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한국 영화와 배우들이 올해 칸 영화제에 갔다. 제일 큰 환영을 받은 이들은 언제나 그랬듯, ‘아름다운’ 여배우들이었다.
김옥빈은 올해 칸영화제에서 이름을 바꿨다. 공식적인 영문 이름을 Kim Ok Bin에서 Kim Ok Vin으로 변경한 것이다. <박쥐>의 칸영화제 홍보자료에도 Kim Ok Vin이라는 이름을 썼다. 오타가 아니다. 말을 듣자 하니 이미지 변신을 꾀하기 위해서란다. 이미지? 무슨이미지? 김옥빈이 해외에서 어떤 이미지라는 게 있기나 한배우였나? 한국 상황을 잘 아는 영국 영화업계지 <스크린인터내셔널>의 기자가 밥을 먹다 물었다.“ 왜 그녀는 Vin으로 이름을 바꾼 거지? 한글에는 V 발음 자체가 없잖아.”이미지 쇄신을 위한 전략이라고 말했더니 그는 말도 없이 키득거렸다. 한국 매니지먼트사들의 배우 홍보 전략이 종종상식을 넘어선다는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Bin을 Vin으로 바꾸는 언어 서커스는 효과도 없는 데다 우스꽝스럽기까지하다. 다행인 것은 김옥빈의 이름 바꾸기가 그녀에게 큰 실이 된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국적 기자들의 조찬 모임에서 몇 번인가 농담거리가 됐을 따름이다.
어쨌거나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박쥐>의최대 수혜자는 김옥빈이다. 박찬욱 아니냐고? 글쎄. 박찬욱의 <박쥐>는 심사위원상을 수상했지만 비평적으로는 별로 환대를 받지 못했다. 그가 상을 받기 위해 연단으로 나갈 땐 수십 명의 기자가 야유했다. 영국 감독 안드레아 아놀드와함께 수상자 기자회견에 참석했을 때 아무런 질문도 받지못하고 벙어리마냥 앉아 있는 박찬욱의 모습이 좀 측은하긴했다.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해외 비평가들은 어차피 황금종려상을 제외하면 어떤 상도 3년 이상 기억하지 않는다.(3년 전 칸영화제에서 어떤 영화가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는지 기억하시는 분?) 하지만 상보다는 해외 언론의 비평적인 성과를 얻어내는 편이 실질적으로는 훨씬 나은 일이었다는 건 말할 필요가 없다.
한국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송강호도 딱히 소득은 없었다. 칸의 한국 인터넷 신문 기자들은‘송강호 남우주연상 수상 실패’라는 제목의 기사를 한국으로 송고했지만 사실 송강호가 유력한 남우주연상 후보로 거론된 적은 거의 없다. 5년 전 ‘최민식 남우주연상 수상 유력’이라는 기사가 한국으로 송고되는 순간에도 최민식은 유력한 후보가 아니었다.(그해 남우주연상의 강력한 후보는 시작부터 끝까지 <아무도 모른다>의 야기라 유야였다. 올해 자크 오디아르의 영화에 출연한 프랑스 배우로, 제2의 로망 뒤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솔직히 말해 칸영화제에서 아시아계 남자 배우들이 주목 받는 일은 원체 드물다. 게다가 박찬욱 영화의 배우들이 펼치는 극적이고 과장된 연기는 칸에서 그리 환대 받지못하는 편인 듯도 하다. 칸은 좀 더 미묘하고 현실적인 역할을 한 배우들, 혹은 이름값 있는 유럽과 할리우드 배우들에게 보너스를 주듯 연기상을 안기는 경향이 있다.
김옥빈은 달랐다. 서구 기자들 중 몇몇은 그녀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할지도 모른다는 예측으로 나를 놀라게 했다.일본 기자 한 명은 물었다.“신인인가요? 정말 굉장한데요.” 나는 답했다.“신인 맞아요.”귀찮아서였다. 그녀의 전작들을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도 조금은 있었다.한국 상황을 잘 아는 영국 잡지 기자는 영화를 보고 나오더니 비명을 질러댔다.“ 김옥‘뷘’멋지던걸. 이전 작품들에서의 연기와는 너무 달라.”솔직히 말하자면 <박쥐>에서 김옥빈의 연기가 기술적으로 훌륭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대사를 전달하는 능력이 그리 농익지 않았다.(사실 대사자체가 좀 별로긴 했다.) 그러나 해외시장으로 나가는 순간 그녀의 대사전달력 따위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남는 건 이미지뿐이다. 칸 현지 언론이 박찬욱과 송강호보다 그녀에게 더 주목한 이유는 그녀가 <박쥐>를 통해 발현한 아시아 여자의 섹시함 덕분일지도 모른다. 정치적으로 불공정하게 받아들일 필요 없다. 아시아 여배우들에게 오리엔탈리즘을 가미한 섹시함은 아주 근사하고 효과도 썩 괜찮은 국제적 무기다.
