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무근”이라 잡아떼다가 사건이 커지자 하나같이 “죄송합니다”로 입장을 번복했다. ‘승리 게이트’를 통해 드러난 연예계의 리스크 관리 능력.
세상이 온통 불판이다. 단순 폭행 사건으로 시작된 ‘버닝썬 사태’가 성범죄, 마약, 경찰 유착, 탈세 등으로 번지며 한국 사회를 불태우고 있다. 불길은 승리와 정준영, 최종훈 등이 포함된 카톡방으로 옮겨 붙으며 어제의 스타를 오늘의 성범죄 혐의자로 돌려놓았다. 사건에 연루된 가수들의 연예계 은퇴와 탈퇴, 팀 방출이 러시를 이뤘다. 추락한 건 스타만이 아니다. 부적절한 대처를 보인 연예 기획사들의 신뢰도도 바닥을 쳤다. 스캔들 초기에는 약속이라도 한 듯 “사실무근”, “법적 대응”을 외치다가 사태가 커지자 발 빠르게 “죄송합니다”로 입장을 번복했다. 전개 과정에 클리셰가 난무하다 보니, 이젠 어떤 연예인과 기획사가 논란에 대해 “사실무근”이라 발표해도 팬들은 쉽게 믿지 않는 분위기다. 관련 기사에는 어김없이 이런 댓글이 달린다. “승리도 처음엔 그렇게 이야기했지.” 연예 기획사들은 왜 양치기 소년이 됐을까.
매니지먼트 산업에서 연예인은 단순한 개인이 아니다. 자본, 인력, 시간 등의 투자비용이 발생하는 일종의 상품이다. 기획사는 연예인의 이미지와 활동을 팔아 수익을 창출한다. 하지만 사람은 물 흐르듯 변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완벽하게 통제하기는 힘들다. 잘 자란 연예인은 결국 성장 동력인 동시에 리스크가 된다. 스타의 일탈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회사 살림의 뇌관이 되기 때문이다. 인기가 많을수록 위기 앞에서 잃는 게 훨씬 더 많아진다.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이 얼굴을 바꿔 공격하기 시작한다. 광고가 끊긴다. 각종 계약이 위악금이란 이름의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스타의 일거수일투족은 주가나 브랜드 가치로 직결되기도 한다.
실제로 버닝썬 게이트가 불거진 초반 YG 주가는 25퍼센트 안팎으로 떨어졌다. 시가총액은 2천2백억원이 증발했다. 최종훈과 이종현을 품고 있던 FNC엔터테인먼트의 주가도 휘청거렸다. 로이킴이 정준영 단톡방 멤버라는 사실이 알려진 후, 그가 주주로 있는 장수막걸리와 남양유업은 매출에 직격탄을 맞았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소속 연예인이 논란에 휘말리면 기획사는 필사적으로 ‘보유 자산’을 보호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사실 확인은 뒷전으로 밀린다. “개인의 일탈은 아티스트가 솔직하게 밝히지 않는 한 사실관계를 완벽하게 알기 어렵다. 결국 믿을 수밖에 없는 건데, 사실 믿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보는 게 맞다. 스타를 키우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건 한순간일 수 있다는 위기감이 본질을 흐리고 잘못된 대응을 낳는 셈이다.” 연예 기획사 관계자 A의 말이다.
일단 덮고 보자는 대응은 또 다른 리스크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소속사의 비호로 위기를 모면하다 보면 연예인 입장에서는 일탈에 무감각해지기 쉽다. 위기관리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지는 셈이다. 승리가 몸담았던 YG를 향한 대중의 반감이 매서운 건 이와 무관하지 않다. YG는 소속 연예인의 도덕성 결여에 대한 지적을 지속적으로 받아왔다. 그럴 때마다 가수의 개성과 자유를 앞세우며 방어했다. 심지어 넷플릭스와 제작한 승리 주연의 페이크 다큐 예능 <YG전자>에서 자신들을 향한 사회적 우려를 개그 코드로 소비했다. 프로그램에는 대마초 관련 구설에 자주 오르내려 ‘약국’으로 조롱받아 온 자신들을 ‘셀프 디스’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제 와 돌이켜보니 범법 행위도 웃음의 소재로 활용했다. 페이크 다큐라는 건 페이크이고 실상은 리얼 다큐? 거대 떡밥을 품은 하이퍼 리얼리즘? 승리의 일탈이 YG 내부의 안일한 풍토와 무관하지 않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버닝썬 게이트 이후 소속 연예인의 술자리 경계령을 발효한 연예 기획사가 적지 않다고 한다. 연예인들의 카카오톡 단체방이 여기저기에서 폭파됐다는 소식도 들린다. “카카오톡 대신 텔레그램을 사용하라고 조언했다”는 또 다른 기획사 대표 B의 말엔 번뜩이는 아이디어라 해야 할지 ‘눈 가리고 아웅’이라 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게 된다. “운동이나 게임으로 남아도는 에너지를 해소하라고 권하고 있다”는 C 기획사 홍보이사의 말엔 이거 너무 저연령층 맞춤 예방법이 아닌가 갸웃하게 된다. 소속 연예인에게 인성교육을 실시하는 기획사가 이전보다 늘었다고는 하지만, 근본적인 방법 제시에는 여전히 취약한 게 지금의 현실이다.
