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춤추는 채닝 테이텀

2016.03.24GQ

채닝 테이텀은 < 21 점프 스트리트 >, < 매직 마이크 >로 박스 오피스 기록을 연달아 세웠다. < 폭스캐처 >에선 연기파 배우로서 입지도 굳혔다. 동년배 중 최고 스타가 됐다. 타란티노의 < 헤이트풀 8 >, 코엔 형제의 < 헤일, 시저! >에도 출연했다. 작가 리치 코엔이 LA에서 채닝 테이텀을 만나 모든 것을 파헤쳤다. 어린 시절부터 거장과의 작업, 그 유명한 끈팬티에 이르기까지.

2014년 할리우드를 뒤흔든 소니 픽처스 해킹 사건으로 에이미 파스칼, 스콧 루딘, 소니 픽처스, 김정은 등에겐 불똥이 튀었지만 채닝 테이텀은 승리자였다. 이메일에서 쏟아져 나온 할리우드 주요 인물들이 레드 카펫 위 모습과는 전혀 다른 두 얼굴의 소유자였던 반면 채닝 테이텀은 겉과 속이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영화에 등장하는 그대로 마음이 넓고 놀기 좋아하는 솔직한 남자였다. 영화 < 22 점프 스트리트 >의 개봉 성적이 발표 된 뒤 그는 프로듀서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세스 맥팔레인의 <19곰 테드>가 갖고 있던 R 등급 코미디의 역대 흥행 기록을 < 22 점프 스트리트 >가 깼다. 테이텀은 이렇게 썼다. “저리 비켜, 테드!!!!! 너는 역대 두우버어언째애!!!! 이 정도 성적이라면 케이트 블란쳇도 이기겠어!!!!!!” 이메일 끝에 는 “하하하하하하”가 끝없이 이어졌다.

채닝 테이텀은 브래드 피트, 조지 클루니 이후 최고의 남자 스타다. 그는 말했다. “나는 분명히 나쁜 이메일도 썼을 거예요. 유출된 이메일이 운 좋게도 나쁜 게 아니었을 뿐이죠.” < 22 점프 스트리트 >는 결국 세계적으로 3억 달러 이상 벌어들였다. 테이텀은 2006년 < 스텝 업 >에서 첫 주연을 맡았고, 2012년 < 서약 >, < 21 점프 스트리트 >, < 매직 마이크 >로 6개월 동안 1억 달러를 넘긴 영화 세 편에 등장했다. < 22 점프 스트리트 >는 그 기세를 이어간 셈이다. 넷플릭스와 소셜 미디어 때문에 위축되고, 불안 초조 증세에 사로잡힌 영화계에서 채닝 테이텀은 흥행 보증 수표가 되었다.

테이텀이 치른 진짜 신고식은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 매직 마이크 >였다. 영화는 바닥부터 올라온 테이텀의 이야기를 담았다. 작은 도시의 잘생긴 아이가 외진 동네에서 모델과 댄서로 일하다 “그 춤을 바지를 입지 않고 추면 어떨까?”라는 질문을 받는다. “나는 탬파 에 있는 ‘조이’라는 나이트클럽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어요. 그룹 이름은 ‘메일 인카운터male encounter(수컷과의 조우)’였죠.” 이후 테이텀 은 점점 더 그럴듯한 분야로 진출했다. 인쇄 광고, 펩시 광고, 장편영화에도 나왔다.

