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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X – 사랑과 체취의 상관관계

2015.08.18유지성

일요일엔 청소를 한다. 끝까지 남는 건 창틀의 먼지가 아닌 머리맡의 냄새다.

 

같이 있을 때는 모른다. 짧은 배웅을 마치고 돌아오면 그제야 알아챈다. 음, 누가 왔다 갔지. 후각은 쉽게 마비된다고 했었나? 그런데 깨어나는 것도 금세인 게 아닐까. 바깥바람 잠깐 쐬고 들어왔을 뿐인데, 현관문을 열자마자 여기는 다른 사람의 방인 것만 같다. 집에 좀 고약한 냄새가 날 때, 가장 쉽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처음엔 대체 어디서 나는 냄새인지도 몰라서 애꿎은 방바닥을 닦고 휴지통을 비웠다. 거기가 아닌데. 주범은 이불 그리고 내 몸. 물론 지금은 그런 냄새가 나는 게 아니니, 굳이 이불을 빨거나 샤워를 할 이유는 없다. 모자란 잠을 자려 이불을 다시 열어젖히는 순간 비로소 거기 누워 있던 여자의 냄새가 이불 속을 빠져나간다. 그제야 어제의 그 냄새가 어렴풋이 기억난다. 내 몸에도 아직 남아 있나?

여자가 팔베개 삼았던 한쪽 팔에 코를 묻어본다. 샴푸인지, 향수인지, 혹은 그저 자연스러운 체취인지 어쨌든 나와는 다른 냄새가 난다. 자고 일어나면 창문을 활짝 연다. 이른 오후쯤일 것이다. 여자가 떠난 지는 몇 시간이 지났고, 그 냄새는 다시 나지 않는다. 분명히 방 안에 그대로 남아 있을 테지만, 금세 다시 적응한 걸까?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블라인드도 기운차게 걷어 올린다. 블라인드를 올린다고 냄새가 더 잘 빠져나가진 않지만, 가장 간단한 방식으로 방을 좀 달리 보이게 만들 수 있다. 주말은 오늘까지고, 월요일은 어제와 다른 내일이고자 하는 맘에 그렇게 한다. 냄새도 흔적도 싫어서 그러는 건 아니다. 생각보다 오래가니까. 그렇게 놔둬도 냄새는 사람처럼 쫓아낼 수가 없으므로, 머물 만큼 머문다.

일요일엔 보통 청소를 한다. 쓸고 닦기 전에 정리부터 시작한다. 혹시나 밤에 누가 올까 외출 전 얼렁뚱땅 구색만 맞춰놓은 물건들을 제자리로 옮긴다. 그러다 보면 종종 여자가 놓고 간 물건이 보인다. 화장실에서도, 침대맡에서도 나온다. 그런 물건 또한 제자리가 있다. 남이 찾긴 어려운 방 안의 어느 수납공간. (자의든 타의든) 아무래도 다음에 또 만날 사이가 아닌 것 같다면, 굳이 먼저 연락해 알리지 않는다. 그럴 경우 중요한 물건이 아닌 이상, 대개 상대방도 연락이 없다. 제일 많은 건 손목에 끼고 있다 어젯밤 입에 물었던 그 머리끈, 어쩌다 빠진 귀고리 한 쪽, 돌돌 굴러 침대 밑으로 들어간 마스카라. 그러니까, 누구의 것인지 희미한 여자의 물건들이 남자의 방 한 곳에 모여 있다. 버리진 못한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부둥켜 지내던 사이에, 그리 매정할 수는 없다. 이어서 빨래. 주말에 입었던 ‘필살기’ 같은 속옷도 빨고, 여자가 입고 잔 품이 넉넉한 티셔츠도 함께 세탁기에 집어넣는다. 여름이니 섬유유연제는 듬뿍. 취향을 굳이 말하자면 흰 셔츠(에 ‘하의실종’)보다는 티셔츠 쪽이라, 즐겨 입는 티셔츠도 기꺼이 내주는 편이다. 그게 잘 어울리면 어쩐지 좀 뿌듯하기도 하다. 다만, 그걸 다시 입고 나갈 땐 좀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돌려받지 못한 몇몇 티셔츠는 지금 어떻게 쓰이고 있을까?

덜덜덜 세탁기가 진동하는 만큼, 섬유유연제 냄새가 온 방에 진동한다. 생경한 냄새가 사라지고, 다시 퍼지는 익숙한 냄새와 함께 일요일이 저문다. 집은 깨끗해졌고, 이제 몸만 깨끗해지면 월요일을 맞을 준비가 완벽히 끝난다. 여자의 몸에도 내 냄새가 묻어 있었을까? 샤워는 어젯밤에 하고 잤는데, 집에 돌아가선 과연 어떤 하루를 보냈을까. 뭔가 두고 갔다는 걸 알고는 있을까. 거품을 잔뜩 내, 몸을 씻는다. 이왕이면 향도 좀 독한 걸로. 에어컨을 시원하게 틀고 몸을 말린다. 마침내 온 집과 몸이 뽀송뽀송하다. 빨래를 널고 불을 끈 뒤 침대에 눕는다. 그런데 누우며 다시 알게 된다. 아직 끝나지 않았군. 그 냄새가 거기에 남아 있다. 이불을 코밑까지 끌어올린다. 더 잘 알 것만 같다. 냄새도 감각도 기억도 그렇다. 그래서 어젯밤 우리는 좋았나? 무척. 내 베개를 옆으로 밀어내고, 여자에게 내줬던 그 베개를 벤다. 가장 진한 냄새를 맡으며, 머리를 파묻는다. 일요일 밤은 길고, 여름밤은 덥고, 앞으로 며칠은 또 혼자일 것이다.

    에디터
    유지성
    ILLUSTRATION
    KIM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