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요 LP 가이드>를 낸 최규성은 ‘절판 소장’이라고 불린다. 이제는 구할 수 없는 대중가요 음반들이, 자료라고는 없는 한국의 대중가요사를 증언한다.
바이닐 레코드를 모으면 별스럽게 바라보던 때로부터 이제는 꽤 근사한 취미라는 인식이 생겼다. 당신을 보는 시각도 달라졌겠다. 변태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하하. 처음에는 ‘대중가요 LP 컬렉터 가이드’라는, 다분히 수집가들을 위한 제목이었다. 워낙 다른 분야도 많이 수집해왔는데, 그때마다 초기에는 가이드북을 보고 정보를 얻었다. 하지만 우리 대중가요 에는 그런 책이 없었다. 최초의 엘피가 인지 뭔지도 모르는 나라니까. 대중가요에 대한 자료가 전혀 없는 나라에서 하는 첫 번째 시도로서 <대중가요 LP 가이드>가 맞겠다 싶었다.
대중가요 LP에 대한 관심이 커진 원인은 뭘까? 2000년대 들어 복고문화가 창궐했다. LP가 7080의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그 바탕 위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이 쏟아졌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과거 명곡들을 많이 불렀다. 가창력을 평가하는데 아이돌 노래를 시키기는 어려웠을 테니까. 지금까지 대중이 잊고 있던 음악을 환기시켰다. 눈을 현란하게 하는 것보다 아름다운 가사를 통해 위로를 주는 음악들. 그 시절 음악은 죄다 뽕짝인 줄 알았는데, 좋은 노래가 참 많았다는 것, 대중가요의 찬란한 시기였다는 걸 알 수 있게 했다. 김광석만 해도 당시에는 아는 사람만 아는 가수였는데, 지금은 거의 전설이 됐다. 음반 가격이 어마어마하게 뛰고 있다. 음악을 상품으로 추구하지 않던, 돈에 좌우되지 않던 시기가 얼마나 멋있었는가에 대한 인식이 생긴 것이다. 요즘은 지드래곤이나 장기하, 브라운 아이드 소울 같은 아티스트도 LP를 낸다. LP를 내면 차별화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추억’에서 ‘음악’으로 전환되는 과도기를 겪고 있다.
<대중가요 LP 가이드북>은 ‘음반’을 중심으로 음악을 이야기한다. 음반이 팔리지 않고 음반점이 사라지면서, 오랫동안 음악의 주인공은 음반이 아니었다. 음반에서 출발했다. 음반이 있기 때문에 그걸 홍보하기 위해 포스터가 나오고 공연을 하고 음반을 둘러싼 다양한 사건이 나온다. 음반이 나왔다는 건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몇 년도 데뷔’는 공식화되기 어렵다. 기사라도 있으면 모를까. 한대수의 음반을 최초의 모던 포크라고 하는데, 음반으로는 74년이고 그렇게는 오히려 뚜아에무아가 앞선다. 하지만 한대수가 68년에 창작곡으로 공연을 했다는 신문 기사를 확인했다. 이래서 기록이 중요하다.
그간 한국에서 나온 어떤 음악 관련 책보다 개인적인 감상과 가치평가가 배제됐다. 사실을 바로잡고 정리하는 데 집중했다. 사람들이 음악에 대한 그런 접근 방식에 질리지 않았나 싶다. 인터넷으로 음악을 듣고 짐작한 내용을 쓰는 것 말이다. 실재 음반에서 찾아낸 체화된 정보를 쓰려고 했다.
음반을 완성도가 아닌 시장가를 기준으로 등급을 매겼다. 개인적으로는 음반을 가격으로 말하는 건 천박하지 않느냐고 반대했는데, 사람들에게 필요하고 재미있는 정보일 것 같단 생각에 수긍했다. 외국에서도 음반의 등급을 별점이든 그림이든 창의적이고 체계적으로 매기기도 하고.
한국 대중가요 LP에 거품이 많다는 지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거품이 낀 건 2000년대 초반 얘기다. 이젠 정립이 됐다. 80년대에 30만원씩 하던 김민기 1집이 2000년대 들어 쏟아져 나오면서 10만원 밑으로 떨어졌다. 이제는 더 세부적이다. 속지가 있느냐, 없느냐. 신중현도 몇백만 원씩 하던 게 다 빠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나오는 음반들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금지곡’이 있었으니까. 정부가 앞장서서 음반을 폐기시킨 나라다. 신중현 음반 중에서도 <히키신 키타 멜로디 경음악 선곡집>이라든지 ‘Golden Grapes’는 칠팔백만 원까지 올라갔다. 개체 수가 가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대중가요의 초반, 2반, 심지어 6반까지, 각각의 사진과 그들의 차이를 정리했다는 게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정보 같다. 보통 초반과 재반이 있다는 건 아는데 몇 가지나 된다는 건 모른다. 이 책을 읽고 들어보고 싶다면 쉽게 구해 들을 수 있는 음반까지 실었다. 재발매 음반을 빠짐없이 실은 이유다. 어차피 초반은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없는 단계다. 중고 시장에서도 수급하기가 힘들어서 끝났다고 한다. 이젠 근현대사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돈도 돈인데, 돈이 있다고 바로 살 수도 없기 때문이다.
