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웅은 주류 배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음을 띤 눈가 끝의 어둠을 감추지 못한다.
촬영이 무척 힘들었나 보다. 중간에는 잠시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미안하다. 표정이 관리가 안 됐다. 아무래도 이런 식의 화보촬영이 처음이다 보니 더 그랬다.
이런 식의 화보촬영이라는 게 무슨 뜻인가?
상황이 내 통제 아래 있지 않은 것 같았다는 의미다. 배우는 모델이 아니지 않나. 자연스러운 모습을 요구받는 게 오히려 더 부자연스러운 감이 없지 않다.
상황이 꼭 통제 아래 있어야 마음이 놓이는 편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 평소에는 그렇지 않은데 오늘 좀 예민했던 것 같다. 일단 너무 피곤하기도 하고 말이다.
어제 늦게까지 스케줄이 있었나 보다.
어제 그저께 <놀러와>, 어제는 <상상플러스> 녹화가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일정이 내게 얼마나 큰 스트레스인지 모른다. 한번 하고 나면 계속 잠만 오고, 기운 쪽 빠지고, 그런다.
녹화시간도 우리가 실제 보는 거보다 두 세 배 길 것 같다.
녹화시간도 길고, 평소 안 하던 걸 하려니까 힘든 거다. 긴장이 얼마나 되던지. 웃기지도 않은데 계속 웃고 있어야 하니까 그것도 곤욕이다.
당신 인터뷰를 보면‘그는 굉장히 과묵했다’식의 수사가 자주 등장한다. 말하기 싫은 건가, 말해봤자 소통에 이를 수 없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아니면 자의식이 강한 건가?
말이 많은 편이 아니다. 그래도 누가 묻는 건 성실하게 대답하는 편이다. 아마 내가 미리 대답을 정해놓고 가는 편이 아니라 기자들이 그렇게 느끼는 걸 수도 있다. 난 오늘 인터뷰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해야겠어, 라고 미리 생각해놓고 자리를 찾지 않는다.
연기를 꽤 늦게 시작한 편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고등학교 졸업하고부터 배우가 되고 싶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좀 늦어버렸다. 학교도 워낙에 늦게 갔었고, 백수 생활도 꽤나 길었다. 연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만 있었지 뭔가 적극적으로 상황을 바꾸려 행동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냥 언젠가부터 뭔가 일이 술술 풀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왜, 사람이 일을 하게 되는 시기라는 게 있다고 하지 않나. 내겐 그 시점이 남들보다 늦게 찾아온 모양이다.
본인을 빼면 가족이 모두 여자다. 남자와 있을 때보다 여자랑 있을 때 더 편하진 않나?
가족이다 보니 집에 있을 때 편한 건 당연한 거고. 그렇다고 해서 연애에 있어서 뭔가 여자의 심리를 잘 이해하고 있고,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남자 숲에서 자란 사람들보다는 여자의 행동양식에 대해 좀 밝은 면이 있겠지. 항상 봐왔던 게 여자들이니까 말이다.
이번에도 감독부터 배우까지, 당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여자인 현장에서 작업하지 않았나? 임순례 감독의 신작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말이다.
크게 불편한 건 없었다. 문소리 씨, 김지영 씨, 김정은 씨, 그리고 나까지 모두 74년생 동갑내기라서 마음이 편했고, 나머지 동생들은 그저 동료 같았다. 하지만 심심한 건 있었지. 남자배우들과 있을 때 느끼는 그런 재미를 공유할 순 없는 거니까. 뭐, 따지고 보면 불편했다기보다 그냥 이번 영화 현장의 특성이었던 것 같다.
여성들만 있는 조직에서 살아남기란 참 힘든 일이다. 그들에겐 이상하게‘남성적으로’ 폭력적인 구석이 있다.
남자 숲에서 여자 하나는 견뎌도, 여자 숲에서 남자 하나는 못 견딘다고 하지 않나. 나도 들은 풍월이 있으니 그런 요소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조직적인 문제를 피부로 직접 느껴본 일은 없다. 내가 조직생활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다. 그런 점에 있어선 고교 졸업생이나 나나 다를 게 없을 거 같다. 물론 연기도 사회생활이지만 직장생활에서 느끼는 조직문화를 체험할 일은 드물다.
