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부터 바흐의 클래식 음악에 가사를 붙인다면 | 지큐 코리아 (GQ Korea)

슈베르트부터 바흐의 클래식 음악에 가사를 붙인다면

2022-11-03T12:05:08+00:00 |culture, music|

가사 없는 운율에 당신의 노랫말을 붙여보세요.

슈베르트 Schubertㅣ네 손을 위한 환상곡 Fantasie in F Minor D.940, Op. 103

공기를 나눠 마시고
아침에 한 사람이 물 속으로 들어갔다그가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어 신들의 섬이 솟아올랐고 너는 누군가의 비석 앞에서 웅크렸다. 개가 짖었나 0도였나.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 몇의 이야기를 들어서. 갓 태어난 아이들이 모조리 너를 알게 되어서. 울때. 기도를 떠올리려 했지만. 사랑에 대하여 징집에 대하여 행군에 대하여

창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바람은 불지않고. 잠깐 모든 소리가 그쳤을 때. 배 밭이 이어지고. 배 밭이 이어지고. 그 순간에도 배가 자라고. 배가 자라고. 끝나지않을 것 같은 시간이 멈추고 문이 열리면. 해가 2분 짧아지고. 해가 2분. 2초. 2분. 2초. 포탄이 터지고. 낭만이 제거되지 않는다면. 해는 다시 2초 2초 생각보다 빠르게 움직여. 단 한 번도 그 움직임의 순간을 들키지 않고. 식물은. 꽃은. 피고. 잎은. 빛을 향해 굽고. 줄기 안쪽에 몸을 말고 있던 잎이. 불쑥 솟아오르고. 손바닥을 펼치듯. 잎은. 펴지고. 마음 같지. 너를 알게 된 아이들이 일시에 자라. 손바닥 대신 마음을 꽉 말아쥐고. 2초. 2초. 피가 통하지 않아. 2초. 2초. 죽어갈 때

너는 가만히 물속을 들여다보다가. 손잡이 같은 것. 손잡이 같은 것. 말했지. 손이 스치고. 아무도 죽지 않은 것처럼. 꿈을 꾸다가. 나는 계단을 내려갔어. 어디에서 어디로 이어진 계단이었는지. 빠르게 작은 방이 보였는데. 기둥 뒤에 네가 있었어. 눈이 마주치자 그리워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 기둥 뒤에 잠자코 있다가 꿈에서 깼고. 그것이 아주 오래전에 우리에게 일어났던 일이라는 것을 알았어. 암시가 아니라. 예언이 아니라. 그건 그저 그때의 일. 기억이라는 걸. 토끼 지우개를 손에 꽉 쥐고. 토끼 귀가 다 닳도록. 너는 기둥 뒤에 서 있고. 너를 다시 보았을 때. 손이 스치고. 우리는. 그건 그저 지우지 못한 기억이 아니라. 암시. 예언. 기미. 였다는 걸 알았지. 구멍을 바라보는 마음. 열매가 조금씩 커져 가는 걸 쉬지 않고 보고 있어. 도약. 도약.

뭘 위해서. 아무라도 붙잡고 묻고 싶어서. 아침에는 누군가를 탓하려 했는데. 오타를 전송했다. 너에게 되묻고 말았지. 그건 무엇과 다른 한 끗이었을까. 너를 그저 기다리는 일은. 너를 기다리다 애가 타는 일은. 너를 기다리다 한순간에 무너지는 일은. 다 그만두고. 너를 기다리다 엉뚱한 사랑에 빠지는 일은. 버스 정류장에 버스가 멈춰 서고, 출발하고, 멈춰 서고, 출발하고, 멈춰 서고, 출발하는 동안. 물이 흐르고, 수세미가 움직이고, 거품이 사라지는 일. 모조리 사라지는 방향으로.

내가 분명히 앓고있는 것은 너. 관절염같은. 애틋함이 처음 부어오를 때 나는 분명히 보았지. 새벽에, 밤에, 허리를 숙이고, 일어서다가, 변기에 앉아서. 앓고 있는 것은 마디마디. 서서히 뼈가 휘어. 마땅히 해야할 것은. 2초. 2초. 해는 아무것도 묻지 않아. 행군은 멈추지 않고. 어둠은 오고, 어둠은 짙어지고, 날이 밝는다. 구름이 모이고, 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멈춰 서고, 무거워지고, 쏟아진다. 지속은 질서처럼 보이고. 오래 죽을 씹듯. 견디는 것이 더위와 추위만은 아니니까. 사람들이 공기를 나눠 마시고. 밤낮 공기를 나눠 마시고. 울때 윤해서, 소설가(<움푹한>)

 

