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torial

MEN OF THE YEAR 2019 – 오혁

2019.11.21GQ

오혁은 끝까지 간다. 의미 없는 것은 비우고 좋아하는 것만 가득 채워서.

블루 캐시미어 재킷 4백58만원, 울 니트 톱 1백38만원. 모두 보테가 베네타. 액세서리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블루 캐시미어 재킷 4백58만원, 팬츠 2백43만원, 울 니트 톱 1백38만원, 블랙 스퀘어 링 가격 미정, 모두 보테가 베네타. 이어링과 노즈 커프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블랙 점프 수트 4백70만원, 블랙 레더 숄더 파우치 4백62만원, 모두 보테가 베네타. 액세서리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캐시미어 재킷 4백58만원, 보테가 베네타. 액세서리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화이트 트렌치코트 가격 미정, 블랙 레더 부츠 1백43만원, 모두 보테가 베네타. 액세서리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화이트 크레이프 셔츠 1백86만5천원, 블랙 울 팬츠 1백69만원, 실버 트라이앵글 벨트 52만원, 골드 커프 뱅글 2백75만5천원, 모두 보테가 베네타. 액세서리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트렌치코트 2백92만5천원, 울 팬츠 1백38만원, 블루 우븐 힐 1백59만원, 브라운 우디 이어링 1백6만원, 모두 보테가 베네타.

블랙 점프 수트 4백70만원, 블랙 우븐 힐 1백59만원, 모두 보테가 베네타. 액세서리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트렌치 점프 수트 3백22만5천원, 실버 트라이앵글 벨트 52만원, 실버 커프 뱅글 각 2백59만5천원, 블랙 우븐 힐 1백59만원, 모두 보테가 베네타.

코튼 레인 코트 3백40만원, 골드 트라이앵글 벨트 40만5천원, 블랙 레더 부츠 1백43만원, 실버 이어링 1백13만5천원, 실버 커프 뱅글 각 2백59만5천원, 모두 보테가 베네타.

베이지 울 니트 톱 2백59만5천원, 울 팬츠 가격 미정, 실버 이어링 1백13만5천원, 모두 보테가 베네타.

블랙 코트 1천5백65만5천원, 보테가 베네타. 액세서리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올해 밴드 혁오의 이동 경로를 합산해보면 지구 한 바퀴 정도는 충분히 돌지 않았을까 싶네요. 일 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간 것 같아요. 미국, 스페인, 스위스, 러시아, 지난주에 다녀온 베트남까지. 항공 마일리지가 항상 꽉 차 있어요. 공연을 하면서 자극을 많이 받은 해였어요. 체력적으로 힘들긴 했지만.

혁오를 처음 보는 관객 앞에서 공연한다는 건 어떤 기분이에요? 오히려 그런 낯선 상황이 흥미로워요. 시작할 때는 앞의 서너 줄 정도만 관객이 보이다가 어느새 스탠딩석이 가득 차 있는 모습을 보면 완전히 새로운 기분이 들거든요. 해외에서는 저희의 인지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주로 페스티벌의 앞쪽 순서로 공연을 배정받아요. 한번은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로랜드 페스티벌’에서 조자 스미스 Jorja Smith와 같은 시간대, 다른 장소에서 공연을 했어요. 다행이 중간에 빠져나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죠. 우리에게 희망이 있구나, 나쁘지 않구나 생각했죠.

해외 뮤직 페스티벌에 가면 본인도 관객으로서 그 페스티벌을 즐길 기회가 생긴 셈인데, 오혁이 뽑은 올해 최고의 공연이 궁금해요. ‘코첼라 페스티벌’에서 본 테임 임팔라의 공연요. 뭐랄까 분위기도 가격도 공간도 모든 것이 알맞은 식당에서 맛있는 카레를 먹은 느낌이었어요. 문을 나서면서“진짜 잘 먹었다”라는 말이 저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전 세계 뮤직 페스티벌을 순회하다 보면 꼭 다시 마주치는 사람도 있나요? 블러드 오렌지, 맥 드마르코는 어딜 가나 항상 만났어요. 저희와 여러 번 일정이 겹쳤던 것 같아요. 만나면 잘 지냈냐고 인사도 하고, 술도 마시고 공연도 같이 보러 다니고. 맥 드마르코는 자주 본 사이이긴 한데 저희와 바이브가 그렇게 잘 맞지는 않아요. 뭐랄까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 있어서.