< 매직 마이크 > 이후에는 < 화이트 하우스 다운 >, < 주피터 어센딩 > 같은 고만고만한 영화에 출연했다. 베넷 밀러의 < 폭스캐처 >에서는 예술적으로 한 단계 성장했다. 올림픽 레슬러 마크 슐츠를 연기한 테이텀은 그 영화에서 스타라기보다 배우였다. 테이텀은 그 황량한 야수성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 < 성난 황소 >의 로버트 드 니로만큼이나 강렬하고 때로는 < 워터 프론트 >의 말론 브란도만큼이나 나약한 연기를 했다. “나는 이제 영화가 잘될 것 같다는 이유로 이런저런 역을 맡고 싶지 않아요. 캐릭터 작업을 하고 싶어요. 내가 했던 영화들을 다 좋아하지만…. < 폭스캐처 >에서는 더 깊이 들어 갔어요. 나는 마크 슐츠의 모든 것에 완전히 사로잡혔어요. 심지어 그가 포크를 쥐는 방법까지…. 나는 프리스타일 레슬링보다 더 숨막히는 스포츠는 해본 적이 없어요. 상대가 내 얼굴 바로 앞에서 노려보며 나를 지배하려고 해요. 레슬링은 공포에 의해 움직여요. 그동안 노력 한 걸 1초 만에 잃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1980년생인 테이텀은 이제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적당히 수입을 올리면서 그럭저럭 괜찮은 연기를 하는 배우에서 순식간에 모든 티켓을 매진시킬 수 있는 배우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고전적인 할리우드 주연 배우의 차원, 로버트 레드포드와 폴 뉴먼이 걸은 그 고급스러운 길을 걸으려 한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복수극 < 헤이트풀 8 >에 새뮤얼 L. 잭슨, 커트 러셀, 팀 로스 등과 함께 출연했고, 옛 할리 우드를 그린 코엔 형제의 < 헤일, 시저! >에는 스칼렛 요한슨, 조지 클루니, 랄프 파인스, 조시 브롤린과 함께 출연했다. “난 오디션을 받으면서 연기하는 법을 배웠어요. ‘깡패 1’이나 ‘깡패 2’의 대사를 읽으면서요. 세 줄을 읽은 다음 캐스팅이 되길 바라는 거죠…. 이제 나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어요, 예전에는….” (채닝 테이텀은 말끝을 흐릴 때가 많다. 마치 그의 머리 위에 ‘…’ 이 든 말풍선이 떠 있는 것 같았다.)

< 매직 마이크 >의 후속작 < 매직 마이크 XXL >에서 그는 은퇴했다가 예전 팀의 마지막 공연에 동참하기 위해 무대로 돌아오는 스트리퍼였다. 요란한 영화였고, 우화처럼 읽히기도 했다. 돌아온 댄서의 이야기이자 마지막으로 한 번 놀아보는 배우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신세대 최고의 남자 배우가 더 진지한 역할로 옮겨가기 전 마지막으로 추는 봉춤이었다. “그들은 15년째 봄방학인 것처럼 행동했어요. 이제 그건 끝났어요. 다들 이제 정신 차리고, 지금부턴 뭘 하고 살아야 할지 생각해야죠.”

점프 스트리트 캘리포니아 주 버뱅크 워너 브라더스 스튜디오 뒤에서 촬영. 셔츠는 제임스 퍼스, 바지는 올세인츠, 구두는 발리.

동물원에서의 하루 1958년, LA는 그리피스 공원에 새 동물원을 만들었다. 옛 시설은 부수지 않았다. 산책로와 우리, 동물이 살던 곳은 잡초가 무성해지도록 내버려두었다.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 마치 <로 건의 탈출> 마지막 장면에 나온 담쟁이에 덮인 링컨 기념관이나 <A.I.> 마지막 장면의 뉴욕처럼 으스스한 곳이다. “그것들도 좋죠. 하지만 역시 <혹성 탈출>에 나오는 자유의 여신상이죠. 그 원숭이 자식들이 폭파해버렸지만.”

거기서 테이텀은 폐허에 대해 말했다. 폐허는 죽음과 시간으로 우리를 괴롭히지만, 이상하게도 그렇게 우울하지만은 않다고 했다. 폐허는 우리 중 가장 성공한 누군가의 저택도 결국 잡초로 뒤덮인다는 걸 일깨워준다.

테이텀은 몇 분 전에 주차장에서 나와 만났다. 그는 지켜보기 불안할 정도로 잘생겼다. 컨버스 운동화를 신고 있었는데 평범한 컨버스가 아니었다. 조수가 밤에 유리 세척제로 닦았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일부러 멋있게 망가 뜨린 컨버스였다. 야구 모자를 비딱하게 쓴 그는 포옹으로 나를 맞았다. 그는 자습실 뒤쪽에 앉는 덩치 크고 착한 아이 같다. 마음만 먹으면 당신을 해칠 수 있지만 해치지 않는 아이. 미식 축구를 무척 잘하지만 천성이 다정한, 이 세상의 선을 대표하는 아이 말이다. 물론 채닝 테이텀은 보통 사내가 아니다. 그건 영화의 속임수에 불과하다. 보통 사내를 이데아적 완벽함까지 끌어올리고 최고의 힘을 불어넣은 다음 두꺼운 어깨와 맑은 녹색 눈, 매끈한 얼굴을 준다면 채닝 테이텀이 될 것이다. 얼굴에 조금 자라난 수염 그루터기는 그 불완전함으로 전체적인 완벽함을 강조한다. 육체적 존재감은 말론 브란도나 마이크 타이슨을 떠올리게 한다.

