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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은 “모든 게 완벽한 사람은 없잖아요”

2024.01.22신기호

“그럴 수도 있다”고 말할 수 있어서.

재킷, 프롬 아를. 데님 팬츠, 아르켓. 안경, 린드버그. 화이트 티셔츠와 플립플롭은 모두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이렇게 바빠도 낚시는 가겠죠?
BE 어휴, 가고 싶은데 못 가죠. 요즘 거의 못 했어요.
GQ 아른한 곳이 한둘이 아니겠군요.
BE 지금은 제주도가 철이에요. 거긴 춥지도 않아요. 아니야, 추워도 좋아요 거긴.
GQ <선산> 공개가 꼭 열흘 남았어요. 이쯤엔 어떤 감정이 요동칠까요?
BE 불안감. 항상 그랬던 것 같아요. 어떻게 나왔을까, 어떻게 봐주실까, 난 또 어떻게 보일까. 계속 염려되고 궁금하고.
GQ 그 불안은 왜 이는 것 같아요? 이유가 확신의 부재는 아니겠고요.
BE 예상할 수 없어서? 예상 밖이라는 말 있죠? 딱 그래요. 작품 10개를 하면 10개가 하나같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어요. 저보다 연기를 오래 해오신 선배님들도 이건 정말 모르겠다고 하세요. 그래서 어렵죠. 또 그 와중에 설레기도 하고.
GQ 그런 수수께끼 같은 관객들의 반응을 보며, 병은 씨는 또 어떻게 반응해요?
BE 겸허~히 받아들이죠. 늘 그래요. 하나하나 댓글을 찾아서 보는 편도 아니고요.
GQ 최선을 다했으니.
BE 네, 저는 모니터도 거의 안 해요. 모니터를 하면 단점들이 하나둘 보이잖아요? 근데 저는 그 ‘단점’이라는 게 더 자연스럽게 느껴져요. 단점들을 하나씩 지우다 보면 내가 연기하는 인물이 꼭 로봇처럼 완벽한 사람이 되거든요. 근데 그렇게 모든 게 완벽한 사람은 없잖아요. 말투, 표정, 움직임, 이 모든 게 완벽한 사람. 그래서 한번은 모니터를 한 작품과 하지 않은 작품을 비교해봤어요.
GQ 어떻던가요?
BE 저는 철저하게 모니터를 한 작품보다 안 한 작품이 더 좋더라고요. 내가 진심으로 연기했다면 그 모습을 더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요. 자연스러워서. 물론 장치나 기계적인 연출처럼 합이 필요한 신은 모니터를 하죠. 당연히 해야죠.

코트, 아모멘토. 니트, 팬츠, 스니커즈, 모두 제냐.