회사 생활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단 말인가?
거의 아르바이트나 하는 수준이었지. 군대는 다녀왔다. 하지만 그거야 다들 다녀오는 거지 않나. 거기서 열심히 생활했던 것도 아니고 그저 시간 때우다 온 것에 불과하다. 뭘. 백수로 지낸 시간이 워낙에 길었다. 집안에 돈 벌어오는 사람이 있으니까 가능했다.
그‘돈 벌어오는 사람’, 그러니까 엄정화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엄정화 동생’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여전히 많다. 아직도 어디 가면 저기 저기 왔네, 아니 쟤가 누군데, 왜 있잖아, 엄정화 동생, 이러는 대화가 다 들린다. 하지만 그거야 누나가 먼저 태어났고, 또 너무 잘해오지 않았나. 누나는 정말 내가 생각해도 자랑스러운 최고의 가수였고, 지금도 너무 큰 존재다. 지금 내가 일을 하고 있고,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도 했지만, 10년이 지나도 누나의 존재감은 사그라들지 않을 거 같다. 내가 만약 지금 일을 못하고 있는 백수였다면 또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지금 상황에선 그저 자랑스럽다는 생각뿐이다.
하지만 너무 잘난 형제는 미운 법이다.
내가 고등학교 졸업했을 때부터 누나가 활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어린 마음에도 누나가 참 자랑스러웠다. 어쨌든 누나가 생계를 일구고 집안을 일으켜 세웠으니 말이다. 참담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집안 사정이 여러모로 어려웠다. 우리 집은 뭐가 있을까. 돈도 없고 내가 뭐 공부를 잘한다든가 뭔가에 특출 나게 재능이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이런 고민이나 했었거든. 그런데 누나가 집을 바꿨다. 활동도 멋있게 잘 했다. 어떻게 자랑스러워하지 않을 수 있겠나. 일을 못했던 건 나의 문제인 거지, 누나가 도와주지 않았고 그녀의 그늘에 가렸고, 뭐 이런 게 전혀 아니다. 그냥 일할 시기가 아니었던 거고, 지금은 일을 하고 있으니 참 다행이라는 생각뿐이다.
이젠 당신도 집안의 생계를 돌보고 있지 않나. 전과 무엇이 달라졌나?
전에 없던 책임감과 부담이 생겼다. 남이 벌어온 돈 쓰고 살 때는 몰랐는데 내가 벌어온 돈 쓰려니까 아무래도 다르다. 또 누나가 해왔던 부분을 내가 물려받아 잘 해내야겠다는 생각이 있는데, 그 동안 누나가 원체 잘 해왔기 때문에 내가 그만큼 해낼 수 있을까 싶은 조바심도 들고 말이다. 요즘 특히 그런 걸 많이 느끼게 되는 거 같다.
그런 책임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
나이에서 오는 부담감도 있고, 아까도 말했듯 내 인생에 있어서 바로 지금이 일을 하는 시기라는 문제도 있는 거고, 여러모로 복합적인 거 같다. 일을 못하고 있었다면 이런 거보다 다른 게 먼저 답답했겠지. 시간과 환경이 어른을 만드는 거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 때문에 전에 못했던 경험을 하고 대처를 하고 그러지 않나. 그렇게 내가 알지 못했던 부분들을 알아가면서 어른이 되어 간다는 실감은 한다.
하지만 알지 못하던 걸 알아가면서 어른이 된다는 말은 너무 쉬운 정답이다. 어른이 모르는 걸 알고 있는 아이들도 많지 않나?
글쎄. 정답은 모르겠다. 누가 알겠어?‘ 난 몰라’할 수 없는 책임감, 내가 아니면 안 되는 게 늘어가는 건 사실이다. 당신도 그렇지 않나? 그러니까 스트레스도 받게 되고. 아무래도 조심스러워지고 신중해지고 그렇게 되는 거지.
