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torial

영 보스의 워크 라이프

2021.04.30GQ

나이, 젊음, 청춘. 스스로 워크 라이프를 꾸려나가는 밀레니얼 세대와의 대화에서는 나오지 않은 단어들.

김상민 1991
Leader & Founder, Veluga

GQ 2017년 3월 1일에 업계 최초 주류 정기구독 서비스로 벨루가를 창업했을 때만 해도 ‘쎄하면 하지 말자’가 사훈이었던 걸로 알아요. 지금은 ‘오늘이 마지막처럼’이죠. 4년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 무심하게 당돌했던 기세는 어디 갔어요?
SM ‘중2병’에서 좀 벗어난 거죠. 사업하다 보면 누구나 우여곡절을 겪잖아요. 벨루가가 국세청 같은 국가기관과 충돌한 적이 있어요. 당시 제 입장에서는 좀 억울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긴 한데, 그때는 뭔가 잘 안 됐을 때 그 탓을 외부 환경 탓, 남 탓을 하면서 ‘나는 멀쩡하고 다른 게 이상하니까 쎄하면 하지 말자’ 이런 느낌이었던 거죠. 지금 보면 덜 성숙했던 것 같아요. ‘쎄’하면 ‘쎄’한 대로 맞춰서 잘하면 되는 건데.

GQ “억울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던” 그 일을 짚어봐야겠어요. 먼저 벨루가가 지금은 주류 유통 플랫폼이지만 원래는 정기구독 형태의 수제 맥주 정기 배달 서비스였죠. 이런 형태는 주류 업계 최초였다고요. 팩트인가요?
SM 팩트 맞고요, 그러니까 저희가 제일 먼저 두들겨 맞았죠. 토대부터 말하자면 디디면 안 되는 디딤돌에 발을 넣은 거죠. 그 리스크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어요. 왜냐면 법안이 물렁물렁했거든요. 그래서 배팅해본 거고. 당시 관련 고시가, 법령도 아니고 고시였는데, “음식과 함께 배달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주류 배달이 가능하다”였어요. ‘음식과 함께’이니까 사실 주스랑 보내도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고 당시 크래프트 맥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때라 수제 맥주와 함께 코코넛 칩이라든지, 캘리포니아 호두협회와 협업한 디아블로 월넛이라든지, 맥주와 어울리면서 쉽게 구하기 힘든 사이드 스낵으로 상품을 구성했어요. 정기구독 형태로 한 건 1인 창업이 가능한 구조라고 판단해서예요. 미리 신청 받은 상품 수대로 보내면 되니까 재고 리스크도 없고, 돈도 선불로 받으니까 자금 순환도 되고. 너무 좋죠. 원래 제가 맥주도 좋아하지만 이런 사업적 판단이 있었어요.

GQ 처음엔 32명이었던 구독자 수가 2019년에 3천명대까지 늘었죠?
SM 중간에 쉰 기간이 있어서 유의미하지는 않은데, 그랬죠. 직원도 저 혼자에서 6명이 되고.

GQ 중간에 쉬게 된 이유는 창업 4개월 만인 2017년 7월에 국세청이 관련 고시를 개정하고 규제했기 때문인 걸로 알아요. “음식에 부수하여 주류를 배달하는 경우만 술 배달 판매를 허용한다”라고 좀 더 구체화시켰죠.
SM ‘부수하여’라는 건 치킨이라든지, 사람들이 한 끼 식사로 인식하는 음식에 술을 곁들여 보내면 허용하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같은 해 10월에 CJ와 협업해서 수비드 치킨, 갈비 등 메뉴를 바꿔가며 정기 배달을 하는 방향으로 재정비했어요. 그렇게 승인도 받았고요. 그런데 2019년에 또 한번 조사가 들어왔죠. 승인해준 담당자가 퇴직했대요. 법령에는 여전히 애매한 구석이 많았고, 결국 2019년 7월에 수제 맥주 정기구독 서비스를 무기한 중단했어요.

