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준 "부끄러웠어요, 그래서 다행이었어요" | 지큐 코리아 (GQ Korea)

김혜준 "부끄러웠어요, 그래서 다행이었어요"

2023-01-26T17:38:09+00:00 |ENTERTAINMENT, interview|

밟는 것은 액셀러레이터. 꼭 쥔 것은 핸들. 김혜준의 드라이브

화이트 셔츠, 시퀸 장식 드레스, 볼 캡, 모두 록. 화이트 부츠, 로에베. 귀걸이는 김혜준의 것.

HJ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것도 받으세요.
GQ 이게 뭐예요?
HJ 스티커예요. 올해 토끼해니까, 오늘 다 같이 만난다 해서 어제 토끼 관련된 것 찾다가 샀어요. 좀 많이 샀어요. 1년 치.
GQ 1년 치를요? 다이어리 꾸미는 용이에요?
HJ 아뇨. 그러게요···, ‘다꾸’도 안 하는데 스티커를···.
GQ 이제야 ‘왜 1년 치를 샀지’ 싶은 얼굴이네요.
HJ 프흐흐흐. 아, 최근에 폴라로이드를 하나 장만했거든요. 스마트폰과 연동해서 원하는 사진을 뽑을 수가 있어요. 그래서 스티커를 사기 시작한 것 같아요. 챙겨 다니면서 친구들 만나면 사진 찍고 바로 인화해서 스티커로 꾸며서 줘요.
GQ 아기자기하군요.
HJ 사실 이렇게 꾸며서 준 건 한 달도 채 안 됐어요.
GQ 올해는 다이어리 대신 스티커를 산 거예요? 지난해에는 다이어리 고르는 데만 3시간 걸렸다고 했잖아요.
HJ 올해 다이어리도 샀죠. 크리스마스 전에 미리 샀어요. 연보라색으로. 스케줄 정리하기 편하게 먼슬리와 위클리 속지가 있고, 뒤에 메모장도 많고, 주머니도 달려 있고, 펜 꽂는 곳도 있고, 묶는 끈도 있고. 내구성이 좋아야 해요. 그런 것 중 색깔이 가장 예쁜 걸 샀어요. 올해 것은 한 1시간 걸렸나? 금방 골랐어요.
GQ 연례행사예요?
HJ 이 일을 시작하면서부터요. 까먹지 않으려고 적다가. 안 버리고 집에 다 모아뒀거든요. 몇 권 되더라···.
GQ 데뷔작 <대세는 백합>이 2015년 때이니까 최소 7~8권은 있겠어요.
HJ 그쯤 될 거예요. 2018년부터 꾸준히 적은 건 확실해요.
GQ 그 다이어리들에 무슨 내용이 적혀 있을까 궁금해지는데, 일단 새로운 2023년 다이어리에는 무엇을 적어두었나요?
HJ 1월 1일에 해피 뉴 이어 스티커 붙였어요. 제가 다이어리에 끄적끄적 적기는 하거든요? 그런데 스케줄 위주로만 써서 별 내용이 없어요. 연말 가서 부랴부랴 채워요. 예를 들면 오늘 촬영 준비하며 찍은 폴라로이드를 붙인다든지. 추억 쌓기 느낌으로.

재킷, 스트라이프 셔츠, 모두 미우미우.

