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브론 제임스는 내내 최고다. 기꺼이 왕이라 부르고 싶은 그를 로스앤젤리스, 뉴욕, 토론토를 거쳐 다시 로스앤젤리스까지 쫓아다니며 인터뷰했다. 르브론 주식회사, 은퇴, 클리블랜드, 인종, 그리고 “놈팡이”라는 주제로.
트럼프를 향한 적대적인 입장이 베트남 전쟁 당시 무하마드 알리의 입장과 비슷해지는 것 아니냐고 르브론 제임스에게 물었다. 르브론이 트위터에서 트럼프를 “놈팡이(U Bum)”라 부르기 전의 일이다. “글쎄요, 두고 봐야 알 것 같은데요? 알리는 개인보다 더 큰 사안을 대표했어요. 그는 자신이 배제될 미래의 변화를 원했죠. 그게 알리의 역할이었습니다. 미국만 해도 각 주마다 삶이 다를 수 있어요. 제가 그걸 다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자유가 무엇인지는 압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국민에게 주는 기회 말이에요. 그런데 대통령이라는 인간이 그걸 이해하지 못한다니, 저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성장에 몸 바친 이들에게는 사실 당황스런 일이죠. 하지만 무하마드 알리와 전쟁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저와 도널드 트럼프가 그런 관계까지 치달을 것 같지는 않아요.”
운동선수의 위대함을 가늠하기란 때론 엄청나게 쉬운 일이다. 시즌이며 통계로 남는 활약, 결정적인 플레이와 우승 반지가 있으니까. 데이터나 비디오 클립, 증언까지 있다. 그래서 우리는 르브론 제임스를 역사상 최고의 운동선수라고 말할 수 있다. 한편 운동선수의 업적을 좀 더 폭넓은 맥락에서 평가한다면? 어떤 영향력을 미치고 어떤 의미를 남긴 인물인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선수를 평가하는 두 방법 중 전자는 업적과 말만 가지고 따진다. 돌진 거리나 터치다운을 기준으로 NFL의 3대 러닝백을 꼽는 경우처럼. 후자는 선수의 플레이가 동시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가지고 평가한다. 어떤 선수와 비교되었는가? 다른 시대의 선수 누구만큼 업적을 쌓았나? 자신의 세대에 무엇을 남겼나? 사회에 어떤 영항력을 미쳤으며, 효과는 어떠했는가? 르브론 제임스는 코트를 종횡무진하는 최고의 농구선수다. 하지만 그의 삶이 앞으로 몇십 년 동안 미칠 영향을 숙고해보자. 어느 날 그에게도 농구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인생의 2막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걸 알고 있기에 르브론 제임스는 오프시즌마다 르브론 주식회사라는 세계의 기반을 바쁘게 다져 인생 2막을 준비한다.
몇 주 동안 다큐멘터리 <더 카터 이펙트> 시사회를 위해 드레이크와 참석한 토론토 영화제, 맨해튼 미드타운에서 열린 최고위급 인사 앞에서 연설 행사, 헬스 키친에서 열린 패션쇼, 그리고 로스앤젤리스에서 진행한 다섯 시간짜리 사진 촬영까지 쫓아다니며 르브론을 밀착 취재했다. 그가 군중에 따라 능수능란하게 변신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았다. 심지어 농구에 대한 설명마저 상대를 감안해 난이도를 조절했다. 예를 들어 농구에 문외한이라고 믿어도 문제 없을 영화 프로듀서들에게 농구를 간단하게 설명했다. 심지어 슬램 덩크가 “농구에서 최고의 플레이”라고 표현했다. 그와의 사업 가능성에 대해 김칫국부터 마실 상대에 맞춰, 코드를 바꿔가며 힘들이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그는 농구 외의 사업 세계에 굉장히 진지하게 접근한다. 그 사실만으로 그의 위대함을 규정할 수 있다. 르브론은 농구를 통해 가꾸고 거둬들인 명성, 인지도, 영향력이 인생 2막에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다. 따라서 그 모두를 여러 분야로 나눠 증폭시켜야 한다는 것도 물론 알고 있다. 인생 2막이 없는 르브론 제임스는 누구와 비교할 수 있을까. 