GQ 동종 업계에서는 벨루가를 성공적인 실패 사례라고도 하더군요. 2020년 5월에 국세청이 주류 규제 개선 방안을 발표했잖아요. ‘음식에 부수하여’의 ‘부수’의 범위를 좁힌 것이라든지, 벨루가가 먼저 부딪히며 의문을 제기했던 물렁물렁한 부분이 조금은 단단해져서이지 않을까 싶어요.
SM 성공적인 실패 사례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류업계에서 벨루가 이미지를 좋게 생각하는 면은 있다고 봐요.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쟤가 겁없이 다 해줬다’ 이런 식의 좋은 이미지와 절반의 동정심이 더해져서 프랜들리하게 봐줘요. 지금도 저한테 주류수입협회나 수제맥주협회, 정부 중소기업청, 이런 데서 전화가 정말 많이 와요. 지방 국세청에서는 고시를 정할 때 일반인과 공무원 5명씩 데려와서 프라이빗하게 국감 비슷한 걸 열거든요? 그럴 때 증인으로 나가서 의견도 내고요. 실무 경험이 있지만 더 이상 이해당사자는 아니니까 오히려 속 시원히 말할 수 있죠.

GQ 어떤 의견을 내요?
SM 지금 주로 나오는 이야기는 온라인으로 주류 판매가 가능하게 하자는 건데, 솔직히 저는 온라인 주류 판매에 반대예요. 단순히 ‘동네 슈퍼마켓 사장님이 손해볼까 봐’ 같은 이유가 아니에요. 온라인으로 술을 살 수 있는 중국을 예로 들면 주류 시장이 어떻게 독식되고 어떻게 흘러갈지 보여요. 건강한 가격 경쟁이 안 되죠. 무작정 규제를 풀기에는 국내 주류 시장이 지금 그렇게 성숙하진 않거든요.

GQ 이제는 이해당사자가 아니니까 속 시원히 말한다고는 하지만, 말이 무기한 중단이지 벨루가의 첫 번째 사업 모델은 사실상 실패한 거잖아요.
SM 그렇죠. 창업하고 불과 몇 달 뒤에 처음 규제를 받았을 때는 진짜 힘들었어요. 그래서 2019년에 두 번째 규제를 받았을 때는 오히려 더 깔끔하게 접을 수 있었어요. 월세 내야지, 정기구독자, 배달업체, 주류업체에 돈 줘야지, 눈 앞에 현실적으로 부딪혀야 하는 것들이 있어서 마음에 여유가 없었어요. 그때 추석이 껴 있을 때라 하역장에서 상하차 아르바이트하면서 돈 벌어 갚고 그랬어요. 중고나라 통해 가진 물건도 팔고. 그때 당근마켓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때는 차라리 빨리 지금 하는 유통 사업 쪽으로 피보팅(Pivoting, 사업 아이템이나 비즈니스 모델을 다른 축으로 전환하는 것)하는 게 맞지 싸워서 크게 얻을 게 없다고 판단했죠.

GQ 그래서 2019년 7월부터 시작한 게 지금의 주류 유통 플랫폼이죠? 그런데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는 오프라인에서 술 유통이 이뤄지던 걸 그대로 온라인으로 옮긴 것과 뭐가 다르지 싶어요.
SM 그렇죠, 그럴 수 있죠. 그런데 그게 팩트예요. 일반 소비자가 듣기에는 이건 B2B 얘기라 진짜 재미없는데요, 말하자면 인력을 구하기 위해 전봇대에 붙이던 문어발 전단지 역할을 이제는 사람인, 원티드, 잡코리아가 하고, 부동산중개소 역할을 직방, 다방, 네이버부동산이 하잖아요. 디바이스가 발달하면서 산업군이 디지털화되고 있는데 아직도 섬처럼 고립돼서 독자적인 생태계를 꾸려가는 원시적인 산업군이 있어요. 그중 하나가 주류예요. 우리나라가 종교적인 이유로 술을 금지하진 않잖아요. 주류 산업이 지속될 것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분명히 디지털화될 거라고 판단하는데, 여기서 저희가 바꾸려는 게 뭐나면, 주류 영업사원이 어떻게 영업을 하느냐. ‘오늘은 서울 강동구 가야지’ 싶으면 출근해서 차 끌고 그쪽 동네로 가요. 주차 딱지 떼이거나 주차비 내면서 왠지 우리 술 쓸 것 같은 상점에 들어가요. 그러다 문전박대 당하기도 하죠.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감정 소모적이에요. 상점 사장님들의 경우 대부분 카스, 테라, 하이트, 호가든 정도밖에 몰라요. 다른 술을 팔고 싶어도 술을 찾을 수 있는 하나의 통합된 서비스가 없어요. 벨루가는 이런 산업판을 박살 내고 싶은 게 비전이에요. 어떻게 하면 박살 낼 수 있을까.

