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의지와 상관없이 동생이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첫째가 된다. 평생 동안 어깨를 짓누르는 첫째라는 무게감, 첫째들만 안다는 세상 서러운 순간들.
“너는 알아서 잘하잖아”
밥 먹을 때도 동생, 옷을 살 때도 동생, 잠을 잘 때도 동생. 하나부터 열까지 동생만 챙기는 부모님 덕분에 첫째는 저절로 독립심과 자립심을 키울 수밖에 없다. 간혹 섭섭함을 내비치기라도 하면 “너는 알아서 잘하잖아”라는 말만 되돌아온다. 운명처럼 주어진 역할이기에 이해를 해보려고는 하지만 종종 서러움이 밀려오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첫째도 챙김 받고 싶고, 어리광을 부리고 싶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동생에게 잘해줘 봤자 소용없다는 걸 느낄 때
특히 나이 차이가 많이 날 때 더 많이 느끼게 되는 경우다. 행여 밥이라도 굶을까, 감기라도 걸릴까, 주머니에 돈 한 푼 없을까 걱정돼 챙겨주려고 하면 돌아오는 건 신경질적인 눈 흘김이다. 동생 잘 챙겨주라던 부모님께 이 모습을 곧이곧대로 일러바치고 싶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는 첫째의 숙명. 어차피 ‘형(오빠)인 네가 잘해줘야지’라는 말이 돌아올 것이 뻔하다.
부모님이 나에게만 의지할 때
챙김 받는 건 동생이지만 부모님을 챙기는 건 첫째의 몫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동생이 불효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유독 첫째에게 의지하려는 부모님이 많다. 받는 거 없이 주는 것이 사랑이라 했건만, 왠지 모르게 씁쓸함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자식이 된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지만, 한편으론 부담감으로 다가올 때도 있다.
무조건 이해하라고 할 때
첫째의 필수 덕목, 바다와 같이 넓고 깊은 이해심이다. 동생과 쌍방 잘못으로 싸우게 된 상황에서도 언제나 먼저 혼나고, 먼저 다가가야 하는 건 첫째의 역할이 된다. 동생의 잘못일 때도 마찬가지. 분명 원인 제공자가 동생임에도 매를 맞게 되는 것은 첫째의 몫이다. 이의를 제기해도 ‘동생은 아직 철이 없으니까, 동생은 아직 어리니까 네가 이해해야 한다’라는 말뿐. 동생이 몇 살이 되든, 철이 들든 말든, 첫째는 무조건적인 이해를 강요받는다.
동생의 본보기가 되라고 할 때
이 세상의 모든 부모들은 첫째가 이상적인 인간상을 갖추길 바란다. 공부할 때도, 밥 먹을 때도, 심지어 화장실에 갈 때도 동생의 본보기가 될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 나이 때에 충분히 할 수 있는 실수나 장난에도 “네가 잘해야 동생이 보고 따라 배우지”라는 말로 혼나게 될 때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다. 옆에서 샐쭉거리는 동생을 보면 더더욱 서러움이 물밀듯이 밀려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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