첫 포옹 후 주먹을 부딪친 우리는 서로 미소 짓고는 곧바로 버려진 동물원 우리들을 향해 나무 사이를 걷기 시작했다. 15개월째 가뭄이 지속되던 때였다. 동물원 주위의 언덕은 몹시 건조했고 먼지투성이였다. 내가 테이텀을 마지막으로 본 이후, 2005년에 <스텝 업>을 찍으며 만나 결혼한 그의 아내 제나 드완은 첫딸을 낳았다. 인터뷰 당시 그의 딸 에벌리는 두 살이었지만 그는 여전히 아이가 태어났을 때의 강렬한 경험에 사로잡혀 있었다. 첫 번째 울타리가 나타났을 때 그는 흥분하며 그 이야기를 했다. “엄청났어요.” 그는 곰이 살던 곳으로 보이는 안쪽으로 뛰어들며 말했다. “무력하다고 생각했어요. 우린 우리가 크고 강한 남자다, 어떤 상황이든 다 대처할 수 있다고 믿고 싶어 하죠. 그런데 현실은, 우리는 아무리 해도 여자만큼 강해질 수 없어요. 진화적으로든 뭐든, 우리에게 그 일을 맡기지 않은 이유가 있어요. 아내는 전사예요. 아내는 완전히 옛날식 자연분만을 했어요. 그 상황에서 남자는 기본적으로 치어리더에 불과해요. ‘힘내 여보, 할 수 있어.’ 나 같으면 1라운드에 포기했을 거예요.” 그가 고백하듯 말했다. “무서워요. 아기를 만들었고, 이제 함께 키워서 이 세상에 내놓아야 해요. 누가 도와줄 것 같지만 결국 둘이 키우는 거죠. 병원에서 ‘OK, 이제 데려가세요’ 하고 아기를 건네주었을 때, ‘잠깐만요. 우리랑 같이 집에 가서 계속 도와주는 거 아니었어요?’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내는 정말 굉장해요. 슈퍼 맘이에요. 다른 말로 표현할 방법이 없어요. 매일, 매초 아기 옆에 있어요. 난 아빠가 된 게 좋아요. 작은 거울이 뛰어다니는 것 같아요. 제나는 늘 이런 말을 해요. ‘오, 지금 저건 자기랑 똑같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그가 이어 말했다. “한편, 차라리 아버지가 없었으면 더 나았을 사람들도 있어요. 케이스 바이 케이스죠. 사랑을 지나치게 받느냐 부족하게 받느냐? 내 부모님이 어땠는지 돌아보면 고마운 마음이 더 커요.”

“완전히 새로운 시기인 것 같아요. 아이가 생겼고 내가 늘 꿈꿔왔던 사람들고 일하고. 내가 커트 러셀과 같은 영화에 나오다니! 타란티노 영화 세트장에서 그 웃음소리를 듣는 건 초현실적이었어요.”

끈팬티를 입느냐 마느냐 그것이… 테이텀은 원숭이 집 옆을 지나며 자기와 딸의 어린 시절을 말했다. 그는 앨라배마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 미시시피로, 10대 때 플로리다로 갔다. 아버지는 지붕 수리공이었다. 어머니는 항공사에서 일했다. 테이텀은 미식축구를 했고, 먹고 마시면서 놀았고, 해변에서 잤다. 그는 아무것도 지닌 것 없이 불쑥 이 세상에 나타난 반면, 그의 딸은 스타의 아이로 자랄 것이다. 그가 말했다. “아이에겐 묘한 삶이죠. 하지만 무엇에 비해 묘한 거죠? 모든 삶은 묘해요.”

테이텀의 딸이 자라면서 알게 될 특이한 일 중 하나는 자기 아버지가 < 매직 마이크 >에서 끈팬티를 입고 춤추는 모습일 것이다. 이 주제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섹스하는 동작을 흉내 내는 스트리퍼의 이미지를 극한까지 추구한 < 매직 마이크 XXL > 이야기도 나왔다. “나는 그게 사람들이 첫 번째 영화에서 원했던 거라고 생각했어요. 첫 영화에서는 할 수 없었죠. 우린 사람들에게 ‘우리가 그 세계를 안다, 이 얘기는 진짜다’라는 걸 이해시켜야 했어요. 적어도 내겐 익숙한 그 세계는, 언제나 즐겁지만은 않았어요.” 테이텀은 그 시절의 친구 이야기를 했다. 동료 스트리퍼였는데, 그만둔 지 오래지만 스트리핑만 한 스릴이 없어서 가끔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오른다고 했다.