쇼팽 Chopinㅣ녹턴 Nocturnes, Op. 55: No.1 in F Minor

미래의 눈사람에게
나는 네 심장을 기억하고 있어. 투명하고 고요한 심장을. 심장을 기억하기 전에 두 눈을 기억했어. 조용히 웃는 입을 기억했어. 그리고 귀를. 목소리를. 가슴에 채워지는 흰 단추를. 잘 익은 레몬을 잘라 귀를 만들어주었어. 겨울 가득히 환하게 레몬 향이 퍼지도록. 그 기분이 눈이 부셔서 아무도 너를 해칠 수 없도록. 두꺼운 눈이 오기 전에 나는 첫 눈사람을 만들었어. 11월의 눈사람은 작고 여린 얼굴이었지. 작고 흰 것을 지키는 겨울이었어. 조용히 그런 일을 해내려는 겨울. 나는 눈사람을 지키려고 숲으로 갔어. 그 숲은 깊고 어둡고 두려운 것. 그러나 나는 곧 알 수 있었지. 두려운만큼 부드러운 일이 일어난다는 걸. 어두운 숲에서 기쁨보다 슬픔의 발음이 더 부드럽다는 걸. 숲속에 버려진 아름다운 악기들. 오래된 첫 악기의 고요함. 이 세계에는 그런 부드러운 침묵이 흐르고 있다는 걸. 숲에 눈이 내리면 열려 있는 악기를 닫아주었어. 첫 눈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지. 눈과 귀를 기다리던 이야기를. 깊고 투명한 침묵을.

언젠가 나는 꽃병에 꿀을 담는 아이였어. 꽃을 바라보듯 짙은 꿀의 흐름을 바라보는 아이. 그꽃병이 얼마나 검고 고요했는지. 얼마나 향기로웠는지. 세찬 밤바람이 꽃병을 깨뜨렸을 때 무릎에 흐르던 꿀. 밤새 내리던 폭설. 나는 이 모든 디테일을 기억하고 있어. 꿀이 섞인 핏방울이 달고 차가웠던 것. 검고 투명한 유리 조각을 눈 속에 파묻었던 것. 창밖에는 아이들 눈싸움에 으깨지는 레몬들. 겨울 숲으로 흘러드는 꿀과 레몬의 향기. 어떤 예감은 환한 생물 같았지.깊은 숲에서 들려오는 악기 울음들. 낮고 투명한 음악들. 숲속에 숨겨진 눈사람과, 꿀이 닿으면 녹아내리는 눈의 심장. 부드러운 어둠 속에서 아주 작은 사건이 일어났다가 곧 어둠을 되찾는 밤의 이야기. 흩어지는 사건의 입자와, 눈부신 눈사람의 미래와, 초겨울의 초감각. 나는 이 모든 디테일을 네게 배웠어. 뜨거운 이마를 짚어주는 손과, 연주된 적 없는 악기를 기다리는 두 손. 미래의 눈사람에게 건네는 하얀 털장갑.오랜 친구처럼 눈사람의 어깨에 팔을 두른다는 것. 겨울이 깊어지면 나는 듣고 있었지. 내 어린 눈사람에게 첫 악기는 무엇인지. 안미린, 시인(<눈부신 디테일의 유령론>)

 

드뷔시 Debussyㅣ눈은 춤춘다 Children’s Corner, L.113 The Snow Is Dancing

산책하기 좋은 날
음악과 어울린다고 생각한 적 있어? 어려운 질문이 아니라 음악을 좋아하냐고 묻는 거야. 일주일 동안 달릴 거니까 알고 있으라고. 그렇다고 각오할 것까진 없어. 준비는 하지 마. 편하지도 불편하지도 않게 적당한 긴장감을 지닌 채 앉아. 서거나 누워도 괜찮아. 과장된 표현이 즐겁고 거짓말 같지 않게 여겨져. 어떻게 변할지 상상만 해도⋯⋯ 절제하지 마. 건조하게 굴지 말라고. 재치 있는 문장같은 건 그저 그렇고 따분하고 귀찮아. 뚝섬한강공원 트랙을 질주하는 나지막한 전동 바이크 같은 느낌⋯⋯맞아. 한강은 너저분하고 불쾌하지만 서울에 한강보다 괜찮은 산책 코스가 없다는 데서 느껴지는 당혹감 맞지? 산책하기 좋은 날은 탈출이 아니라 구속되고 싶은 날이다.

