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나 힐의 첫 번째 연출작인 <미드 90>은 보기 드물게 비범한 감독 데뷔작이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소년들을 1990년대의 풍경 안에 담은 이 작품은 성장영화에 대한 일반적인 기대감을 가뿐히 뛰어넘는다.
내던져지듯 문에서 튀어나와 맞은편의 벽에 부딪쳐 쓰러지는 소년을 향해 비호같이 쫓아와 주먹을 퍼붓는 또 다른 소년. 딱히 우애가 깊어 보이지 않지만 둘은 형제다. 나이도 많고, 덩치도 큰 형은 어린 동생에게 “내 방에 들어가면 죽는다”고 늘 으름장을 놓는다. 하지만 동생은 형이 집을 비울 때마다 주저하지 않는다. 방문을 연다. ‘우탱 클랜’을 비롯한 힙합 뮤지션의 포스터가 붙은 벽 옆으로 스냅백들이 질서정연하게 걸려 있고, 옷장에는 품이 넉넉하고 다채로운 색감의 스웨트 셔츠와 럭비 셔츠, 트랙 수트 등이 가지런하게 걸려 있다. 방 한편의 수납장에는 다양한 뮤지션의 CD가 진열돼 있다. 이를 바라보는 소년의 눈이 반짝인다. 형의 방은 소년이 동경하는 세계 그 자체다.
배우 조나 힐의 첫 연출작 <미드 90>은 제목처럼 연도가 불분명한 90년대 여름 한복판에 놓인 영화다. LA에 사는 열세 살 소년 스티비(서니 설직)의 한 시절을 주목하는 이야기다. 스티비는 외롭다.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 결핍과 함께 하루를 보낸다. 그런 어느 날,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서너 명의 소년을 본다. 저마다 개성이 뚜렷해 보이는 그들은 유쾌하게 떠들고 웃으며 어른들에게도 기죽지 않고, 서슴없이 맞선다. 스티비의 눈이 다시 한번 반짝인다. 그들과 어울리고 싶어서 아지트나 다름없는 스케이트 보드 숍을 찾아낸 후 형의 낡은 스케이드보드를 산다. 그렇게 그들의 세계로 접근한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그들 곁에 앉아 있다 말을 섞고, 무리에도 섞이기 시작한다.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무언가를 이뤄냈다는 기분을 느낀다. 자신의 방에 붙어 있던 공룡 포스터들은 스케이트보드 매거진에서 찢은 사진들로 바꾼 지 오래다.
“내 꿈은 항상 영화감독이 되는 것이었다.” LA의 중산층 가정에서 성장한 배우 조나 힐의 방에는 어린 시절부터 마틴 스콜세지와 스탠리 큐브릭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배우가 된 건 우연이었다. 조나 힐은 같은 사립학교에 다니던 친구의 집에서 장난전화를 걸었다. 친구의 아버지는 우연히 그 광경을 몰래 지켜봤다. 그러다 조나 힐에게 연기적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됐고, 자신이 출연하는 영화 <아이 하트 헉커비스>의 작은 배역을 위한 오디션에 초대했다. 그렇게 배우로 데뷔한 조나 힐의 경력은 거듭됐다. 데뷔 3년 만에 주연을 맡은 <수퍼배드>로 큰 주목을 받았고, <머니볼>과 마틴 스콜세지의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노미네이트됐다. 모든 작품이 성공적인 평가를 얻은 건 아니었지만 코미디와 정극까지 소화하는 배우로서 확실한 입지를 다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조나 힐은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나는 내게 의미 있고 기분 좋은 일을 하고 싶다.” 조나 힐은 마틴 스콜세지를 찾아갔다. 배역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 대한 자문을 얻고자 함이었다. 네 시간가량의 대화 끝에 교훈을 얻었다. 좋은 감독이 되는 데 필요한 건 가르침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내가 만들 첫 영화가 무엇을 다루려 하는지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는 게 매우 중요했다.” 조나 힐은 계획이 있었다. “이 영화를 만드는 데서 가장 큰 야망은 우리 부모 세대가 비틀스를 액자에 넣어 기억하듯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나 우탱 클랜을 액자에 걸어 보여주는 것이었다.” 조나 힐은 10대 시절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무리들과 어울렸던 자신의 과거로부터 길어 올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어디서 본 듯한, 반항과 성장의 클리셰를 제시하는 틴에이저 무비를 만들고 싶진 않았다. 그는 불안하고 어리석었던 그 시절을 지나온 자신만의 이야기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미드 90>은 스케이트보드를 통해 교감하는 소년들의 세계에 발을 디딘 소년의 모험담에 가깝다. 형의 세계를 동경하지만 동참할 수 없고, 상냥한 엄마는 경제적 책임까지 짊어져야 하기에 어린 스티비를 돌볼 여력이 없다. 그런 스티비에게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소년들의 세계는 삶의 결핍을 채워주고 일상에 새로운 동기를 불어넣는 장이다. 그래서 그들만큼 스케이트보드를 잘 타고 싶다. 그래서 숱하게 넘어지면서도 스케이트보드를 굴려 점프를 시도한다. 모두가 만류하는데도 지붕과 지붕 사이에서 점프한다. 그리고 추락한다. 마음먹는다고 모든 일이 이뤄지진 않는다. 머리에서 피가 철철 나고, 스케이트보드도 망가진다. 하지만 그 덕분에 진정한 일원이 된다. 점프를 잘하진 못했지만 넘어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므로. 그리고 점점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것 외에도 첫 경험이 늘어간다.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여자를 만난다. 스티비에게 그것은 불량한 일탈이 아니라 짜릿한 모험이자 진정한 연대다.
