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도 사람과 같아서 얼굴만 봐도 느낌이 온다. 촬영을 위해 ‘더 와인 구루스’라고 이름 붙은 여섯 병의 와인을 한자리에 놓으니 근사한 스페인 멋쟁이들을 보는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더 와인 구루스’는 스페인 와이너리 ‘까사 로호’가 토착 품종 와인을 묶어서 부르는 이름이다. 스페인의 대표 산지별로 간판이 되는 토착 품종을 골라 빚은 다음 에두아르도 델 프라일레의 디자인으로 라벨을 입혔다. 해마다 스페인에서 가장 유행하는 수염 스타일로 라벨이 바뀌는 ‘마초맨’, 어둠 속에서 로봇이 빛을 뿜는 ‘마퀴농’, 적정 온도가 되면 가시만 남은 생선이 기포를 뿜어내는 ‘마리모레나’ 수트와 모자만 보이는 ‘인비저블맨’ 등이다. 이처럼 새로운 시도는 와이너리 특유의 분위기에서 농익은 것이다. 까사 로호 직원들의 평균 나이는 40세를 넘지 않는다. 시음회를 위해 내한한 수출 담당 알레한드로 반 리스하우트는 직원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진짜 미친 짓 많이 해요.” 그 미친 짓이라는 말은 와인의 탄탄한 기본기를 전제했을 때 비로소 웃음이 나오는 말 아닐까? 내실이 있으면서 멋도 내는 사람이 진짜 ‘쿨’한 사람이니까. 알레한드로의 안내로 와인을 하나씩 맛보면서는 스스로 한 생각에 확신의 도장을 찍었다.
- 에디터
- 손기은
- 포토그래퍼
- 이현석, 정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