윌트 체임벌린? 빌 러셀? 코트에서는 사상 최고의 반열에 들 만큼 전설적인 선수였지만 은퇴 이후 상대적으로 빛나지 못한 이들 말이다. 은퇴 후의 조용한 삶은 르브론 제임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오랫동안 에너지를 들여 야무지게 사람을 모았다. 오랜 친구는 물론, 그가 새롭게 도전하는 여러 분야를 전략적으로 운영해줄 새로운 파트너와 전문가 말이다. “같은 사람들과 굉장히 오랫동안 함께 일했습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오랜 세월을 함께 보내면 입에 발린 거짓말이나 미화는 하지 않죠. 무작정 충성을 바치거나 띄워줄 사람도 필요 없어요. 그냥 솔직하게, 가감 없이, 거르지 않고 날것인 지식과 진실과 열정을 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경기장 밖의 야망이 크더라도 경기장 안에서 완전히 압도하지 않는다면 운동선수의 영향력은 제한된다. 발상이나 의도가 좋을지라도 영향력은 결국 운동선수로서의 실력과 맞물린다. 그게 이치다. 코트 안에서 이루지 못했다면 밖에서도 꿈을 이룰 수 없다. 그래서 경기장이 운동선수의 위대함을 따지는 출발점인 것이다. NBA 데뷔 이래 15년 동안 르브론 제임스는 꾸준하게 압도적인 영향력을 미쳤다. 그래서 금방 기량이 쇠퇴할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열다섯 번째 시즌을 앞두고 있고 서른두살이지만 그는 신인 시즌보다 더 몸상태가 좋다.(그는 손 마사지를 받으며 “몸 상태가 너무 좋아요”라고 말했다.) 베테랑 르브론은 신인 르브론에 비해 근육량은 두 배인 데 반해 체지방은 말끔히 걷어냈다. 그는 비현실적으로 몸이 좋은 액션피겨처럼 보인다. 하지만 매 게임마다 39분씩 상대팀의 최고이자 가장 신체 조건이 좋은 수비수를 뚫고 화물열차처럼 농구 코트를 누비고 다니다 보면 자잘한 부상을 겪지 않을 수가 없다.
뒤통수에 왜 상처가 있죠? 팔꿈치로 맞은 거예요.
경기에서 입은 부상인가요? 마이애미 히트 시절, 연습할 때요. 팀 동료한테 팔꿈치로 맞아서 열여섯 바늘이나 꿰맸어요. 여기 상처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 플레이오프를 치르다가 카메라 위로 자빠졌어요. 워리어스와는 첫 경기였죠.
그래서 꿰맸나요? 아뇨, 안 꿰맸어요. 의학용 접착제로 처리했습니다. 스테이플러로 찍는다고 그랬는데요, 제가 “빌어먹을 스테이플러로 머리를 찍지 말라고요”라고 말했죠. 그런데 공식적으로 발표한 부상은 아니에요. 부상에 대해서 밝히지 않는 분위기니까요. 저 개인적으로도 그렇고요.
기량이 쇠퇴하더라도 계속 뛸 건가요? 기량이 쇠퇴한 다음에도 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제 큰아들과 맞대결할 수 있을 때까지는 붙어 있고 싶어요. 그건 아마도 모든 업적을 능가하는 업적이 되겠죠.
맞아요. 하지만 아들에게 망신 당하고 가만히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그럼 파울을 냅다 저질러야죠! 아들 녀석에게 여섯 번의 파울을 모두 집중시킬 거예요. 브로니에게 그냥 냅다 파울을 저질러버리는 거죠! 플레그런트 파울 2 적발!
뉴욕 포시즌스 호텔의 회견장은 프로듀서, 카메라맨으로 가득 찼다. 곧 열릴 정상회담에 에마뉘엘 마크롱, 저스틴 트뤼도, 빌 클린턴, 빌 게이트, 팀 쿡, 마윈 등의 정치인이나 사업가와 더불어 “같은 위상의 세계적인 리더”가 필요하다는 과업 때문이다. “세계의 지도자를 일반인이 실제로 얼마나 압니까? 그래서 르브론이 필요합니다.” 블룸버그 글로벌 비지니스의 직원이 말했다. 르브론이 회견장에 들어서자 건물 바닥이 그의 방향으로 기운 것 같았다. 이날도 다를 게 없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왕은 그의 벌린 양팔만큼이나 넓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랑방 셔츠는 물감으로 그린 것 같았다. 신발은 나이키 에어 줌 제너레이션 스니커였다. 그는 세계의 최고위 지도자들에게 나이키를 신고 연설하려는 참이었다.