2020년에도 아시아, 유럽, 북미 등 총 19개국, 42개 도시에서 투어 공연을 한다는 뉴스가 떴어요. 계속해서 밖으로 나가려는 이유가 있나요? 아시아뿐만 아니라 서방국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저희 음악이 제대로 받아들여지는 시간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아직까지는 저희 음악이 비주류이자 대안 중 하나 같거든요.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서든 좋은 음악을 찾아 듣는 사람들과 좀 더 가까워지고 싶어요. 곧 발매할 새 앨범이 그런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아직은 베일에 가려져 있는데, 어떤 앨범인가요? 멤버들과 타협 없이 좋은 것만 담았어요. ‘이쯤 하면 됐다’고 만족하지 않고 좋은 것이 나올 때까지 밀어붙였어요. 의미 없는 것들은 모두 떼어버리려고 노력했고요. 이유가 없으면 미련 없이 버렸죠. 최대한 단순하게 비워내는 작업이었어요. 어떤 곡에 뼈대가 있다고 치면 그 안에 꼭 있어야 하는 것만 남긴 앨범이에요.

그렇게 비워내려고 한 이유는 뭔가요? 요즘 나오는 음악은 듣다 보면 귀가 피곤해져요. 그래서 오래 듣기 어려워요. 사람들이 계속 ‘레트로 레트로’를 외치는 것도 그런 음악에 대한 피로감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계속해서 과거 음악을 그리워하고 그때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도 같은 이유인 것 같고. 옷에 비유하자면 이번 앨범은 수트도 도복도 유니폼도 아닌 일상복의 느낌에 가까워요. 뭔가 멋을 많이 안 부린, 보기에 딱 좋은 옷.

혁오는 음악만큼이나 시각적인 것이 중요한 밴드예요. 누군지 아직 알려드릴 수 없지만 이번에도 같이 작업해보고 싶었던 사람들과 만나서 이미지와 영상 작업을 하고 있어요.

지난 앨범에서는 프랭크 레본 Frank Lebon 과 ‘하늘 나라’의 뮤직디비오 작업을 했었죠. 그런 사람들과는 어떻게 연결 고리를 만들어요? 누구냐에 따라 다른데 한 다리 건너서 제가 알 수 있는 사람이라면 직접 연락을 해요. 프랭크 레본은 두비두 DoBeDo라는 컬렉티브 집단에 속해 있어요. 알고 지내는 포토그래퍼도 두비두 멤버라서 연락처를 물어봤죠. 프랭크에게 앨범을 보냈는데 쭉 들어보더니, ‘하늘 나라’로 영상을 만들고 싶다고 먼저 의견을 보내왔어요. 저는 ‘LOVE YA!’라는 곡으로 프랭크와 작업을 하고 싶었는데, 결국 그 뮤직비디오는 프랭크의 아버지와 찍었고요. 거의 가족 경영 사업이나 다름없어요(웃음).

두 감독은 어떤 시안을 보내왔나요? 프랭크 레본 같은 경우에는 직접 그린 드로잉을 보내왔어요. 마크 레본은 런던에 있는 자신의 집을 구경시켜주면서 여기서는 뭘 찍고 저기서는 뭘 찍겠다고 말로 설명해줬어요. 나중에 농담처럼 말하기를, 저희가 입금을 해준 덕분에 집을 고칠 수 있게 됐다고, 고맙다고 했어요. 둘 다 너무 좋은 사람이라서 같이 작업을 하면 일단 기분이 좋아져요. 제가 운이 좀 좋은 것 같아요. 그분들과 함께 일하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나 스타일리스트도 옛날에 다른 매거진에서 이름을 들어봤던 사람들인데 실제로 만나보니까 실력도 탁월하지만 다들 성격이 유쾌했어요. 그래서 뭘 해도 재미있고 많이 웃었어요.

그래도 머리 위에 고깔 모양으로 쌓아 올린 초록색 잔디 분장은 거울을 보면서 충격을 좀 받았을 것 같은데. 사실 힘들었죠. 그날 분장만 4시간 넘게 했거든요. 나중에는 머리에 얹은 조형물이 너무 무거워서 목도 아프고. 그래도 시간과 돈을 들여서 새로운 걸 만드는 거니까 그 순간을 즐기면서 했어요.

