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김옥빈은 악녀다?

2017.05.23이예지

조폭, 검사, 사기꾼, 슈퍼맨, 온통 남자들만 드글드글한 한국 영화판에 여성 원톱 액션 영화 <악녀>가 개봉한다. 그 주인공은 김옥빈이다. 그녀는 살아 있고, 오늘밤 으흐흐 웃는다.

가죽 트렌치 코트는 로우클래식, 롱 부츠는 페라가모.

곧 출국이죠? <박쥐> 이후 8년 만에 칸 영화제에 가네요. 네. 소식 들었을 때 할 말을 잃었어요. 박찬욱 감독님이 축하한다고 문자를 보내주셔서 더 기뻤죠. <박쥐>로 갔을 땐 뭘 모르고 잠만 잤거든요. 밖에 모니카 벨루치, 잭 니콜슨이 있는데 ! 이번엔 제가 좋아하는 배우 제시카 차스테인이 심사위원이니, 죽어라 눈 뜨고 있으려고요.

제시카 차스테인! 올해 개봉한 <미스 슬로운>도 좋았죠? 엄청요. <졸린> 때부터 반했어요. 가만히 있을 때는 고전 영화 속에 나올 법한 미인인데, 웃을 땐 아기 같고, <미스 슬로운> 같은 영화에선 참 단단하죠. 연기할 때 레퍼런스로 삼는 배우예요.

그러고 보니 이미지가 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요. 하하, 제가 그런가요?

이번엔 <악녀>에서 ‘악녀’ 숙희를 맡았죠. 사실 반어적인 제목이에요. 오히려 너무 착한 여자죠. 둘러싼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악녀가 될 수밖에 없는. 저랑 성격이 반대여서 답답하기도 했어요.

옥빈과 숙희는 반대다? 정말로요! 저는 답답한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든 돌파하려고 해결책을 찾고, 죽이 됐든 밥이 됐든 부딪쳐! 이런 사람인데 숙희는 억압하는 체계에 순응해온 인물이니까. 그런데 그런 사람도 지키고 싶은 게 있을 땐 뭔가 막 악해지기도 하잖아요. 착한 사람이 화내면 더 무섭듯이.

뷔스띠에 보디 수트는 라펠라.

여태까지 맡은 강한 캐릭터의 최종 보스 격이 아닐까 예상했는데요. 아니에요. 그건 <박쥐>의 태주예요.

태주가 이기나요? 태주가 이겨요. 물론 액션으로 붙으면 숙희가 이기겠죠. 하지만 멘탈이 달라요. 태주는 아이 같으면서도 소악마적 기질이 있잖아요.

그동안 어둡고 강한 캐릭터를 많이 해왔어요. 태주뿐 아니라 <유나의 거리>의 소매치기 유나, <시체가 돌아왔다>의 반항아 동화도 그렇고. 이런 캐릭터에 좀 더 마음이 가나요? 마음이 가는 캐릭터는 그때그때 다른데, 안 하고 싶은 캐릭터는 확실히 있어요. 힘이 없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나아갈 방향성을 못 찾는 캐릭터들. 자기 생각을 또렷하게 얘기할 수 있는 캐릭터를 좋아하죠.

한국영화에 이런 여자 캐릭터가 참 없죠. 정말 없어요. 왜 그럴까 계속 생각해봤는데, 모르겠어요. 유교사상 때문인지 뭔지. 남자들은 자기주장이 강한 여자가 나오면 두려워하는 걸까요? 어찌 됐건 자신의 지배하에 놓고 싶어 하죠.

김옥빈이라는 이름에도 사회적 억압이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한다는 이미지가 있죠.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려 해요. 나는 뭘 좋아하고 뭘 하고 싶은 사람인지 잊지 않는 거죠. 내가 이렇게 하면 좋아하겠지? 이렇게 하면 예뻐 보이겠지? 이렇게 바깥에서 나를 바라보면 안되더라고요. 나로부터 나를 봐야 해요.

가죽 재킷은 칼 라거펠트, 블랙 레이스 원피스는 디스퀘어드.

어릴 때부터 단련된 걸까요? 바이크를 타고 등하교를 했고, 경찰이 꿈이었고, 복잡한 기계도 잘 다루고, 어떻게 보면 사회에서 주어지는 젠더 규범에서 조금씩 비껴나 있는 것들이잖아요. 처음에는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도 많았어요. 여성에게 기대하는 모습과 반대 노선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요즘은 젠더의 영역이 무너지고 있잖아요? 최근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활동 중인 김기수 씨, 너무 멋있어요. 점차 가정이나 일터에서도 고정된 성 역할이 없어져야 한다고 봐요.

할리우드에서는 <고스트 버스터즈>처럼 젠더 스와핑된 영화도 많이 나오고 있죠. 한국에서도 그런 시도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최근엔 <히든 피겨스>도 너무 좋았고,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샤를리즈 테론은 최고죠. 조금만 생각을 열면, 다양한 여성 캐릭터가 생산될 수 있는데 말이에요.

일단, <악녀> 같은 여성 원톱 액션 영화도 거의 처음이죠. 여자는 술집 마담이거나 희생자거나. 그러니까요. 여성에게 주어지는 캐릭터들은 굉장히 한정돼 있어요. 제가 <악녀>를 잘 해내야지만 다음에도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가 많이 나올 수 있겠구나, 책임감이 들기도 했죠. “여자한테 액션을 시켜놨더니 폼도 안 나잖아, 금방 다쳐버리잖아” 같은 소리나 들을 순 없잖아요? 부상 없이 잘 해내야지, 다짐했어요.