어른이 된다는 게 여러모로 좋지 않다는 것처럼 들린다.
안 좋은 건데, 또 그러면서 보람도 있잖아. 아 내가 이제야 여태 공짜로 받은 걸 갚는구나, 그런 해소감도 있고 말이다.
가족관계로부터 오는 그런 책임감들 때문에 전에 없던 괴로움을 짊어진 친구들을 자주 보게 된다.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문제들을 만나게 된다. 직면하게 되는 거다. 정말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걸 마주친다. 그러고 보면 그거 참, 가족이란 게 뭔지.
당신의 롤모델은 여전히 안성기인가?
롤모델이라고 말하기에도 부끄러울 정도로 정말 독보적인 분이다. 하지만 안성기를 존경한다는 말은 한국의 배우에게 있어 나라를 사랑한다는 말처럼 너무 빤한 답변이다.어쩔 수 없다. 그는 훌륭한 사회인이고, 좋은 배우고, 좋은 가장이고,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사람이다.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싶다. 물론 굉장히 힘드시겠지. 그런데 사람이 그런 척하는 거랑, 그 사람 자체가 원래 그런 거랑은 딱 보면 어느 정도 보이지 않나. 그렇게 되겠다고 생각할 자신도 없을 정도로 완벽한 롤모델이다. 대한민국에서 배우로 살면서 저렇게 훌륭하게 살 수도 있는 거구나, 라는 경이로움도 갖고. 그냥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위로로 다가온다. 훌륭하다.
누군가의 훌륭함이란 어디서 오는 걸까?
어떻게 저렇게 연기할까 싶을 정도로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선배들이 많다. 그런데 그렇게 뛰어난 배우로서 현장에서 날아다니는 선배들이 실제 생활에선 너무 아프게 살아가는 경우를 종종 본다. 가슴이 아프다. 난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내가 원하는 삶은 실제 생활에서도 행복하게 사는 거다. 그게 진짜 훌륭한 게 아닌가 싶다.
지금 내 눈앞에는 성공하고 싶어하는 남자가 보인다. 성공의 가치를 어디에 두고 있나?
배우로서의 엄태웅에 한정해서 생각해보면 결국 매 장면 좋은 연기를 하는 게 성공일 거다. 하지만 내 인생 전체를 두고 보면 이 일을 천직으로 삼아 쭉 살아갈 수 있는, 그런 게 정말 행복이고 성공일 것 같다. 내가 지금 배우를 하고 있지만 이게 내 평생 직업이라고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는 거 아닌가. 일이 언제 어떻게 끊길지 모를 일이고 말이다. 그렇게되면 내가 다른 직업을 찾아 수입을 얻고 가족을 행복하게 해줘야 할 텐데, 자신이 없다. 배우가 평생 직업이 되고 그걸로 먹고사는 게 내게 있어선 진짜 성공이다.
연기가 천직이 아닐까 두렵지는 않나?
두렵다. 매번 작품 끝날 때마다, 장면 하나 촬영할 때마다 느끼는 문제다. 그럼 어휴, 이게 진짜 내 천직이 맞는 걸까, 내게 어떤 역량 같은 게 있긴 한 걸까, 하는 생각에 늘 괴롭고 아프다.
배우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건 실패를 의미하는 걸까?
그렇다고 해서 내 인생 전체가 실패로 매도될 순 없을 거다. 어떻게든 다른 먹고살 일을 찾을 거고. 하지만 당장 직업의 문제에 있어선, 그래, 실패가 맞겠지. 사업을 하다 망한 게 되지 않나. 실패가 두렵냐고? 그래 두렵다. 이게 나만 찍고 나만 보는 게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하는 건데 이걸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이게 방영되면 어떻게 될까 매번 전전긍긍한다. 하지만 결국 타협하는 게, 그래 난 지금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거고. 이렇게 해서 뭐가 안 될 거면 어쩔 수 없는 거라는 거다. 이번에 좀 부족했으면 다음에 잘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자기 확신이 있으니까 계속해서 노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그런 자기 확신은 어떨 때 느끼게 되나?