GQ 좋아요. 그럼 기록 대신 기억을 돌이켜봅시다. 배우로서 혜준 씨가 걸어온 길을 봤을 때 강단 있다 느낀 지점이 크게 두 가지 있어요. 혜준 씨 생각에는 무엇일 것 같아요?
HJ 강단 있다···? 강단 있었지···? 어려운데요. 뭐가 있지? 제가 강단 있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음, 그냥 제가 연기를 시작한 게 강단 있었던 것 같아요. 제 삶의 가장 큰 반항이었던 것 같고.
GQ 반항. 부모님이 네 성격에 무슨 배우냐고 할 정도로 숫기 없었다고 했죠.
HJ 네. 배우라는 직업은 꿈도 못 꿨어요. 저는 연극 치료, 아동 심리 치료처럼 연극으로 하는 심리 치료에 호기심이 생겨서 전공을 택한 부분도 있는데, 막상 선생님께 배우다 보니까 제가 치료를 받는 것 같더라고요. 연기를 하는 제 자신이 즐거운 걸 보니 연기를 해야겠다 싶었죠.
GQ 스스로 강단 있는 스타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HJ 겁이 많아요. 걱정도 많고. 조심하는 스타일이에요. 쫄보. 아! 저 SNL 오디션 보러 간 게 강단 있었다고 생각해요. SNL에 참여하게 된 게 강단 있었다.
GQ 동감이에요. “깡이 부족한데 담력 키우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무대에 오르게 됐다”는 이유가 의아했어요. 매주 생방송 코미디 무대이던 SNL에 도전하는 것 자체가 깡 아니에요?
HJ 프하하하하. 맞아요. 패기 넘쳤던 것 같기도 해요. 그때 <대세는 백합> 웹 드라마 찍고 나서 SNL에서 연락이 왔어요. 혹시 오디션 볼 생각 없냐고. 당시만 해 도 제가 상업 오디션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그래서 ‘그래, 경험을 쌓자’ 하고 갔는데 붙은 거예요. 많이 당황했어요. 이게 어떻게 됐지? 붙었다고?
GQ 뭘 했길래요?
HJ 저는 진짜 정극 연기했거든요. 전 웃기는 재주가 없으니까 그냥 거기서 준 콩 트 대본···, 그게 콩트인지도 모르고 진지하게 연기했어요. 자유 연기로도 연극 대사 준비해갔어요. <집>이라는 연극의 여자 캐릭터였나, 별 극적인 것도 없이 그냥 말하듯 하는 대사였어요. “난 내가 태어났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그런데 합격해서 당황했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는데 이건 내게 좋은 기회다, 감사한 기회다 싶어 참여하게 됐어요.

모자, 어썸니즈. 코트, 스포트막스.

GQ 이제 와서 그때 혜준 씨를 보니 <구경이>의 케이 얼굴과 겹치기도 하더라고요. 천진해서.
HJ 아무것도 모를 때, 정말 해맑을 때니까 그렇긴 할 것 같아요. 촬영 감독님이 어떻게 나뉘는지도 모르고. 퍼스트, 포커스, 이런 구분이 있거든요.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나요. ‘와, 내가 이걸 어떻게 했지?’ 싶어요.
GQ <킹덤>도 한 지점으로 꼽고 싶어요. 정확히는 <킹덤 1>과 <킹덤 2>의 간극.
HJ 맞아요. 그 간극을 이겨내는 게 저에게는 큰 도전이자 극복의 단계였어요.
GQ 미안한 얘기지만,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간극이 무척 흥미로웠거든요.
HJ 으하하하하. 저도 흥미로웠어요. 스스로도 많이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었죠.
GQ 그 한마디가 인상 깊었어요. “내 역량이 부족했다.” <킹덤 1>의 계비 조씨에 대한 연기력 논란에 숨지 않았죠.
HJ 부끄러웠죠. 부끄러웠어요. 그래서 다행이었어요. 다음에 보여드릴 것이 남아 있다는 게. 그렇게 끝나면 나는 못 하는 사람, 이렇게 끝나버리는 거잖아요. 이걸 다시 뒤집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게 너무 다행이었어요. 그렇다면 <시즌2>에서는 진짜 이를 갈고 전화위복을 시켜야겠다, 이 생각을 많이 했죠. 그때 생각해보면 참 강단 있네요.
GQ 이를 어떻게 갈았어요?
HJ 사실 뭘 막 어떻게 했다기보다 끊임없이 불안해했던 것 같아요. 불안해하고, 계속 자기 검열하고, 되묻고. 그다음으론, 제가 먼저 다가가는 걸 잘 못 하는데 선배님들을 많이 붙잡았어요. 감독님도 붙잡고, 류승룡 선배님 붙잡고 저 연기 한 번만 봐달라, 대본 리딩 봐달라 그러고. 작가님께도 많이 여쭤보고. 같은 회사인 장영남 선배님께도 제발 한 번만 레슨해달라고 말씀드렸더니 기꺼이 “그럼 우리 집으로 와서 함께 연기해보자” 하며 봐주셨어요. 많이 두드렸던 것 같아요. 계속 부딪혔죠.
GQ 계속 두드렸군요. 늘 그게 궁금했어요. 연기라는 게 시험 공부하듯 책으로 되는 훈련은 아니잖아요.
HJ 말씀대로 연기라는 게 짧은 시간 안에 무언가 막 되기는 어렵잖아요. 그런데 시즌 1에서는 찾지 못했던 걸 찾았던 것 같아요. 저한테 맞는 톤, 제가 찾지 못했던 것들을 선배님들이 함께 찾아주셔서 그걸 익숙하게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GQ 그 시간이 스티커라면 지금의 혜준 씨에게 어떤 잔상으로 남아 있나요?
HJ 완전, 완전, 완전 값진 시간으로요. 그리고 감사하게도 승룡 선배님도, 영남 선배님도 제가 틀렸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시즌 1에서의 너도 틀리지 않았다. 그런데 더 너의 것으로 만들어보자” 하시면서 영남 선배님은 제가 부끄러워하고 닫혀 있는 것들을 열어주려고 직접 연기를 시연해주시기도 하고, 그 모습을 보면서 ‘하, 내가 이럴 게 아니다’ 자극을 많이 받은 시간이었어요. 다시 하라 하면 못 할 것 같아요. 아냐! 할 수 있어요.