GQ 박병은의 연기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대부분은 그런 ‘자연스러움’을 이야기하더라고요. 제 경우는 뭔가 헐렁한데 그 헐렁함이 또 친근하게 느껴졌달까.
BE 모든 배우가 그렇듯 저 역시 캐릭터를 두고 늘 고민하죠. 이렇게 해볼까? 아냐, 이게 더 나으려나?
GQ 병은 배우의 그런 고민을 가리켜 “뻔한 캐릭터를 뻔하지 않게 연기하는 배우”라는 평도 있어요.
BE 그렇게 느끼셨다면 그건 감독님께서 허락해주셨기에···.(웃음) 늘 봐오던 전형적인 모습으로 갈 것인가, 낯설더라도 반대로 갈 것인가. 이건 제 감이기도 하지만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만들어지는 게 더 크거든요. 캐릭터 하나가 아닌 작품 전체를 생각하는 연출자의 의도를 따라가는 게 맞으니까.
GQ <선산>의 ‘박 형사’는 어땠어요? 어, <시민덕희>에서도 형사로 분하죠?
BE 재미있는 게 두 작품에서 다 ‘박 형사’로 나와요.
GQ 두 박 형사를 어떻게 달리 연기했을지 기대되네요.
BE 제 친구 중에 강력계 형사가 있어요. 그런데 직업을 모르고 보면 그냥 동네 아저씨거든요? 강력계 형사라는 게 전혀 매치되지 않을 정도로 그냥 평범한 아저씨. 운동화에 오리털 파카 입고 다니고. 그 친구를 떠올리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우리가 너무 형사라는 이미지를 고정해놓은 건 아닐까?’, ‘영화나 드라마에서 만들어진 이미지만 보고 딱 정형화하는 건 아닐까?’ 그래서 <시민덕희> 때 감독님께 슬쩍 말씀드렸죠. 살금살금 가서 조심스럽게. “감독님, 제가 생각해봤는데 직업이 형사인 거지, 생활은 다르지 않을까요?” 일반적인 직장인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고, 박봉에 시달리는 모습도 있지 않겠냐고.
GQ 감독님의 대답은 어떻던가요?
BE 다행히 흔쾌히 동의해주셨어요. 너무 좋다고요. 그래서 <시민덕희>에서는 그런 모습의 형사를 연기했어요. 맨날 피곤하다는 말을 달고 살고, 또 피곤하니까 하루에 믹스커피 8잔, 10잔씩 마시는. 그런 소시민이요. 반대로 <선산>에서는 전형적인 형사로 나와요. 되게 진한 인물인데, 공개 전이라 많은 이야기를 해드릴 순 없지만 아무튼 그래요.

캐시미어 니트 재킷, 배리. 링, 톰 우드. 화이트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선산>에서 박희순 배우와 함께했죠? 친분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BE 만나서 술 한잔씩 하는 형인데, 그래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아! 그 형 첫 낚시도 제가 데려갔어요. 공유랑 셋이서. 서천에 민박집 딱 잡아두고 낮에는 낚시하고, 밤에는 소주 마시고. 근데 그때 희순이 형이 고기를 제일 먼저 잡았어요. 게다가 많이 잡고. 아니 처음 갔는데!
GQ 낚시가 그렇더라고요? 신기하게 처음 해보는 사람들이 더 잘 잡아.
BE 내 말이. 그 형 낚시도 되게 힘없이 해요. 하기 싫은 거지. (귀찮아 하는 듯한 표정을 따라 하며) 이렇게, 이렇게 낚싯대도 설렁설렁, 이렇게 하라니까 그냥 들었다 놨다 하는 거야. 그런데 또 물고기는 잘 잡아. 그때 세 마린가 잡았을 거예요. 그것도 참돔. 나랑 공유는 눈에 불을 켜고 해도 딱 한 마리 잡았고. 근데 우리 무슨 얘기하다가 이리로 빠졌어요?
GQ (웃음) <선산>요.
BE 아, 어쨌든 그래서 친한 선후배들하고 작품에서 만나면 시너지가 더 좋더라고요. 서로 연기 호흡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또 어떻게 하면 더 보탬이 될까, 이걸 계속 찾는 사람들이라 더 그런 것 같아요.
GQ “어떻게 하면 더 보탬이 될까, 계속 찾는 사람들”이란 표현, 너무 따뜻하네요.
BE 그래서 요즘에는 저도 리액션 열심히 하려고 해요. 이게 연기할 때 리액션이 있는 거랑 없는 거랑 많이 다르거든요. 카메라가 내 연기만 잡을 때 상대방이 앞에서 대사를 해주는데, 그냥 읽어주는 사람이 있고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데도 감정을 전부 쏟아가며 해주는 사람이 있어요. 근데 그거 알거든요. 그렇게 해주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게 얼마나 큰 배려인지. 당연히 감동받죠. 받을 수밖에요. 그러면서 배우와 배우 사이에 신뢰가 확 생기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도 ‘되게 좋은 사람이구나’ 싶은 마음도 생기고요.

오버사이즈 재킷, 프롬 아를. 안경, 린드버그.

