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오 "아무것도 아닌 지금이 너무 행복해요" | 지큐 코리아 (GQ Korea)

피오 "아무것도 아닌 지금이 너무 행복해요"

2022-03-23T13:55:35+00:00 |interview|

잘 다녀오겠습니다.

스웨이드 셔츠, 폴로 니트, 레더 벨트, 팬츠, 모두 토즈.

GQ 소년의 얼굴로 해병대에 간다고요?
PO 마음만 소년이면 되죠.(빙그레)
GQ 직접 만든 극단 이름도 ‘소년’이고 평생 소년을 간직한 채 살고 싶다는 ‘소년처럼(Comme Des Garcons)’이라는 곡도 만들었죠. 그래서 괜히 걱정됐어요. 소년다움이 훼손되면 어쩌지?
PO 에이. 1년 반 동안 조금 고된 생활을 한다고 해서 저라는 사람이 변할까요? 아니요. 제대하면 또 제 모습으로 금세 돌아올 거예요. 제 안의 소년이 여전하다면 저는 괜찮아요. 겉모습은 할아버지가 되든, 아저씨가 되든.

블루 데님 재킷, 핑크 타이다이 셔츠, 블루 데님 팬츠, 모두 펜디.

GQ 두려운 건 없어요?
PO 물론 두렵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죠. 주변에서 하도 “너 이제 죽었다”라고 하니까. 그런데 저는 한편으로 두려움을 즐기거든요. 살면서 이런 경험 언제 해 보겠어요. 인생 전체로 보면 아주 일부, 1년 반인걸요.
GQ 두려움을 즐긴다니, 어떤 면에서요?
PO 궁금해요. 진짜 힘든 상황에서 제가 잘 이겨낼 수 있을지. 힘들 때 포기를 할지, 그럼에도 꾹 참아낼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 재밌어요.
GQ 문밖에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있는데, 기어코 문을 여는 그런 마음?
PO 맞아요. 저 너머에 뭐가 있을까?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손을 벌벌 떨면서도 손잡이를 돌리는 그 상황이 무서운데, 흥미진진해요. 궁금증을 안고 걸어 나가는데, 결국 잘해내면 행복감이 굉장히 커요.
GQ 무서워도 끝까지 걸어가는 사람이군요.
PO 네.

나일론 코트, 나일론 재킷, 브이넥 니트, 블랙 팬츠, 모두 보테가 베네타. 레더 더비 슈즈, 오프 화이트. 클래식 하금테 안경, 퍼블릭 비컨. 피에르 잔느레 이지 체어 업홀스테리, 챕터원.

GQ 얼마 전 <플레이백> 연극 보고 왔어요. 항상 피오의 밝은 얼굴만 보다가 아프고, 슬프고, 그늘진 얼굴을 보니까 신선하더라고요.
PO 함께하는 ‘극단 소년’ 친구들(고등학교 시절의 친구들과 함께 만든 극단이다)이 그러더라고요. “네가 이렇게 울고, 진지하게 연기하는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라고요.
GQ 저도 비슷하게 느꼈어요.
PO 제 슬픈 얼굴을 처음 봤다고 하시는 분이 많았어요. 정작 저는 잘 모르겠어요. 제 안에 있던 모습을 보여드린 거니까요. 주변의 반응을 보니 새삼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도대체 내가 평소에 어떤 모습이길래?’
GQ 평소에는 늘 밝게 웃고, 좀처럼 울지 않는 피오죠.
PO 대체로는 그렇죠. 제가 추구하는 모습도 그렇고요. 같이 있을 때 기분 좋은 사람, 행복한 사람, 유쾌한 사람이고 싶어요.
GQ 사람이 항상 그럴 수만은 없잖아요.
PO 그래서 힘들 땐 집에 혼자 있어요. 평소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의지를 하는 편인데, 힘든 순간에는 혼자 있어야 해요. 우울한 영화를 보기도 하고, 혼자서 생각에 빠지죠. 그래야 정리가 잘되고 방법도 빨리 찾게 돼요. 털고 일어나 재부팅을 하는 법이죠. 힘든 모습은 들키고 싶지 않아서요.
GQ 그래서일까요? 이번 역할에서 더 자유로워 보였던 건.
PO 뭐라고 해야 할까···. 힘들었지만, 너무 힘들었지만, 한편으로는 편했어요. 그리고 이번 공연하면서 사람들이 저를 보는 시선이 어떤지 새삼 느꼈어요. 제가 원래 밝은 이미지잖아요. 덕분에 슬픈 연기를 할 때 관객에게 두 배로 가닿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정작 주변의 친한 사람들은 제가 우는 연기 하니까 보고 싶지 않다고 얘기하더라고요. 왜 그런 기분 있잖아요. 아빠가 우는 모습 보기 싫은 기분. 그동안 밝다고만 생각한 제게서는 못 보던 모습이라 기분이 이상했나 봐요. 그런데 어쩌겠어요, 연출가가 울라는데.(웃음) “여기서 눈물을 한 방울 톡 떨어뜨렸으면 좋겠어요.”, “여기서는 구겨진 종이처럼 보였으면 좋겠어요.” 그 어려운 미션을 하나씩 깨면서 느꼈어요. 우리나라의 수많은 배우가 괜히 연기를 잘하는 게 아니구나, 이렇게 연극하며 수없이 갈고 닦았기에 어떠한 상황에서 한 방울의 눈물을 톡 떨어뜨릴 수 있구나. 그 한 방울엔 많은 것이 담겨 있구나.