GQ 박살 낼 수 있을까요? 이렇게 인터넷이 발달했는데도 고전적인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면 그 세계가 그만큼 견고해서 아닐까요?
SM 맞아요. 그렇게 배타적이고 폐쇄적이지만 저는 될 것 같아요. 제가 수제 맥주 정기 배달 서비스를 시도했던 건 궁극적으로 지금 이 플랫폼을 하고 싶어서였어요. 저는 처음부터 이 플랫폼이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주류업체들을 만났어요. “나이도 어린데 너 술 몇 병 옮겨봤어?” 이런 걸 물어요. 제가 B2B 하겠다니까 상대도 안 해요. 그래서 생각한 게 ‘내가 이 사업을 하려면 아이템을 잘 만드는 것보다 관계가 제일 중요하겠구나’였어요. 이런 전통적인 시장일수록 갑을 관계를 많이 따지거든요? 그럼 여기서 갑이 뭐냐. 결국 물건을 많이 사는 사람이에요. 그럼 어떻게 하면 내가 이들의 물건을 많이 살 수 있을까? 정기 배달을 하면 되겠다. 그래서 정기 배달 서비스를 했던 거예요. 서비스 중단하기 전 2019년 6개월을 기준으로 말씀드리면, 수제 맥주를 40피트짜리 컨테이너로 8개 분량 유통했어요. 작은 수입사의 경우 1년에 20피트 컨테이너 2개 정도 유통해요. 그런 식으로 (벨루가가 정기 배달 서비스를 하던) 2년여 동안 관계 구축을 열심히 해왔어요. 지금 B2B 서비스는, 사업 초창기인 작년 이맘때쯤엔 거래 상점이 3백 곳 정도에 상품 수가 8백 개였어요. 지금은 상점이 3천 곳, 상품 수는 5천 개 정도예요. 이제는 사람들이 우리를 찾아와요. 벨루가가 시장에서 구매력 있는 플레이어가 되니까 파워게임에서 입장이 바뀐 거예요. 앞으로 이 산업판을 박살 낼 수 있는 기반을 충분히 다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GQ 영 보스들을 만나볼수록 나이는 전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SM 서른한 살인데 옛날로는 아저씨 나이죠, 뭐. <지큐>는 아티스트가 많이 읽을 것 같아서 그러는데 영상 편지까지는 아니지만 메시지 하나 남겨도 되나요? 박재범 씨, 소주 사업에 관심 많으신 걸로 아는데 협업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스윙스 씨도 너무 좋고, 창모 씨도 너무 좋아요. 진짜 되면 말이 안 되는 건데, 이거.

정세랑 1984
Writer

GQ “관련된 출판 단체들에게는 큰 실망을 표합니다. 저도 문체부 계약서에서 크게 벗어나는 출판사와는 계약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2021년 1월에 출판계가 이름만 표준계약서인 계약서를 따로 만들었고 이에 대해 정세랑 작가님이 “상생의 반대 방향으로 가는 이런 일들이 더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SNS에 남긴 글이죠.
SR 여러 이슈들이 있을 때 작가 한 사람이 말하기는 어려운데, 요새는 다행히 작가연대체들이 늘어서 다 같이 뭐가 문제인지 논의도 하고, 동료 작가들과 함께 생각한 결과물이니까 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죠. 혼자서는 너무 무섭고 어려워요.

