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 컬렉터: 그레이엄 파울러 그레이엄 파울러는 뉴욕 남성복 업계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케냐와 영국의 시골에서 보낸 유년 시절의 경험을 통해 미적 감각과 뛰어난 감식안을 습득한 그는 웨스트빌리지에 편집매장을 열어 이 세상의 온갖 멋진 물건들을 소개했다. 또한 파울러는 전설적인 시계 컬렉터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 15년 동안 놀라운 ‘툴-워치’ 목록을 수집해왔다. 롤렉스와 튜더의 빈티지 다이버 워치를 비롯해 잘 알려지지 않은 희귀한 군용 시계에 이르기까지, 그의 서랍에는 환상적인 시계들이 가득하다. 그레이엄 파울러의 시계들 중 일부를 여기에 공개한다.
01 롤렉스 밀리터리 서브마리너 레퍼런스 5517 5517은 롤렉스 서브마리너 중에서도 유독 특별한 시계다. 1970년대에 영국군에게만 납품한 시계인 데다, 다른 모델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 특징을 여럿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일론 나토 스트랩과 함께 쓰인 고정식 스프링 바, 60분 단위로 홈을 새긴 베젤, 넓은 대검 모양의 시곗바늘 그리고 어두운 곳에서도 밝게 빛나도록 트리튬을 적용한 다이얼 위의 T자. 시계 컬렉터들은 이런 희귀한 디테일에 열광한다. 말하자면 이 시계는 아주 능청맞은 서브마리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의 눈에는 평범한 서브마리너처럼 보일 테지만, 아는 사람에게는 진정한 꿈의 시계다.
02 롤렉스 밀리터리 서브마리너 레퍼런스 5513 서브마리너 5531은 영국 국방성의 수중 폭발물 제거 요원들이 착용했던 모델이다. 이 시계는 바닷속에서 수십 년간 방치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며, 영국 도싯 해변에서 다시 발견되었을 때 이미 다이얼 상당 부분이 손상되어 있었다. 파울러는 이 서브마리너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상태를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케이스를 다시 밀봉했다. 이 시계로 시간을 확인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가장 좋아하는 시계다.
03 튜더 스노우플레이크 마린 나쇼날 롤렉스가 영국군에게 서브마리너를 납품할 때, 롤렉스의 동생 격인 튜더는 영불 해협 너머에 있는 영국의 동맹국과 거래를 했다. 그렇게 태어난 시계가 바로 프랑스 해군 마린 나쇼날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스노우플레이크 마린 나쇼날이다. 롤렉스의 군용 서브마리너와 마찬가지로 이 모델 역시 지난 30년 동안 수집 대상이 되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시계는 몇백 개에 불과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직 그렇게 비싸지 않다. 빈티지 서브마리너보다 이 시계를 더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04 롤렉스 서브마리너 레퍼런스 5514 코멕스 1970년대에 서브마리너를 납품 받은 곳은 군대만이 아니다. 첨단 수중 기술 개발에 종사했던 프랑스의 잠수 회사인 코멕스도 서브마리너를 사용했다. 롤렉스는 이들을 위해 새로운 헬륨 배출 밸브가 추가된 레퍼런스 5514 서브마리너를 제작했다. 케이스 9시 방향에 있는 헬륨 가스 밸브는 잠수부가 상승하거나 하강할 때 시계를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이 시계는 일반 대중에게는 판매되지 않아 지금은 남프랑스 지역의 전직 다이버 손목에서만 간간히 발견될 뿐이다.
05 오메가 씨마스터 300 영국 국방성 롤렉스가 영국 정부와 거래하기 전, 국방성은 오메가에도 기회를 주었다. 씨마스터 300 영국 국방성이라고 불리는 모델이 바로 그것이다. 이 시계는 롤렉스 서브마리너와 많은 부분이 비슷하다. 마지막에는 더 나은 결과를 보인 롤렉스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이때 제작한 씨마스터 300은 오늘날 가장 멋진 다이버 워치 중 하나로 꼽힌다. 게다가 한정 수량만 시험 생산했기 때문에 롤렉스 군용 서브마리너보다 훨씬 더 희귀하다.
06 레마니아 모노-푸셔 파울러의 군용 시계 수집은 다이버 워치나 값비싼 모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영국군 조종사들이 착용했던 레마니아 크로노그래프가 그 예다. 레마니아는 오메가나 롤렉스처럼 유명한 브랜드는 아니지만, 스피드마스터나 파텍 필립의 일부 모델을 비롯, 지난 한 세기 동안 가장 중요한 시계들에 장착된 무브먼트를 제작한 회사다. 시계 뒷면의 각인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07 파텍 필립 퍼페추얼 캘린더 크로노그래프 5970G 파울러의 컬렉션 대부분이 군용 툴-워치였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 시계의 존재는 상당히 의외다. 그는 몇 년 전 기존의 사업을 정리하면서, ‘이제는 어른스러운 시계도 하나쯤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한다. 이때 그가 선택한 모델이 파텍 필립의 화이트 골드 퍼페추얼 캘린더 크로노그래프다. 이 시계보다 더 어른스럽고 근사한 시계는 별로 없으니까.
- 에디터
- Benjamin Clymer
- 포토그래퍼
- Atom Mo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