베이지 카 코트, 메종 마르지엘라. 니트 집업, 이자벨 마랑. 데님 팬츠, 리바이스. 사이드 레이스업 스니커즈, 보테가 베네타. 버건디 뿔테 안경, 퍼블릭 비컨.

GQ 연극 끝나고 나서 극단 소년 친구들과 어떤 이야기 나눴어요?
PO 관객들의 반응은 굉장히 좋았지만, 저희는 미완성이라고 생각했어요. 부족함이 많았죠. 인물을 표현하는 데 좀 더 친절했다면, 인물에 대한 설명이 충분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죠. 저 인물이 왜 갑자기 울지? 저렇게까지 울 일인가? 보는 입장에서는 뜬금없이 느껴질 수 있었을 것 같아서요. 당장의 평가에 너무 취하지 않고 더 좋은 극을 만들려면 우리가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할 지 툭 터놓고 이야기하면서 고민을 나눴어요. 다음 작품을 쓰고 극을 올릴 때 더 좋은 작품이 될 수 있도록요.
GQ 감독판으로 더 보여주고 싶은 욕심도 있겠네요.
PO 공연이 짧으면 짧은 대로 임팩트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어요. 그런데 만드는 입장에서는 압축하면서 잘려나가는 신이 너무 아깝게 느껴져요. 아픈 손가락이죠. 나중에는 두 가지 버전으로 공연을 올리고 싶어요. 감독판처럼 준비한 모든 것을 보여주는 버전, 그리고 날린 후의 버전.
GQ 지금은 어떤 이야기 쓰고 있어요?
PO 뮤지컬을 하고 싶었는데 배우들이 노래를 못 해서 올리게 된 음악극. 제목은 미정이지만 일단 그 이야기를 극단 친구들과 즐겁게 쓰고 있어요.
GQ 극단 친구들과 공유하고 있는 꿈이 있어요?
PO 연극 하면 배고프다는 선입견을 깨고 싶어요. 연극만 해도 돈을 잘 버는 배우, 어렵게 사는 느낌 나지 않는 연극 배우 한번 해보자고 해서 시작한 게 극단 소년이거든요. 이번에 <플레이백> 공연하면서 처음으로 추가 연장 공연을 해봤어요. 반응이 좋아서 지방 공연도 하고 싶었는데, 나중에 잡으려니 극장이 안 잡히더라고요. 이렇게까지 많은 분이 좋아해줄 줄 모르고 지레 겁먹어서는. 코로나만 아니었어도 아흐.

라이더 재킷, 오버 셔츠, 배기 팬츠, 데저트 부츠, 모두 토즈. 플레이도우 의자, 카 스튜디오 at 챕터원.

