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과 서양의 스니커 장인들이 함께 모여 나이키 최초의 협업 시리즈를 출시한다. 프로젝트의 이름은 HTM. 세 명의 이름 앞 글자를 땄다.
마크 파커Mark Parker, 팅커 햇필드Tinker Hatfield, 그리고 히로시 후지와라Hiroshi Fujiwara. 이 세 명의 이름 중 하나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지간한 스니커 마니아가 분명하다. 에어 맥스의 창시자 팅커 햇필드, 나이키 그 자체라고 불러도 무방한 마크 파커, 그리고 동서양 스트리트 신의 대부 후지와라 히로시. 만약 이 세 명이 모여 일을 벌인다면 대체 어떤 스니커가 탄생할까? 2002년부터 은밀하게 진행되어 온 3인의 프로젝트 ‘HTM’, 현존하는 나이키 클래식 모델의 리뉴얼부터 나이키 플라이니트와 같은 첨단 시리즈까지 약 서른 두 번의 진화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프로젝트는 현재진행형, 더 자세한 이야기를 HTM의 3인에게 직접 들어보기로 했다.
#1 시작
히로시 후지와라(이하 히로시) “나이키랑 협업하게 된다면 가장 먼저 하고싶은게 뭐죠?” 마크 파커가 아직 나이키의 CEO이기 이전 이같은 질문을 했어요. 저는 좀 더 고급한 이미지의 스니커들을 만들고 싶다고 했죠.
마크 파커(이하 마크) 당시 틈만 나면 일본으로 건너 갔었어요. 히로시와는 그렇게 연이 닿았죠. 당시 팅커 햇필드와 저는 에어맥스 1, 에어 트레이너 1, ACG, 조던 등 온갖 여러 시리즈를 쏟아내며 협업에 몰두하던 중이었죠. 그 과정에 히로시가 꽤 많은 영향을 끼쳤죠. 디자인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러던 중 히로시와 좀 더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죠.
팅커 햇필드(이하 팅커) HTM 프로젝트는 마크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어요. 사람들을 한 데 모으는 재주, 경영에 대한 감각, 돌이켜보건대 마크는 이 협업을 주도하는 데 적임자였죠.
마크 좋은 파트너십은 진실된 관계에서부터 비롯된다고 믿어요. 그게 HTM의 시작이기도 하죠.
히로시 처음엔 단순하게 세 사람의 이름 앞글자를 따서 프로젝트의 이름을 지었죠. 히로시, 팅커, 마크, 이렇게요.대부분 그렇게 이름을 짓고는 하니까. 그런데 이게 진짜 팀 이름으로 굳어질 줄은 그때는 몰랐어요.
마크 보시다시피, 별 다른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었어요.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럽게 HTM으로 불리우기 시작했죠.
#2 상호보완
마크 구성원 모두가 각각 일하는 방식이 전혀 달라요. 하지만 이런 점이 오히려 저희를 끈끈하게 만들게 했죠. 마치 재즈 밴드의 잼 세션처럼, 누군가 무언가를 제시하면 거기에 각자의 장점을 더해가거나 혹은 그저 의견을 자유롭게 생각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말이에요. 히로시는 스타일과 실용성에 대한 감각을, 팅커는 스니커에 대한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기능적인 이해를 지녔어요. 그게 즉흥적으로 버무려지는 거죠.
팅커 마크의 강점은 현실감각이에요. 하지만 동시에 뛰어난 디자이너이기도 하죠. 늘 구성원을 꾸리고, 프로젝트를 전두 지휘해요. 영화로 따지면, 제작부터 미술, 연출까지 혼자서 도맡을 수 있는 감독이에요. 온갖 수집품들과 예술 작품들이 완벽하게 배치돼있는 그의 사무실을 보면 이해가 될 거예요.
마크 구성원 각자의 역할이 따로 정해져 있지는 않아요. 역할은 그때 그때,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달라져요. 예를 들면, 프로젝트마다 무대 중앙을 차지하는 ‘센터맨’이 매번 바뀔 수 있다는 거예요.
#3 기회
마크 HTM은 새로운 건 무엇이든 거침없이 시도해볼 수 있는 자유로운 곳이예요. 상품화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개진할 수 있고, 구성원도 적기 때문에 진행 속도도 꽤 빠르죠. 이런 HTM의 특징은 다른 디자인팀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치죠. 한번은 도저히 실현 불가능할 것 같은 아이디어를 회사에 제시한 적도 있어요. 나이키 우븐이 그 대표적인 예죠. 우븐을 필두로 양말과 신발의 경계에 있는 ‘삭 다트Sock Dart’를 내세우면서 니팅 테크놀로지의 선두 주자가 되었어요. 플라이니트는 이같은 니팅 디자인의 방점이자 미학적 성취이기도 했죠.
팅커 초창기의 HTM은 예상치 못한 색감과 소재를 사용해 기존 스니커의 디자인을 업그레이드하는 연습의 일환이었어요.
히로시 당시에는 고급 스니커가 그렇게 흔하지 않았어요. HTM이 각종 스니커에 고급한 감각을 더하는 기회가 되었죠. 그게 목표이기도 했어요.
