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여왕 엄정화가 눈 뜰 때

2008.07.17장우철

엄정화가 눈을 떴다. 멀리서부터 들리는 소리는 디스코였다. 마침내 엄정화는 온몸에 찬란한 디스코 리듬을 달고, “나는 엄정화다!”외치려 한다. 엎드려 경배하지 말라. 일어나 여왕의 재림을 몸으로 맞으라.

검정색 드레스는 켈빈 클라인 컬렉션

검정색 드레스는 켈빈 클라인 컬렉션

얼굴이 밝진 않다.
정신없이 종일 왔다갔다 했다. 앨범 준비랑 이사 가는 게 겹쳐서….

어디로 가나?
유엔빌리지. 환경은 좋은데, 거긴 기가 센 사람들만 살아야 한다고 들었다.

글쎄, 김완선 씨가 예전에 그 동네에 살긴 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정말? 하하.

오늘은 배우 엄정화에 대해선 아무 것도 묻지 않으려고 한다. 배우 엄정화와 가수 엄정화, 그게 스위치 켜듯이 되나?
따로 생각하면 된다. 나는 그 ‘따로’가된다.

가수 엄정화, 수두룩한 히트곡, 섹스 심벌, 어느새 관록의 이름, 새 앨범…. 그런데 사람들은 이미 이효리와 엄정화의 대결을 얘기한다.
하하. 음반시장도, TV 쇼도 침체된 느낌이다. 같이 나와서 뭔가 ‘업시키는’ 효과가 있다면 좋지 않을까? 대결이라는 말은…. 효리 같은 경우는 십대 이십대 폭넓게 팬이 있고, 내가 한창 가수 활동할 때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내게 효리 같은 팬들이 있는진 모르겠다. 나답게 멋지게 잘하고 싶다.

당신의 새 노래를 좋아할 사람들이 이효리의 팬들보다 나이가 더 들었을 걸로 보나?
그건 아니다. 굳이 대결이라고 한다면 내가 불리하지 않냐는 얘기다. 하하.

지난 8집과 9집이 이전보다 덜 성공적이었다는 불안도 포함되었나?
벽에 부딪혔던 게 사실이다. 이렇게 계속 갈 수 있을까, 내 목표는 끝까지 멋있는 가수로 남는 건데, 그럴 수 있을까? 좀 위태롭지 않나? 사람들이 쉽게 떠올리는 엄정화라는 가수가 없어진 것 같았다. 엄정화 하면, ‘페스티벌’, ‘포이즌’, ‘배반의 장미’같은 히트곡이 떠오르는데, 8집과 9집은 제외된 느낌이 들었다. 이번엔 쉽게 기억하는 ‘엄정화’ 쪽으로 좀 더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양현석이 프로듀서라는 건 의미심장하다.
빅뱅의 노래들을 처음부터 좋아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왜 내가 얘네 생각을 못했지? 얘네한테 곡을 달라고 해야겠어’ 이런 생각이 들어서 양현석에게 전화를 했다. “나 앨범 준비하는데 곡 하나만 써줘라. 너무 너네끼리만 하지 말고 나도 좀 써줘”그랬다.

하하, 말투도 지금처럼 새침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양현석이“그래 좋아”그랬다. 작업실로 찾아갔더니, 프로듀서가 누구냐고 해서, “글쎄 아직 잘…. 내가 해야 할지….” 그랬더니 갑자기 양현석이 “내가 프로듀서 할까?”하는데 너무 좋아서 다 맡기겠다고 했다. 내일 마지막으로 G드래곤이 쓴 곡을 녹음하면 끝난다. 이젠 나만 잘하면 된다.

사실 양현석 얘기가 보도되었을 때 힙합일까봐 ‘걱정’을 했다. 지금 엄정화는 디스코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진짜?‘ 인생 뭐 있어? 이걸 들을 땐 걱정하지 말고 춤춰봐, 놀아봐. 우리 웃어야 하지 않겠어?’ 이런 노래를 하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맞아, 엄정화가 있었지!’하는 존재감을 다시 알리고 싶었다. 두 앨범으로 흡족하게 활동을 못해서 더 그런 것 같다. ‘컴 투 미’제목은 모르면서‘팬티’얘기만 했으니까.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당신이 그때 팬티를 벗는 퍼포먼스를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벗었더니 또 팬티, 벗었더니 또 팬티, 또 벗었더니 결국 쫄바지 뭐 그렇게. 우스개지만, 당신이 ‘컴투미’ 활동을 조금 밖에 하지 않은 게 좀 뭐랄까, 분했다.
웃긴 일이었다. 삐쳤다기 보다는 솔직히 곡에 대한 반응이 예전 같지 않아서 재미가 없었다. 사실 난 방송활동 자체가 그다지 재미없다. 안 하면 홍보가 안 되니까 하긴 하지만, 콘서트가 너무 하고 싶었다. 지금도 그렇다. 완전 버라이어티 ‘쌩쇼’를 하고 싶다.