대중가요 LP 수집에 20년 가까이 몰두해왔다. 수집가라면 소장품이 수용 범위를 넘었을 때 처분할 것과 가질 것을 고민하기 마련일 텐데, 처분한 적도 있나? 어떤 기준이 있었나? 2만 장 정도 가지고 있고, 수용 범위를 넘어서 처분한 적은 없다. 딱 한 번,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서울 대중가요, 서울을 노래하다> 전시를 열었을 때 그쪽에서 일괄 구입 의사를 전해 와서 판 적은 있다. 지명이 들어간 노래라면 뽕짝이나 트로트 같고, 뭔가 부끄럽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생각 안 하는 것 같고, 그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한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 지명이 들어간 노래에 관한 학술대회까지 열리는 걸 보면 뿌듯하다.
가장 뜻밖에 찾은 희귀 음반은 뭐였나? 평론가들이 최초의 포크 음반을 69년에 나온 트윈 폴리오라고 하는데, 그전에도 포크 음반은 많았다. 트윈 폴리오도 데뷔는 68년이다. 최초의 포크 앨범은 64년에 나온 아리랑 부라더스의 음반이다. 한 수집가에게 고물상에서 서수남, 하청일 음반을 봤다는 얘길 들었다. 어딘지 물었더니 은평구라고만 했다. 수집하는 사람들끼리는 그렇게 자세히 안 가르쳐준다. 은평구 일대 고물상을 다 뒤져서 찾아냈다. 이건 재킷만 있으니까 그냥 가져가라고 해서 받아는 왔는데 도저히 음악을 듣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서수남 씨에게 전화해서 이 음반의 제작자 이청을 소개 받았다. 그가 재킷을 보더니 자기도 없는 거라며 감개무량해했다. 2백 장 찍은 초반이었다.
기본은 ‘대중가요 음반 가이드북’이지만, 한국 대중음악사 책으로도 읽힌다. 각 장이 시작될 때 서양 대중음악사의 주요 음반을 연대별로 표시해놓은 건 어떤 뜻인가? 필요하다고 봤다. 비교해서 보라고. 70년대였다면, 이게 말이 되느냐고 했을지도 모른다. 비교가 안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이 책을 제작한 김영훈 대표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세계적으로 중요한 음반이 나왔던 흐름과 같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 일종의 도발이다. 내게는 대중가요 음반의 주인공들이 음악 영웅들이다. 신중현이라든가, 히식스, 김민기, 심수봉.
하지만 대중음악사 책처럼 읽히길 바라면서도 연대순으로 배열하지는 않았다. 외국에서도 그렇고, 대중가요를 수집하는 사람들은 신중현부터 얘기를 시작한다. 그래서 신중현으로 시작하는 게 맞다고 봤다. 대중가요 장르의 흐름을 짚어주면서, 포크와 그룹 사운드 시기를 다루고, 그렇게 쭉쭉 자연스럽게 갔다.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경음악집이랄지 옴니버스 앨범은 책에서 상당히 적게 다뤘다. 물론 종류도 많고, 초반, 재반 수록곡이 다 달라서 정리할 부분도 많지만 이번에는 뺐다. 현미경의 배율을 좀 더 높이고 들여다봐야 하는 부분 같아서.
하지만 해외에서 나온 우리 음반은 일부 다뤘다. 그건 특이한 사례였나? 자주 있는 일이었나? 미국에 진출한 사람들은 대부분 냈다. 좀 마니아적이어서 손시향은 소개하지 않았는데, 김치캣이라든지 패티김이라든지 정말 많다. 일본에 갈 때마다 찾아본다. 내가 갖고 있는 LP만 해도 몇백 장이다.
근데 왜 그렇게 알려진 음반이 적을까? 대부분 실패했기 때문이다. 대중적으로 성공한 최초의 사례는 이성애다. 동경국제가요제에서 한국 가수 최초로 수상한 정훈희조차도 성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시장에 대한 연구 없이, 일본 현지의 시각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아마추어 레이블과 계약하고 음반을 발매했다. 주먹구구식이었고, 망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조용필이나 남진, 나훈아처럼 조금 성공하는 사례가 나오긴 한다. 성공한 음반은 적어도, 발매한 음반은 엄청나게 많다.