GQ <보건교사 안은영>의 2020년 리커버 특별판 작가의 말에도 적어두셨죠. “혼자 걷고 혼자 협상하는 프리랜서 작가에게는 좋지 않은 접근들이 많습니다.” 데뷔 11년 차 프로 작가에게도 홀로 워크 라이프를 꾸려나가는 프리랜서의 삶은 여전히 녹록지 않나 보다 싶었어요.
SR 많은 경우 자기 이익을 지키기 정말 힘들어요. 거래처가 다양하고 계약서도 매번 다르니까요. 이상적인 계약서를 갖고 와서 저의 권리를 다 보호해주시는 좋은 회사도 있어요. 그런가 하면 여전히 엉망인 회사도 많고요. 그럴 때 한 사람의 개인으로 자기 이익을 지켜야 하니까 그런 점이 쉽지 않죠. 그나마 저는 ‘안은영’이라든지 여러 가지 책이 저를 보호하고 있는 것 같아요. 꾸준히 활동해온 기록들이 있고, 아껴주시는 독자분들도 계시니까 상황이 좋은 편인데도 매 순간 방어적이지 않으면 위험할 때가 있습니다.

GQ 가장 분노하게 만드는 계약 조항은 무엇인가요?
SR 주로 저작권을 통째로 넘기는 계약들이 위험해요. 1차 저작권도 그렇고 2차 저작권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이익을 직접 (글을) 쓰지 않은 사람이 크게 가져가는 계약들이 없애고 또 없애도 계속 나타나요. 눈을 피해 계속 얕은 수를 쓰는데 서로 신뢰할 수 없어서 소모되는 에너지가 커지면 멋진 일들이 일어나기 어려워집니다.

GQ 정말 혼자로는 끌어내기 힘든 변화겠어요.
SR 인터넷이 있는 시대라 다행이에요. 정보 교환이 쉬워졌죠. 다른 지역에 살아도 교류하기 쉽고.

GQ 기술의 변화가 권리의 변화도 이끄는.
SR 저는 업계별로 긴밀하게 정보를 나눌 수 있는 비공개 게시판이 하나씩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GQ 정세랑이라는 작가는 2010년에 단편 ‘드림, 드림, 드림’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후로 해마다 행보의 속도가 빠르고 넓어지는 인물이라고 느껴요. <피프티 피플>같이 수년 전 작품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고, <보건교사 안은영>으로는 영상 매체와 극본 작업에까지 손을 넓히셨죠. 이 팽창 속도가 스스로에게는 어떤가요?
SR 확장과 수렴을 동시에 고민해요. 많은 일을 활발하게 하고 싶지만 질적으로 더 집중하고 싶은 욕구도 점점 강해지는 거죠. 소설도 드라마도 오래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주제에 대해서만 쓰고 싶어요. 아무리 근사한 프로젝트라도 꼭 제가 쓰지 않아도 되는 거라면 하지 않는 쪽이 좋겠죠. 소모의 반대 방향을 택하고 싶어요. 더 많은 분께 말을 걸고 싶지만, 정확하게 제가 서 있어야 하는 지점에만 서 있고 싶은.
GQ 일의 범위는 확장해가면서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 쪽으로 수렴해간다는 거네요.
SR 네. 새로운 매체, 새로운 방식엔 마음이 열려 있지만 핵심 주제는 아주 정밀하게 선택하고 싶다는 것. 방향이 다른 욕구가 같이 있어요.

GQ 이렇게 나아가는 속도가 작가님이 과거에 한 말과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 무척 흥미로웠는데.
SR 제가 뭐라고 했죠?

GQ “문학상에 따라오는 마케팅 때문에 문학상을 받아야겠다 마음먹었다.” 실제로 2014년 <이만큼 가까이>로 창비장편소설상, 2016년 <피프티 피플>로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했어요. 이후 활발하게 꾸준히 활동하고 있고요. 문학상과 그에 따라오는 마케팅의 영향이 정말 있던가요?
SR 사실 그때와 지금은 환경이 다른 것 같아요. 길지 않은 시간에 많은 것이 변했어요. 그때는 작가와 독자가 직접 만나는 장이 거의 없어서 작가가 독자를 만나려면 어쩔 수 없이 큰 자본을 빌리고 이용해야 하는 환경이었어요. 요새는 주요 지면이 웹으로 옮겨왔고, 문학상이 아니더라도 단행본이 색다른 경로로 확산되는 경우도 있고, 그래서 과거만큼 문학상의 후광에 기대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어서 반갑죠. 변화를 체감해요.