눈앞에 보이는 풍경과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 혹은 문장들을 매치시켜봐. 진부하긴 하지만, 엉뚱한 그림이 그려질수록 좋은 걸까. 모르긴 몰라도 나는 항상 기괴하고 일그러진 양서류가 머릿속에 떠올라. 하남과 남양주는 적적한데, 김포와 파주는 어떤 느낌일까. 서쪽과 인연이 없어서 모르겠네. 할아버지는 고향인 해주에 가까워서 강화도 선산을 샀다는데 나는 도무지 모르겠네. 유전자 검사를 하면 난 어떤 사람으로 재탄생할까. 이글이글 타오르는 듯한⋯⋯ 다소 지저분한 덩굴들은 지금 이 시점에 왜 떠오르지. 파주의 공허한 도로. 메가박스의 화장실. 지금은 사이가 멀어진⋯⋯ 김포로 떠나간 선배를 떠올리면 후회와 안도가 섞인 기분이 드는데. 어제는 오랜만에 선배와 영화를 보는 꿈을 꿨는데 나한테 이런 말을 하지 뭐야. 나는 특이함이 싫었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처럼 살았다.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었다. 아이는 내게 엄마라고 했고 와이프에게 아빠라고 했는데, 나는 아이가 장난하는 건줄 알았지만 알고보니 아이는 진짜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은 김병년의 이야기를 녹음하고 타이핑하는 것이다. 김병년은 샌프란시스코에서 거주하는 노인으로, 삼성 반도체 원천 기술을 갖고 있다는데⋯⋯ 시크릿⋯⋯

김병년은 이건희에게 사기를 당하고 샌프란시스코로 쫓겨났다면서, 와인에 취해 고개를 주억거리는 내게 뜬금없이 좋아하는 건 무엇이냐 물었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성격이 급한 김병년을 자극하기 싫어서 강낭콩이라고 둘러댔다. 강낭콩?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이제 마약만 키워. 그것만 돈이 되거든. 혼령이라면 미래를 예측할 줄 알았는데 넌 뭐야? 몇 번 테스트 해 봤는데, 아무것도 할 줄 모르던데? 나는 우리가 나오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소설을 쓰기로 했다. 다투거나 모략하는 일도, 카프카를 읽기에도 질려버린 채 서울을 산책하는 유전자⋯⋯ 산책이나 나가자. 걷자. 땀을 흘리자. 영혼이 소진되도록. 쓸데없는 영혼의 쓸데없음이 보정 없이 공개되도록. 소설에 자신의 이야기를 써달라고 했던 수많은 사람이 기억났다. 나는 흔쾌히 알았다고 하기도 했고, 시니컬하게 거절하기도 했다. 기준같은 건 없이 그 날 그 시간 기분에 따라서. 그럼 나에 대해 쓰는 건? 글쎄⋯⋯ 일단 산책에 대해 써보자. 오한기, 소설가(<바게트 소년병>)

 

바흐 Bachㅣ골드베르크 변주곡 Goldberg Variations, BWV 988

아침 관객을 위한 편지
타자기 위에 쌓여있는 먼지의 두께로
안부 인사를 돕는 건실한 단어*가 무엇이었는지 생각하기
고양이는 해가 뜨면 모두 잘 시간이오니 담벼락 커튼은 내버려두고 햇살터는 일을 좀 도와주시오 하마터면 깨어날 뻔했소 자던 것들을 깨우지 않는 속삭임에서 아침은 태어났으니
(가을의 파장을 일으키는 찬바람 입장) 식탁에 걸쳐둔 밤색 카디건, 머그컵의 보온을 위해 감싼 두손, 은색 나이프에 비친 아침 얼굴 삼촌의 목소리 톤으로 “꾀죄죄한 행색에 겨우 안심이라니!”
눈뜨며 흥얼거리는 노래가 오늘의 운세라지요 그중 침묵은 가장 오래된 유행가입니다 대머리 가수가 줄을 설 지경이라구요
아침엔 화들짝 놀랄 일만 남아
복선처럼 날아가는 새 떼, 조금 일찍 도착한 과수원 트럭, 할머니의 늦잠, 문고리에 걸린 이른 성탄절 양말, 식탁과 이별하며 날아가는 프릴, 집는 것마다 부서지는 쿠키, 헛기침으로 깨우는 잠긴 문, 바람 빠진 공을 차며 노는 아이들
평화로운 사선은 얼마든지 쏟아지고 있으니까 아침 사전을 열어 골라보시오 놀랄 만한 일들이 지각하고 있는 잠깐의 고요를 비집고 턱을 괴어 상상하시오
평화1 천사들의 하품으로 닦은 창문
평화2 아침에 잠깐 들키는 신의 꽁무니
평화3 열쇠 꾸러미 속에 매달려있는 방울 모양의 머리끈
평화4 전해주지 못한 편지와 우편함에 들어 있는 낙엽
아침은 밤새도록 얼마나 많은 할 말을 참아왔는지 귀찮을 정도로 맑고 찡그릴만큼 화창한 표정을 하고선 사람들의 기름진 인중마다 반짝이며 내려앉는지요 매일 아침과 서먹한 사람들을 위한 음악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은쟁반 위에도 목조 서랍 안에도 아이들 콧잔등 위에도 없는 선율이 끝나거든 전해주시오 우리의 아침을 건실히 돕는 이 편지를 읽어주시오 서윤후, 시인(<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