나는 테이텀에게 그 일을 다시 할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영화에서가 아니라, 장난으로도 아니고, 진짜로 어두운 밤에 여자 관객들 앞에서 예전의 춤을 출 생각이 있는지. 지나가던 소방관, 특이한 방식으로 딱지를 끊는 경찰관, 스트리트 래퍼 역할로. “음, ‘매직 마이크 쇼’를 라스베이거스에서 할 예정이에요. 절대 안 하리란 법은 없죠. 무대에 올라 한 번 정도 더 하는 건 괜찮아요. 두 번도. 하지만 끈팬티를 입고 무대로 걸어 나갈 준비를 할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내가 왜 이걸 하고 싶어 하지?’ 끈팬티를 입고 1천 명 앞에 서면 굉장히 불편해요.”

“나는 내 아내 앞에서도 못 입어요.” 내가 말했다. “그걸 입고 편안할 수 있는 사람은 없죠. 그게 우리 플롯의 쟁점 중 하나였어요. 끈 팬티를 입느냐 마느냐. 하지만 내 아내는 ‘끈팬티를 안 입으면 영화가 안 돼’라고 하더군요.”

< 매직 마이크 XXL >을 우화로 봐도 좋겠느냐고 물었다. 모든 것에 작별을 고하는 것이 코미디와 액션을 뒤로하고 더 고급한 영화로 가는 테이텀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할까?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완전히 새로운 시기인 것 같아요. 아이가 생겼고 내가 늘 꿈꿔왔던 사람들과 일하고…. 내가 커트 러셀과 같은 영화에 나오다니! 타란티노 영화 세트장을 걸으며 러셀의 웃음소리, 내가 여러 해 전부터 들어온 그 웃음소리를 듣는 건 초현실적이었어요. 나는 그의 영화를 보며 자랐거든요. 새뮤얼 L 잭슨! 이런 사람들은 영화를 보면서 상상했던 모습과 똑같았어요. 나는 우리가 팬으로서 스타를 높은 자리에 올리고 떠받든다고 생각해요. ‘저 사람들은 정말 쿨할 거야’하고 생각하다가 실제로 만나보면 생각했던 것과 다를 때도 있죠. 그 두 사람은 정말로 영화랑 똑같았어요.” 그가 말을 이었다. “쿠엔틴과 처음 만나 5분 동안 같이 앉아 있으면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어요. 첫째, 이 사람은 그 누구보다 영화에 대해 잘 아는구나. 둘째, 이 사람은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할 수 없을 만큼 내 캐릭터 연구를 해놨구나. 좀 겁이 나지만, 그걸 극복하고 나면 쿠엔틴은 자기가 세워놓은 도미노의 선에 완벽하게 들어맞지 않는 일은 결코 시키지 않을 거라는 든든한 기분이 들죠.”

나는 <헤잇풀 8>을 어디서 찍었는지 물었다.

“텔루라이드. 쿠엔틴을 그 산에 데려간 사람 중 하나에게 그가 물었어요. ‘여기서 실제 눈보라가 칠 확률이 얼마나 되죠?’ 그 사람은 100퍼센트라고 대답했어요. 그런데 그해에 눈이 기록적으로 적게 내렸어요. 그 사람이 누군지 몰라도, 지금 아마 쿠엔틴 집 지하실 상자 속에 들어가 있을걸요.” 테이텀은 웃으며 돌멩이를 걷어찼다. 돌멩이는 길에서 튀어 언덕 아래로 떨어지며 툭 튀어나온 바위들 위로 계속 튀었다. 코엔 형제 영화는 어땠을까?

“50년대 영화 스튜디오와 스튜디오 해결사 이야기예요. 그 시절에는 해결사가 있었어요. 만약 배우 중에 술꾼이 있다면, 촬영장에서 그가 사라지면 해결사가 술집이란 술집은 다 돌면서 배우를 찾아내 끌고 오는 거죠. < 펄프 픽션 >의 울프처럼 나타나는 거예요. 조엘과 에단은 굉장히 크고 아름다운, 정말 멋지게 그림을 그려놓은 스토리보드가 있어요. 거기에 스태프들을 참여시켜요. 감독들은 대부분 스토리보드를 가지고 있지만 잘 보여주지 않는데, 조엘과 에단은 스탠드에 얹어놓고 스태프가이 다 볼 수 있게 해줘요. 보조 출연자들까지 전부 모아놓고 자세히 설명해줘요. 그런 감독은 흔치 않아요.”