대역 스턴트는 얼마나 썼나요? 정말 위험한 장면을 제외한 95퍼센트는 제가 다 했어요. 감독님이 제가 팔다리가 길어서 직접 하는 게 더 멋있대요. 이거 내 자랑인가? 웬만하면 옥빈 씨가 하라고 해서 그냥 거의 다 했어요. 좀 속은 기분이지만 뭐, 하하.

합기도, 태권도 유단자에 복싱과 무에타이까지, 기본기가 탄탄하죠? 자세를 배우고 하루 연습하면 구현할 수 있는 정도? 그런데 영화와 현실은 달라요. 영화 액션은 상대를 타격하면 안 되기 때문에 힘 조절을 해야 하고, 앵글 안에 잡혀야 해서 동작이 한정되어 있죠. 그래서 오히려 어려웠달까. 영화에서나 멋있지, 실제라면 맞아죽기 딱 좋아요.

점프 수트는 칼 라거펠트, 벨트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액션 영화도 원래 좋아했나요? 좋죠. 신나잖아요. 흥 나고 볼거리도 많고. <와호장룡>의 장쯔이와 양자경 정말 좋아해요. <악녀> 들어가기 전에는 여자 액션 영화는 다 찾아봤어요. <킬 빌>이야 당연하고, <루시>, <한나>, 미드 <미씽> 등등. 도움이 됐죠.

개봉 시기로는 <원더우먼>이랑 맞붙을 텐데. 음, 원더우먼…. 잔인하기로는 제가 더 하죠. 유혈이 난무할 테고. 제가 더 많은 사람을 죽입니다. 하하하.

남자들과 붙으면 강인한데, 여자들과 붙으면 다정한 느낌이 있어요. <유나의 거리>에서 유나를 따르던 소녀들도 그랬고, <여배우들>에서는 김민희에게 “전 여자끼리 사랑하는 영화 찍고 싶어요. 언니 저랑 할래요?”라는 대사가 있었죠. 애드리브였나요? 네, 제가 그냥 한 말이에요.

그런데 김민희는 이미 <아가씨>에서 했네요. 김옥빈 없이. 그랬더라고요. 하하하. 배역과 너무 잘 어울리고 연기도 정말 잘했고. 언니 상 받을 때도 축하한다고 했어요. 꼭 퀴어 영화가 아니더라도, 여성들과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영화를 해보고 싶어요. <델마와 루이스> 정말 좋아하거든요. 나 너랑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같은 느낌! 너무 하고 싶은데 없어요. 제발 좀 누가 만들어주세요!

여성끼리의 관계성이 돋보이는 영화를 찍는다고 쳐요. 함께해보고 싶은 배우가 있나요? 음…. 서현진 씨. 요즘 드라마 나오는 모습을 보면 되게 사랑스럽고 귀여워서 같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한효주 씨. 여성스러움이 극대화된 이미지잖아요. 저랑 동갑인데 정반대 이미지라 호흡을 맞춰보고 싶어요. 반대로 놓고 보면, 진경 선배님. 카리스마 넘치고, 기대고 싶기도 해요. 보통은 남자 배우를 묻던데, 재미있네요. 하긴 그럼 저도 별 대답을 안 하지만요. 하하.

점프 수트는 칼 라거펠트, 벨트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좀 더 사적인 이야기가 궁금해지네요. 혹시 타투가 있나요? 있을 것 같죠? 하고는 싶었지만 없네요. 해보고 싶었던 건 햄토리!

햄토리요? 귀엽잖아요. 어린아이가 봐도 무서워하지 않을 것 같고, 좋아하는 거니까 후회도 안 할 것 같고.

어디에 하려고 했어요? 발등.

발차기를 하면 햄토리가 딱…. 하하, 언젠가 보게 될 수도요!

처음 만났지만, 어쩐지 한결 침착하고 완곡해진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사실 배우라는 직업이 편한 일은 아니잖아요. 연기가 하고 싶어서 이걸 시작한 건데 그 외의 것들을 견디는 게 보통이 아닌 거예요. 밖에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이상하게 소문이 날 수도 있고. 그렇다고 연기를 그만두고 싶지 않으니, 마음을 바꿔보려고 책도 보고 명상 센터도 가봤죠. 내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는 법을 배웠어요.

신경을 안 쓰는 쪽으로? 제가 가장 잘 쓰는 방법은요, 어떤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있을 때 혼자 아 짜증나! 이씨! 하고 욕하기도 하잖아요. 그럼 그 생각을 잠시 두고, 내가 생각하는 모습을 밖에서 본다고 생각해보면 되게 웃겨요. “그래 뭐 해봐, 계속해봐. 이 생각을 계속해서 어떻게 할 건데?” 이렇게 팔짱끼고서요. 하하하.

그렇게 물으면, 김옥빈은 어떻게 대답하나요? 어차피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다고. 열 명 중 여섯 명이 나를 좋아한다면, 그건 행복한 일이잖아요? 네 명은 왜 날 안 좋아할까를 고민하는 건 정말 무의미한 거예요. 그런 것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보면 꼭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그건 죽었다 깨어나도 안 된다!

 

    에디터
    이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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