GQ 2010년대만 해도 그런 환경이었군요.
SR 독자랑 작가 사이 매개체가 한정적이었죠.

GQ 그 시점에서 이야기해보자면 당시 가장 강력한 마케팅 수단은 문학상이었고 ‘그렇다면 내가 문학상을 타야지’ 해서 정말 탄 건 사실이죠. 문학상도 기득권의 하나라고 볼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 기득권에 등을 돌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쟁취함으로써 이용해 먹는다, 그걸 솔직히 드러내는 점이 정세랑의 톡톡 튀는 에너지처럼 보였어요.
SR 쉽게 타진 않고 한 10번 만에 탔기 때문에 패기치고는 좀 더듬더듬 가긴 했지만, 네. 저는 예술가들이 자본이랑 좀 어려운 게임을 하는 것도 재밌는 것 같아요. 자본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때 할 수 있는 예술이 있고, 자본을 업었을 때 할 수 있는 예술이 있는데, 둘 다 흥미로워서 어떤 쪽을 하고 싶은지 기회마다 가늠해보면 좋겠어요. 물론 다른 사람의 자본으로 일하는 데는 항상 위험도 있죠. 그런데 많은 사람과 일을 크게 벌일 때만 가 닿을 수 있는 지점도 분명 있어요. 부딪히기도 하고 타협도 하면서 너무 겁내지 않고 해봐도 되지 않나 해요. 요새 창작자들과 자본의 관계는 과거보다 솔직해지기도 했고요.

GQ “풍요로운 대중문화의 시대에서 자라났다”던 작가님의 성장 배경 묘사가 떠올라요. 동시대를 거쳐온 작가들이 가지는 공통점일까요?
SR 굳이 세대의 특징으로 얘기하자면 무엇보다 변신에 유연하게 반응하는 게 특징 아닐까 싶어요. 단편소설 같은 걸 쓸 때는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어떤 타협도 없이 제멋대로 가버릴 때도 있거든요. 협업을 할 때와는 목소리가 아예 달라지죠. 많은 창작자가 비슷하게 그때그때 몸을 바꾸며 재밌는 작업들을 하고 있지 않나 해요.

GQ 워크 라이프에서 한 줄기 빛으로 삼는 문장으로 “호랑이 등에서 떨어질 때까지”를 말하셨죠. 어떤 의미예요?
SR 저를 영상의 세계로 처음 초대해주신 피디님이 그런 말씀을 하는 거예요. “이 시대의 창작자들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어느 순간 자기가 일하는 규모나 속도를 조절하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 그걸 호랑이 등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어떤 흐름 속에 있을 때 그걸 타야 한다. 그건 선택사항이 아니다. 오면 타야 하는 거고 떨어질 때까지 타는 거다.” 근데 저는 안 그럴 수 있을 줄 알았거든요. 나는 내 속도로 내가 결정하면서 일해야지 생각했는데, 실제로 어느 순간 제 컨트롤을 벗어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컨트롤을 벗어난 상태라 해서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고, 너무 제어하려고 하지 말고 타고 있어야겠다, 그때 해주신 말씀이 생각나더라고요. 언젠가 여유 있게 제 호흡을 찾을 수 있을 때가 오겠죠. 흐름의 시작도 끝도 선택과는 무관하겠지만요.

GQ 어떤 요인이 호랑이 등에 올라탄 작가님을 가장 뒤흔드나요?
SR 내년에 내가 뭘 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 인생에 계획이 있어야 안심이 되는데, 어느 순간 계획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어요. 1인 창작자는 특히. 그런데 재밌어요. 흥미로운 일들이 왔을 때 놀이기구처럼 타보면.