<미드 90>은 소년들의 일탈과 성찰을 나열하며 성장통의 아름다움을 역설하는 영화가 아니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소년들은 미성숙한 사고와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며 사회적인 규범을 조롱하기도 하고, 공적인 윤리를 조롱한다. <미드 90>은 그런 태도를 어른의 입장에서 다루지 않는다. 비판적인 시각이나 반성적 태도를 강요하지도, 주입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연처럼 이해하고 지켜볼 뿐이다. 그 시절에는 응당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당연한 삶이란 누군가에게는 꿈과 같은 현실이라는 것을,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통증을 알기 전까진 타인의 삶을 완전히 알 수 없음을 일깨운다. 약물중독에 빠진 부모로부터 달아나고 싶어서, 가난한 집안의 사정을 잊고 싶어서, 뚜렷한 꿈이 없다는 허망함에 빠져들고 싶지 않아서, 소년들은 스케이트보드를 탄다. 저마다의 사정은 다르지만 소년들은 그렇게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그 순간만큼은 온전히 자신들의 시간으로 산다. 자신들의 세상으로 달려간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소년들의 세계를 주목하는 <미드 90>은 그 세계를 관통해 어른이 된 자만이 전할 수 있는 고백이자 성숙한 대가가 보여줄 수 있는 재능처럼 보인다.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동경할 수밖에 없는 시절의 순수한 에너지를 90년대의 아날로그 감수성을 그릇 삼아 담아낸 결과물이다. 4:3 화면 비율로 상영되는 16밀리미터 필름 영상은 90년대라는 시대성을 육체적인 물성으로 구체화시키며 시대 자체를 하나의 캐릭터로 인식하게 만든다. 동시에 배우 경력이 없던 스케이트 보더들을 주요 캐릭터로 세우는 과정에서 수많은 대화와 소통을 통해 심리적 거리를 좁혀 나가고, 그들에게 어울리는 현장 상황의 즉흥성을 세심하게 반영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완성해낸 감독 조나 힐의 역량은 온전히 영화적 성취로서 보존됐다.
우연히 찾아온 배우 경력을 이어가던 조나 힐은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실현시킬 기회를 기다렸다. 배우로서의 명성에 멈춰 서지 않았다. 그리고 끝내 자신의 과거로부터 꿈을 길어 올렸다. 보드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속도를 늦춰가며 가까스로 내리막길을 내려오던 스티비가 어느새 자연스럽게 몸을 세우며 바퀴가 구르는 속도에 적응하듯이, 조나 힐도 그렇게 세월을 지나왔다. 각자의 깊은 사정을 다 알 순 없지만 그저 함께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우듯이, 함께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의 속 깊은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만든다. 그 길에 서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열기와 헤아릴 수 있는 진심, <미드 90>은 그렇게 적정한 온도로 품은 남다른 깊이의 성장영화다. 거칠지만 낭만적인 일탈과 서툴지만 사랑스러운 성장이 교차한다.
무엇보다 일종의 보너스 트랙과도 같은 엔딩 시퀀스는 <미드 90>이라는 영화가 타고난 운명을 대변하는 절정이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서 비디오 캠코더를 손에 달고 다니는 소년은 친구들의 조롱을 받으면서도 그들과 함께한 90년대의 그 여름을 애정 어린 성실함으로 기록해냈다. 사실 이 장면은 조나 힐의 계획에 없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 캠코더가 생생하게 담아낸 <미드 90>의 모든 순간을 확인하는 순간 알았다. <미드 90>이 바로 거기 있다는 것을. <미드 90>의 결말은 그렇게 운명처럼 마련됐다. 그리고 그 결말과 함께 <미드 90>은 누구보다 빛나고 싶어서 누구보다도 뜨거웠던 시절을 향한 비범한 송가가 됐다. 이런 성장영화를 만날 기회는 실로 드물다. 정말 죽여준다. 글 / 민용준(대중문화 칼럼리스트)
- 에디터
- 김영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