어떤 게 도화선이 돼서 터질지 예측하기 힘든 게 리스크지만, 그 유형이 점점 버라이어티해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급부상한 리스크계의 최강자는 인권, 젠더 감수성, 성 인지 감수성이다. 시민의식은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이에 걸맞은 대비는 낙제 수준이기 때문이다. 기획사 실무진들조차도 이와 관련된 문제 인식이 낮다는 게 특히 뼈아프다. 잘못을 저질러도 그것이 왜 잘못인지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가령 승리는 지난해 8월 예능 프로그램 <짠내투어>에서 구구단 멤버 세정에게 술을 따르라고 말해 논란을 낳았다. 승리 개인도, 이 장면을 편집 없이 내보낸 제작진도, 소속 연예인의 발언을 지켜만 본 기획사도 논란이 되기 전엔 이게 심각한 문제라는 점을 인지하지 못했다. 이번 승리와 정준영 단톡방 사건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성관계 동영상을 단톡방에 올리는 것이 범죄라고 인식하지 못한 저변에는 성숙하지 못한 성 인지 감수성이 자리 잡고 있다. 이번 사건에 대해 “남자라면 몰카 좀 보고 싶을 수 있지”라는 반응이 댓글로 달리는 걸 보면, 남성들의 성욕을 당연시하고 여성에 대한 범죄를 놀이처럼 바라보는 우리 사회 남성 카르텔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짐작할 수 있다. 관련 리스크가 여전히 연예계는 물론 사회 곳곳에 매복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리스크 관리 변화의 필요성은 매체 환경 변화 앞에서 더 크게 요구된다. 과거에는 몇몇 주요 언론사만 회유하거나 설득해도 리스크를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매체가 많아도 너무 많을뿐더러, 언론 환경이 종이신문에서 인터넷으로 바뀌었다. 작은 가십이라도 인터넷에 뜨면 퍼지는 건 순간이다. 일탈 행적은 ‘연관 검색어’라는 현대판 주홍글씨로 인터넷에 박제되기도 한다. 신문이 발행되기 전에 기사를 막아 위기를 모면했다는 매니저들의 이야기는 이제 ‘아주아주 먼 옛날’ 모험담처럼 구전으로 떠돌 뿐이다.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을지도 모를 버닝썬 게이트의 시작, 즉 김상교 씨 폭행 사건의 진실을 세상에 처음 알린 곳 역시 언론이 아닌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이었다.
SNS 확산과 스마트족이라는 신인류의 등장은 인터넷 발달과 맞물려 대중 모두를 감시자로 만들었다. 스마트폰을 손에 쥔 전 국민이 파파라치고, 잠재적 기자이자 1인 플랫폼이다. 때론 심판자가 되기도 한다. 최근 <프로듀스X101>의 도전자 윤서빈은 학창 시절의 폭력 행적이 SNS에서 문제가 되면서 프로그램에서 하차해야 했다. 소속사 JYP와도 계약을 해지했다. 제작진이 놓친 오디션 프로그램 도전자 검증도 바야흐로 대중이 메우는 시대인 셈이다. 이미지를 가공하고 이름을 바꾸고 제3의 인성을 창조해서 살아간다 해도, 언제 어디서 ‘네티즌 수사대’가 출동해 진실을 파헤치려 할지 모르는 일이다. 사생활을 포기하고 ‘집돌이·집순이’로 살아온 게 아니라면, 리스크에서 자유롭기란 이제 거의 불가능하다. 점점 예리해지고 있는 대중을 상대로 낡은 과거의 리스크 관리 방식을 들이댔다간 경험하게 되는 건 역풍이다.
SBS가 입수해서 공개한 승리와 정준영 등이 참여했던 단체 카톡방을 들여다보자. “왜 대처를 못 했지? 어떻게든 (보도를) 막으면 되지 않나? OOO(소속사)가 그냥 OO(연예인 이름)을 버린 듯.” 모 연예인의 음주 운전 적발 보도를 막지 못한 아무개 기획사의 ‘무능’을 꼬집으며 승리가 한 말이다. 그래서 궁금하다. 버닝썬 사태의 보도를 막지 못한 전 소속사의 대처에 대해 승리와 그의 동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버려졌다 생각할까? 확실한 건 진실이 누군가에 의해 가려졌다면, 우리는 ‘위대한 승츠비’가 유망 사업가로, 인기 그룹 멤버로, 예능계 유망주로 승승장구하는 시대에 여전히 살고 있을 것이란 점이다. 단톡방에 모여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 비하하는 그들의 실상을 모른 채, ‘우리 오빠’라 지지하며 주머니를 열고 있을 팬들은 또 어떻고.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글 / 정시우(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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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