결국 그것도 일할 때 느끼게 되는데, 한 장면 끝내고 나서‘음, 요건 그래도 좀 괜찮았다’싶을 때가 있다. 가슴이 움직였던 거 같고 말이다. 그런 순간을 느끼는 게 재밌고, 그런 순간들이 조금씩 늘어가는 게 보람차다.
남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은 건가, 아니면 당신 마음이 움직이길 바라나?
일단 일차적으로는 내 마음이 움직여야 한다. 연기하면서 생각했던 감정이나 움직임에 만족하는 거고. 그게 잘 풀려야 다른 사람들에게도 잘 보이는 거 아니겠나. 내 자신이 만족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지금까지 해온 것 가운데 정말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자부하는 게 있나?
없다. 그게 영화든 드라마든 모두 이야기가 좋고 관객이나 시청자가 술술 따라가기 좋으니까 매번 잘 넘어간 거 같다. 앞으론 그런 경우를 꼭 만들어야겠지.
스스로에게 인색한 건가? 물론 배우에게는 필요한 자세이긴 하다.
아마 모든 배우가 그렇지 않을까? 한 장면 찍어놓고, 야 이건 정말, 야 난 역시 뭐 이러면서 미친 듯이 자화자찬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있다.
아, 있었구나. (웃음) 진짜 행복할 거 같다.
당신에게 있어서 세상에 절대 변할 수 없는 가치라는 게 존재하나?
글쎄. 어려운 질문이다.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 안 주고 착하게 사는 게 결국 가장 좋은 거고, 지켜야 할 가치가 아닐까 싶은데.
그렇게 살고 있나?
그렇게 못한다. 나 편하자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주고, 또 내가 많이 받기도 한다.
왠지 모르게 엄태웅이라는 남자는 무척 재미없는 사람일 거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재미없을 거 같다. 친구들에게는 재미있을 수 있지만 가장으로서, 또 남자친구로서는 재미없고 이기적인 남자인 게 거의 확실하다. 내가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아서 그렇지 감정 기복이 아예 없는 사람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타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여자친구가 심심하다고 그러던가?
말을 직접 하는 건 아니라도 그렇게 느끼는 경우가 많은 거 같다. 나는 옆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한 가지 생각에 빠지면 이상하게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빠져 있는 편이다. 사실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그 사람이 먼저 보이는 게 자연스러운 일일텐데, 난 왜 이런지 모르겠다. 아마 기본적으로 무척 이기적인 사람인가봐. 나는.
많은 사람들이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집에 가서 푸는 경향이 있다.
그거, 모른다. 정말 자기는 모른다. 대화를 안 하는 것도 결국 습관이다. 나라는 남자는 ‘딱 보면 확실히 뭔가 힘든 거 같은데 정작 내게는 별 이야기 안 하고, 그럼 난 있으나 마나한 존재인 걸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인 거 같다.
하지만 밖에서 얻은 갈등을 가장 가까운 사람과 대화를 통해 공유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의미의 스트레스일 수 있지 않나?
나도 그런 생각을 해봤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게 또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위로받고 싶어하지 않나. 그런데 상대방이,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이 그걸 먼저 알아채고 그렇게 행동해주지 않으면 마음이 상할 수밖에 없다. 아, 내가 생각해도 너무 이기적이다!
좋은 작품을 참 잘 만나왔다. <부활> <마왕>도 그렇고, <가족의 탄생>도 좋았다. 1월에 개봉할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도 기대가 된다. 김태용 감독이나 임순례 감독은 TV 스타에 가까운 당신의 어떤 부분에서 신뢰를 느꼈던 걸까?
충분한 믿음이라기보다 이 사람이 맡으면 재미있을 거 같다는 호기심이 절반 아니었을까. 김태용 감독 같은 경우가 딱 그랬다. 형석이라는 역할을 엄태웅이 하면 참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전부터 했었단다. 나도 <가족의 탄생>이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에서 재미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거 같다는 판단이 들었던 거고. 결국 서로 간의 계산이 맞아떨어져서 이뤄지는 거다.