“나는 사람들이 배우들에 대해 너무 많이 아는 것 같아요. 배우들이 더 이상 신비롭게 느껴지지 않아요.”

아메리칸 아이돌 곧 정상에 도착했다. 고속도로, 사무실 건물, 언덕들- < 그리스 >의 마지막 장면, 1950년대 B급 웨스턴 영화들에 나오는 풍경 같았다. 나는 여기가 그의 동네가 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물었다. 그는 최근 베벌리 힐스에 집을 샀다. 테이텀은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이번 산책이 어떤 비유로 느껴지는지도 물었다. 우리는 냄새 나는 낮은 곳의 우리 근처에서 시작했지만 계속 올라와 드디어 정상에 섰으니까. 테이텀은 반쯤 감은 눈으로 나를 보다가 풍경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모르겠네요. 사실 오는 길에 그 생각을 했거든요. 이번 산책은 초현실적이었어요. 어제 누가 물어보더군요.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하신다고 생각하느냐고. 물론 그렇지만, 정말 이상해요…. 아주 괴상해요.”

꼭대기 벼랑에 가로로 자란 나무가 있었다. 불경의 보리수와 비슷했다. 테이텀은 평행봉 선수처럼 그 위를 빠르게 걸어가 나무 둥치에 기댔다. 세상에 등을 돌린 자세였다. 그는 영화와 영화 사이에 몸이 불어서 보통 사람과 비슷해진다고 하지만, 나무 위의 그는 너무나 탄탄하고 좋아 보였다. 정말 매직 마이크 같았다. 그에게 무명과 인기의 의미에 대해 물을 생각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그의 운동 방법을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몸 관리를 잘하죠?”

“최대한 운동을 해야 하지만 어렵지 않아요.” 그는 머리 뒤에서 두 손을 깍지 끼며 말했다. “난 그걸 즐겨요. 달리기, 사이클, 펀치백, 크로스핏 등. 하지만 그걸 매일 다섯 번씩 해도 식습관이 바르지 않으면 살은 하나도 안 빠져요. 다이어트에는 다양한 학파가 있어요. 구석기 식사법을 해본 적이 있어요. 베이컨을 먹게 해 주죠. 나는 구운 옥수수를 좋아해요.”

그는 몸을 쭉 펴고 하품을 한 다음 어깨 너머를 보더니 지금 자세가 위험하다는 걸 갑자기 깨닫기라도 한 듯 나무에서 뛰어내려 돌아오며 나를 불렀다. 나는 테이텀에게 그가 영화계 최후의 아이돌 중 하나인지 물었다. 모든 인구 집단의 인기를 얻는 최후의 스타, 점점 더 쪼개지는 시장의 파이 중 마지막 남은 큰 조각. 조깅하는 사람이 테이텀을 알아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건 우리도 한 이야기예요. 브래드 피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왜 이런 사람들의 새로운 버전이 없죠? 사람들이 배우들에 대해 너무 많이 아는 것 같아요. 극장에 가서 3시간을 쓰는 게 점점 더 힘든 일이 되고 있어요. 사람들은 집에서 TV를 보면서도 전화를 붙들고 있죠. 연결돼 있어요. 심지어 배우들과도.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배우들이 더 이상 신비롭게 느껴지지 않아요. 나는 그들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그들을 보러 영화관에 가곤 했어요. 내가 좋아하는 배우를 한동안 못 봤기 때문에 영화관에 가고 싶어졌어요.”

내려올 때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오랑우탄 우리 뒤에는 눅눅한 지하실이 있었다. 그가 구멍을 찾아내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악취가 나고 그래피티가 가득한 좁은 터널들을 돌아다녔다. 오줌에 절고 맥주 캔이 널려 있는, 피하주사기가 굴러다니는 떠돌이들의 낙원이 었다. 테이텀은 굉장히 만족스러운 듯한 소리를 냈다. 전화기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마치 사라진 종교의 상징을 연구하려는 사람 같았다. “라이카를 가져올걸.” 그는 사진을 찍으며 이미지와 미술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대화는 그가 감독을 맡는 것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우리는 각본을 쓰고 기획을 했어요. 제작비를 댔고, 물론 연기도 했죠. 이제 우리는 우리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만들고 공동 감독을 하기 위해 천천히 학습을 시작하고 싶어요. 준비 하고 있는 것들을 천천히 할 거예요. 누가 돈을 준다고 바로 감독을 하고 싶진 않아요. 믿거나 말거나지만 돈은 쉽게 구할 수 있어요.”