그걸 결정적으로 증명한 건 배두나다. 비록 막판에 경쟁부문 진출에 실패하긴 했지만, 고레다 히로카즈의 <공기인형>은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의가장 큰 화제작 중 하나였다. 배두나는 이 영화에서 어느 날 갑자기 인간의 마음을 갖게 된 공기 주입형 섹스돌을 연기한다. 원래 배두나는 노출에 그다지 민감한 배우가 아니다.그녀는 몇몇 시퀀스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등장한다. 칸에서 만난 아시아 예술 영화 고정팬들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눈이 멀었다는 냥 호들갑을 떨어댔다. 그들에게배두나는‘아시아 팝컬처’의 빛나는 아이콘이었고 <공기인형>을 통해 영묘한 섹스심벌이 됐다.(이 영화로 배두나의 입지는 정말로 단단해질 게 틀림없다.) 김혜자의 경우는 더 재미있다. 한국영화에 관심 있는 기자들을 만날 때마다 똑같은 질문을 했다. 도대체 김혜자라는 배우가 어디서 왔는가. 매일매일 같은 질문을 듣다 보니 나중에는 답변 자체가 매뉴얼화되어 술술 나왔다.“ 김혜자는 지난 30여년간 한국의 소프 오페라 스타였으며, 특히 한국인들이 궁극적인 어머니상으로 손꼽곤 하는데 봉준호가 <마더>에서 그 이미지를 역으로 이용한 것이다.”그들은 김혜자가‘한국의 어머니상’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서구 평론가들은 김혜자의 나이를 적어도 열 살 이상은 젊게 보고 있었다. 그리고 젊은 엄마와 아름다운 아들의 근친상간적 관계를 한없이 의심하고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한다. 서구평자들은 엄마를 연기하는 아시아 중년 여배우에게서도 기괴한 섹슈얼함의 함의를 찾아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걸까.
영화제가 끝날 즈음 칸 마켓에서 이병헌이 조쉬 하트넷과 주연한 할리우드 영화 <나는 비와 함께 간다>의 대형 포스터를 발견했다. 마켓에서 한국 남자 배우들의 이름은 여전히 오롯하다. 봉준호의 <마더>는 아마도 원빈의 이름 덕분에 아시아 판매를 더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박찬욱의 <박쥐>가 올린 좋은 판매 실적은 어느 정도 송강호의 명성에 기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칸 메인 빌딩의 지하에 숨어 있는 마켓에서 빠져나와‘예술영화 성전’의 태양아래 서는 순간, 스포트라이트는 오로지 여배우들의 몫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돌이켜보면 칸영화제는 언제나 아시아여배우의 아름다움에 쉽게 현혹당했다. 5년 전 장만옥은<클린>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작년 전도연은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2년 전 왕가위의 <2046>으로여우주연상의 가장 강력한 후보로 거론됐던 장즈이는 올해 단편부문 심사위원으로 칸을 찾았다. 자유중국 여배우 서기는 올해 경쟁부문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다. 배우들뿐만 아니다. 재작년 니스 공항에서 마주친 공항 직원은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일본 여감독이 너무 섹시하더라며 난리를 쳤다. <너를 보내는 숲>의 가와세 나오미 감독 말이다. 감독이든, 배우든, 칸이 모셔오는 건 오로지 아시아 여자들이다. 아시아 남자들? 거의 떠오르지 않는다. 이거 참 불공정한 일이지만 어쩔 도리 있겠는가. 그들은 그들이 사랑하는 걸 사랑할 따름이다.
올해 상을 받으러 연단에 올라선 박찬욱 감독은 “아무래도 저는 진정한 예술가가 되기에는 멀었나 봅니다. 창작의 고통이라는 것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건 창작의 즐거움뿐입니다”라며 소감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걸 영어로 번역하는 순간 약간 기고만장하고 느끼해진 모양이다.“ 아무래도 저는 진정한 예술가가 되기에는 멀었나 봅니다”라는 문장이 튀어나오자마자 기자들이 “Yes!”,“ That”s right!”라고 외치며 야유를 쏟아냈다. 프랑스 잡지 <레인록>은 박찬욱의 수상소감에 대해 이렇게 썼다.“못 봐주겠다. 끝도 없는 스피치로 막되먹게 구는 박찬욱은 <올드보이>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후 한 단계 강등되긴 했는데, 이 텅 빈 매너리스트에게는 그것도 아직 과분하다.”원래 프랑스 평단이 박찬욱을 탐탁지 않아 하는 건 알겠지만 이런 악담은 좀 지나치다. 오해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고민했으나 별수 없었다. 대신 작년의 전도연을 떠올렸다. 그녀는 울먹이며 말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었습니다.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해서요. 그런데 상을 받게 돼, 그 부담들이 결국 축하 메시지가 된 것을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그녀가 영화제내내 강력한 후보였던 건 아니다. 자국 여배우를 응원하던 몇몇 외국 기자들의 입이 뾰루퉁해졌다. 하지만 야유는 없었다. 하긴, 누가 은빛 불가리 드레스를 곱게 차려 입고 훌쩍이는 아름다운 아시아 여배우에게 야유를 보내겠는가.
글/김도훈(<씨네21> 기자)
- 에디터
- 김도훈(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