프롬프터로 연설문을 몇 차례 읽은 뒤 르브론은 연설을 시작했다. 처음 읽는 것 같은 연설이었지만 단 한 번의 시도로 정확히 끝내려는 노력이 배어 있었다. 모든 국가 지도자나 업계 거물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듯, 서른두 살의 르브론 제임스가 말했다. “우리는 세계가 좀 더 분발해야 한다는 걸 압니다.” 그는 ‘우리’라고 그랬다. 이런 순간을 통해 르브론 제임스가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운동선수임을 새삼 깨닫는다. 위대함은 전방위에서 찾아오는 부담감이다. 플로이드 메이웨더는 앞으로 50전 무패를 더 기록할 수도 있겠지만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운동선수는 될 수 없다. 그는 이기적인 인간이니까. 그리고 야비하니까. 그래서 결과적으로 소인배니까. 위대한 운동선수는 종목을 초월한다. 스니커와 전해질 보충 음료와 비디오게임 표지와 재무팀과는 상관없이 위대하다. 르브론은 몇천 명의 학생에게 대학까지 학비를 지원한다. 하지만 그의 영향이나 잠재력에 대해 말할 때, 그런 선행은 상대적으로 작아 보인다. 이를테면 30득점 경기처럼 말이다. 그의 야심의 상한선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대통령이 되고 싶지는 않나요? 아아뇨.
그렇게 확신에 찬 답변 같지는 않네요. 다른 사람의 시간까지 헤아려야만 하는 직업이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 거예요. 밖에서 보면, 대통령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야만 하는 직업 같습니다. ‘나만의 시간’이 정말 없어 보이죠. 저는 ‘나만의 시간’을 즐기는 사람이에요.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긍정적인 측면을 생각해볼 수도 있겠죠. 글쎄, 지금 대통령에 대해서는 별게 없네요. 긍정적인 구석이 전혀 없으니까요. 하지만 일반적인 경우라면 영감을 고취시키는 능력을 꼽을 수 있겠죠. 말에 권위가 배어 있습니다. 박식하고 배려하며 사랑하고 열정적인 목소리로 말한다면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희망을 주게 될 겁니다.
사회적인 사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게 왜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요? 칭찬을 받거나 기사에 실리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에요. 책임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책임감이요.
당신 같은 위치가 되면 누구라도 책임감을 느끼게 되는 건가요? 아뇨, 저만의 책임감이죠. 저는 대의를 위해 이 자리에 서 있다고 믿습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선택에 의해 책임감을 느끼는 자리를 맡게 되잖아요. 비단 오늘날의 상황만은 아니에요.
하지만 여건이 되면서도 목소리를 안 내는 게 오히려 잘못이라 생각하지 않나요?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닐거예요. 당신이 책임감을 느끼고 신실하다면 행동에 옮겨야죠. 빌어먹을 거짓이라면 사람들이, 아이들이 알아차릴 겁니다. 모를 수가 없죠.
흑인 운동 지도자 W.E.B. 두 보이스는 미국의 흑인이 언제나 느끼는 이중성에 대해 말했습니다. 당신은 굉장히 극단적인 예라고 봐요. 한편 오하이오주의 구세주잖아요. 오하이오에서 당신을 떠받들지 않는 사람이 없죠. 하지만 한편 인종주의를 무시할 수도 없어요. 고향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면 참기 어렵나요? 고향이든 아니든 다른 도시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트레이본 마틴이나 마이크 브라운 사건 같은 일이요. 저는 집에 가서 열세 살, 열 살 짜리 아들, 심지어 두 살 배기 딸에게도 미국에서 흑인으로 자라는 삶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해줍니다. 위대해지더라도, 부유해지더라도, 그래서 사람들이 나 혹은 내 업적을 떠받들더라도 흑인 남성 또는 여성이라면, 언제나 흑인일 거라고요.