< 고스트 버스터즈 >의 리메이크를 포함, 테이텀이 제작에 관여하고 있거나 참여한다는 루머가 돈 작품은 많다. 하지만 그가 가장 기대하고 있는 것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모터사이 클리스트 이블 니블의 전기 영화다. “니블이 사람들은 자신이 성공하는 걸 보려고 오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게 언제일까요?” 테이텀이 물었다. “아, 니블이 추락하는 걸 보려고 오는 거라고요?” 내가 답했다. “그렇죠! 상상해봐요. 그는 정말 여러 번 죽을 뻔했어요. 정말 대단했죠. 그는 몬태나 주 뷰트 출신이에요. 가본 적 있어요? 차를 몰고 지나간 적이 있는데….”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우리를 흔들어 보고 싶어요. 어쩌면 그래서 내가 당신을 버려진 동물원에 데려온 건지도 몰라요.” 테이텀은 다시 돌아가며 말했다. “내가 세월의 시험을 견딜 수 있는 영화를 최소한 한 편은 만들고 싶어 요. 내가 보면서 자란 사람들의 작품과 같은 급의 영화를.” 우리가 우리에서 걸어 나오는 것을 본 한 여성이 소리를 질렀다가 테이텀을 알아 보고는 얼떨떨하면서도 기뻐하는 것 같았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언젠가 폐허가 될 거예요. 그리고 또 다른 문명이 벽에 구멍을 내고 낙서를 하겠죠. 달라이 라마의 말을 인용하고 싶은데, 뭐라고 했더라?”

XXL 우리는 높은 나무 아래 있는 돌 벤치에 앉았다. 대화는 점점 복잡하고 철학적으로 변했다. 크레용 조각을 발견한 테이텀은 테이블에 광대를 그렸다. 나는 그 광대가 사악해 보인다고 했지만 그는 동의하지 않았다. 좋고 나쁨을 판단할 이유가 없고, 그건 광대가 아닌 내게서 나오는 거라고 했다. “얼마 전에 제나와 TV에서 <스텝 업>을 봤어요. 2초 동안. 10년쯤 전에 만든 영화죠. 그게 왜 힘드냐면 ‘와, 난 저게 훨씬 더 좋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예 요. ‘저게 훨씬 더 별로였다고 생각했는데’ 싶을 때도 있죠. 관점을 바꾸는 일들이 생겨요. 의견 뿐 아니라 당신의 렌즈 자체가 바뀌어요. 50밀리미터 렌즈를 끼고 있다가 16밀리미터 렌즈를 끼는 것 같이요. 그럼 더 많은 것이 보이지만 작은 것들은 놓치게 되죠. 난 당분간은 그런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할 거예요. 그 영화에 참여했다는 것이 너무 자랑스러워서 돈이 되지 않더라도 상관없는 영화.”

내가 물었다. “우리 안의 그래피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마지막 질문이었다.

“자신의 흔적을 남긴 것 아니겠어요?” 그가 씩 웃으며 말했다. “왜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할까요?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데 왜 매일 똑같이 하는 그 일상적인 일들을 하죠? 나는 2주 휴가를 위해 1년에 50주를 일해요. 그럴 필요는 없는데. 돈을 벌고 꿈꿔왔던 삶을 사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이 정말 많죠. 인생은 힘드니까, 두려워지니까. 사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언젠가 저 우리처럼 될 거예요. 다른 문명이 벽에 구멍을 내고 낙서를 하겠죠. 아, 달라이 라마의 말을 인용하고 싶은데. 뭐라고 했더라…? 누가 달라이 라마에게 인간의 어떤 면을 볼 때 가장 어리둥절한지 물었어요. 그러자, 일부분만 말할게요. 인간들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살다가,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는 점 이라고 대답했어요.”

    에디터
    RICH COHEN
    포토그래퍼
    ANNIE LEIBOVITZ
    스타일리스트
    JESSICA DIEH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