GQ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오랜 친구를 만나면 그 시절로 되돌아가잖아요. 오랜 친구와 계속 함께하는 게 피오가 늘 소년다울 수 있는 비결일까요?
PO 오늘처럼 반짝이는 촬영장에서 잔뜩 멋있는 척하다가 친구들과 만나면 아무 것도 없던 어렸을 때의 저로 돌아가요. 오랜 친구들과 있을 때만 나오는 말과 행동이 있거든요. 너무 편한 제 모습을 보는 게 행복해요. 보통 사람 표지훈. 그래서 연극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극장에서 같이 청소하고, 시답잖은 농담하고, 가족 같은 제 스태프들과 일하는 건 일처럼 느껴지지 않거든요.
GQ 피오에게 행복은 특별한 게 아닌 것처럼 느껴져요. 행복 뭐 별거? 싶은 느낌.
PO 맞아요.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은 날이 제게는 가장 행복한 날이에요. 평소처럼 스케줄 잘 마치고, 평소처럼 집에 와서 휴대 전화 뒤적거리다 잠드는 하루. 특별한 에피소드 없는 보통의 하루. 그런 날이면 너무 행복하게 잠이 들어요. 남들은 저를 보고 그러죠. 쟤는 뭐가 늘 재밌고 즐거울까? 왜 항상 웃을까? 그냥 별것 아녜요. 아무것도 아닌 지금 이 시간이 행복하니까.
GQ 남들 눈치 잘 안 보죠?
PO 별로 신경 안 써요.
GQ 대단해요. 특히 연예인으로서는요. 다들 눈치 보면서 살기 바쁜데.
PO 남들 눈치 보면서 보내는 내 하루가 너무 아까워요. 그 시간이 참 별로예요.

스트라이프 셔츠, 스트라이프 수트 셋업, 모두 폴로 랄프 로렌. 스틸 워치, 까르띠에.

GQ 이후의 작품은 군대 후가 되겠네요. 어떤 작품들 만나고 싶어요?
PO 음···. 어떤 작품보다는, 작품에 깊이 함께 빠질 수 있는 연기를 하는 사람들과 같이 작업하고 싶어요. 저는 무엇보다 사람을 좋아해요. 저도 상대방에게 함께할 때 좋은 배우가 되고 싶고요.
GQ 어떤 사람과 연기할 때 깊이 빠지게 돼요?
PO 열심히 한 걸 너무 티내지 않는 사람. 그런 배우들과 함께 연기하면 느껴져요. 이 사람은 분명히 굉장히 열심히 대본을 봤다, 혹은 여러 세월로 쌓은 내공이 있어서 할 수 있는 연기다. 그럼에도 뽐내지 않고 무던하게 연기하는 사람요. 그런 사람이 저를 변화시켜요.
GQ 특히 어떤 배우로부터 느꼈어요?
PO 신정근 선배님요. 아버지처럼 좋아하고, 형처럼 같이 장난치고 싶고, 삼촌처럼 같이 있으면 즐겁고, 친한 친구처럼 같이 술 먹고 싶은 선배님이에요. 정근 선배님 덕분에 <호텔 델루나> 후에 아티스트 컴퍼니에 합류할 수 있게 됐고요. 늘 조언해주시길 “지훈아, 지금 하는 것처럼 연극하면서 묵묵하게 오래, 열심히 연기해라” 그러세요.

스티치 데님 재킷, 스티치 데님 팬츠, 모두 보테가 베네타. 셔츠, 질 샌더 at 분더샵 맨.

GQ 연기도, 삶도, 패션도 굳이 티내지 않는 게 더 멋있다고 생각하나 봐요.
PO 맞아요.
GQ 알아봐주는 사람이 곁에 없다면 평생 나만 알 지도 모르는데요?
PO 알아봐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나 연극해요! 나 연기 잘해요! 뽐낼 생각 없어요. 티내지 않고 제 자리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면 누군가 분명 알아봐주겠지. 그렇게 하루, 일 년, 이 년, 삼 년, 십 년 계속 해왔어요.
GQ 알아봐주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이 꾸준히 걸을 수 있는 동력이 되었겠네요. 모두가 모른대도, 이 사람만은 알아봐줬으면 하는 존재가 있다면요?
PO (한참 동안 조용히 고민한다) 나중에, 나아중에, 제가 키우게 될 아들이나 딸이 알아봐준다면, 그러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우리 아빤 이런 사람이야”하면 저는 그럴 것 같아요. “그래, 네가 알아준다면 됐다.” (길고 낮은 침묵) 그런데 저 지금 너무 진지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