<부활>과 <마왕>는 데칼코마니의 서로 다른 양면 같은 드라마였다. 그 안에서 복수하는 자와 복수 당하는 자를 모두 연기했다. 배우로서 무척 독특한 경험이었겠다.
하지만 복수, 용서 같은 주제의식들에 대해 남들 보다 많이 고민하지는 않았다. 해석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캐릭터나 드라마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별로다. 그 때 그 때 나오는 대본을 받아들고, 처음 느끼는 감정과 현장에서의 호흡에 따라 캐릭터를 만들어나갈 뿐이다.
요전 작품들 대부분이 장사에선 거의 죽을 쒔다. 이상하지 않나?
이상할 건 없다고 본다. 어쨌든 내가 하고 있는 게 대중예술이지 않나. 대중이 좋아하는 작품에는 뭔가 이유가 있는 거고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시청률은 좋은데 쓰레기 같은 작품이야, 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없다는 거다. 분명 그 시대에 맞는 정신과 요소가 있는 거다. 작품성에 대한 칭찬도 못 받으면서 대중에게까지 외면받는 작품은, 세상에, 너무 불행할 거 같다.
작품 보는 눈은 있지만, 출연하면 꼭 흥행에 실패하는 배우라는 수사로 굳어질까 걱정되진 않나?
그런 생각 왜 안 하겠나. 사람 이미지라는 게 있는데 말이다. 그렇게 될 수 있겠다는 고민 많이 해봤다. 하지만 그거야말로 정말 내 힘으로 되는 게 아니고, 불가항력의 영역 아닌가. 이 길을 쭉 가다 보면 이런 작품도 있고 저런 작품도 있겠지, 거기에 대해 온 신경을 쏟아 매달린다면 정상적으로 못 살 거 같다. 돌아버릴지도 모르고 말이다. 에이 모르겠다, 아무튼 늘 내게 주어진 것 가운데 최선의 작품을 골랐고, 앞으로도 그렇게 열심히 해 나갈 거다.
자기다짐처럼 들린다.
확신이 없어서 그런다. 흥행은 정말 알 수 없는 거다.
당신은 분명 대중 스타고 주류 배우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비주류의 정서와 그림자가 언뜻 비춰진다.
성격이다. 화려하거나 시끄럽게 왁자지껄한 거 별로 즐기지 않는다. 앞에 나서는 거 보다는 혼자 있는 게 좋고, 사람도 세 명 이상 만나는 걸 꺼린다. 싫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도 다 나랑 비슷한 종류인걸 보면 결국 타고나길 그렇게 생겨먹은 거 같다.
인간 엄태웅이 결국 이뤄내고 싶은 건 무엇인가?
행복한 가정이다. 그게 어떤 건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거나 예를 드는 건 힘든 일이다.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모든 게 잘 갖춰진 가정에서 내 자식들에게 많을 걸 보여주고 해줄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런 멋지고 행복한 가정을 꼭 만들고 싶다.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것처럼 들린다. 훌륭한 가정을 만들었다고 증명하고 싶은 건가?
내 자신에게 증명하고 싶은 거 같다. 아버지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없음으로 인해서 내가 못 받았던 것들을, 내 자식들은 빠짐없이 받길 원한다. 쉽진 않을 거 같다. 정작 난 그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잘 모르고 있거든.
대부분의 가장들이 그래서 결국 좌절하고 힘들어하는 것 아닐까.
내게 아버지가 있었다면 정말 남자답고 멋진 사람이 돼 있을 거라는 상상을 가끔 한다. 아버지의 부재로부터 오는, 어떤 찌그러진 것 같은 부분들이 날 소극적인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걸 내 대에서 끝내고 싶다. 내 자식은 나와 다른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는 열망이랄까, 욕심이랄까.
그 찌그러진 면모라는 게 남자가 가지고 있기에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꼭 그렇지는 않다.아니,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좀 더 적극적이었으면 좋겠다. 남을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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