마지막까지 넣을까 뺄까 고민한 음반은 없었나? 그런 음반은 없다. 만들면서 너무 지쳤지만, 그래도 하나라도 더 넣으려다가 이제 그만하시죠, 하는 소리나 들었다. 맨 마지막에 넣은 건 잊고 있던 릴리화의 음반. 우리나라 가수가 최초로 유럽에 진출한 사례다. 그걸 까맣게 잊고 있다가 마지막에 넣었다.
이미자가 듀엣으로 데뷔했달지, 한국 최초의 박스 음반이 이미자의 것이랄지, ‘사노라면’이 길옥윤의 곡이랄지, 하는 도대체 처음 보는 대중가요 자료가 가득하다. 재미있게 읽은 한편 한국의 대중음악사는 이 정도도 정리가 안 되어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1966년 당시 최고의 인기 가수인 쟈니 리가 부르고, 길옥윤이 작곡을 했다면 당대 최고의 스타 시스템에서 나온 거였는데, 전인권이 80년대에 ‘사노라면’을 내면서 구전가요라고 썼다. 작자미상, 구전가요라고.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자료가 없었던 거다. 우리나라가 이런 나라다. 사전 검열로 폐기되는 것도 많았지만, 격변의 역사를 겪으면서 뭐든 근거를 없애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대마초 파동을 기점으로 자기 음악을 표현할 길이 막히면서 음악가들 상당수가 트로트 쪽으로 돌아섰고, 이것이 어떤 전환점이 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한편 ‘트로트’가 전통 가요라고 보는 관점은 여전히 공고하다. 이른바 ‘뽕끼’, ‘트로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대중음악이 시작됐을 때의 주류 장르였다. 하지만 ‘사의 찬미’는 트로트가 아니다. 외국 가곡을 번안한 곡이지. 당시의 트로트는 고급 장르였다. 예전에 민초들이 부르던 노동요가 이제는 국악으로, 클래식의 대우를 받듯이 시대마다 장르에 대한 대중의 생각은 바뀐다. 나는 트로트를 피해갈 수 없는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건 좋아하지 않건 무차별로 나오는데 어떡해. 참 신기한 게 트로트를 좋아한 적이 없는데, 가끔 노래가 나오면 따라 부른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생활화된 소리인가, 싶다. 그렇다면 클래식이라고 해야 되는 거 아닐까. 그래서 앞으로는 밥 딜런, 비틀스를 ‘클래식 록’이라고 부르듯이 명가수에 대해서는 앞에 클래식이라는 말을 붙여야 할 것 같다. 이제는 대중가요도 예술로 수용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니까.
이 책을 읽고 나니 더더욱, 한국에서는 싱글 앨범의 개념이 애초에 없었다는 확신이 든다. 싱글이 없는 기형적인 시장이 형성된 원인은 뭐였을까? 싱글이 어딨나. 길옥윤과 패티김이 결혼할 때 결혼식 하객들에게만 나눠준 7인치 싱글이 있는데, 그 뒤에도 보면 LP라고 적혀 있다. 당시에는 노래 하나를 소개하려고, 가수도 들어간 줄 모르고 제작자도 기억 못하는 곡을 추가해서 앨범으로 냈다. 한국에서 LP 감상은 고급문화에 속했다. 먹고살기도 힘든 시절이었고, 중산층 이상의 집에나 전축이 있었다. 그들 생각에 근사하게 음악을 듣는 매체는 7인치 싱글이 아니라 12인치 LP였다. 그러니까 억지로 곡을 채워 넣어서라도 무조건 LP로 내야 했다. 신중현도 LP로 내기 위해 나머지를 채우려고 23분짜리 ‘거짓말이야’를 녹음했다. 한국의 기형적인 제작 시스템이 낳은 해프닝이지만, 지금의 수집가들 시각에서는 놀라운 점이기도 하다.
요즘은 앨범보다 싱글, 디지털 싱글을 선호한다. 과거나 지금이나 공통적인 건 돈이다. 지금은 앨범을 내면 망하니까 싱글을 낸다. 이 책을 낼 때는 그런 부분을 ‘가이드’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마지막에 목차를 곡명으로 다 바꿨다. 나는 대중가요 앨범을 싱글 개념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근데 제작자는 그걸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맞섰다. “앨범인데, 나머지 노래는 그럼 뭐라는 거야?” 우리 대중가요가 그랬다. 우리나라의 어두운 역사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대로 받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 에디터
- 정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