GQ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개념이랄까.
SR 그런데 스스로의 보스가 되어야 하는 분들은 어떤 기회 하나에 너무 목매지 않아도 되는 것 같아요. 언뜻 괜찮은 기회가 왔는데 조건이 맞지 않는다든가, 상대가 나를 별로 존중하지 않는다 싶을 때는 그 자리에서 걸어 나가도 꼭 다음 기회가 오더라고요. 전체적인 신호란 건 단발성이 아니고 동시다발적이기 때문에. 겉으로는 그럴듯한데 따져보니 나를 이용하는 것 같다,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신뢰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날 때까지 기다려도 다음 기회가 와요. 안 올 것 같지만 꼭 와요. 이건 제가 경험으로 체득했기 때문에 알아요. 약간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스스로를 보호하는 쪽에 항상 중심을 둔다는 것. 그럴 때 협상력이 생기더라고요.

GQ 5월에는 첫 에세이집이 나온다고요.
SR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다녀온 여행이 주 내용인데, 저는 에세이를 빨리 쓸 수 있는 작가가 아니더라고요. 지나치게 오래 걸렸어요. 그사이 있었던 게 사라지고 없었던 게 생긴다든지 변화가 쌓여버려서 여행 에세이인데 여행 에세이가 아닌 독특한 뭔가가 됐어요.

GQ 이제야 출간 준비가 됐는데 계획에 없던 일이 또 일어났네요. 팬데믹. 여행을 마음껏 가지 못하는 시대에 여행 에세이라니. 정면 돌파예요?
SR 여행이 멈춘 시기라서 다른 각도로 보이는 지점들이 있더라고요. 지금까지 우리가 여행한 게 그럼 어떤 의미였지? 그 자유가 굉장한 자유였구나. 전혀 여행을 할 수 없을 때에야 여행 에세이를 완성하다니 청개구리 같죠.

한양규 1983 / 한승재 1983 / 윤한진 1984
Architects, FHHH Friends

GQ 한양규 소장(이하 YK), 한승재 소장(이하 SJ), 윤한진 소장(이하 HJ)은 대형 건축사사무소로 꼽히는 이전 직장에서 만나 함께 퇴사했죠? 퇴사 단골 질문, 불안감은 없었나요?
SJ 어제 우리끼리 비슷한 주제로 얘기를 나눴어요.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보며 위안 삼았던 것 같아요. 내가 불안한 것도 있는데 ‘얘는 애까지 있는데, 아이구’ 하는 느낌. 절 보면서는 ‘나는 결혼이라도 했지, 쟤는 결혼도 못 하겠네’ 이런 위안.
HJ 최근 독립한 저희 직원이 어제 왔거든요. 와서 너무 걱정이 많다고 하는데 우린 왜 아무 걱정이 없었지? 걱정이 없었던 이유가 이거였구나, 답을 찾았죠.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불쌍히 여기며 이런 생각도 했던 거죠. ‘나 혼자 망하는 것도 아니고.’

GQ 순수한 것을 향한 갈증이 푸하하하프렌즈 결성을 이끈 걸로 알아요. 순수한 눈물, 순수한 노동, 순수한 열정을 원했다고요. 역으로 말하면 이전 직장에서는 그런 걸 느끼지 못했다는 건가요?
HJ 그렇죠. 예를 들면 영화를 보다가, 음악을 듣다가 눈물이 날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서 감독이나 뮤지션에 존경심이 생기기도 하잖아요. 사람들한테 진짜 자기 감성을 전달해줄 수 있는 직업 자체에 대한 존경이죠. 건축은 그게 안 될 거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거든요? 건축도 사람에 가까이, 어쩌면 훨씬 더 가까이 있으니까. 그런데 막상 실무를 시작해보니까…, 그런데 이건 회사의 문제라기보다는 시스템의 문제죠. 대형 회사를 보면 ‘실패하지 않아야 한다’라는 큰 목표가 있잖아요. 그러다 보면 그냥 다 재미가 없어지더라고요. 뭘 해도 다 안전지향적으로만 진행하게 돼요. 그리고 저는 그 회사에 있는 동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사용자(클라이언트)를 직접 만나본 적이 거의 없어요.

GQ 그러면 어떻게 설계를 해요?
HJ 보통은 팀장님, 소장님, 대표님이 미팅하고 저희는 전달받는 거죠. 맨날 밤새우며 엄청 열정적으로 일했거든요? 그런데 그 대상이 모호한 거죠. 그걸 알게 된 순간 갑자기 ‘뭐 하고 있지?’ 싶었어요. 작은 일이라도 직접 전달해주고 싶었어요.