‘쌩쇼’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뱀쇼, 물쇼, 불쇼.
하하, 그런 것들이 다 있는 쇼. 뱀은 빼고.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노래가 있는데, 당신이 지금 그렇다. 웃음소리는 나는데 계속 시무룩해 보인다.
오늘 고민이 좀 많다. 노래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는데, 스타일이나 무대나 안무도 그렇고 뭔가 뭉툭하게 잡고는 있는데, 세부적으로 잘….

그런 고민이라면 많이 해도 좋다. 엄정화가 ‘최고’를 하는 건 너무 당연하니까. 그런데 혹시 당신이 본격적인 싱어송라이터나 프로듀서가 아니라는 한계를 느끼진 않나?
그런 건 전혀 없다. 나한텐 아이디어가 있고 프로듀서를 정할 수 있는 느낌이 있다. 내 노래를 빨리 쓰고 싶다는 생각은 없다. 보사노바 느낌의 곡을 써서 앨범을 내면 어떨까 생각하긴 한다.

미안하다. 안 했으면 좋겠다.
그렇지? 근데 보사노바를 정말 좋아하긴 한다.

다시 이번 앨범 얘기를 할까?
누가 그랬다. “언니는 지금 연기자로서도 좋은데, 왜 굳이 앨범을 내려고 하세요?” 글쎄 왜 내려고 할까, 왜 작품(영화나 드라마)을 안 하면서 까지….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왜 하려고 할까, 더구나 정말 불리한 상황인데…. 그런 문제에 부딪히니까 그냥 슬펐다. 녹음을 마치고 나면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한테 왠지 서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런 가수도 있었지, 엄정화라고 있었지, 섹시하고 신나는 노래 불렀지, 그렇게 기억되는 걸까? 왜 앨범을 내려고 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내 자신이 그렇게 끝내고 싶지 않고, 멋있게 계속 새롭게 가고 싶다는 것만 확실하다.

무슨 소린가, 엄정화는 그야말로 엄정화다. 더구나 당신은 앞으로 나가고 있다. 다만 당신이 말한‘새로움’이라는 덫에 빠지지만 않으면 된다. 새롭다는 건 그저 새로울 뿐이기도 하니까. 문제는 앞으로 나가는 거다.
8집을 하면서 내 자신이 굉장히 진보했다고 느꼈다. 동시에 정말 새로웠다. 그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8집을 다시 들어보라고 말하면 어떨까?
그렇다. 다시 들어보라고 말하겠다.

누구나 말하듯이 지금 대중음악은 힘들다. 당신은 엄정화다. 힘을 내야 한다.
지금은 딱히 ‘히트곡’이 없는 시대 같다. 폭넓게 즐기는 노래가 없는 거다. 예전의 김건모의 노래처럼, 그래, 예전의 엄정화의 노래처럼 그런 게 없다. 가수들도 지쳐 보인다. 얼마 전에 윤상 오빠가 “앨범내서뭐해?” 그런 얘기 했을 때, 너무 가슴이 아팠다. 윤상 같은 뮤지션이 음반을 만드는 데 의미를 못 찾는 상황이 슬프다. 그런 사람들이 없어지면 안 되지 않나? 엄정화가 없어지면 안 되지 않나?

언젠가 당신이 선배들의 부재에 대해 얘기한 게 생각난다. 나미, 민해경, 김완선…. 사실 인터뷰 초반에 이효리와의 대결이니 뭐니 얘기했지만, 당신에게 얼마나 외로운 얘긴지 짐작한다.
고마운 얘기다. 내 자신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다. 당신 말처럼 나는 엄정화니까.