서울에 머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아요. 새 앨범 작업도 런던 근교에서 했다고 들었어요. 리얼 월드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했는데 영국의 3대 스튜디오라고 불리는 곳 중 하나예요. 런던에서 차로 3~4시간 거리인 배스 Bath라는 도시 옆에 있어요. 욕조가 이 도시에서 유래한 단어래요. 녹음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숙박 시설을 잘 갖추고 있고 음식도 셰프가 다 만들어줘서 편하게 지냈어요. 눈떠서 눈 감을 때까지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곳이죠. 옆에 작은 호수도 있어서 답답하면 산책도 할 수 있고요. 베를린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장비를 사용해볼 수 있다는 게 가장 좋았어요. 요즘 드는 생각은 밴드 음악을 한다는 것 자체가 구식 혹은 아날로그 장비 같아요. 굳이 필요 없는데 굳이 쓰는 거죠. 좋으니까. 아날로그 장비로 음악을 만들다 보면 거기에서만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이 있어요. 자글자글한 사운드에서 나오는.

그동안 발표한 앨범을 보면 <20>, <22>, 작년에 발표한 <24>까지 모두 6곡이 수록되어 있어요. 사실 일부러 맞춘 거긴 해요. ‘4’는 조금 적은 느낌이고, ‘5’는 약간 성의가 없어 보이고, ‘6’이 가장 부족함 없는 느낌의 숫자예요. 아무래도 음악을 소비하는 방식 자제가 계속 변하다 보니까 정규 앨범이라는 형태가 점점 더 어렵고 부담스러운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규 앨범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어떻게 발매할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고민하고 있어요.

예전 인터뷰를 보면 불안이 오혁을 움직이는 원동력 같아 보였어요. 시간이 남아도 가만히 쉬지 못하고 불안해서 계속해서 일하고. 작업 결과물에 대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행위 자체가 논리적으로는 굳이 필요 없는 과정이라는 걸 저도 알아요. 그런 디테일을 잡으려고 애쓰는 이유는 분명히 음악을 듣는 사람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서…. 바로 알아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듣다 보면 분명히 다르거든요. 최종 결과물에 대해서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검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제 안에서 검열 같은 것이 계속 일어나게 되고. 끈기 있게 계속해서 솎아내는 거죠. 듣기에 좋을 때까지.

밴드 혁오가 테크노 같은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발표할 가능성도 있나요? 테크노를 좋아해서 집에서 혼자 듣고 만들어보기도 한다고 들었어요. 촬영장에 동행한 매니저가 예고편 느낌으로 ‘Techno’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있어서 물어봅니다. 작업해둔 곡이 몇 개 있긴 해요. 가끔은 인간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전자 음악이 좋을 때가 있거든요. 가사도 듣기 싫고 연주 곡도 질리면 테크노를 들어요. 그러다 곡을 만들기도 하고요.

베를린에 있을 때 기억에 남는 클럽은 없었나요? 보통은 집에서 제일 많이 음악을 듣지만 정말 가볼 만한 클럽, 이를테면 베르크하인 Berghain 이런 데는 가보죠. 입장하기 까다롭기로 유명해서 긴장을 좀 많이 했는데 운이 좋게도 들어갈 수 있었어요. 5시간 동안 비 맞으면서 기다렸거든요. 가봤더니 전 세계 1위 테크노 클럽인 이유가 있더라고요.

앨범 <24>의 부제이자 인스타그램에 오랫동안 적혀 있는 ‘How To Find True Love And Happiness’에 대한 답은 여전히 찾는 중인가요? 인생의 거창한 행복 말고 소소한 행복은 뭔가요? 주변 사람들, 친구들이 곁에 있다고 느꼈을 때 그런 기분이 들어요. 저희는 평소에 ‘팬분들’이라는 표현을 잘 안 써요. 저는 그분들도 다 친구들이라고 생각해요. 다 같이 나이가 들어가고 결국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어요. 음악 그 이상의 것을 공유하면 좋잖아요. 저희가 치열하게 고민한 것을 사람들과 같이 공유하고 싶어요. 사실 “사랑과 행복을 찾는다”는 말이 진부한 표현이지만 절대적이기도 하잖아요. 혁오의 음악이 그런 질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해요. 답을 주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같이 찾아보자고 말하고 싶어요.

    에디터
    패션 에디터 / 박나나, 허람 피쳐 에디터 / 김아름
    포토그래퍼
    박종하
    스타일리스트
    김예영
    메이크업
    강윤진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