GQ ‘실패하지 않아야 한다’는 목표가 거기는 있었다는 것. 여기는 없다는 의미로도 들리네요.
HJ 네. 그리고 이전 회사가 군대 같은 조직은 아니었거든요? 되게 유순한 조직이었어요. 그런 조직에는 모든 사람의 의견을 취합하려는 특성이 있어요. 생각해보면 좋잖아요. 많은 사람의 의견을 모으니까. 그런데 그러면 두루뭉술한 게 나와요.
SJ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GQ 의외네요. 보통 젊은 사람들이 이끄는 회사는 유순함을 선호할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YK 저희는 아니에요. 셋이 같이 일하지 않는 이유도그거예요.(푸하하하프렌즈는 건축가마다 팀원 2명씩을 둔, 세 팀으로 이뤄져 있다. 각 팀이 독립적인 작업을 하면서도 푸하하하프렌즈라는 하나의 그룹으로 움직인다.)
SJ 예를 들어 작가가 책을 쓰는데 다들 착하게 협업만 한다고 생각해봐요. 모두의 머리를 합치면 더 대단한 게 나올까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더 무궁무진한 세계가 있는데 그 세계로 깊이 들어갈 생각은 안 하고 평화적이고 민주적으로 하려고 하는 게 현대 사회가 재미없어지는 이유 같아요.
YK 그래서 저희는 누가 디자인 작업을 하면 절대 관여할 수 없어요. 할 수 있는 말은 정해져 있어요.“와…” 감탄사 정도.

GQ 세 분이 푸하하하프렌즈라는 이름으로 토대를 다질 때 꿈꿨던 이상향이 있다면, 그게 지금도 잘 작동하고 있나요?
SJ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어요.
HJ 그런데 우리가 만든 규칙은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 건 전혀 없어요.
SJ 전략이란 건 무의미해요. 그건 남들한테 설명하기 위한 것밖에 될 수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싫은 건 안 하고, 좋은 건 하고 그러거든요? 일이 들어왔을 때 하고 싶다 그러면 하고요, 너무 많이 해서 지겹다 싶으면 안 하기 때문에 정체가 계속 바뀌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점점 식상한 거 안 하고요, 재밌는 거 계속 찾아가고 있어요. 이런 면에서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어요.

GQ 2013년에 개소한 이후 당시 ‘힙플레이스‘로 꼽혔던 옹느세자매와 수르기나 최근 연희동 단독주택 ‘집 안에 골목’ 작업, 광화문광장 개선안 가작 당선작 등 푸하하하프렌즈가 남겨온 흔적에는 비슷한 결이 보여요. 기본에 엄격하다는 결.
YK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HJ 셋 다 거기에 엄격한 건 맞아요. 표현 방식에 조금 차이가 있는데, 양규는 그게 표현에 드러나는 편이고 저랑 승재는 숨기려고 하죠. 저는 숨기려고 해도 잘 안 숨겨지긴 해요.
SJ 양규는 가르치듯이 설계를 하죠. ‘이 기본도 안된 것들아, 이게 건물이다’ 하는 느낌.
YK 평면도를 봤는데 생각이 안 들어간 게 느껴지면 유독 화를 많이 내는 편이긴 해요. 그 많은 돈을 그냥 이렇게 썼다고? 짜증나요.