인터뷰 제목을 명성왕후가 ‘나는 조선의 국모다’한 것처럼 ‘나는 엄정화다’라고 해야 할까?
맘에 든다. “나는 엄정화다. 조선의….”하하.

얼마 전에 나미의 베스트 앨범이 나왔다. 반가운 일이지만, 어쩐지 후일담 같아서 쓸쓸하다. 나이가 문제는 문제일까?
어떨 땐 나도 무대에 나가면서 ‘이렇게 입고 나가도 될까?’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니 그럼 어떻게 입고 나가? 정장 입어? 미친 거 아니야?’ 마음을 고친다. 뭔가 그 나이답게 가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없애고 싶다.

당신의 나이가 열 몇 살이었을 때는 어땠나? 제천(엄정화의 고향) 의림지에서 뭐 하고 놀았나?
공상하기 좋아했다. 엄마 매니큐어통 거꾸로 쥐고 막 가수인 척 하면서…. 충북 제천에서는 “난 꿈이 가수야”라고 얘기할 상황이 아니었다. 이룰 수 없을 줄 알았다.

이른바 ‘지방’ 출신이라는 컴플렉스가 있나?
없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풀 냄새, 흙 냄새, 나는 사계절의 냄새도 알고, 비 오기 전에 나는 먼지 냄새도 안다. 들에 눈이 쌓이면 어떤 모양인지 알고, 그게 녹으면….

또한 당신에겐 뉴욕의 패션 트렌드가 어쩌구 하는 소위 ‘패셔니스타’ 이미지도 겹친다. 음, 이렇게 말하겠다. 엄정화는 그런 거 안 했으면 좋겠다고. “오늘 의상 컨셉트는 뭐고요” 그런 건 정말 ‘애들’이나 하는 거 아닌가?
그런 거 물어보면, “알아서 뭐하게요? 카메라 치우세요, 알아서 생각하세요” 이럴까? 하하.

하고 싶은대로. 그런데 당신이 지금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면, 솔직히 좀 귀엽다. 엄정화와 사랑에 빠진 남자들은 어땠나?
일을 굉장히 좋아했다. 나는 굉장히 집착했고.

집착은 사랑이 아니라지만, 완전무결하게 독립될 수 있을까? ‘쿨해서 죽는’ 그런 사랑?
그렇지? 그렇게 안 하면 또 재미없으니까. 배울 게 있는 남자를 좋아했다. 결혼은 모르겠다. 하지만 연애는 늘 하고 싶다. 어떻게 연애를 안 하고 사나.

그래도 일단 지금은 연애보다 새 앨범이 문제다. 오랜만에 춤 연습하니 어떤가?
내춤은 뭐, 예전에도 효리처럼 막 그런 춤을 췄던 건 아니니까. 무대에서 즐기고 싶다. 막 “내춤봐라~” 하하, 이런 건 싫다. 그런데 사람들이 기대를 할까?

글쎄, 심증은 있는데 물증은 없다. 뚜껑을 열어볼 수밖에. 그런데 오늘 촬영한 사진 느낌과는 너무 다른 얘기만 한 것 같다. 음, 당신 허벅지를 좋아한다고 하면 실례인가?
어머 야해. 하하.

예전에 <GQ>와 인터뷰했을 땐, 더 한 얘기도 많이 했는데?
그랬나? 나도 내 허벅지 좋아한다. 두꺼운 내 허벅지가 나도 참 좋다.

나를 기다리세요? 엄정화는 짧게 웃었다. 사람들이‘가수 엄정화’를 기다리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무슨 소리냐, 엄정화가 어디 갔느냐, 답했다. 엄정화는 다시 짧게 웃었다. 그리고 벌어진 치맛자락 사이로 왼쪽 무릎을 꺼냈다. 흰색 드레스는 켈빈클라인 컬렉션. 뱅글은 버버리 프로섬

나를 기다리세요? 엄정화는 짧게 웃었다. 사람들이‘가수 엄정화’를 기다리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무슨 소리냐, 엄정화가 어디 갔느냐, 답했다. 엄정화는 다시 짧게 웃었다. 그리고 벌어진 치맛자락 사이로 왼쪽 무릎을 꺼냈다.
흰색 드레스는 켈빈클라인 컬렉션. 뱅글은 버버리 프로섬

    에디터
    장우철
    포토그래퍼
    홍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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