 아이언을 잡았는데, 분명 잘못 맞은 거 같은데 공이 잘 나가더라고요. 이상하다. 그다음부터는 드라이버 칠 때도 전혀 긴장 안 되고, 자신감이 붙었어요. 무조건 맞을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그날 친 공을 복주머니에 넣어서 가지고 다녀요.
GQ 그 이후로 상승세인가요?
SH 아직 ‘라베’인 이유가 있겠죠.
GQ <유퀴즈>에서 골프 특집을 한다고 가정해봐요. 어떤 공통 질문을 만들고 싶어요?
SH 미스 샷이 나면 그다음 마음가짐은 어떻게 가져야 하나요? 그냥 잊어버리는 건가요, 아니면 실수인 채로 인정하고 나아가는 건가요?
GQ 조세호가 개그에서 미스 샷을 치면 어떻게 마인드 컨트롤해요?
SH 와, 마인드 컨트롤 전혀 못 했던 것 같은데. 자책만 하고 그랬죠.
GQ 그럼에도 경기는 계속되어야 하잖아요.
SH 그러니까 그때 경기는 다 망쳤죠.
GQ 지금은 어때요?
SH 지금은 미스 샷이 없는 것 같아요.
GQ 자신감!
SH 생각의 변화죠. 지금은 미스 샷이 나도, 미스 샷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가 만약 실수를 했어요. 억울해요. 그 억울한 모습이 누군가에겐 미스 샷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람들이 웃을 수 있다면 괜찮아요. 그걸로 된 거예요.
GQ 영원한 미스 샷은 없다.
SH 그렇죠. 요즘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개그 하면서 내가 즐겁고, 상대방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았다면 좀 부족하더라도 그건 미스 샷이 아니지 않을까? 어차피 스코어에 크게 관심이 없기도 하고, 경기를 즐겼으면 그걸로 된 거니까.
GQ 최근에 <바퀴 달린 입> 시즌 2 고정 멤버로 합류하면서 이렇게 소감을 밝혔죠. “내 몸뚱아리 하나로 웃길 수만 있다면 이젠 뭐든 하고 싶다.”
SH 그런 생각은 항상, 오랫동안 해왔어요.
GQ 그 ‘몸뚱아리’가 요즘 훨훨 날고 있습니다. 조세호의 전성기가 왔다는 평가도 많죠.
SH (손사레를 친다) 멋있으려고 하는 말 아니고요,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서 그래요. 풍자도 있고, 준빈이도 있고, 가비도 있고, 용진이도 있고, 와주시는 게스트도 계시잖아요. 그분들이 저에 대해 좋게 생각해주시니까 이야기하는 저도 신나하는 거죠. 저는 가비가 정말 멋지다고 생각해요. 제가 얘기할 때 미친 듯이 웃어주거든요. 샷을 했는데 나이스 샷, 굿 샷, 대박, 같은 반응이 나오면 그 말을 또 듣고 싶어서 다음 샷을 잘 치게 되잖아요. 사람이란 게 참 그런 것 같아요.
GQ 그래서 경기가 잘 풀리고 있군요.
SH 그렇게 봐주시면 감사한데, 골프도 잘한다고 생각할 때 실수하기 시작하니까 매번 호흡을 가다듬어요. 오케이, 잘 해왔어. 그리고 다시 티 샷 하는 마음으로 스윙.
GQ 개그 인생이 골프라면 지금 어디쯤 온 거 같아요?
SH 이제 막 전반 끝난 거 같아요.
GQ 데뷔 20년 차인데요?
SH 이제 쪼오금 뭔지 알 것 같아요. 전반 끝나면 이제 몸 좀 풀렸다, 후반에 잘 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느낌 오잖아요. 이제 몸이 풀린 느낌이에요.
GQ 전반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힘은 뭐였어요?
SH 가진 것에 비해 많은 분의 사랑을 받았어요. 제가 잘했다고 생각하는 건 그것에 “감사합니다”라고 큰 목소리로 외친 것뿐이에요. 스무 살에 데뷔해서 이제 마흔하나가 됐으니 ‘꽤 오랜 시간을 잘 버텨왔다’고 자평해요. 다가올 후반은 전반의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될 것 같아요.
GQ 전반에는 어떤 실수를 했길래요?
SH 조급했고, 가진 것에 비해 더 많이 가지려고 했어요. 제가 가진 게 100인데 자꾸 120을 하려고 했죠. 그러니까 110을 해도 만족이 안 되고, 95를 하면 실망하는 거죠. 안 되고, 안 되고, 또 안 되다가 서른을 넘긴 즈음에 제 자신에게 말했어요. “세호야,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 말고 기대치를 너무 높이지 마. 네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 남이 치고 올라간다고 해서 너까지 그럴 필요는 없어.”
GQ 욕심이 라운딩을 망치기도 하는 것처럼요.
SH 지금 우드를 잡을 때가 아닌데 괜한 욕심에 우드를 잡을 때가 있죠. 그러면 어김없이 실수를 해요. 누군가가 세 번 만에 온 그린 하는 것을 나는 네 번 만에 올린다고 한들, 어쨌든 공을 올리는 게 중요한 거죠. 조금 더디더라도요. 예전에는 당장의 샷이 좋지 않아도 다음 샷이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해보려는 마음이 앞섰죠.
GQ 실수였음이 자연스럽게 깨달아지던가요?
SH 네. 차츰, 자연스럽게요. 일이 잘 안 풀려서 누군가를 시기 질투할 때도 있었는데, 그러면 제가 힘들더라고요. 그러지 말고 ‘이번 생은 누군가가 잘 될 때 옆에서 진심으로 박수 칠 수 있는 역할인가보다’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그렇게 계속 박수를 치니까 주변에서 그러더라고요. “왜 그렇게 박수를 쳐요? 오랫동안 박수만 치고 있잖아요.”
GQ 나쁜, 아픈 질문이었겠네요.
SH 뭐가 되었든 한 가지를 오래 하는 사람에게는 질문을 해요. 왜 관두지 않았어요? 왜 오래 하는 거예요? 당신 누구세요?
GQ 어떻게 버텼어요?
SH 무엇을 하든 먹고살 수는 있겠다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이 일이 아니면 다른 거 하면 되잖아? 그러니까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해보자, 했죠.
GQ 문득 세호 씨의 브랜드 명 ‘아모프레’가 떠오르는군요. 자존감, 자기애라는 의미의 ‘Amour Propre’의 줄임말이잖아요.
SH 저는 제 자신을 굉장히 좋아해요. 아무도 내 얘기를 들어주지 않던 시절에 이야기를 들어준 건 제 자신뿐이었어요. 프랑스어로 ‘아모르 프로프레’는 자존감, 자기애, 더 디테일하게 말하면 ‘이기적인 자기애’예요. 오랜 시간 잘 버텨온 나에게 좀 이기적이면 어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GQ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몇 홀쯤이었으면 해요?
SH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GQ 어차피 안 될 거니까?
SH 불가능해서가 아니라, 지금이 좋아서요. 다시 돌아간다면 제가 범한 실수를 미리 알고 더 빨리 성장할 수는 있겠죠. 그런데 성장이 빠르면 경험하지 못한 일이 또 닥쳐올지 모르잖아요. 충분히 잘 버텨왔고, 그저 지금의 시간을 잘 쓰면 될 것 같아요. 지금 제가 있는 이 그늘집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