마크 HTM에는 거의 제약이 없었어요. 우리는 대량생산의 의무도 없었기에 최고급 소재를 마음껏 사용할 수도 있었죠. 그렇게 우리는 최고급 소재를 이용해 에어 포스 1을 새롭게 디자인해보기로 했어요. 이를테면 가죽의 배색만이 아닌, 스티치와 바디의 배색, 즉 전통적인 라인을 강조했어요.
#4 미래
파커 삭 다트는 팅커의 팀이 니킹 기술을 응용해 완성한 모델이에요. 1980년 중반에 선보인 삭 레이서가 그 시발점이었죠. 양말과 흡사한 신발에 대한 갈망이 있었어요.
팅커 니팅 기술의 삭 다트는 당시 꽤 도전적인 프로젝트였는데, 모든 이들이 스니커 디자인의 궁극적인 미래라고 얘기했죠. 하지만 첫 시판 후 많은 모델을 제작하지는 못했어요. 때문에 슈즈를 직접 본 사람이 거의 없죠. 하하. 그 후로 얼마 지나지 않아 히로시가 다시 삭 다트를 HTM에서 다시 한번 만들어 보고 싶다고 했어요.
히로시 삭 다트 발매 한참 후였는데, 일본에서 뒤늦게 꽤 인기가 있는 걸 확인했어요. 마크와 팅커에게 이 미래지향적인 스니커를 꼭 만들어야한다고 밀어붙였죠. 그렇게 HTM에서 다시 한 번 시작해보기로 한 거예요.
팅커 HTM 프로젝트는 진흙 속의 진주를 찾아낼 수 있는 기회와 같으니까. 다양한 시도는 결국 삭 다트 모델의 구체화로 이어졌죠. 도전하는 정신이 바탕에 있었기 때문이에요.
마크 이런 일련의 과정은 결과적으로 추후에 등장할 플라이니트의 플랫 니트 구조를 마련하는데 큰 발판이 됐죠. 역시 창의성과 도전정신이 아니었으면 일구지 못했어요.
히로시 기존에 있던 것을 업데이트하는 것 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내고 적용하는 데에 초점을 두었어요. 그렇게 공격적으로 아이디어를 제시하지 못했으면, 아마 불가능했을 거예요.
마크 실마리가 풀리자, 플라이니트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에도 확신이 생겼어요. 나이키 퍼포먼스 엔지니어링의 규칙을 새롭게 쓴 셈이죠. 플라이니트를 비롯해 기존의 ‘컷 앤 소우’ 방식을 대체할 명쾌한 해답을 찾았죠. 유연성, 통기성, 그리고 착화감 모든 걸 스티치 패턴의 변주를 통해 해결할 수 있게 되었죠.
히로시 플라이니트는 보기에는 굉장히 단순해보이지만, 그 속에는 꽤 놀라운 첨단 기술이 반영되어있죠. 초창기 샘플에서는 니트로 된 갑피부분을 육안으로 구분하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었는데, 실의 색을 통해 해답을 찾았어요. 구분이 잘 안 되는 구조를 더 명확하게 표시하기 위해 서로 다른 컬러의 실을 섞도록 했죠. 나아가 색상만으로도 기능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각각의 색상에 기능적인 상징을 담도록 했어요.
#5 코비 브라이언트
히로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모델은 따로 있어요. 바로 코비 9 엘리트 로우죠. 이는 플라이니트의 방점이자 발전 양상을 확인할 수 있는 모델이었어요. 간단하게, 플라이니트도 농구 시합에서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강도를 지녔다는 걸 처음 증명한 모델인 거죠.
팅커 물론 나는 제품 디자인에 깊이 관여하진 않았지만 코비 9 엘리트 로우는 우리가 만든 것 중 제일 완성도가 높고, 디자인이 훌륭한 제품이라고 생각해요. 여기에 확실한 테스트 과정을 거치기도 했죠. 첨단 기술과 선수의 경험이 집약된 모델인 셈이에요.
마크 코비 브라이언트만큼 스포츠웨어의 첨단 기술과 혁신에 민감한 선수가 없었죠. 게다가 오랜 선수생활로 축적한 경험까지. HTM의 시그니처 모델을 선보이는 데 있어, 코비는 최고의 적임자였죠. HTM과의 프로젝트 내내, 그는 꽤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줬어요. 흥미진진해 보였죠. 그의 스니커에 대한 애정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6 위대한 유산
마크 능동성, 창의성. HTM은 이 두 단어를 바탕으로 시작했고, 지금까지 이를 원동력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흥미로운 걸 만들자’ 아주 간단한 슬로건이에요. HTM의 작업 프로세스는 나이키 내에서도 가장 모범적인 디자인 접근 방식이자, 하나의 교범으로 칭송 받고 있어요.
팅커 모든 역사를 살펴보면 많은 기업들 역시 혁신과 어떤 개척을 통해 성장해왔어요. HTM은 역시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성장하길 원하죠. 무엇보다, HTM은 많은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프로젝트이고,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해요. 게다가 이 프로젝트는 무언가에 얽메이지 않는 다는 게 가장 매력적이죠. 싫어할 이유가 없어요. HTM은 파격적인 테크놀로지를 시장에 자연스럽게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었어요. 배우고, 테크놀로지에 대해 널리 알리며 그 과정에서 규모를 더 키워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죠.
- 에디터
- 장승호
- 출처
- www.nik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