GQ 푸하하하프렌즈의 입사 지원서에는 자기소개 대신 건축 에세이를 적어내야 하는 빈 종이가 있잖아요. 궁금해졌어요. 그렇다면 세 분은 어떤 주제의 건축 에세이를 쓰고 싶을까?
HJ 건축 에세이를 받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요. 저는 첫째로 철자를 틀리지 않는지, 하나의 문장을 완성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보거든요. 기본이 돼 있는지 형식 먼저 보는 편이고, 내용을 읽을 때는 감정을 전달하는 뭔가가 있는지 봐요. 지금 (푸하하하프렌즈에) 들어와 있는 친구들 에세이를 읽을 때 저는 조금씩 눈물이 났어요. 저도 평소에 글을 조금씩 써보는데요, 저는 다 어린 시절 이야기들이더라고요. 다들 그렇게 살아온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저는 조금 다르게 산 것 같더라고요. 그걸 글로 쓰곤 해요.
YK 저는 눈떠서 잘 때까지 설계 생각밖에 안 해요. 왜 길에 있는 창들이 다 반투명으로 바뀌었지? 그런데 집은 왜 이렇게 비싸지? 저런 집에 살기 싫은데 나는 왜 돈을 모아놨지? ‘일상’ 이런 말은 너무 지루해서 하기 싫은데, 그냥 사는 얘기를 계속하게 되는 것 같아요.
SJ 전 최근에 이걸 썼어요. (A4 네 장 분량의 글을 출력해 전해주며) 우리에 대한 얘기예요. 우리가 도대체 뭘 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 뭘 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는 거다, 뭘 안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생각한 거예요.

GQ 제목이 ‘멀리 달아나기’군요.
HJ 저희가 했던 ‘집을 그려드립니다’ 프로젝트를 혹시 아시나요?

GQ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집 이야기를 듣고 그 자리에서 바로 그려주던 프로젝트. 개소 초기인 2013년에 종로4가 지하상가에서 했죠?
HJ 그걸 하면서 저는 제가 엄청 재밌는 사람이라고 느꼈거든요. 저는 어릴 때 우리 아버지가 설계한 단독주택에 살았어요. 집이 개판이었어요. 거실에서 주방으로 가려면 방 2개를 통과해야 했어요. 하여간 웃긴 집이었어요. 그런데 그때는 그게 이상한 줄 모르고 살았어요. 나중에 보니 그 집은 이상한 집이 돼버린 거예요. 그 기준이 아파트가 됐기 때문에. 어릴 때 저는 그 집에서 전혀 불편함 없이 살았거든요? 지금은 클라이언트 미팅을 해도 1LDK(Living Room · Dining Room · Kitchen, 거실 · 식당 · 부엌을 통합해 지칭하는
개념), 2LDK 이런 얘기만 해요. 아우, 너무 지겨운 거죠. ‘멀리 달아나기’도 이런 얘기와 연결된다고 생각해요.
SJ 저는 요즘 아파트를 짓고 싶어요.
YK 나도.
HJ 승재는 최근 독립하면서 아파트에 살게 됐고, 양규도 아파트에 살게 된 지 2~3년 됐나. 저도 4년 전부터 처음으로 아파트에서 살고 있거든요. 셋 다 지금 아파트에 대한 생각이 꽉 차 있긴 해요. 언젠가 터져나올 것 같아요.

GQ 거주 공간에 대한 도전이라고 봐야 하나요?
SJ 아파트에 살아보니까 이게 너무 사람을 우매하게 취급하는 것 같아요. 무슨 얘기냐면, 아파트에는 불편한 게 없잖아요. 불편한 게 없는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거예요. 나쁠 게 없어서 사는 집들이 되는 거죠.
HJ 승재 말은 이거예요. 예로서 내가 겪는 그런 일이 뭐가 있지 생각해보면 아파트에는 집 현관문이 하나잖아요. 어느 순간 그게 너무 목을 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아이가 이제 갓 돌이 지났는데 현관문이 달칵달칵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그쪽을 응시해요. 새로운 사람이 왔구나? 누가 나갔구나? 그걸 알게 되는 장치인 거예요. 갑자기 통발에 갇힌 기분이 들더라고요. 생각해보면 불편한 게 아니잖아요. 현관문 하나인 게 뭐가 불편해요. 그렇다고 그게 좋기만 한 것도 아니라는 거죠. 우리 애가 크면 출입문이 2개인 집에 살 수 있을까? 출입구가 2개라는 사실을 오히려 불안해 하지는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 거죠.

GQ 푸하하하프렌즈가 좇던 순수한 갈증이 이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네요.
SJ 우리가 순수하다고 생각한 게 ‘이만큼’이었으면 엄청 정화되어 ‘요만큼’이 됐어요. 그 갈증이 해소됐다기보다 그 위에 또 다른 갈증이 생겼어요. 이런 갈증이 안 생기면 삶이 힘들 것 같아요.

    에디터
    김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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