GQ 올해로 24년 차더라고요. 마음을 다잡아온 시간이 수도 없겠지만, 그럼에도 새해가 되면 새 다짐을 하겠죠?
BE 제가 그런 게 별로 없어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없어요.
GQ 사실 그래도 되죠 뭐.
BE 뭔가 큰 계획이나 다짐을 하기보다 그냥, 그냥 그런 거 있잖아요. 하루하루 별일 없이. 굳이 행복할 필요도 없고, 그냥 무탈하게, 무난하게. 그렇게 소소하게 지내는 게 좋더라고요.
GQ 그래서 이렇게들 말하나 봐요. “행복이 별건가.”
BE 이런 거 있잖아요. 주변을 봐도 왜 더 많이 경험해야 하고, 더 많이 배워야 한다고 말하고. 너 지금 그러면 안 돼, 그렇게 살면 안 돼. 아니 하다못해 행복도 더 행복해야 한다고들 말해요. 그런데 전 조금 다른 것 같아요. 한 달 동안 뭐 한 게 없어, 막 즐거웠던 적도 딱히 없어. 한 달 전에 내 생일이었는데 생각해보면 그렇게 안 즐거웠어. 그런데 그럴 수도 있죠. 한 달 동안 뭐 안 할 수도 있죠. 안 즐거울 수도 있고요. ‘이래야 한다’는 강박에서 좀 자유로운 사람인 것 같아요 저는. ‘어떻게 맨날 행복할 수 있고 기쁠 수 있겠는가’ 그런 마음으로 사는 것 같아요. 그래서 행복하지 않다? 아니요. 저는 지금 이런 제 마음이 좋아요. 이런 태도라서 행복한 것 같아요.
GQ 연기를 대하는 태도도 비슷한가요?
BE 그렇죠. 그런 것 같아요.

스웨터, 제냐. 슈즈, 토즈. 데님 팬츠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언젠가 “마흔이 넘어서부턴 현장 가는 게 설렌다”고 했죠?
BE 이전에는 살아남기 위해 연기를 했어요. 오디션 봐서 겨우 붙은 역할인데 그것도 단역 혹은 조단역인데, 내가 이 작품에서 못하면 다음이 없어지거든요. 그렇게 치열하게 ‘배우일’ 을 하다 보니까 어느새 마흔이 돼 있더라고요.
GQ 그럼 설렘이라는 감정은 언제, 어디서부터 생기던가요?
BE 음, 그런 절박함, 부담감, 두려움들이 점철되다 <암살>이라는 작품을 만났어요. 그 작품이 잘되면서 처음으로 오디션을 보지 않고 작품을 받게 됐는데, 그래도 2~3년은 똑같았던 것 같아요.
GQ 왜요?
BE 웃긴 게, 오디션 보며 작품을 찾아다닐 땐 그것대로 걱정이 있었는데, 또 작품을 받게 되니까 이번엔 ‘나한테 작품이 들어왔는데 이걸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새로 생기는 거죠. ‘아, 이러다가는 이거 끝도 없겠다’ 싶었어요. 그 후로 ‘내려놓자, 내려놓자’ 마음속으로 계속 되뇌곤 했어요. ‘너 60, 70까지 이렇게 힘들게 연기할 거 아니잖아’ 하면서. 그때부터 변하더라고요. ‘연기가 괴롭기만 한 건 아니구나’라는 생각도 하게 될 만큼.
GQ ‘설렌다’는 지금의 태도로 만나고 싶은 장르가 있다면요.
BE 로맨틱 코미디요. <이번 생은 처음이라>라는 작품을 굉장히 재밌게 찍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유의 작품을 한 번 더 해보고 싶어요. 다른 쪽으로는 밑도 끝도 없이 감정적인 작품. “나 이 이상은 안 나올 것 같아”라는 말을 감히 할 수 있을 정도의 작품, 그런 거 해보고 싶어요.
GQ 마지막 질문은 이렇게 묻겠습니다. 박병은을 두고서 하는 반응 중 “다작 배우”라는 말에 동의하나요?
BE 작품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늘 컸어요. 그래서 저는 지금이 다작인 것 같지도 않아요. 당연히 버겁거나 힘들지도 않고요. 행복해요. 감사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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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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