이중성 말이죠. 인간의 본색이 드러나는 거죠. 플레이오프 기간 동안 제가 사는 캘리포니아주 브렌트우드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미국에서 빌어먹게도 가장 부유한 동네에서조차 인종 차별 언어가 넘쳐나죠. 그런 상황에 꼭 반응해야 할까요? 아니면 부정적인 국면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되는 걸까요? 많은 사람이 저의 의사를 궁금해할 겁니다. 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눠봤어요. 현실은 물론 바뀌지 않을 미래에 대해 말해주죠. 언젠가 너희들의 뜻을 펼치고 기량을 발휘할 때, 이런 현실을 이해해야 할 거라고요. 밖에 나가 운전하고 돌아다닐 때 경찰에게 최대한 깍듯하게 대해야 할 거라고요. 경찰이 차를 세운다면 엄마나 아빠에게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걸라고요. 다만 전화기를 좌석 밑에 내려놓아야죠. 그리고 통화가 될 때까지 최대한 깍듯하게 경찰을 대하라고요.
도널드 트럼프에게 투표한 주에서도 르브론 제임스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글쎄요, 르브론 제임스의 업적을 사랑할 수 있겠죠. 하지만 르브론 제임스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럴 것 같지 않아요. 손주나 아들, 딸, 아니면 조카가 뭐라고 말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르브론은 르브론이에요.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뭐라고 말하든 신경 안 써요. 르브론이 최고예요”라고 말해서 선택의 여지가 없을 수도 있죠. 하지만 종내에는 사람들은 바뀌지 않는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가요. 이게 분명한 대답이 되겠죠. 제가 나고 자란 오하이오주는 도널드 트럼프에게 투표했어요. 그럼에도 이 자리에서 오하이오주에도 저의 팬이 엄청나게 많다고는 말할 수 있겠죠. 안타까운 일입니다.
르브론이 인종을 화제로 삼는 방식은 아주 섬세하다. 현실적이면서도 상처를 어루만지고 보듬어준다. 그는 순응을 거부하는 운동선수다. 경찰의 가혹함부터 코트 안팎에서 커리어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트윗이나 인스타그램 포스팅에 잘 드러난다. 클리블랜드를 떠났다 다시 돌아오는, 그 과정에서 자유계약 제도의 관례를 깬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결국 모든 NBA 선수에게 자유를 선사했다. 하지만 2010년 당시 르브론은 매체며 팬은 물론,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구단주 댄 길버트(클리블랜드 시민에게 르브론을 자아도취된 반역자나 다름없다고 선언한 공개 서한을 보낸)에게 두들겨 맞았다. 따지고 보면 사업이나 스포츠와는 전혀 상관없는 공개 서한이었다. 댄 길버트가 팀을 넘어 르브론을 소유하고 있는 듯 굴었다고 말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댄 길버트의 편지에서 인종주의를 느꼈나요? 음, 그랬습니다. 당시 저는 클리블랜드 시와 구단주에게 제 전부를 바쳤어요. 안타깝게도 당시에는 구단이 저의 비전을 구현할 만한 선수를 데려올 수 없는 상황이라고 보았고요. 많은 사람이 이기고 싶다는 말은 하지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르고 비전도 없습니다. 따라서 아시겠지만, 그 서한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종종 머릿속에 떠오르죠. 말하자면 인간의 본성 같은 거예요. 당시에도 인종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고, 앉아서 ‘그래, 알겠다. 어떻게 나아질까?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질 좋은 기회라고 이해했어요. 그리고 만약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진다면 이젠 더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겠죠. 제 방식대로 일을 처리하고 싶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농구를 계속할 것이고, 그렇다면 너무나도 열심히 해서 코트 바깥의 일을 좇을 때 농구를 할 만큼 했으니까, 의무를 다했으니까 다른 일을 하고 싶어 해도 된다고 믿고 싶은 거죠.
르브론 제임스는 클리블랜드시에 빚을 졌나요? 저는 아무에게도, 아무 빚도 지지 않았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요. 당시에 제 어머니가 말씀하셨죠. 제가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않았다고. 그럼 저는 정말 아무에게도, 아무 빚도 지지 않은 거예요. 하지만 클리블랜드에 열정과 헌신, 영감을 줄 겁니다. 이 저지를 입는 한, 그런 가치를 보여줄 거예요. 그래서 클리블랜드에서 뛰는 거죠. 이 도시에 영감을 주기 위해서. 하지만 아무에게도, 아무것도 빚지지 않았습니다.”
- 에디터
- Mark Anthony Green
- 포토그래퍼
- Pari Dukov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