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기 앞에선 고민도 맛도 한없이 진해진다.
메로
무시무시한 본명(비막치어 혹은 파타고니아 이빨고기)을 가진 이 생선은 생긴 것도 만만치 않다. 일본이 ‘메로’라는 귀여운 별칭을 붙인 이유를 짐작하고도 남을 만큼…. 다행히 기름진 맛과 특유의 감칠맛이 있어 일식집에서 인기가 좋다. 예전에는 회로도 종종 냈지만, 지금은 주로 굽는다. 커다란 메로를 껍질, 살, 지방층이 모두 붙어 있도록 토막 내 구우면 별 양념이 없어도 혀가 요동을 친다. 기름치가 몰래 메로 노릇을 할 정도로 어획량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에푸아스
유지방이 발효하고 숙성하는 방식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내는 치즈. 많게는 유지방 함량이 70퍼센트 넘게 올라가는 것도 있는데, 이는 치즈에서 수분을 완전히 제외했을 때의 양이다. 실제는 표기된 수치의 반 정도라고 이해하면 얼추 맞다. 에푸아스는 프랑스 치즈다. 코를 퍽 치고 올라오는 발효 향도 향이지만, 녹아내리는 그 맛이 말도 못하게 ‘리치’하고 ‘크리미’하다.
참다랑어
참다랑어 뱃살은 젓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잡아야 할 정도로 기름지다. 결 따라 살이 찢어질 정도니 입 안에서 녹는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다. 이걸 슬쩍 그을리면 눈꺼풀까지 녹아내리는 맛이 완성된다. 참다랑어엔 오메가3 지방산 (다가불포화지방산)이 많다. 한국인의 식습관에 비추어볼 때 꼭 필요한 영양소지만, 칼로리가 꽤 높다.
대창
곱창(소장)엔 곱이 있고 대창(대장)엔 곱이 없다. 대신 기름의 절정이 있다. 대창은 곱창보다 굵은 데다 기름이 많이 붙어 있어, 뒤집어 구우면 속이 꽉 차 보인다. 세상 모르고 먹은 사람도 많을 테다. 구운 기름 덩어리를 새콤 달콤한 양념장에 찍어 먹으니 맛이 없을 수 없지만, 불량식품도 알고 먹는 것과 모르고 먹는 건 하늘과 땅 차이다.
아보카도
상큼한 초록색만 보고 맛을 짐작했다간 물컹하고 느끼한 맛에 혀가 놀랄 수도 있다. 아보카도는 과일처럼 먹는 게 아니라 버터처럼 빵에 바르거나 치즈처럼 썰어 샐러드에 넣어 먹는다. 몸에 좋은 다가불포화지방산이 많지만, 그렇다고 열량이 넘치도록 아보카도를 먹을 필요는 없다. 김밥이나 샌드위치에 넣어 맛의 균형을 맞추는 걸로도 충분하다.
살지촌
돼지고기 여러 부위와 기름을 섞어 간을 하고 말린 햄이다. 양념하는 향신료 종류에 따라 초리조, 살라미, 살지촌 등으로 이름을 달리 붙인다. 모두 짭짤하고 매콤하면서 기름지다. 번들번들하기론 프로슈토, 하몽 같은 돼지 뒷다리 생햄도 만만치 않은데, 좋은 것일수록 훨씬 더 ‘오일리’하다. 바로 먹지 않고 상온에 두면 금세 굳어 버릴 정도다.
차돌박이
쇠고기의 양지 부위 중에서도 지방 비율이 높은 부위가 업진살, 치맛살, 차돌박이다. 지방이 하얀 차돌처럼 박혀 있는 부분을 차돌박이라 부른다. 지방이 단단한 편이라 구우면 살짝 쫀득하게 씹힌다. 얇게 썰는 것도 이 식감 때문이다. 제 아무리 입맛을 잃었어도 냄새엔 어쩔 방도가 없다. 기름이 자글자글할 때 입에 넣어야 직성이 풀린다.
삼겹살
삼겹살은 돼지의 등심 아래쪽에 붙은 부위다. 반면 한우삼겹은 쇠고기 업진살 중에서도 지방과 근육이 층을 이루도록 절묘하게 찾아 삼겹살 모양처럼 잘라낸 부위다. 지방이 유난히 많은 삼겹살은 구울 때마다 기름기와의 전쟁을 치르는데, 이걸 해결하기 위해 이 기름에 뭐든 구워 먹는 이들이 많다. 부추, 파채, 콩나물, 김치, 떡, 양파, 마늘, 새우…. 불판이 계속 커진다.
들기름
들기름은 고소한 기름 맛 그 자체다. 최근엔 들기름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향은 좀 약해도 저온 압착 들기름, 볶지 않고 짜는 생들기름을 파는 곳도 많아졌다. 이왕 조심스레 짜낸 기름이니 샐러드에 뿌리거나 나물을 무치는 쪽이 영양소 파괴를 막는 길이겠지만, 약한 불에 들기름을 두르고 두부를 부쳐 먹어야…. 막걸리만 있으면 온몸에 기름내가 배어도 좋다.
생크림롤
생크림이 시트에 말려 들어간 게 아니라, 주먹만한 생크림이 중간에 떡 하니 박혔다. 도지마롤을 필두로, 이름난 빵집에서 만드는 생크림 롤케이크는 동물성 생크림을 듬뿍 넣어 우유 맛이 강하다. 그래서 쉽게 물리기도 한다. 흔히 식물성이 좋다고 착각하기 쉬운데, 유지방으로 만드는 생크림의 경우 식물성 기름으로 만든 건 합성 생크림이라고 보면 된다.
찹쌀 도넛
튀김만큼 즉각적으로 맛있는 것도 없다. 튀김만큼 기름진 것도 없다. 특히 도넛, 꽈배기, 고로케. 엄지와 검지로 도넛을 잡으면 스며든 기름이 뿜어져 나오면서 죄책감과 미각을 동시에 자극한다. 워낙 기름져서 식었을 때 먹으면 ‘찌든 맛’이 돈다. 그래서 시장엔 즉석 도넛 가게가 많고, 요 근래엔 시간에 맞춰 팔 만큼만 튀기는 수제 고로케 집이 엄청 생겨났다.
닭 넓적다리
쇠고기와 돼지고기에 비하면 닭은 담백하다. 그나마 지방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부위는 닭다리와 넓적다리 정도. 이마저도 껍질과 근육 사이에 지방이 분포해있어, 껍질을 벗기면 기름 맛을 찾기가 쉽지 않다. 제일 맛있게 먹으려면 껍질을 바삭하게 익혀 기름과 닭다리의 풍부한 육즙을 그 안에 가둔 뒤, 한 손으로 잡고 산적이 된 기분으로 뜯어 먹는다.
육개장
육개장은 기름진 고기 육수에 고춧가루를 푼 국이다. 여기에 무, 고사리, 토란대, 파, 결대로 찢은 고기 등이 듬뿍 올라간다. 개고기를 넣은 개장이 원형이라는 설에 힘이 실리는데, 그래서 이름도 육’개장’으로 발전했다. 육개장엔 매콤하게 만든 고추기름이 들어가 국물에 기름이 동글동글 뜬다. 보는 것만으로 속이 풀리는 무늬다.
- 에디터
- 손기은
- 포토그래퍼
- 정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