재킷, 스트라이프 셔츠, 팬츠, 부츠, 모두 미우미우. 타이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이후 <구경이>의 케이도, <커넥트>의 이랑도 제 옷 같았어요. 연달아 비슷한 옷을 입은 것 아닌가 아쉽기도 했지만요.
HJ 아아, 비슷한 지점이 있는 캐릭터죠. 왜냐면 케이를 찍고 나서 선택한 작품이기 때문에 케이랑 비슷해서 끌렸던 것 같기도 해요. 아뇨, 흥미를 느꼈어요. 맞아요. 다만 인종 자체가 다르다고 해야 하나, 이랑은 가진 능력치가 다른 캐릭터죠. 장르적으로 액션이라든지 다른 점을 보여줄 수 있겠다는 욕심도 있었고, 그런 면에서 저는 케이랑 다르다고도 여겼어요. 디테일하게는 케이는 타당성이 없는 친구고, 이랑이는 자신만의 야망이 있는 친구고, 이런 저만의 디테일을 갖고 임하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비슷하다고 느끼는 분이 꽤 있더라고요. 응, 그럴 수 있겠다. 그렇다면 좀 더 다르게 표현하려고 내가 노력해야겠다.
GQ 달든 쓰든 먹고 소화해서 내보내는 능력치가 높아 보여요.
HJ 하하하하. 맞아요. 수용이 빨라요.
GQ 이런데도 ‘쫄보’예요?
HJ 하···, 제가 어제 그 스티커 사러 처음으로 잠실까지 혼자 운전해서 가봤거든요. 기절할 뻔했어요. 또 눈이 와서, 눈 오는 날 운전 처음 해봤거든요. 운전하는 신 찍을 수 있으니까 면허는 한 2017년쯤에 따놨는데, 제가 겁이 많고 걱정이 많잖아요. 그래서 운전 안 했는데, 엄마가 더 늦기 전에 해야 한다 그러셔서 선생님한테 한 다섯 달 배우고 혼자 다닌 지는 한 두 달 됐나? 여전히 무섭긴 무서운데 왜 이제 시작했나 싶어요. 되게 큰 가방이 생긴 느낌이에요.
GQ 운전 기술 중에서도 무엇이 가장 자신 있어요? 부드러운 차선 변경? 길 찾기?
HJ 다 너무 어려운데···, 그나마 좀 극복한 것.
GQ 좋네요, 극복.
HJ 이제는 속도를 낼 수 있어요. 예전에는 60 이상 달리면 너무 무서웠거든요? 그런데 고속도로 같은 데서는 60으로 달리면 민폐거든요. 못해도 80 정도는 밟아줘야 하는데 이제 그 정도는 심장이 견딜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