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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에디터의 드림카와 어떤 물건

2014.08.29GQ

그 차에 이 물건을 싣고 지금 당장 출발한다.

[ORLEY X 포드 머스탱 GT350]사실 이건 터틀넥의 뒷모습이다. 앞에서 보면 그냥 아이보리색 케이블 터틀넥이지만, 등줄기엔 목덜미부터 꼬리뼈까지 강렬한 획을 그었다. 인생엔 이런 한 방이 필요하다. 머스탱을 사고 싶은 이유도 비슷하다. 지금 간절한 차는 볼보 XC70 같은 널따란 웨건이지만, 여유가 생기면 아내가 탈 작고 귀여운 차를 사야 할 테지만, 그러고도 모은 돈이 꽤 돼서 세컨드카 한 대쯤 가뿐하게 살 수 있대도 머스탱은 좀 그렇지 않냐, 모진 반대에 부딪힐 테지만…. 페라리도, 포르쉐도 먹일 수 없는 한 방이 머스탱에겐 있다. 방배동 편집매장 팩랫에서 이 터틀넥을 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새빨간 스트라이프가 중심을 가로지르는 1965년식 머스탱 GT350이지만, 2005년식이래도 상관은 없다. 차고에 고이 뒀다 법정공휴일에만 몰고 나간다. 한 방은 그야말로 한 방이어야 한다. 매일이 한 방인 인생은 좀 별로다. 박태일

[RIMOWA X 볼보 C30 D4] 감상적인 이름은 없다. 대신 스타워즈의 R2D2처럼 정답게 읽힌다. 멀리서 보면 작다기보다 옹골차 보이는데, 엔진 힘도 좋아 치고 나갈 땐 가슴에 헛바람이 가득 찬다. ‘운전하는 재미가 있는 차’라는 자동차 전문지 에디터의 말에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했다. 삼 일 만에 타이어가 찢기고, 배터리가 방전되고, 주차하다 옆구리가 찌그러졌다. 쉽게 길들여지는 탈것에 무슨 매력이 있을까? 주변 사람들은 미숙한 운전실력과 차에 대한 무지함을 질책했지만 그건 다 모르고 하는 말이다. 동물원을 탈출해 논현동을 질주하는 들짐승이 쉽게 곁을 내줄 리 없다. 차를 타고 처음 공항에 가던 길, 여행 가방이 차와 어울리지 않았다. LP판을 안전하게 옮기기 위한 DJ용 가방에서 보호용 패드를 뜯어내고 사용했다. 파리 리모와 매장에서 검고, 무거우며, 튼튼하고, 커다란 최신 제품을 구입했다. 오충환

[HERMÈS X 닛산 베르사] 하와이에 도착하자마자 중고차 시장에 갔다. 운전은 하지만 차는 몰랐으니 원하는 조건은 간단했다. 4도어, 넉넉하지 않은 예산에 맞을 것. 흰색은 별로였지만, 하와이니까 괜찮았다. 볼 때마다 엉덩이를 씰룩대는 훌라걸 인형을 달고, 하와이 도로 이름을 따서 likelike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렇게 1년을 닛산 베르사와 하와이를 달렸다. 차 바닥과 시트는 모래사장이 따로 없었고, 비 오는 날이 곧 세차하는 날이었다. 가장 많이 간 곳은 호놀룰루 공항과 세이프 웨이와 테드 베이커리. 하와이 파이브 오에게 신호위반 딱지를 뗄 뻔했지만, 엄마가 알려준 ‘No English!’라는 한마디로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다. 트렁크엔 버릇처럼 생수 한 박스를 넣어뒀고, 조수석엔 늘 비치 타월이 있었다. 해가 뜰 때든 질 때든 혼자든 여럿이든 가고 싶은 해변에 가서 누워 있는 꿈같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가장 좋은 시절을 함께 보낸 차다. 박나나

[BOTTEGA VENETTA X 페라리 250 GT 캘리포니아 스파이더] 이 차를 지금 살 수 있고 없고는 중요치 않다. 구할 수 있고 없고도 마찬가지다. 그런 건 이상형을 구구절절 말하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다. V8 엔진이니 폴딩 하드톱이니, 7단 듀얼 클러치 기어박스 같은 것도 상관없다. 그냥 보기에 매끈하고 예쁘면 그만이다. 이런 차를 타고 끝없는 사막을 달리면 어딘가에서 스티브 맥퀸을 만날 것 같거나,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 같은 기분이 들 테니까. 그거면 충분하다. 페라리라고 꼭 빨간색 말고, 새까만 검정색 스파이더여야 사막과 고상하게 어울린다. 모래색이라 불리는 은은하고 유연한 가죽 가방도 마찬가지. 둘 다 따뜻하고 수려한 가을에 기막히게 어울린다. 김경민

[BALENCIAGA X 폭스바겐 골프 4세대] 어떤 물건에 마음을 뺏기는 지점은, 효용성보다는 아름다움 쪽이다. 예쁘니까 갖고 싶고, 잊을 수 없어서 결국 산다. 디자인을 많이 안 한 디자인을 좋아한다. 요즘 물건들은 “굳이 왜?”라는 의문이 드는 장식이 많다. 여기에 이걸 왜 달았는지 만든 사람도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너덜너덜하고 우왕좌왕하다가 결국은 오리무중인 모양들. 폭스바겐 골프는 자동차 디자인의 완성이자 정점이라고 믿는다. 그중 4세대(5세대를 본 순간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검정색 골프는 단 한 군데 싫은 구석도 없는, 개인적 견지에서 본 ‘사물 디자인’ 분야 1위다. 한편, 발렌시아가의 필리어스 토트백 역시 처음 본 순간 반했다. 이유 없는 장식은 전혀 없는 단단하고 단정하며 매끈한 검정 물건. 미련도 아쉬움도 없는 디자인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강지영

    에디터
    GQ 패션팀
    이미지
    BALENCIAGA, HERMES, BOTTEGA VENETTA, RIMOWA, ORLEY
    일러스트
    곽명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